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에고 마라도나

이름디에고 아르만도 마라도나 프랑코
(Diego Armando Maradona Franco)
생년월일1960년 10월 30일
국적아르헨티나
출생지부에노스 아이레스
포지션공격형 미드필더
신체조건165cm, 70kg
프로입단1969년 아르헨티노스 주니어스
소속팀아르헨티노스 주니어스 (1969~1981)
CA 보카 주니어스 (1981~1982)
FC 바르셀로나 (1982~1984)
SSC 나폴리 (1984~1991)
세비야 FC (1992~1993)
CA 뉴웰스 올드 보이스 (1993~1994)
CA 보카 주니어스 (1995~1997)
지도자만디유 데 코리엔테스 (1994)
라싱 클럽 (1995)
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팀 (2008~2010)
알 와슬 FC (2011~2012)
국가대표91경기 34골
1986 FIFA 월드컵
골든 볼
디에고 마라도나
실버 볼
하랄트 슈마허
브론즈 볼
프레벤 엘케어 라르센
1990 FIFA 월드컵
골든 볼
살바토레 스킬라치
실버 볼
로타어 마테우스
브론즈 볼
디에고 마라도나
SSC 나폴리 영구결번
No.10
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팀 역대 감독
알피오 바실레
(2006~2008)
디에고 마라도나
(2008~2010)
세르히오 바티스타
(2010~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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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적인 축구 천재이자 악동

1 소개

"축구는 혼자 하는 게 아니라 11명이 하는 팀 스포츠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축구의 개념을 벗어난 최초의 선수를 보고 있습니다."

1986 월드컵 8강 잉글랜드전, 마라도나가 단독으로 5명을 돌파한 후 넣은 골을 본 해설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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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 10월 30일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모두에게 인정받는 초특급 유망주였으며, 1976년 10월 20일, 16세의 나이로 아르헨티노스 주니어스 소속으로 데뷔하여 아르헨티나 리그의 역대 최연소 출전 기록을 경신했다. 후반전 초반에 교체로 투입되자마자 일방적으로 밀리던 경기 양상을 단숨에 반전시켜 다음날 아르헨티나 전체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는데, 그의 실력을 잘 알고 있던 동료들은 오히려 담담한 반응을 보였다.

훗날 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이 되는 호세 페케르만은 이 시절 1군 선수들 모두가 일찌감치 훈련을 종료하고 유소년 팀에 놀러가 마라도나를 구경하던 일을 회상했다. 그야말로 "사상 초유의 선수"가 나타난 것이다.


2 선수 시절

2.1 축구 신동의 충격적인 데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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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티노스 주니어스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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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 보카 주니어스 시절

마라도나는 데뷔 때부터 최고였다. 1976년부터 1981년까지 아르헨티노스 주니어스에서 총 167경기 115골을 기록했다. 특히 1978년 리그에서 22골을 넣으며 득점왕을 차지했고, 1979년과 1980년에는 자국 양대 리그에서 모두 득점왕을 차지했으며, 18살의 나이에 팀의 주장을 역임하면서 본인은 리그 최우수 선수에 등극한다.

1981년에는 평소 자신이 뛰고 싶었던, 아르헨티나 최고의 구단이라 일컬어지는 CA 보카 주니어스로 이적, 팀의 우승을 이끌었다.

그러나 역시 마라도나가 세계적으로 알려지게 된 계기는 1979년 세계 청소년 월드컵. 이 대회에서 마라도나는 그야말로 압도적인 원맨쇼를 선보이며 아르헨티나를 우승시키고 본인도 대회 최우수 선수에 선정되며 전세계에도 축구 신동의 출현을 공식적으로 알렸다. 이 대회를 지켜본 각국의 축구 관계자들은 마라도나라는 소년의 플레이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자석 같은 볼 컨트롤, 생고무 같은 탄력과 유연하면서도 폭발적인 드리블, 한순간 터져나오는 정확하고 날카로운 왼발 킥에 전 세계의 축구인들은 전에는 전혀 본 적이 없는 수준의 선수가 출현했다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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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레 이후 전대미문의 축구신동의 출현

마라도나의 아르헨티노스 주니어스에서의 활약은 유망주라기보다는 가히 월드스타라고 말할 만한 센세이션으로, 이미 브라질에서 세계최고로 손꼽히던 최전성기의 슈퍼스타 지쿠를 누르고 남미 올해의 선수에 2번 연속 선정된다. 참고로 지쿠는 남미 올해의 선수 역대 최다 수상자(3회). 보카 주니어스로 이적한 후에도 지쿠, 팔카우, 소크라테스같은 세계 최고수들과 경쟁하며 남미 올해의 선수 2위에 선정된다. 당시 마라도나의 나이는 고작 19살~21살이었고 그만큼 개인능력은 이미 당대 최고라고 평가받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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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롱도르 2연속 수상자인 서독의 칼 하인츠 루메니게와 함께 1981년에 엘 파이스에서 보도한 특집기사.

사진에서처럼 당시 축구인들은 이미 마라도나를 유럽의 왕이라 칭송받던 루메니게에 대적하는 남미 최고의 스타로서, 각 대륙을 대표하는 라이벌로 인식하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역시 발롱도르 2연속 수상자인 케빈 키건과 함께 마라도나를 세계 축구의 탑3로 보도한 기사들이라든지, 새로운 요한 크루이프이자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라고 평가한 축구인들도 있었다. 이 당시의 마라도나는 고작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까지의 소년이었으니, 실로 펠레와 크루이프의 후계자라 할 만했다.


2.2 클럽 커리어

2.2.1 FC 바르셀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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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년에 바르셀로나 스카우트가 18살의 마라도나를 보기 위해 직접 아르헨티나 현지로 와서 관찰하고 작성한 보고서.]
그야말로 극찬의 일색이다. 마치 축구의 신을 감상한 느낌. 물론 헤딩은 빼고. 루저의 비애

1982년 월드컵이 끝나고 스페인 명문 클럽 FC 바르셀로나로 이적했다. 이적료는 300만 파운드로, 당시 최고 이적료 기록을 경신했다. 이후 82/83, 83/84시즌 두 시즌을 뛰며 58경기 38골 23어시스트를 기록하는 맹활약을 했다.

이적 첫 해 리그 20경기에서 11골로 팀 내 득점 1위에 전체 평점 1위라는 준수한 활약을 펼쳤지만, 이적하자마자 간염으로 한바탕 고생을 치른다. 엘 클라시코 데뷔전인 마드리드 원정에서는 엄청난 퍼포먼스와 2어시스트로 팀의 2골을 모두 만들어내며, 레알 홈구장에서 역사상 5번밖에 없는 기립박수를 이끌어낸다.[1]

두 번째 시즌인 83/84시즌에는 병을 털고 일어나서 제대로 준비를 했지만.

부상. "빌바오의 도살자" 안도니 고이코에체아[2]에게 악질적인 태클을 당해 발목이 아예 날아가 버린다. 이 부상은 마라도나의 선수 생명 자체를 위협하는 것이어서 아예 아르헨티나로 날아가 재활 치료로 6개월 이상을 소비한다.

이 무렵부터 사생활 문제가 불거지기 시작했다. 그가 코카인을 흡입하기 시작한 것은 이 시점이었으며, 여자 스캔들도 자주 터졌다. 슬슬 바르샤가 그의 기행에 지쳐 갈 때쯤, 마라도나는 부상에서 돌아와 다시 화려한 플레이로 팀을 코파 델 레이 결승전까지 끌어올린다.

그런데 하필이면 결승전 상대는 부상을 입혔던 아틀레틱 빌바오. 이 코파 델 레이 결승 경기는 '축구장 패싸움' 영상만 있으면 단골로 나오는 장면이다. 빌바오의 선수들은 또다시 집요하게 마라도나의 발목을 향한 태클을 날려댔고 결국 빡친 마라도나는 상대 팀의 스태프에게 장렬한 샤이닝 위저드(...)를 날려버린다.

그리고 바르셀로나와 빌바오의 선수들은 그대로 패싸움으로 돌입, 서로에게 김갑환이 울고 갈 발기술을 날려댄다.

이 사건으로 마라도나는 출장 정지를 당하고, 바르사의 수뇌부는 계속해서 기행을 저지르는 마라도나를 데리고 있기가 껄끄러워졌으며, 마라도나 역시 스페인에서 좋은 기억보다는 나쁜 기억이 많기에 이적을 결심한다.

바르사 시절의 마라도나는 화려한 스킬과 드리블, 천재성이 번뜩이는 패싱, 무서운 프리킥과 준수한 득점력으로 이름을 떨쳤었다. 특히 세계적인 라이벌 더비인 엘 클라시코에서 마라도나는 매번 결승골이나 결승골 어시스트를 하는 등 최고의 퍼포먼스를 보였고, 경기당 스탯은 약 1.0517 정도로 역시 최고 수준이었다.

그러나 냉정하게 보면, 스탯이나 플레이만 보고 바르셀로나 시절의 마라도나가 역대 최고의 선수라 부르기에는 무리가 많다. 간단하게 말해서 이 당시 들어 올린 트로피가 고작해야 코파 델 레이와 슈퍼 컵뿐이기 때문이다. 즉 대단한 타이틀을 따내지 못했다는 말.

게다가 경기 출장 횟수가 그렇지 많지 않다. 프로 선수에게 출장 수는 중요한 척도이다. 그러나 출장을 하면 엄청난 플레이를 보여주었다. 어느 정도냐 하면 겨우 두 시즌만 뛰고도 최근에 한 바르셀로나 팬 투표 역대 베스트에 선정될 정도.(히바우두도 떨어졌다!) 경기만 뛰면 수도 없이 라보나 킥, 플립 플랩, 마르세유 턴[3] 등등을 선보이고 엄청난 센스의 패스들이 튀어나왔으니, 그가 당시 한화 100억 원의 엄청난 기록[4]이 이상할 것은 없다. 결국 몸값만 올리고 갔다. 그리고 마라도나는 신화의 땅 이탈리아로 건너간다.

오히려 중요한 척도인 출장 수에서 밀림에도 축구계의 전설로 불리는 것은 그만큼 그의 독보적인 능력이 뛰어나다는 반증이 된다. 흡사 복싱계의 전설 마이크 타이슨과 비슷한 케이스라고 할 수 있겠다. 사실 타이슨의 전성기는 너무나도 짧다. 하지만 그 짧은 전성기 동안 너무 초월적인 모습을 보였기에 복싱계의 레전드가 되었고, 특히 미국 헤비급 복싱의 인기가 하락한 2016년인 지금도 타이슨을 그리워하는 복싱 팬들이 많고, 미국 복싱 헤비급 시장은 알리-타이슨에서 정체되었다는 평도 많으며 지금도 타이슨의 인지도는 상상을 초월하며 여기저기 방송에 출연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2016년인 현재 헤비급 복싱 챔피언이 누구인지는 몰라도, 타이슨이란 이름만큼은 대다수가 알고 있을 정도인데, 마라도나 역시 축구에 별로 관심없는 사람들도 '펠레'와 함께 한번쯤 들어봤을 만한 이름이다. 당시 복싱에 타이슨이 있었다면, 축구에는 마라도나가 있었달까.

