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에타노 시레아

파일:Attachment/가에타노 시레아/시레아1.jpg
이름가에타노 시레아(Gaetano Scirea)
생년월일1953년 5월 25일
사망월일1989년 9월 3일
출생지체르누스코 술 나비길로
국적이탈리아
신체조건178cm 75kg
포지션DF(스위퍼)
소속팀아탈란타 BC(1972~1974)
유벤투스 FC(1974~1988)
국가대표78경기 2득점
이탈리아 축구 국가대표팀 역대 주장
마르코 타르델리
(1984~1985)
가에타노 시레아
(1985~1986)
안토니오 카브리니
(1986~1987)
세계 최고? 수비에서라면 그건 시레아를 다르게 부르는 이름이다

모든 수비수들은 시레아의 "그것" 을 배울 필요가 있다.
- 디에고 마라도나

1 커리어

FIFA World Cup ( 1982 )
Serie A ( 1975 , 1977 , 1978 , 1981 , 1982 , 1984 , 1986 )
Coppa Italia ( 1979 , 1983 )
European Cup ( 1985 )
UEFA Cup ( 1977 )
UEFA Super Cup ( 1984 )
UEFA Cup Winners Cup ( 1984 )
Intercontinental Cup ( 1985 )

2 소개

프란츠 베켄바워, 파올로 말디니, 프랑코 바레시, 다니엘 파사레야, 바비 무어, 엘리아스 피게로아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축구 역사상 최고의 수비수 중 하나이자 유벤투스 FC의 주장이며 이탈리아 역대 최고의 수비수.

유벤투스에서만 552경기에 출장한 레전드이다. 1974년부터 1988년까지 유벤투스에서 활약하고 은퇴를 했고 그 해 유벤투스의 수석코치로 임명됐으나 1년 3개월 뒤 1989년 9월 3일에 폴란드에서 36세의 나이로 교통사고로 사망한 비운의 사나이. 그 후 1990년 신축된 스타디오 델레 알피에는 "꾸르바 가에타노 시레아"라는 이름의 서포터석이 설치되었고, 유벤투스 측은 매년 시레아를 기리는 행사를 열고 있다.

가에타노 시레아가 이탈리아 축구사에서 한 획을 그은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지만 이탈리안 리베로를 완성시켰다는 것에 있다. 베켄바워를 정점으로 세계 축구의 중앙 수비수들은 너도 나도 할 것 없이 리베로 플레이를 했지만 그 시대에 진정으로 제대로 된 리베로 플레이를 할 수 있었던 선수는 아르헨티나의 다니엘레 파사레야, 칠레의 엘리아스 피게로아, 그리고 베켄바워의 후계자로 꼽히는 서독의 울리히 슈틸리케 정도 밖에 없었다. 가에타노 시레아는 이런 상황에서 '이탈리아 축구에 맞는 리베로는 이런 것이다!' 라는 플레이를 직접 보여주었다. 그리고 결과는 대 성공. 플라티니, 파올로 로시, 타르델리, 젠틸레 등과 함께 유벤투스의 전성기를 이끌었고, 그 흐름을 타고 이탈리아의 36년 만의 3번째 월드컵 석권을 이루었다. 82년 결승전에서, 역대 최고의 결승전 골 셀리브레이션으로 손 꼽히는 마르코 타르델리의 결승골 득점 장면을 보면 최후방부터 드리블을 몰고가서 원투패스로 독일 진영을 완전히 유린하고 타르델리에게 어시스트하는 가에타노 시레아를 볼 수 있다.

거기다 그와 함께 역사상 최고의 수비수중 하나로 뽑히는 프랑코 바레시는 시레아가 국가대표를 은퇴하기 전까지 아주리 국가대표의 주전을 차지하지 못했다.[1]

-> 바레시가 시레아에 밀려 이탈리아 대표팀에 출전하지 못했다는 건 근거 없는 루머이다. 바레시는 단지 당시 아주리 감독이던 엔조 베아르조트의 선호도 차이에서 밀렸을 뿐이다. 당시 바레시는 베아르조트 시절 수비형 미드필더로 기용당한 적이 있고, 이러한 무분별한 포지션 변경에 화가 난 바레시는 엔조 베아르조트에게 "나를 수비형 미드필더로 기용할 거면 차라리 뽑지를 말라"라는 이야기를 남겼다. 실제로 1985년 바레시는 이탈리아 대표팀으로 단 한차례도 출전하지 않았고, 1986년 이후 베아르조트가 아주리 대표팀에서 해임 당한 후부터 다시 아주리 대표팀으로 복귀했다.

자세한 건 더 많은 클래식 해축팬, 아주리 팬들, 유벤티노들의 추가 바람.

3 기타

그의 주변인들의 증언에 따르면 성실하고 과묵한 리더의 표상이였다고 한다. 언제나 말수가 적고, 몸소 행동을 실천하는 타의 귀감이 되는 선수였다고 한다. 이런 그도 어처구니 없는 수비실책이 나올때면 나지막한 목소리로 욕지거리를 내뱉었다고 전해진다.그리고 얼어붙는 동료 수비수들
  1. 둘은 7살 차이로 축구판으로 치면 월드컵 2개 정도의 차이, 한 세대가 차이 나는 세대이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이야기. 바레시가 이제 막 유망주 티 벗어날 때 시레아는 전성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