6.10 만세 운동

  • 1987년 6월 10일에 있었던 민주항쟁에 대해서는 6월 항쟁 항목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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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6년 6월 10일 대한 제국의 마지막 임금이던 순종 황제의 장례식에 일어났던 독립 만세 운동이다.

1 개요

천도교조선공산당3.1 운동과 같은 만세시위를 다시 한번 전개하고자 이 두 단체의 주도하에 이뤄졌다. 권오설을 중심으로 운동지도부로서 '6.10 투쟁특별위원회'가 설치되고, 시위의 전국적인 확산을 위해 순종황제의 장례식에 서울에서는 학생을 중심으로, 지방에서는 장례식에 참석한 대중들을 결집해서 항일 만세시위를 전개하기로 계획했다.

만세운동이 벌어진 당일인 1926년 6월 10일에는 일본 경찰, 헌병 외 5천 명의 보병, 기마병, 포병 등이 삼엄하게 지키는 가운데, 당시 22세였던 이현상 지휘 하의 중앙고보 학생들 30-40명이 용감히 만세를 제창하고 격문 1천 장을 살포하며 태극기를 휘날린 것으로 노도와 같은 만세함성이 종로 단성사 앞을 가득 채우기 시작했다. 그러자 관수교 부근에 도열해 있던 보성전문학교 학생들이 '대한독립만세'를 소리 높여 외치고 전단을 뿌렸으며, 이에 맞은 편에 모여 있던 연희전문학교 학생들이 만세를 부르며 격문을 살포하면서 시위가 확대되었다.

이 6.10 만세운동에는 다양한 세력이 참여하였는데 해외에서는 조선 공산당 임시 상해부, 임시정부의 일부 세력, 임시정부의 외곽 조직인 의용대, 그리고 일본에서 유학하던 학생들까지 참가하였다. 한편 국내에서는 조선공산당, 고려공산청년회, 천도교, 조선노동총동맹, 국내 학생운동조직 등이 참가해서 각 세력 간에 긴밀한 연대를 이뤄 만세시위를 추진했다.

만세 시위 과정에서도 각 참여 단위들은 각자의 역할을 분담하기로 했는데, 조선공산당 계열은 운동의 지휘부를 이끌었고, 천도교는 유력한 조직기반을 바탕으로 격문 인쇄와 지방 연락을, 여기에 조선학생과학연구회 같은 학생단체는 서울에서 만세운동을 점화 주도하기로 하였다.

이러한 특성으로 인해 6.10 만세 운동에서는 다양한 이념적 편향의 구호와 주장들이 제기되었다. 교육과 관련해서는 국가경비에 의한 의무교육과 직업교육을 실시, 식민지 노예화 교육의 소멸, 보통교육을 의무교육으로, 보통학교 교육용어를 조선어로, 학생집회의 자유보장, 대학은 조선인 중심으로, 일본인 교원 배척, 조선인 교육은 조선인 스스로등이 주장되었다.

한편 만세 시위와는 별개로 순종황제의 장례식 때는 송학선 의사의 의거도 있었다. 송학선이 사이토 마코토 총독을 처단하려다 목표를 잘못 잡아서 총독이 아닌 다른 일본 정치인들을 살해하고 붙잡혀서 사형당하기도 했다.

2 일제의 반응과 의미

이미 3.1 운동으로 한번 데인 적이 있는 일제는 철저하게 탄압했고, 서울에서는 학생 중심으로 만세시위가 일어났을 뿐이고 지방에서는 산발적인 시위 이외에는 크게 일어나지 못했다.

그러나 국내외 민족운동에 커다란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무엇보다 더욱 큰 의미는 이념을 초월한 운동 세력의 연합에 의해 반일민족운동을 전개하려 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특히 3.1 운동 이후로 학생운동이 점점 조직화되어 조선학생회, 조선학생대회, 조선학생과학연구회 등의 독자적 학생운동 조직을 만들었다. 이들이 6.10 만세운동의 중심세력으로서 수행하였는데 이것을 계기로 학생들이 독자적인 운동주체로 부상하게 되고 이는 광주학생항일운동(1929년)같은 주요 반일운동의 주체가 되었다.

이 사건으로 천여 명이 체포되어 투옥되고, 제2차 고려공산청년회 책임비서였던 권오설을 비롯한 다수의 공산당원이 체포됨으로서 조선 공산당이 와해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여담으로 이때 고하 송진우는 정인보와 함께 순종황제의 유언을 위조해 만세운동을 확산시키려 했으나 발각되어 이루어지지 못했고, 이어 11월 '국제농민본부기념사' 사건으로 징역 6월형이 확정되어 복역했다가 1927년 2월 쇼와 덴노 즉위기념 특사로 출옥했다. 박헌영도 배후 조종 혐의로 체포되어 고문을 당했으나 무혐의로 밝혀진다.

드라마 야인시대 4회 후반부에서도 6.10 만세운동이 그려지는데 학생들이 만세를 부르며 거리로 나오자 미와가 체포 하는것으로 묘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