복싱계에서는 알리가 데뷔때부터 말년까지 꾸준하면서 드라마틱하고 감동적인 경기를 보여서 복싱의 전설인데, 타이슨은 그 짧은 전성기만으로 알리급의 인지도를 얻게 되어서 미국에서는 지금도 알리vs타이슨 논쟁이 많으며, 복싱게임에서는 레전드 복서로 알리와 타이슨이 등장하여 드림 매치를 펼칠 수 있게 되었다. 알리는 과거 미국의 기자진에 질문에 난 타이슨보다 더 강한 핵주먹들과도 붙어서 이겼다며 간접적으로 자신의 승리를 내비치기도 했었는데, 전성기가 짧아도 충분히 한 분야의 레전드로 불릴 수 있다는 점이다. 단, 당시 해당 스포츠계를 쌈싸먹을 극강 포스를 보여줘야 하는데, 마라도나는 그에 부합한다.


2.2.2 SSC 나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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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왕 미셸 플라티니와의 만남.

마라도나의 리즈 시절

나폴리 시절의 마라도나에 대해 과장이다, 아니다 워낙 말이 많은데, 마라도나 이적 당시 나폴리의 정확한 수준을 이야기하자면 더도 덜도 아닌 딱 중위권 수준이었다. 물론 아주 초약체라 할 만한 수준은 아니었으나, 내세울 만한 우승 커리어는 전무했다. 강등권도 왔다갔다 하지만 때로는 중상위도 하는 그런 팀이었다. 그러나 마라도나가 오기 전 즈음부터는 내리막길을 타기 시작해서, 직전 시즌 세리에 16개팀 중 11위를 기록했다. 즉 현 20개팀 체제에서는 13~14위로, 바로 1점 차이로 강등을 모면했었다.

초 슈퍼스타 마라도나의 영입은 나폴리에 어마어마한 영향력을 미쳤다. (영입료가 100억인데 그다음 마라도나빠들이 와서 시즌권을 다 사버림)1주일만에 그 모든 이적료를 벌어들인 전설 일단 최고의 선수가 이적해 왔으니 이적료따위는 금세 몇배로 돌아왔고[5]구단의 재정이 바닥났다고는 하지만 그 돈을 어디서?? 랭킹이 상승하여, 그 돈으로 다시 좋은 선수들을 사고 또 랭킹이 상승하는 테크를 탄다. 사실상 마라도나의 순수한 축구실력은 제하더라도 나폴리의 성적을 급상승시키는 데 엄청난 영향을 미친 것이 사실이다. 애초에 마라도나의 축구 실력이 별 것 아니었다면 그런 영향력도 없었겠지만...그 후 1985년에 이탈리아 대표팀 선수 지오르다노, 1987년에 세리에 A 우승을 차지하고 브라질 공격수 카레카를 영입, 나폴리의 공격라인은 유명한 "마-지-카"(이탈리아어 마법사)라인이 결성된다.[6]

그러나 나폴리가 마라도나가 온 이후 많은 포지션을 보강했어도, 아주 대형 이적이라고 부를 만한 이적은 딱 카레카 하나를 제외하고는 없었다. 살바토레 바그니나 디 나폴리, 마시모 크리파, 브라질 선수인 알레망 등 선수들은 잘 쳐주어도 중상위 클래스이거나 신예들이었다. 나폴리 유스에서 올라온 치로 페라라는 당시 수비수들 중 상당한 수준이긴 했으나, 역시 밀란이나 유벤투스의 바레시나 시레아에 비할 수준은 아니었다. 어찌 됐든, 나폴리가 2부리그 팀이었다던가, 강등권이었다던가 하는 수준의 팀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사실 마라도나가 오기전에도 4, 5위는 했네 할만한 잘난 팀도 아니었다.

나폴리 이적 후 1986-87 시즌, 1989-90 시즌에는 스쿠데토를 차지했으며, 1987-88, 1988-89 시즌에는 준우승을 이끌고, 1988-89 시즌은 팀 역사상 최초로 UEFA컵을 따내고 코파 이탈리아까지 따내며 더블을 달성하여, 나폴리 만, 베수비오 화산과 함께 나폴리 3대 명물로 꼽히는 영광을 안는다. 실제 지금도 나폴리에서 그의 인기는 반인반신 경지에 이르는 수준인데, 아닌게 아니라 당시건 지금이건 밀란이나 인테르, 유벤투스 등 상대적으로 부유한 북부 팀들을[7] 만나면 지는 것이 당연했던 만년 중하위권 팀 나폴리를 거의 자신만의 힘으로 두번이나 리그 우승, 한번의 유럽컵 우승을 시킨(이는 남부 이탈리아를 연고로 한 팀이 스쿠데토를 차지한 전무후무한 사례다. 칼리아리 칼치오가 한번 우승한 경력이 있긴 하나 여긴 섬이다 보니...) 경력 때문이다. 나폴리는 마라도나가 있을때 단 두번의 우승을 제외하고는 아직 스쿠테토를 따지 못하고 있다.

2005년에 같이 뛰었던 수비수 치로 페라라의 은퇴 경기에 나폴리를 방문했다. 말 그대로 신.

마라도나는 나폴리 시절에 역대 최고의 플레이메이커로 등극한다. 이전의 바르셀로나 시절은 화려한 드리블 위주에 천재성이 보이는 패스로 게임을 풀어나가는 포워드였다면, 이때는 화려한 플레이는 상당히 자제하는 한편 팀 플레이와 플레이메이킹 위주로 게임을 풀어나간다. 물론 그렇다고 개인 플레이는 수준이 떨어졌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마라도나의 잉글랜드전 단독 드리블은 나폴리 시절이다. 그야말로 축구 치트키 시절.


2.2.3 세비야 FC, 그리고 말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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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으로 코카인 양성판정을 받아 15개월간 출장 정지 징계를 받았다.[8] 이후 1992년 오랫동안 함께 한 나폴리를 떠난다. 레알 마드리드올림피크 마르세유가 관심을 가졌지만 본인은 세비야 FC로 이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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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후 다시 나와 1993년 CA 뉴웰스 올드 보이스에 이적했고, 1997년 자신의 고향 팀인 CA 보카 주니어스에 복귀한다. 이후 1997년을 끝으로 현역 은퇴를 선언하며 자신의 21년 프로 경력을 끝낸다.


2.3 국가대표 커리어

2.3.1 1978년 아르헨티나 월드컵

"마라도나는 아직 너무 어렸어요. 신체적으로는 물론 감정적인 면에서도 그랬죠. 우리가 만약 대회에서 실패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상상할 수 있습니까? 그런 압박감이 만들어낼 일들을요? 월드컵 조 편성 결과 아주 어려운 조에 속했어요. 플라티니의 프랑스와 이탈리아, 헝가리와 한 조에 들어갔죠. 게다가 마라도나는 아직 성장기에 있는 선수였죠. 아직 근육 구조가 갖춰지는 중인 선수입니다. 만약 월드컵에서 나쁜 파울을 당하게 되면 앞으로 이어질 축구 인생 전체를 망가뜨릴 수도 있습니다."
세사르 루이스 메노티(1978 월드컵 아르헨티나 감독)

세간에서는 마라도나가 당대 최고의 유망주를 넘어선 자국 최고의 스타였던지라 엔트리에 넣어주기를 기대했고 마라도나 본인도 자기가 엔트리에 들어가길 갈망했다. 그러나 아르헨티나의 메노티 감독은 굳이 마라도나를 넣지는 않았다. 이유는 실력 부족은 아니었고, 아직 마라도나는 프로무대 2년 차인 18살 청소년으로서 치열한 월드컵은 아직 시기상조라는 소위 선수 보호 차원. 결국 그 월드컵에서는 마라도나 없이 월드컵에서 우승했다. 결과로만 따지만, 대표팀도 우승을 거뒀고, 마라도나는 이후 축구 역사상 최고의 스타로 군림하게 됐으니, 모두에게 좋은 결과가 되었다.

이후 마라도나는 1979 청소년 월드컵에서 원맨쇼를 보여주며 팀을 우승시키고 대회 최우수 선수까지 등극하면서 차세대 최고의 스타로서의 입지를 굳히게 된다.

2.3.2 1982년 스페인 월드컵

마라도나는 1982년, FC 바르셀로나에 영입되었다. 그러나 스페인에 온 마라도나에게 주어진 첫번째 과제는 바르셀로나 경기가 아닌 스페인 월드컵이었고, 펠레를 잇는 천재로 일컬어진 이 선수는 엄청난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된다.[9] 게다가 아르헨티나에는 마라도나만 있는 것이 아니라 전기대회 우승을 이끈 주역인 마리오 켐페스까지 포함되어 있는 상태였으므로 가장 강력한 우승후보로서 엄청난 스포트 라이트를 받았다.

그런데 사실 이때 아르헨티나는 정상적인 경기를 펼치기에는 너무 상태가 좋지 않았다. 월드컵이 바로 포클랜드 전쟁과 겹쳐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아르헨티나 정부는 포클랜드 전쟁 당시 거짓부렁을 일삼으며 콩알만한 섬나라 놈들 우리에게 개기다가 박살염 ㅇㅇ, 무찔렀다 대영제국! 따위의 슬로건으로 국내 신문지상을 폭격하다시피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게 웬걸. 아르헨티나 대표팀이 스페인에 전초 기지를 차린 5월 중순부터 아르헨티나는 개박살나기 시작했으며 그 꼴은 아르헨티나에서와 달리 생생히 유럽에서 아르헨티나 대표 선수들에게 전달되었다. 아르헨티나 대표팀은 일종의 정신적 공황 상태에 빠져서 훈련을 할 수가 없는 지경이었다. 나가기만 하면 포클랜드 전쟁에 대한 소견을 묻는 기자단에 둘러싸였으며 조국이 전쟁에 털리는 꼴을 생방으로 보고있으니 오죽하면 아르헨티나 선수들이 문 잠그고 하루종일 울기만 했다고... 아르헨티나에게도 포클랜드 제도의 영유권에 대한 그들 나름대로의 명분은 있었다. 문제는 이 전쟁을 갈티에리의 개인 야욕에 의해 일으킨 전쟁이라는 것.

곧이어 첫 번째 매치인 아르헨티나와 벨기에의 경기는 벨기에의 1-0 승리로 끝나나 마라도나는 화려한 돌파와 연계를 보여주며 신고식을 했다. 아르헨티나는 다시 전열을 정비하고 이후 엘살바도르를 10:1로 이기고 온 한때 최고의 강호였던 헝가리를 상대로 아르헨티나가 4:1로 대승한 뒤 그 약체 엘살바도르를 2-0으로 깨버리며 2차 라운드에 합류했다. 마라도나는 절치부심하여 헝가리전 2골 1어시스트를 하고, 엘살바도르전에서도 눈부신 드리블 돌파를 선보이며 역시 차세대 축구황제의 자격을 증명해낸다. 이때까지만 해도 마라도나의 축구황제 대관식은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

허나 불행하게도 아르헨티나는 벨기에전 패배로 인해 죽음의 조에 합류하게 된다. 2차 라운드에서 대회 득점왕으로 선정될 파올로 로시가 이끄는 이탈리아와 플라티니와 당대 최고를 겨루던 지쿠가 이끄는 영원한 우승후보 브라질과 같은 조가 되면서 그 두 국가에게 패배하며 월드컵 우승의 꿈을 접은 채 탈락하게 된다.

마라도나는 특유의 드리블 돌파와 창의적인 킥과 패스로 우승후보인 이탈리아와 브라질 모두에게 곤욕을 안기는 활약을 한다. 그러나 이탈리아전은 젠틸레의 거친 마크에 약간 고전했고, 브라질전은 당시 황금 4중주로 찬양받던 지쿠, 소크라테스, 팔카오를 능가하는 활약을 하나, 결국 경기 종료 5분을 남기고 거친 발차기로 퇴장을 당하게 된다.

사실 마라도나에게 1982년 월드컵은 실패한 대회다. 마라도나 개인의 활약은 대단했지만, 결국 팀의 2차 라운드 탈락을 막지 못했고, 본인도 브라질전 막판에 퇴장당하며 어차피 4강을 진출했다고 해도 더 이상의 출전은 어려웠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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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려 6명이 견제를 하러 오는 마라도나의 위엄. 후덜덜[10]
여담으로 메시가 남아공 월드컵에서 실패한 것을 스페인 월드컵과 평행이론이라고 생각하는 아르헨티나 국민들도 있다고 카더라... [--왠지 맞는것 같기도 하다. 심지어 유니폼 색깔까지도 비슷하다.--]

이전 버전에서는 이 대회가 마라도나 최악의 월드컵이라고 하는데 전혀 사실이 아니다. 실제로 마라도나가 이 대회 5경기에서 보여준 개인능력은 1986 월드컵에 비해 손색이 없었다. 그러나 축구는 개인 스포츠가 아닌 팀 스포츠고, 결국 팀의 탈락을 막지 못하고 개인으로서는 퇴장까지 당하니 결국 실패한 월드컵이 된 셈. 정말로 최악의 월드컵은 약물파동으로 조별리그 단 2경기를 뛰고 퇴출당한 1994 월드컵. 마라도나가 빠진 아르헨티나는 리더의 부재로 경기력이 부실해지며 이후 불가리아와 루마니아에게 연패하며 대회 16강에서 멈추게 된다.

[대한축구협회 홍보과장 송기룡씨의 당시 마라도나에 대한 회고글. 마라도나가 보여준 1982년 스페인 월드컵에서의 개인능력에 대한 평가를 볼 수 있다.]


2.3.3 1986년 멕시코 월드컵

"왜 그가 역사상 최고의 선수인지를 증명하는 골입니다. 슬프지만 우리 선수들은 그에게 전혀 상대가 되지 않습니다. 그는 인간의 능력을 넘어선 곳에 존재하는 선수입니다."
-8강 상대였던 잉글랜드 해설자.[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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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도나의 월드컵

1986년 월드컵은 "마라도나 월드컵"이라 불릴만큼 역대 월드컵을 중 가장 단 한명에게 주목이 쏠린 월드컵이었다. 사실 마라도나는 월드컵이 시작되기 전부터 이미 슈퍼스타의 자리에 올라 있었고, 브라질의 지쿠, 프랑스의 미셸 플라티니와 함께 월드컵을 빛낼 것이라 주목받은 3인방 중에서도 최고수로 여겨지고 있었으며 당연히 엄청난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었다.

월드컵이 시작되자 아르헨티나는 이탈리아, 불가리아, 대한민국과 함께 A조에 편성되었다. 이 조는 아르헨티나와 이탈리아의 조 수위 싸움이 매우 중요하게 여겨졌는데, 만일 2위로 16강에 진출할 경우 16강전에서 프랑스, 8강전에서 브라질, 4강전에서 서독과 맞붙어야 하는 대진이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이 조는 특이하게도 당시 기준으로 최근 두 대회의 월드컵 우승국이 같이 묶여서 죽음의 조이다 못해 아예 지옥의 조였다.[12]

조별 예선 첫 경기에서 이탈리아는 불가리아를 상대로 삐끗해서 무승부를 하게 된 반면, 아르헨티나는 마라도나의 3어시스트로 대한민국을 농락하며 3-1의 승리를 거둔다. 바로 전세계를 경악하게 만든 허정무의 태권도 축구(라고 쓰고 일방적인 구타라고 읽는다.)가 작렬한 그 경기다. 이렇게까지 해서 간신히 막은게 3실점. 한국이 워낙에 실력이 차이가 나서 했지만 이 시절 다른 팀들도 심판만 안 보이면 마라도나를 일방적으로 두들겨팼다. 그리고 허정무의 경우는 "공을 걷어내려다 그렇게 된 것"이라면서 의도적이지 않았다고 어필했고, 이것이 인정되어 퇴장을 피할 수가 있었다. 보통 허정무가 마라도나를 발로 까는 장면만 편집한 사진이 회자되는데 실제로는 허정무가 바라보는 곳에 공이 있었고 공을 향한 발동작으로 보아서 고의적인 폭행으로 여겨지지 않은 것이었다. 공을 제거한 사진만 올려놓으니 구타하는 걸로 보이는 것일뿐이다.

이탈리아전에서는 알토벨리에게 선제골을 내줬지만 팀이 위기인 상황에서 마라도나는 탄력 넘치는 침투로 동점골을 넣으며 1-1 무승부를 만들고, 불가리아전은 4명을 돌파하면서 골대를 맞춘다든지, 이윽고 화려한 돌파 후 크로스로 발다노의 골을 어시스트하며 2-0 승리를 이끌어내고 아르헨티나는 조 1위로 16강전에 진출.

조별리그 3경기 모두 마라도나는 화려한 개인돌파 능력과 킥 감각을 여실히 보여주면서 쾌조의 스타트를 보인다.

그렇게 16강에서는 우루과이를 만나고, 마라도나는 시종일관 압도적인 개인전술을 보여주며 우루과이를 휘젓고 다닌다. 혼자서 3명을 뚫고 연계와 크로스로 이어진 후 아쉽게 취소된 골도 있을 정도로 마라도나는 이날 엄청난 퍼포먼스를 보였고, 일부에서는 이 우루과이전이 마라도나의 이 대회 최고의 경기력이라고 평가하는 전문가들조차 있을 정도. 결국 1-0으로 아르헨티나가 승리하고 8강에서 잉글랜드를 만나게 된다.

마라도나신의 손 첫번째 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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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너먼트 8강전에서 잉글랜드와의 경기는 매우 드라마틱한 것으로 유명하다. 후반 6분, 센터링이 올라오자 마라도나와 잉글랜드의 전설적인 골키퍼 피터 쉴튼은 동시에 점프를 했는데, 이때 교묘하게 마라도나는 이마가 아닌 손으로 공을 쳐 골인을 시킨다. 자세히 본다면 누구라도 알 수 있는 명백한 핸들링이었지만[13], 심판은 제대로 보지 못하고 인정을 하여 1:0이 된다. 잉글랜드 팬들은 분노하고 야유했지만, 곧바로 축구 역사상 가장 멋있는 골로 기록된, 중앙선에서부터 드리블로 골키퍼 포함 수비수 9명을 토탈방어? 제치고 골을 넣으면서 잉글랜드 팬들을 넋나가게 만들었다. 경기가 끝나고 마라도나는 "신의 손에 의해서 약간, 나머지는 마라도나의 머리에 의해서 득점한 것"이라고 애매한 인터뷰를 했는데, 그 때문에 Hand of God goal이라 불리운다. 하지만 잉글랜드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바비 롭슨은 "추악한 사기꾼의 손이다."라고 일갈했다.

전설이 된 마라도나의 두번째 골.[스페인어 자막]

이 골을 본 아르헨티나의 해설자는 "축구는 혼자 하는 게 아니라 11명이 하는 팀 스포츠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축구의 개념을 벗어난 최초의 선수를 보고 있습니다."라고 극찬했고, 포클랜드 전쟁으로 아르헨티나에 감정이 좋을 리 없는 잉글랜드의 해설자도 "왜 그가 역사상 최고의 선수인지를 증명하는 골입니다. 슬프지만 우리 선수들은 그에게 전혀 상대가 되지 않습니다. 그는 인간의 능력을 넘어선 곳에 존재하는 선수입니다."라고 역시 극찬을 했다.

피터 쉴턴은 잉글랜드 대표로 A매치 125경기에 출장에 빛나는 당대 최고의 골키퍼 중 하나였다.[14] 당시 마라도나의 첫 번째 골을 스포츠맨쉽에 어긋난 행위라고 크게 비난했으며 유명 축구선수들을 초청해 성대하게 치러진 자신의 은퇴경기에 당대 최고의 스타인 마라도나를 끝내 초청하지 않았다. 쉴튼이 2014년에는 용서했다는 투의 멘트를 하긴 했지만 최근 다시 티격태격하는거 보면 그런 것도 아닌 것 같다... 하지만 그것과는 달리 선수로서는 서로를 인정하는 사이다. 쉴튼은 핸드볼 사건을 언급하며 "그 일을 용서할 수는 없지만 혼자서 수비를 휘저어댔던 최고의 선수"라고 했고 마라도나도 "애초에 그런 괴물같은 골키퍼 상대로 헤딩 슛 넣는건 거의 불가능했어. 난 그 상황에서 골 넣으려면 그럴 수 밖에 없었어" 라는 투로 서로 디스하면서도 결코 선수로서의 역량을 까내리지는 않았다.

한편 경기 후 인터뷰에서 첫번째 손으로 넣은 골에 대한 질문이 나오자, 마라도나는 "나의 손이 아닌 신의 손이 공을 때렸고, 그 순간 공은 골대 안으로 들어갔다"는 애매한 답을 해서, '신의 손'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15] 당시 아르헨티나와 영국은 포클랜드 전쟁 이후 굉장히 사이가 나빠진 상태였고[16] 아르헨티나는 경제가 파탄나서 국민들은 이래저래 우울해진 상태였다. 이 때 마라도나가 시원하게 잉글랜드를 꺾어주었고, 특히 그 형태가 한 골은 명백한 반칙으로 적국 잉글랜드에게 엿을 먹이는 행위였고 한 골은 가장 완벽한 골이었기에 더욱 더 그는 국민 영웅 이미지를 굳혔다. 하지만 16년 후, 어떤 아카데미 주연상급 연기력을 가진 잉글랜드 선수에게 희대의 헐리우드 액션을 당하여 아르헨티나는 거짓말처럼 광탈하게 되었고 잉글랜드는 기뻐하였다.

마라도나는 잉글랜드 전에서 11회의 드리블 돌파와 70회가 넘는 터치 수를 기록한다. 신의 손 골 바로 5분 뒤에 마라도나가 하프라인부터 40미터 단독 드리블로 골키퍼까지 7명을 제치고 축구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골을 작렬시키면서 신의 손 골은 묻히게 된다. 영국 언론도 신의 손은 괘씸하지만, 그래도 두번째 골은 정말 쩔었다는 반응을 보였고, 당시의 잉글랜드 선수들도 "신의 손 골이 무효라도 어차피 마라도나한테 추가 골을 먹고 졌을것이다."라고 인터뷰를 했었다. 물론, 잉글랜드가 만회골 넣고 2:1로 끝났으니, 제대로 판정이 이뤄졌으면 1:1 아니었느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마라도나가 잉글랜드를 유린하는 포스를 볼 때...

그 후 8강에서 스페인을 잡고 올라온 [17] 시포가 이끄는 벨기에를 상대로 혼자 2골을 넣으며 침몰시켰다. 이날 마라도나의 개인 지배력이 가장 빛났는데 원터치 패스와 드리블 돌파, 게임 조율 등등 모든 면에서 최고의 모습을 보여주었으며, 이 경기에서도 벨기에의 중앙에 겹겹히 쌓인 수비진을 30미터가량 돌파하며 골을 넣어버리는 압도적인 기량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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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승에서는 루메니게와 마테우스가 이끄는 서독을 3-2로 깨뜨리며 마라도나가 이끄는 아르헨티나는 8년만에 정상을 차지했다. 마라도나는 결승전에서 서독의 로타어 마테우스에게 전담수비를 당하면서 대회 중 가장 고전했지만, 결국 부루차가의 결승골을 어시스트하며 팀의 우승을 이끌어내는 마지막을 장식한다.

사실 1986년 월드컵의 멤버들이 형편없었는데 혼자 힘으로 우승시켰다는 것은 어느 정도 과장이다. 당시 아르헨티나 감독 빌라르도는 신예를 중심으로 철저하게 자기 전술에 맞춰서 뽑아서 비판을 많이 받기는 했으나[18] 그래도 다들 어느정도 클래스는 있는 선수들이기는 하였다.[19] 실제로 1986년 월드컵 당시에 마라도나와 같이 뛴 스트라이커 호르헤 발다노는 이미 레알 마드리드의 중심이 되는 선수어라?였으며 중앙 미드필더인 호세 부루차가 역시 나름대로 명성이 자자했던 선수였다.어라? 수비수였던 세르히오 바티스타 역시 못하는 선수는 아니였으며, 주장이었던 파사레야는 이미 월드컵 우승을 한 번 차지한 베테랑으로 아르헨티나 역대 최고의 수비수라 할 만한 인물이었다.[20]

그러나 아르헨티나의 1986년 월드컵 예선 과정은 마치 2010 월드컵 예선처럼 좌충우돌하며 힘겹게 올라갔고 예선 기간중에 심지어 중국과의 친선 경기에서 1:0 패배까지 한 적이 있을만큼 형편없는 플레이를 하기도 했다.역시 축구의 발상지 그런 이유때문에 아르헨티나에 대한 인식은 강팀이긴 하나 강력한 우승후보는 아니고, 다만 마라도나 하나에게 기대를 걸어보는 정도였다.

그러나 본선에서 마라도나는 아르헨티나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끼치며 우승컵까지 들었고, 확실한 것은 당시의 아르헨티나는 마라도나가 아니었다면 지쿠미셸 플라티니, 혹은 최근의 지단이나 메시등 그 자리에서 뛰는 어떤 슈퍼스타를 데려온다 하더라도 우승하기 힘들고, 설사 우승을 한다치더라도 그 팀에서 마라도나만큼의 활약을 할 수는 없는것이 확실하다. 지쿠는 80년대 브라질 대표팀의 중심에 있던 선수였으나 우승과 인연이 없었고, 플라티니는 1982년 월드컵 4강에 오른데다 유로84를 혼자 쓸다시피하는 엄청난 포스를 내뿜었음에도 마라도나의 86년 퍼포먼스에 가려졌을 정도다.

메시의 2014년 월드컵은 결승까지 가는 과정이 상당히 고전하면서 올라갔기 때문에 국내 네티즌들은 마라도나의 하드캐리와 비견하기도 하는데, 기본적으로 이 대회의 메시는 저 당시의 마라도나의 활약에 비하면 많이 미흡했다. 사실 비교하기가 민망한 게, 마라도나는 대회 5골 5어시스트에 토너먼트에서의 결승골만 2골이고, 결승골 어시스트만 3개에, 동점골도 1골이 있는데다 경기당 드리블과 찬스메이킹에서도 역대 최고 수치를 기록한 말도 안 되는 수준의 활약을 했다. 그러나 메시는 당시 컨디션 자체가 최전성기만큼은 아니었던 걸 감안해도 조별리그에서도 4골에 그치고 경기력은 기복이 있었으며 토너먼트에서부터는 1어시스트를 제외하면 수차례의 오픈 찬스도 놓치고 단점인 운동량의 부족이 두드러지는 등 메시의 이름값에는 전혀 미치지 못하는 활약이었다.

다만 양팀의 차이를 설명하라면 2014년의 아르헨티나는 메시 외의 다른 공격수들이 전혀 제 기량을 발휘하지 못하면서 메시와 수비진들이 하드캐리를 한 것이라면, 1986년의 아르헨티나는 마라도나라는 일종의 경기장 내 제왕을 중심으로 나머지 10명의 플레이어가 제 몫을 다한 것이라고 보면 될 것이다. 마라도나의 86 멤버들은 메시의 14 멤버들보다는 질이 좀 떨어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라도나가 도와주는 것은 확실하게 해결해주는 정도의 능력이라던가 최소한 폐는 되지 않았다. 다만 팀의 절대적 구심점이 마라도나였으며 모든 볼 순환과 게임의 플레이는 마라도나 아래 있었다. 오히려 2014년은 1990년 월드컵에 가깝다고 해야할 것이다. 질 좋은 선수들이 질질 쌌던 2014년의 아르헨티나와 질 떨어지는 선수들이 덜 싸거나 안쌌던 1986년의 아르헨티나. 어느 쪽이 더 나은지는 글쎄 평이 갈릴 듯 하다.[21]

무엇보다도 월드컵은 각국의 간판이나 다름없는 슈퍼스타들 모두가 본래의 200% 가까운 기량(집중력이나 창의성까지 포함)으로 임한다는 점에서 마라도나의 월드컵 우승은 더더욱 의미있는 것이다.

2.3.4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

마라도나는 당시 세리에를 뒤흔든 마약 스캔들로 인하여 끊임없는 언론의 집중 포격을 받았다.

1990년 월드컵에서도 마라도나는 특유의 플레이메이킹을 발휘하며 팀을 결승까지 올리지만 대회 내내 집중 마크를 당하며 결국 우승컵은 서독에게 내주고 만다. 당시 마라도나가 볼만 잡으면 거친 태클이 들어와 흡사 미식축구 경기와 비슷한 분위기였고, 이미 30대에 접어들던 마라도나는 이전 월드컵만큼의 절정의 개인 파괴력은 보이지는 못했다.

조별리그 소련전에서는 핸들링 오심논란이 있었지만 1어시스트를 하고, 루마니아전에서는 당시 발칸의 마라도나라고 칭송받던 게오르게 하지와의 명승부를 펼친다.

가장 유명한 경기는 16강 브라질전으로, 아르헨티나는 경기 내내 브라질에게 얻어터지다시피 하다가 후반 35분 경 마라도나가 40미터 가까이 질주한 뒤 클라우디오 카니자에게 킬 패스를 꽂아줘서 경기를 승리로 이끌었다. 마라도나는 경기 내내 브라질의 거친 집중마크에 고전했으나 이 한방으로 승부를 종결하는 클래스를 입증했다. [22] 오죽하면 이 경기를 1950년의 미국 대 잉글랜드와 비교할 정도였다. 브라질은 그저 데꿀멍. [1998333129 #]

그 이후는 골키퍼인 고이코에체아가 완전히 야신모드로 변신해서 결승까지 끌어올라갔다. 계속되는 유효슈팅 속에 8강과 준결승 두 경기 연속 승부차기까지 가서 승부차기로 꺾고 결승에 올랐다.

4강전 이탈리아전은 경기 외적인 요소로 유명하다. 하필이면 구장이 마라도나의 홈 구장인 나폴리의 산 파올로였고 그는 당시 그 곳의 신이었다. 그리고 마라도나는 "이탈리아인 취급도 못받는 나폴리 시민들이여, 차라리 나를 응원하라"라고 심리전을 걸어버린다. 당시 나폴리 시민들은 반쯤 심리적 공황상태에 빠졌다가 결국 이탈리아를 응원한다.[23]그리고 마라도나는 이것때문에 삐졌다 그러나 아르헨티나는 이탈리아의 대진 상대국중 편파적인 응원에 시달리지 않은 유일한 팀이었다. 나폴리 시민들은 마라도나에게 차마 야유를 퍼붓지 못했고 이탈리아가 패배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영웅에게 박수를 쳐주었다.

결승전은 이탈리아의 수도 로마에 있는 AS 로마의 홈구장 올림피코 스타디움에서 열렸다. 아르헨티나의 결승전 상태는 서독. 서독은 당시 로타 마테우스, 위르겐 클린스만, 피에르 리트바르스키, 안드레아스 브레메, 루디 펠러 등 쟁쟁한 선수들로 명성을 떨치던 역대 최강이라도 손색이 없을 정도의 초호화 전차군단의 위용을 자랑하던 팀이었다. 90년 월드컵 결승전 경기는 파울로 얼룩진 경기였다. 특히 90년 이탈리아 월드컵은 대부분의 팀들이 수비 위주의 전술을 펼친 까닭에 골흉년이자 파울이 특히 남발하던 다소 불명예스러운 대회였다. 위르겐 클린스만에게 거친 태클을 날려 퇴장당한 아르헨티나의 몬손은 역대 월드컵 최초로 결승전 퇴장이라는 불명예를 안았다.그리고 그 뒤를 지단이 이었다

서독이 시종일관 우세한 경기를 이끌면서 이를 막던 아르헨티나는 두 명이 퇴장당하고 석연치 않은 페널티킥 판정등 편파 판정에 시달렸으며, 에이스인 마라도나는 경기 내내 서독의 집중마크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다.

결국 경기가 끝나고 마라도나는 시상대에서까지 눈물을 흘리며 90년 월드컵을 준우승으로 마감하고 말았다.

2.3.5 1994년 미국 월드컵

축구계를 은퇴한 것만 같았던 마라도나는 34살의 나이로, 1994 FIFA 월드컵 미국에 출전한다. 이는 사실 자의반 타의반 떠밀려 나온거나 다름없는데, 마라도나가 은퇴한 아르헨티나는 지역 예선에서 콜롬비아에게 홈에서 무려 5:0으로 깨지는 등 졸전을 거듭하다 지역 예선에서조차 탈락할 위기에 몰렸기 때문이다. 결국 아르헨티나는 남미예선에서 브라질, 콜롬비아, 볼리비아에 밀려 호주와의 플레이오프까지 몰리게 되고, 결국 여론은 대표팀 은퇴를 선언한 마라도나를 다시 대표팀에 소집해야 한다는 데에 이른다. 결국 호주와의 플레이오프 직전 마라도나는 대표팀 복귀를 선언, 호주를 플레이오프에서 1승 1무(1무는 0:0 1승은 1:0 그나마도 그 골은 마라도나의 어시스트)로 꺾고 본선에 진출하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하게 된다.

1994 FIFA 월드컵 미국 본선에서 마라도나는 이미 전성기에 비해 운동 능력은 많이 하락한 모습이었다. 그러나 역시 천재적인 축구 감각만큼은 살아 있어서, 플레이메이커로서 팀을 진두지휘하는 면모는 보였다. 아르헨티나는 초반 두 경기에서 6득점 무실점을 기록하며 브라질과 함께 강력한 우승 후보로 꼽혔고, 마라도나 본인도 그리스와 나이지리아를 상대로 한 단 두 경기에서 1골 2어시스트를 기록하며 팀을 이끈다.(특히 나이지리아와의 두번째 경기에서 두골을 모두 어시스트한다)[24]

그러나 마라도나는 두 번째 경기 후 금지약물인 에페드린 양성 반응으로 미국을 떠나야만 했고,[25] 마라도나가 빠진 아르헨티나는 강자의 면모를 상실한 채 이 대회에서 이전까지 나이지리아에 3:0으로 지는 등 아르헨티나보다 당연히 한 수 아래라 여겨지던 불가리아한테 졸전 끝에 2:0으로 패해 조 3위로 떨어져 와일드 카드를 통해 간신히 16강에 안착하는 한심한 상황이 연출되었다.[26][27] 스트라이커 바티가 버텼지만, 아르헨티나는 16강전에서 게오르게 하지루마니아와 난타전을 벌인 끝에 패하며 쓸쓸히 고향으로 돌아가야 했다.


2.4 플레이 스타일 및 평가

마라도나의 플레이 스타일은 드리블링, 패싱, 플레이메이킹, 슛팅까지 모두 최고수준임을 과시한 공격형 미드필더이자 만능 프리롤. 드리블은 단연 역대 최고이며,[28] 드리블과 더불어 넓은 시야와 예측력으로 한두수 앞서는 패싱과 연계를 하면서 두세명의 밀집수비도 손쉽게 붕괴시켜 버린다. 단신이지만 워낙 힘과 순발력이 좋아서 플레이 패턴과 콤비네이션을 알고도 막기가 쉽지 않은데다 터치와 킥의 변속능력까지 압도적이다 보니 애초에 그걸 알기도 쉽지도 않다.

게다가 마라도나의 왼발 킥은 최고수준의 정교함과 힘을 모두 겸비해서 정지 상태에서도 위협적인 플레이가 수시로 터져나온다. 그리고 운동량과 운동반경에서도 하프라인 아래부터 2선, 1.5선, 1선까지 너른 움직임을 왕성하게 가져가면서도 정형적이지도 않아서 대인방어는 물론이고 지역방어도 거의 불가능하다.[29]

아르헨티나 리그와 나폴리에서는 주로 미드필더임에도 리그와 컵 득점왕에도 오를 정도로 문전 침투와 슛팅도 최고수준이었다. 바르셀로나에서는 아예 1선 포워드로도 플레이를 한 기간이 있을 정도. 한 마디로 어지간하면 그냥 못 막는 만능 슈퍼크랙이 바로 마라도나였다.

마라도나는 물론 일개 플레이어로서도 역대 최고의 반열에 놓이는 선수였지만, 동료들을 잘 이용하면서도 이들의 역량을 끌어올리는데 있어 뛰어난 리더라는 점도 언급할 수 있다. 실제로 마라도나는 유럽 진출 이전 보카 주니어스에 있던 시절에 이미 팀의 주장을 맡을 정도로 강인한 리더십을 가진 선수였다. 국가대표로서도 1982년에는 주장이 아니었지만, 1인의 영향력이 가장 강했던 것으로 평가받는 1986년의 월드컵에서는 주장으로서 팀 곳곳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면서 우승을 이끌었고, 1990년1994년[30]에도 계속해서 주장으로서 역할을 맡았다. 플레이스타일 상으로도 위에서 언급했다시피, 단순한 크랙으로서만 인정받았던 것이 아니라, 넓은 시야를 바탕으로 주위 동료들의 움직임을 포착하는 순간 정확한 킥력으로 볼을 바로바로 배급하는데도 능했다. 이러한 요소들을 바탕으로 마라도나는 단순히 개인으로서만 빛났던 것이 아니라, 본인이 소속된 팀의 클래스를 한 단계 끌어올릴 수 있는 선수였다.

마라도나에 대한 위상과 평가는 더 이상 말할 필요가 없는 아르헨티나 축구 역사 이래 최고의 선수이자, 펠레와 더불어 전 인류 역사 이래 1, 2위를 다투는 축구사 최고의 선수. 신문지상에서 간혹 90년대 말의 선수들에게 혼자의 힘으로 경기를 바꿀 수 있는 선수라는 과장된 수식어를 쓰는데, 그렇다면 그에게는 "혼자 힘으로 90분을, 21명을 지배할 수 있던 마지막 선수"라는 이름이 붙여질 만하다.

그가 전성기 시절, 우승컵을 들었던 팀인 SSC 나폴리아르헨티나의 다른 멤버들을 감안해 볼 때, "축구에서 한 선수가 한 팀을 어디까지 끌어올릴 수 있는가?"의 한계 사례를 보여준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중하위권 수준인 나폴리를 UEFA컵 우승으로 이끌고 간 것은 다름아닌 마라도나 혼자만의 능력이다. 다소 과장이지만, 그가 당대의 수비 시스템을 붕괴시켜버려 새로운 전술인 압박 수비를 창조했다는 말이 공공연히 떠돌았을 정도.

마라도나는, 전 인류 역사상 최고의 크랙[31]이라고 불리는 숙명처럼 매번 시합에서 기본으로 2명, 3명, 많게는 5명 이상이 따라붙으면서 온갖 거친 플레이를 받으면서 발로 걷어차고, 유니폼을 잡아당기고, 공이 아닌 발목을 향한 살인태클의 위협에 시달렸으니 인격자가 아닌 이상 화가 머리 끝까지 날 만도 했다. 이런 상황이니, 필연적으로 "매춘부"라는 별명을 얻으면서 헐리우드 액션의 달인이 되었을 수 밖에 없다. 모두가 메시처럼 안 넘어지길 바랄 순 없는 것이다. 게다가 메시도 정말 안 되면 액션을 쓰고.[32]

2.5 메시와의 비교

아리엘 오르테가, 후안 로만 리켈메, 하비에르 사비올라, 파블로 아이마르, 카를로스 테베스, 세르히오 아구에로 등등 아르헨티나의 수많은 축구신동들은 이후 '포스트 마라도나'라는 기대를 받았으나, 대부분은 마라도나와 축구 포지션 및 스타일도 달랐으며[33],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끝나버렸다.

이후부터 2015년 현재까지 이르러서는 리오넬 메시가 '마라도나의 재림'이라는 칭호를 받는 등, 지금까지의 아르헨티나 축구신동 중에서 포스트 마라도나가 될 수 있는 유일한 선수로 기대받고 있다.[34] 마라도나 역시도 "그동안 새로운 마라도나가 나왔다는 이야기가 수십 번 반복되었다. 그러나 메시만이 내 수준에 도달했다고 생각한다. 그는 믿을 수 없는 재능을 갖고 있는 선수다." 라고 하며 메시를 자신의 후계자로 점찍었고 나의 마라도나는 메시라고 할 정도로, 실제로도 메시를 무척 아낀다. 월드컵 시즌 감독을 맡은 당시에도 팀의 에이스인 메시를 무척 싸고 돌았고 그후로도 계속 조언과 격려를 해주고 있다. 아르헨티나 현지에서 메시를 여러 이유로 혹독하게 까는 경향에 대해서도 일침을 놓곤 한다.그런 분이 왜 월드컵을

위닝 시리즈에 등장하는 아르헨티나 클래식 팀에서 마라도나는 완전 개사기캐릭터화 되어 있다.[35] 그냥 전술이고 뭐고 싹 다 무시하고 공을 일자로만 끌고가도 상대 수비수들이 볼을 빼앗지 못한다는 점이다. 위닝에서 이런 선수는 모든 선수들 중에 마라도나가 유일하다. 펠레도 이정도까지 개사기캐릭터는 아니다.

메시는 이런 비교에 대해 "펠레, 마라도나와 비교되는 것은 정말 영광이지만 그들을 뛰어넘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 않다. 그저 팀과 나의 발전을 위해 축구를 하고 있다"라고 말했으며 아르헨티나 출신답게 가장 존경하는 선수 역시 마라도나. 물론 역대최고 역시도 당연히 마라도나라며 존경심을 보이고 있다. 그리고 마라도나는 "누군가 나를 능가하게 된다면, 그것은 아르헨티나인이기를 바란다. 그 인물이 메시라면 기꺼이 환영할 것이다"라고 말한바 있으며 "나의 커리어는 이미 끝났지만 메시는 현재 진행형이다, 결국에는 펠레와 나의 반열에 오르게될 것이고 우리는 훗날 역대 최고의 자리를 놓고 서로 비교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라고도 말한 적 있다.


장지현 위원은 두 선수를 사실상 비교할 수 없다고 못을 박았다. 이는 어느 한 쪽의 손을 들어준 것이 아니라 80년대의 축구와 현대 축구가 사실상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직접적으로 파고들자면, 80년대 축구는 그 어느 시기보다 공격형 미드필더의 역할이 두드러지던 시대였다.

마라도나는 개인적인 플레이메이킹 뿐 아니라 드리블링과 연계로 수비진 흔들기, 경기 내의 템포 조절, 직접적인 득점력, 강력한 수비 가담까지 모든 부분에서 단 한 명의 클래식 공격형 미드필더가 책임을 지는 시대에 나타난 선수였다. 압박이 등장하고 1인 공격형 미드필더가 더 이상 모든 부분을 책임질 수 있는 시대가 지나면서, 플레이메이킹은 후방 플레이메이커와 전방 플레이메이커로 이원화된다. 이러한 후방 플레이메이커의 대표적인 선수는 호셉 과르디올라, 데메트리오 알베르티니, 페르난도 레돈도등이었다. 한편, 후위에 전문적인 수비형 미드필더를 보좌한 플레이메이커도 태동되었는데 이러한 선수의 유형의 대표선수는 지네딘 지단이라 할 수 있다.

다만 전방의 플레이메이커도 공격시에 직접적인 득점과 더불어 스트라이커를 지원해주는 부분은 데니스 베르캄프 등 위대한 쉐도우 스트라이커 유형 선수들이 등장하면서 그 역할을 가져가게 되었다. 이후 메시는 카카,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와 더불어 수비진을 흔드는 유형의 선수로 등장했으나,[36] 측면 포지션에서 중앙으로 이동하며 바르셀로나 제로톱의 상징적인 선수로 최전방 약간 아래에서 수비진 흔들기와 더불어 공격시 선봉장의 자리에서 창조성을 불어넣고, 또 직접적인 침투도 가능한 선수로 성장했다.


마라도나가 메시에 비해 확연하게 우위를 가져가는 분야는 동시대를 비교할 때 원터치 플레이와 패스 스펙트럼의 다양성, 강력한 킥력, 팀원의 움직임을 최대한 살리고 맞춰주는 플레이메이킹, 다채롭고 변칙적인 무브먼트, 수비력, 우월한 근력과 지구력을 바탕으로 한 전진능력과 활동량이다.

반면 메시는 비교적 균등한 양발능력을 활용한 득점력과 슛팅에 관련한 전반적인 능력치, 기본기와 개인 전술의 세밀함과 연결능력, 연계와 침투 후 결정적으로 마무리 패스나 슛팅을 하는 데에 더 우위를 점한다. 왼발 편향으로 킥의 반경이 비교적 좁은 마라도나는 메시만큼 말도 안 되는 타이밍에 슛을 하지 못하며,[37] 중거리 슛을 비롯한 골 결정력 자체의 정확도 등이 메시보다 많이 부족하다. 마라도나는 득점력이 최대한 보장된다고 해도 1년에 91골을 넣는 플레이를 하지는 못했다. 또 오프사이드 라인을 깨거나 기계처럼 원투패스를 주고 받는 능력 등에서는 메시보다 떨어진다. 반면 메시는 플레이메이킹에서 마라도나보다 떨어지는데, 이는 포지션 자체가 더 공격적인 메시에게는 당연한 일이다. [38]

또 메시는 마라도나처럼 온 몸을 이용한 패스를 쏘아대지는 않는다. 메시의 탈압박은 본인의 뛰어난 발밑 기술을 통한 능력이라면, 마라도나는 볼이 오자마자 아웃사이드, 힐, 발바닥, 어깨나 가슴 등등을 가리지 않고 그야말로 온 몸을 이용해 원 터치로 다른 선수에게 넘겨버린 후 다른 곳으로 파고 들어가는 형식으로 플레이메이킹을 했다. 물론, 그 볼 순환에 있어 중심 플레이어는 마라도나였고 마라도나 개인 기량에 팀 전체가 큰 의존을 했다. 이는 마라도나 시대의 볼만 잡으면 백태클이 들어오는 너무나 폭력적이었던 축구 배경과, 일인 플레이메이커 비중이 절대적이었던 시대에서 자연스레 나타났던 플레이 성향이라고 표현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결정적인 부분이 하나 있다. 마라도나는 근육 구조를 보면 메시가 아니라 되려 카를로스 테베스와 유사하다. 그만큼 근육질이고 몸이 짱짱하다. 그래서 메시에게는 안되는 몸싸움이 마라도나한테는 되는 것이며 체력 역시 마라도나가 메시와는 비교가 안되게 강하다. 만약 메시의 체력이 마라도나 수준이었더라면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은 아르헨티나가 우승했을 것이다. 이 월드컵 당시 메시는 4강 네덜란드전부터 체력부족을 노골적으로 호소하는 모습이 역력해서 그 이전의 경기들과는 달리 활약이 신통치 않았다. 2010 FIFA 월드컵 남아공에서 8강 독일전에서 역시 메시는 체력부족을 호소했다.[39] 실제로 2010월드컵 4강에서 스페인이 독일을 격파한 게 메시의 머리에서 나온 것인데 메시는 독일을 상대로 어떻게 이기는 지 알면서 몸이 따라주지 못해서 졌다. 게다가 2016년 코파 아메리카에서 역시 메시는 칠레전에서 노골적으로 체력 부족을 호소했으며 승부차기에서 체력 부족이 원인이 된 집중력 저하로 인해 그동안 한번도 안 했던 승부차기 실축을 하고 만다.

아르헨티나 영웅급 축구 천재에 작은 키가 비슷해 보이긴 하나, 타고난 골격 자체가 다르다. 복싱 헤비급의 전설 마이크 타이슨은 헤비급 치고 키가 작은 편이며, 그보다 키가 더 큰 미들급 선수들도 많다. 하지만 타이슨은 어깨가 떡 벌어지고 목도 굵고 몸이 탱크처럼 단단하여 헤비급에서도 독보적인 파워를 보였는데, 마라도나 역시 키는 작지만 골격 자체가 튼실하여 덩치 큰 선수들과의 몸싸움에서도 크게 밀리지 않았다. 마라도나가 폭발적으로 돌진하는 모습을 보면 파워 넘치고 차돌처럼 단단함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반면 메시는 상대적으로 슬림한 체형인지라 몸싸움에서 상대적으로 약한 단점이 있다.

결국 축구 전술의 변화를 전혀 살펴보지 않고 메시와 마라도나를 1대1로 득점력이나 패싱력을 비교하며 누가 더 낫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은 그 답이 나올 수 없다. 마라도나와 메시를 비교할 수 있는 부분은 그 위상에 있어서만 가능한데, 그렇다 하더라도 누구 한 쪽의 손을 들어주기는 어렵다. 앞서 언급한 장지현위원은 사실상 두 선수의 위상은 비슷하다고 이야기하였다. 요한 크루이프 역시 두 선수를 직접적으로 비교하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말한 바 있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자의 우위를 말하는 관계자, 전문가들이 있기는 하나, 두 사람이 갖고 있는 스타일, 장점, 커리어 등에서 어느 쪽에 무게를 두느냐에 따라서 갈리는 정도고, 어느 쪽이 선수 가치면에서 총체적으로 우월하다는 식의 얘기는 거의 나오지 않는다.

[마라도나 vs 메시에 대한 비교분석을 한 칼럼. ]

2.6 펠레와의 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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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황제 펠레에게 축구 실력으로 도달 할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다보니 쌍방간의 비교 떡밥이 상당히 흥했다.

축구사에 영원히 남을 이 떡밥에서 마라도나의 손을 들어주는 사람은 마라도나는 펠레와 달리 월드컵 뿐 아니라 유럽리그에서마저 독보적인 업적을 쌓았다는 점, 아울러 펠레는 스트라이커라 공격을 책임지지만,[40] 마라도나는 미드필더라서 경기 전체를 책임진다며 그의 비교우위를 주장하기도 한다. 더군다나 펠레와 같이 뛴 브라질의 축구대표팀 멤버 역시 호화찬란하기 그지 없는 데에 비해 마라도나와 같이 뛴 아르헨티나의 축구대표팀 멤버들의 경우는 거의 마라도나에게 의존한다는 점 역시 강조되고 있으며 중하위권 수준인 나폴리를 UEFA컵 우승을 하게 만든 것 역시 마라도나였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반면 펠레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그의 압도적인 골 기록, 17세의 나이에 월드컵 4강에서 해트트릭, 결승에서 2골 기록, 월드컵에서 3번씩이나 우승하게 만든 업적 등 월드컵에서의 맹활약 등을 들어 그가 더 낫다고 한다. 그리고 펠레가 현역이던 시절은 유럽과 남미의 리그 수준이 차이가 있던 시절이 아니었다는 점도 감안해야된다. 실제로 펠레가 속했던 산토스팀은 숱하게 유럽의 강호들에게 초청되어 투어를 벌였는데 차이는 커녕 그냥 거의 대부분 이겼다. 또한 펠레는 득점력 뿐만 아니라 기회 창출 능력도 우수한 선수였다. 예를 들어, 1970 월드컵에서 펠레는 6경기동안 28회의 키패스를 기록했다. 다만 그 압도적이라는 골 기록이 비공식적인 것까지 합산하는 경우가 있어 거품이 많이 껴있다는 점은 감안해야 한다.

하지만 두 사람은 활동한 시기도 포지션도 다를 뿐더러 누구 한명을 억지로 추켜세워야만 두 사람의 위대함이 부각되는 것은 아니니 건전한 네티즌이라면 심심풀이로 비교해보는 수준에서 그치는게 좋을 것이다. 한마디로 펠레는 펠레고 마라도나는 마라도나일 뿐이다. 그런데 전성기의 펠레와 전성기인 마라도나가 같은 팀에 소속되면 다른 멤버가 아무리 듣보잡이라 해도 팀 자체가 개사기팀이 된다는 것은 사실이다. 펠레도 그렇고 마라도나도 그렇고 둘 다 팀을 개사기급 성능을 가진 초강력한 팀으로 만들 수 있는 역량을 가진 것은 틀림없기 때문이다.

은퇴 이후 지도자로서의 경력은 비교 자체가 애매한 편이다. 펠레는 일선 코치나 감독으로 활동하지 않고 브라질 체육부 장관 등 스포츠 행정가로서 주로 활동한 반면, 마라도나는 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을 역임하는 등의 일선 감독으로 활동하였으나 그 과정에서 상당한 논란이 있었다.

그런데 막상 펠레와 마라도나 둘은 경쟁 의식이 있는지 틈만 나면 서로를 디스한다. 펠레는 "그딴 약쟁이가 내 라이벌? 내 다음은 크루이프지"라고 까고[41] 마라도나는 "아이고ㅋㅋㅋㅋ 그 영감님 아직도 박물관 안 가셨음?"이라고 깐다. 축구계의 송대관-태진아 펠레가 [메시를 평가할 때도] "메시는 아직 크루이프, 플라티니, 디 스테파뇨 등 예전 스타들을 따라잡지 못했다"라고 하면서 마라도나를 쏙 빼놓을 정도. 이제 메시가 저 셋 다 따라잡겠네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유치전 당시 한국을 지지했는데, 이유는 간단하다. 펠레가 브라질의 우방국인 일본을 지지했기 때문이다.(...) 덕택에 95년 한국의 월드컵 유치 홍보 계획의 일환으로 열린 한국과 보카 후니오르스와의 경기에 출전하기도 했다. 1994 FIFA 월드컵 미국에서 약물 복용으로 출장정지 징계를 받은 후 나선 첫 공식전이었기에 세계적인 관심을 끌기도 했다.

2011년 6월 들어서부터 두 어르신들께서는 서로의 후계자를 두고 싸우기 시작하셨다. 마라도나는 네이마르를, 펠레는 리오넬 메시를 까면서 서로를 디스한다. 마라도나 : 계획대로 펠레가 먼저 유망주 네이마르가 메시보다 낫다는 희대의 개드립을 시전하자 마라도나 역시 가만히 있지 않고 "그 영감이 약을 잘못 먹었나ㅋ 어지러워서 지가 뭔 말하는지도 모르나봄ㅋ 약이나 잘 먹으셈"이라고 어퍼컷을 날리며 서서히 발동걸린 이 라이벌 디스대전은 끝날 기미조차 보이지 않아 죄없는 본인들 후계자들만 희생시키고 있다는 반응이다. 메시는 유망주와 비교당해 어이털리고 네이마르는 죄없이 거품이라고 폭풍 까이고... 그리고 펠레의 저주[42]

사실 펠레가 마라도나를 칭찬하면 반대로 펠레가 뛰어나지기 때문에 펠레가 더 강하다고 한다. 그런데 펠레는 마라도나를 까잖아? 안될거야 아마...

실제 축구 실력과는 별개의 이야기지만 과거 마라도나가 진행하던 토크쇼에 펠레가 게스트로 초정된 적이 있었는데, 이 토크쇼에서 둘은 서로의 이름과 등번호가 마킹된 유니폼을 교환하고 마라도나는 펠레를 칭찬(이라기보다는 까지 않는)하고, 펠레는 마라도나의 마약 끊기 노력을 크게 칭찬하는 등.

둘 사이에서는 있을 수 없을 것만 같은 일이 진행되었지만... 마라도나가 먼저 헤딩 대결(서로에게 헤딩해서 공을 넘겨주는 것)을 제안하고, 즉석해서 성사되었다. 길게 가지 않고 결과만 이야기하자면' 펠레가 이겼다.' 마라도나가 실수를 해서 공을 제대로 보내지 못하고 마라도나에게서 한 30cm 떨어진 채 바닥으로 직행... 하던 것을 마라도나가 재빨리 캐치해서 펠레와 뜨거운 포옹하는 애드립으로 넘기며 상황은 종료되었지만 제대로 봤다면 다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 수 있었고, 마라도나는 자신이 진행하던 토크쇼에서 굴욕을 당했다.

2.7 라이벌

호사가들이나 대다수 해축팬들이 꼽는 마라도나의 라이벌은 펠레지만 현역시절 마라도나의 라이벌로 꼽힌 선수는 서독의 킹 칼레 칼 하인츠 루메니게, 프랑스의 마에스트로 미셸 플라티니, 브라질의 하얀 펠레 지쿠[43], 네덜란드의 검은 튤립 루드 굴리트, 역시 같은 네덜란드의 스트라이커의 교본 반 바스텐, 그리고 월드컵과 세리에에서 심심하면 만나댄 로타르 마테우스가 있다.[44][45] 이 중 본인이 최대 라이벌로 꼽았던 선수는 로타르 마테우스

사실 엄밀히 보면 루메니게, 플라티니, 지쿠는 마라도나보다 약간 전세대로서 전성기가 겹치지 않아서 완전히 라이벌이라고 보긴 좀 어려운 면이 있다. 루메니게, 플라티니, 지쿠가 이미 세계 최고로 꼽히던 80년대 초반에 마라도나는 아직 20대 초반이었다.[46], 반 바스텐, 굴리트, 마테우스는 동시대이지만 전형적인 센터포워드인 반 바스텐은 포지션이 달라서 직접적인 라이벌로는 비교되는 빈도가 낮았다.

이래저래 동시대에서는 굴리트와 마테우스가 라이벌로 많이 논해졌으나, 굴리트는 라이벌 포지션은 전성기 2년 정도에 그쳤고, 마테우스는 마라도나보다 몇년 늦은 80년대 후반에 전성기가 찾아왔지만 엇비슷한 나이인 마라도나와 전성기가 어느 정도 겹치고 2번의 월드컵 결승과 세리에의 우승길목에서 계속 마주쳤기에 라이벌 포지션으로 가장 적합하다는 강한 인상을 줬다. 물론 마라도나의 전성기인 79년부터 88년까지는 마테우스는 마라도나의 퍼포먼스에는 감히 비교되지는 못했지만. 그 뒤로 마테우스는 마라도나와 붙으면서 종종 맞대결에서 승리하고 1990월드컵에서는 결승전에서 판정승하기도 하면서 발롱도르를 수상하면서 30살에 최고 선수에 등극한다. 반면 마라도나는 그때부터 마약 스캔들로 급속한 몰락이 시작된다.

현재는 자국 후배인 리오넬 메시가 세대를 넘어서는 라이벌이 되려는 조짐이 보이고 있다. 펠마메

2.8 흑역사

2.8.1 도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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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설명했다시피 1994년 미국 월드컵 출전 당시 에페드린 양성 반응으로 월드컵 도중 귀국하는 상황을 맞이했다. [(1994년 7월 1일) 경향신문 - 마라도나 약물 양성반응 충격] [(1994년 7월 2일) 동아일보 - 월드컵 축구 약물복용 마라도나「축구인생」끝장]. 이에 마라도나는 "감기약을 먹은 것일 뿐"[47]이라며 "나는 결코 신께 어긋날 행동을 한 적이 없다."라고 주장했지만 당시 마라도나는 도핑결과 에페드린 뿐 아니라 5가지의 약물이 검출되었고, 도핑 전문가들이 "현존하는 치료 목적의 약물중에 5가지의 금지약물이 동시에 사용되는 약물은 없다"라고 판단해서 월드컵에서 출전 정지를 먹은 것.

이후 2011년에 마라도나는 "그론도나 당시 아르헨티나 축구협회 회장의 지시로 경기전에 팀 닥터들이 커피에 약물을 타주었다."라고 [고백하면서] 아르헨티나의 모든 선수가 도핑을 했다고 주장했다. [sbs 뉴스]

2.8.2 마약

나폴리에서 뛸때부터 마약을 한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공식적으로 마약 복용이 확인된 것은 1991년으로 코카인 양성판정을 받아 15개월간 출장 정지 징계를 받았다. 이후에도 마약을 끊지 못했고 1997년 보카 주니어스에서 마지막 선수생활을 할때 조차 마약에 빠져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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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우루과이에서 마약 소지혐의로 체포되기도하고 2000년, 2004년에 코카인 복용으로 인한 심장 발작증세로 병원에 실려가기도 했고 2004년 쿠바피델 카스트로의 도움으로 마약을 끊는데 성공한다.

2.8.3 탈세

마라도나는 나폴리에서 축구선수로 활약할 당시 탈세를 심하게 하는 바람에[48] 지금도 그가 이탈리아로 여행가면 각종 귀중품을 빼앗긴다. 마라도나가 탈세한 액수가 모두 채워질 때까지 이 짓은 계속 반복된다고 한다. [49]

다만 이부분에서는 마라도나가 "이태리 국세청 놈들이 나에게 세금 고지도 안해놓고 탈세했다고 하네?"라고 항의 할만큼 마라도나 만의 잘못은 아니라는게 세간의 평이다. 왜냐하면 이태리 국세청에서도 이에 대한 반박은 못하고 슬그머니 체납액을 3,800만 유로에서 1,200만 유로로 깍아주었기 때문. 2016년 현재는 약 한화로 600억원 가량 체납액이 남아있다고 한다.

어쨋든 이게 원인이 되어 나중에 아르헨티나 국가대표 감독이 되어서도 이탈리아에 가질 못하기 때문에 이탈리아 리그에서 뛰는 선수들을 제대로 평가할 수가 없었다. 막말로 (마라도나가 받는 감독으로서의 급여)보다 배꼽(이탈리아에 가기만 하면 빼앗기는 세금)이 더 크니 이게 마라도나가 선수관리를 하는 데에 큰 애로사항으로 돌아오게 된다.

2.9 그 외

  • 아르헨티나이탈리아(주로 나폴리 주변의 남부지방)에는 마라도나를 신으로 섬기는 종교도 있다고 한다.
마라도나교(Iglesia Maradoniana)라고 하는데, 간단히 이야기 하면 기독교[50]의 여호와 내진 아도나이[51]를 영(靈)의 아버지로, 마라도나를 육체(肉體)의 아버지로 여기고 섬기는 종교이다. 에밀 쿠스트리차 감독의 영화 '축구의 신: 마라도나(Maradona By Kusturica)'에서 그 전모(...)를 감상할 수 있다. 진짜로. 이들은 자신들의 종교는 가톨릭이지만 마라도나를 성인으로 숭배한다고 한다. 종교보단 가톨릭의 한 교단 비슷한 개념으로 마라도나를 성자 취급한다.
  • 명성이 워낙 대단하다보니 '레몬으로 트레핑 연습'을 한다던가 '일부러 골대만 맞추면서 논다'는 등의 이야기도 널리 퍼져있는데 실제로 그렇게 연습을 했다.
  • 심지어는 지네딘 지단조차도 마라도나의 축구실력에 경의를 표하는데 지단이 직접 한 말에 의하면 "내가 배구공으로 간신히 할 수 있는 볼키핑을 마라도나는 탁구공으로 하고 있다."라고 극찬을 하는 정도이다.
  • 많은 사람들이 착각하고 있는거지만, 그의 주포지션은 공격수가 아니라 미드필더이다. 공격력이 매우 뛰어나서 스트라이커로 알고 있는 사람이 많지만 그는 공격형 미드필더에 가까운 선수였다. 그의 골기록이 더욱 대단하게 느껴지는 이유.
  • 호마리우가 등장하기 전까진 세계제일의 "악동" 선수로 명성이 자자했던지라 호마리우처럼 실력만 좋고 멘탈은 썩었다고 생각하는 젊은세대들이 많은데 절대 그렇지 않았다. 기자들에게 새총을 쏘는 등의 기행이 있었긴 했어도[52] 선은 지켰고 나름대로 선행도 많이 하며 다른 사람들에게 베풀었다. 그리고 축구협회에서 문제가 발생하면 마라도나는 언제나 선수들의 편이었고 절대 축구협회 회장에게 빌붙지 않았다. 나폴리에서 나폴리의 마피아인 카모라들과 사이가 나빴으며, 그들에게 대놓고 비난했던 유일한 인물. 당시 카모라들에게 대든다는것은 정말 죽을 각오를 했어야 했다.
  • 또한 서방언론 특히 미국계 언론과의 사이는 별로 좋지 않다. 일단 그 인생사, 물고 뜯을 게 많기 때문에 좋은 먹잇감이기도 하지만 남미인으로서 아르헨티나인으로서 주관이 뚜렷한 인물이다. 즉 미국을 몹시 싫어하고 신나게 깐다. 그리고 하고 싶은말 참지않고 바로바로 내뱉는 성격이다.[53] 체 게바라랑 카스트로를 좋아하는 것이 그 반증. 언론 역시 네 그러세요? 하며 신나게 물고 뜯고 맛보고 즐기고.
  • 마약도 하니 뭐 카모라들이랑 한통속이라는 음모론도 있지만 완전 헛소리다. 당시 카모라의 아이들이랑 찍었다는 사진이 있는데 사실은 카모라들에게 부모를 잃은 아이들과 찍은것을 카모라들이 그렇게 퍼트린 것이다. 그런 아이들을 위하여 재단을 만들어 기부한것도 유명한 일. 괜히 나폴리에서 저렇게 떠받드는 게 아니다.

한번은 친구의 딸이 병에 걸려서 비싼 수술비를 내기 난감했는데, 그 막대한 수술비를 내준 적도 있다. 그리고 그 친구의 아들이 바로 디에고 포를란으로, 병에 걸렸던 여성은 포를란의 친누나인 알레한드라 포를란이다. 원래 테니스 선수였던 디에고 포를란은 마라도나의 극진한 애정에 감명받아 자신의 진로를 축구선수로 전향했다.그리고 2011년마라도나의 조국을 엿먹이게 된다.

이런 모습은 필드에서도 마찬가지라서 재능만 믿고 혼자서 다 하려드는 우를 범하지 않았고 항상 동료들을 연계를 잘 활용하며 팀을 위한 플레이를 펼쳤다. 그의 주장완장은 결코 실력만으로 얻어진게 아니다.[54][55]

  • 마라도나는 역으로 감독으로서는 동정심 때문에 문제가 있었다는 말도 있다. 빈민촌 출신이며 없는 자인 테베즈를 자르지 못했는데 후임인 사베야는 테베즈를 잘라내고 승승장구했다는것이 그 근거. 그러나 사베야 재임기의 테베즈는 맨시티에서 트러블을 일으켜 경기도 못 뛰고 있었으니 잘라내는게 당연한 얘기이고, 마라도나 재임기의 테베즈는 프리미어리그 득점왕이며 공격전개, 돌파, 연계까지 완벽하게 수행해 당시 미드필더진(나이젤 데용, 가레스 배리, 야야 투레)의 창의성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았던 맨시티를 이끌고 있었다.
  • 파파라치에게는 아주 쿨하게 대응했다. 아무 소리 안하고 그냥 공기총으로 위협사격을 했다. 이로서 가장 터프하게 파파라치를 상대한 유명인사가 되었다.[56] 이 때문에 지금도 파파라치가 마라도나에게 접근하기가 결코 쉽지 않다.
  • 자신과 같은 테크니션에게 들어오는 거친 견제와 파울을 매우 싫어했다. 친선전에서 상대선수가 계속해서 거친 파울로 자신의 플레이를 끊어대자 경기후 인터뷰에서 '이럴거면 왜 나를 부른 것이냐'라고 불만을 토하기도 했고, 허정무에게 걷어차인 것을 두고두고 기억하고 있는 것도 아마도 이 때문. 반면 전설의 드리블 5명 돌파 같은 경우는 '그건 상대 선수들의 페어플레이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라며 잉글랜드 선수들을 추켜세우기도 했다.

3 감독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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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했어요
무너져가는 국대를 구원하기 위해 아르헨티나 선수들에게 신과 같은 위치에 있는 존재인 마라도나가 선임되었고, 어찌되었건 월드컵 본선에 진출해서 8강의 성적을 '내긴'했다. 경우의 수 따져가며 진출한건 그냥 눈감아 줘야하나...? 하지만 칠레가 에콰도르한테 졌으면 지역예선 광탈이었다. 그렇지만,, 마라도나는 감독으로서는 심하게 부족한 사람이었고, 당시는 물론이요 14년 브라질월드컵 준우승 이후에는 그 까임이 더더욱 심해지고 있다. 그 이유를 나열해보면...

  • 원정경기를 치르기 위한 현지적응훈련을 무시하는 감독은 마라도나가 유일하다. 원래 어떠한 축구감독이든 간에 원정경기를 하게 되면 경기시작 3일 전부터 와서 현지적응훈련을 해야 한다. 그러나 마라도나는 원정경기, 그것도 해발 3600m에 달하는 라파스에서 치르는 볼리비아전임에도 불구하고 현지적응훈련을 무시하고 경기시작 2시간전에 팀을 라파스에 도착하게 했다. 당연히 선수들은 구토증세를 보여 제대로 뛰지 못했고 결국 이 페이스를 조절하지 못한 앙헬 디 마리아가 퇴장당하면서 그야말로 팀 자체가 와르르 무너져 버렸다. 결과는 만우절같은 결과인 볼리비아 6-1 아르헨티나. 감독이라면 종목을 막론하고 누구나 다하는 현지적응훈련을 왜 마라도나만 안 했을까?[57]
  • 독선과 아집이 쩔고 남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으려고 했다. 이 때문에 후안 로만 리켈메를 국가대표에서 내쫓고 수비진에 필요한 하비에르 사네티, 에스테반 캄비아소, 페르난도 가고를 뭉텅이로 잘라내버렸다. 이 중에서 훗날 가고는 알레한드로 사베야가 아르헨티나 감독이 되자 다시 등용되어 하비에르 마스체라노, 마르코스 로호와 함께 아르헨티나를 결승전에 올렸다. 게다가 이 때문에 홈그라운드 문제로 스텝들과 다투다가 자기 고집대로 로사리오로 정하고 거기서 브라질을 맞이했다. 결과는 아르헨티나 1-3 브라질 이로 인해 마라도나의 아르헨티나는 브라질 상대로는 어웨이에서 비기고도 홈에서 패했다. 여기에 아르헨티나 축구역사에 월드컵 지역 예선 및 본선에서 단 한번도 패해본적이 없었던 칠레를 상대로 첫 패배를 당한 감독이니 평이 좋을리가...
  • 포메이션 또한 상당히 괴랄한데...


무슨 피파 온라인 3도 아니고..

다이아몬드 4-4-2같기도 하고 4-3-3같기도 하고... 아니, 그냥 이상하다. 특히 선수들의 위치분배가 많이 기형적인데, 만약에 토마스 뮐러크리스티아누 호날두, 네이마르같은 월드클래스 윙어들이 출전한다면 저 오른쪽, 그러니까 테베즈와 구티예레즈 사이의 너른 공간을 신나게 털어먹을 것이고, 이걸 독일이 최대한 이용하는 바람에 아르헨티나는 독일에게 0-4로 패했다.이런 것을 왜 대한민국은 뚫지 못하고 1-4로 패했는지...

  • 엔트리멤버 편성 또한 매우 기형적이다. 부상이 너무 심해서 평가전에서는 쓸모있지만 국가대항전에서는 쓸모가 없는 월터 사무엘, 나이가 너무 많아서 이제 슬슬 은퇴를 앞둔 후안 베론[58], 니콜라스 오타멘디 등등이 주력이 된 반면 아르헨티나 수비의 중심이 되어줘야 할 페르난도 가고와 에스테반 캄비아소, 플레이메이킹을 해서 경기를 풀어나가야 할 후안 로만 리켈메를 엔트리에서 제거했다.[59] 게다가 곤살로 이과인의 경우는 엔트리에 넣지 않으려고 개기다가 아르헨티나 축구협회에서 "이과인 넣을래, 경질당할래?"라는 으름장을 듣고 나서야 엔트리에 넣었다. 결국 이러한 엔트리에 대한 총체적 문제점으로 인해 아르헨티나는 월드컵 본선에서 경기를 치르면 치를수록 팀이 기하급수적으로 약해졌고 독일과 맞붙었을 때는..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 사실 하나 하나 뜯어보면 마라도나가 엔트리에서 탈락시킨 이유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자기만 납득하는 이유여서 그렇지. 사네티는 처음에는 꽤 뽑혔으나, 볼리비아전에서 대패했을 때 오른쪽 수비가 처참하게 무너진 책임을 물어 이후로는 선발되지 않았다. 물론 앞에서도 이야기했다시피 이것은 사네티 책임이 아니라 마라도나 책임이다. 캄비아소는 저놈의 다이아 4-4-2를 쓸 때 주전 수미는 한 명만 필요하다는 이유 아래, 불필요한 경쟁을 붙이면 팀내 불화가 생길 것을 우려한 것이었다. 문제는 그래놓고 볼라티같은 이후에는 뽑히지도 않을 선수를 한 경기 폼 좋다고 최종 엔트리로 발탁한 것. 그런데 캄비아소는 마스체라노와 투 볼란치로 서있을 때도 좋은 조합을 보여주며 중원을 쌈 싸먹었고, 다이아 4-4-2라 한들 중앙 미드필드에서도 좋은 플레이를 할 수 있는 선수였다. 비록 베론과 같이 긴 롱패스를 보여줄 수 있는 선수는 아니었지만 짧은 패스로 공격 전개도 잘 하고 뛰어난 수비력으로 중원을 장악하며 그야말로 만능 미드필더로서 인테르 트레블의 핵심 멤버였던 점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후일 디 마리아가 중원에서 넓은 활동량을 기반으로 하프윙으로 뛰어난 플레이를 했고 마라도나가 그 재능을 알아보긴 했다지만 기본적으로 이 때는 애송이라 감히 캄비아소와 맞붙을 실력은 아니었다. 가장 문제가 되었던 리켈메는 아르헨티나 10번 타이틀을 메시에게 완전히 굳혀주기 위해 뽑지 않았던 것도 있었고, 리켈메 자체가 워낙 원맨 플레이메이커 스타일이라 좀 양날의 검 성향이 있어서 배제시켰던 것. 하지만 올림픽 및 코파 때 리켈메는 메시와 꽤 괜찮은 조합을 보여줬었고, 상술했듯 당시 메시는 미드필더적 기량이 아직 부족해서 리켈메를 불러 중앙에서 조율을 하라는 요구가 많았다. 재밌게도, 이 결정은 소발에 쥐 잡기 식으로 얻어 걸려서 꽤 효과적이었는데, 2010년 전반기에 보카는 심각한 부진에 시달렸고 리켈메 역시도 심각하게 폼이 좋지 못했다. 게다가 보카의 공격수이자 최종 엔트리에 편성된 팔레르모와 불화까지 있었다. 리켈메라는 선수의 양날의 검 같은 성향을 고려하면 폼 나쁜 리켈메가 팀을 운영했으면 본선에서 문제가 되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마라도나의 가장 큰 문제는 엔트리를 되는대로 소집해서 한 번 경기력이 나쁘면 내쳐버리고 바로바로 다른 선수를 불러들였다는 점이다. 그게 설사 사네티나 캄비아소같은 중요한 선수라도. 전술 적응 시간도 부족하고 스쿼드 간 안정성마저 없어 손발이 안 맞는 부분을 두고 폼 나쁘네? 팀에 안 맞나 보네? 그럼 다른 놈! 식으로 교체해 버렸으니 더욱 더 손발이 안 맞는 악순환이 일어났다.
  • 마라도나는 잘했는데 아르헨티나 국대의 능력이 부족해서 8강에 그쳤다는 것은 헛소리이다. 왜냐 하면 알레한드로 사베야는 같은 팀을 이끌고 가서 월드컵 결승전에 올랐는데? 메시를 주축으로 쓰지 않으려 하는 팀이 선수가 모자라서 패한다니 이게 대체 무슨소리요... 선수구성이 거의 그대로인채, 감독만 바뀌었는데 이 팀이 월드컵 결승전에 오를 수 있는지 생각해보면 답은 뻔하며, 더군다나 사베야가 결승에 오르는 동안 쓰러뜨렸다는 팀들이 이 월드컵에서 디팬딩챔피언인 스페인을 그야말로 난도질하고 올라온 굴지의 강호 네덜란드(4강)와 에당 아자르 등의 세계적인 스타플레이어를 내세워서 새롭게 강호로 떠오르는 벨기에(8강)였다. [60]이다. 과연 마라도나가 저 대진표를 만났어도 8강까지 갔을까...?
2010년도 당시엔 국대감독직을 유임할 뻔했던 만큼, 옹호자들이 상당히 많았다. 가장 큰 이유라면 그의 선수시절 신화를 꼽아야 겠지만, 그때 당시에 "그래도 본선 올려서 이거라도 해낸게 적은 업적은 아니다"라는 이야기가 없진 않았단 거다. 하지만, 알레한드로 사베야가 취임하고 마라도나에게선 상상도 못했던 모습들을 보여주며 평이 나락으로 떨어진것이다. 당장 같은 선수들로, 아니, 마라도나가 가졌던 것 보다 더 못한 상태의 선수들로 준우승을 해냈다는 것에서 이미 마라도나에게 있던 동정여론은 증발해버렸다.

3.1 2010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

3.1.1 지역예선

2010년 월드컵 지역 예선에서 아르헨티나 대표팀은 쾌조의 3연승을 거두며 출발하나, 이후 이어지는 6경기에서 단 1승만을 거두게 된다. 이 당시 진출기준은 10팀 중 4위까지 본선직행, 5위가 북중미 팀과 플레이오프 단판을 겨루어 승리하는 방식인데, 10라운드 당시 아르헨티나 대표팀의 성적은 칠레와 승점은 같지만 득실에서 앞서는 3위였다. 허나 칠레 하나만 이겼을 뿐 나머지 팀들과는 대부분 무승부로만 일관하며 간당간당했으며 분위기가 말이 아니었기에 아르헨티나 측에선 비장의 카드로 마라도나를 꺼내든다. 마라도나가 첫 부임해서 치른 경기에서 칠레한테 패한 거다. 사실 마라도나가 축구감독 경력이 일천한 것은 알고 있었으나 2006 FIFA 월드컵 독일에서 생겨난 마라도나가 아르헨티나 경기를 관전하면 아르헨티나가 승리한다는 징크스 하나만 믿고 마라도나를 채용한 것에 불과했다. 비장의 카드란 이런 것이지 절대 마라도나의 능력을 믿은 것이 아니었다. 똑같이 팀이 막장으로 흘러갔어도 오직 감독 하나의 능력만 믿고 채용된 요아힘 뢰브알레한드로 사베야는 마라도나 따위와는 달리 둘 다 월드컵 결승전에 올라갔다. 실제로 남미 지역예선은 팀별 상대가 고정된 채 시작되는데 아르헨티나에게는 지역예선 첫 상대는 칠레이다. 마라도나는 한때 볼리비아에게 1-6으로 양반학살을 당하고[61] 브라질과의 경기에서는 홈을 로사리오로 해야 한다는 병크를 저지른 끝에 볼리비아, 브라질, 칠레, 파라과이, 에콰도르 등에게 모두 패하는 돌림빵을 당했다. 특히 아르헨티나 역사상 칠레에게 패한건 이때가 처음이었다. 이렇게 마라도나는 예선 탈락의 위기에 내몰린 탓에 나중에 2연승을 거두고서야 간신히 본선 진출의 막차를 탔다.

3.1.2 조별리그 나이지리아전

사실상 마라도나가 본래 세웠던 계획대로 하고 싶던 걸 마음껏 해본 유일한 경기. 그러나 마라도나가 본래에 세웠던 그 계획은 수비를 허무하다 싶을 정도로 약하게 만드는 단점이 있었다. 이게 지역예선에서는 볼리비아전, 브라질 전 등에서 드러났으며 이후에도 독일전에서 명확히 드러나게 된다. 그래서 마라도나가 똥별인 것이다.

월터 사무엘과 마르틴 데미첼리스의 중앙수비를 바탕으로 마스체라노가 수미로 저지선을 형성하고, 저지선 앞에 선 베론이 여유 있게 팀을 조율했다. 최전방의 이과인이 좌우로 쫙쫙 벌려주는 가운데 메시는 중앙에서 프리 롤을 맡아 좌우 중앙 어느 쪽이던 자유롭게 돌아다녔고, 테베즈가 적진 깊숙한 곳 우측에서 중앙으로 끊임없이 전개해 들어갔다.

미드필드 라인에선 디 마리아가 왼쪽 앞뒤로 오가며 공을 전개했고, 에인셰가 뒤를 단단하게 맡았다. 오른쪽 풀백을 맡은 구티에레스는 에인셰보다 공격적인 모습을 보이며 오른쪽 라인을 책임졌다.

나이지리아가 간간이 반격도 해 봤지만 베론의 완급조절과 그 조절을 따라가고 풀어가는 아르헨티나 선수들의 기량이 빛나 결과는 아르헨티나의 1:0 승리, 경기내용은 압도적이었다. 하지만 애초에 나이지리아는 거의 쇠락해가는 팀이었다.

다만 이 경기 이후 베론이 부상당하며 마라도나는 더 이상 하고 싶은 걸 못하고, 플랜 2는 빨리도 등장하게 된다.


3.1.3 조별리그 한국전

뭔 말도 못해요 ㅅㅂ...

1986년 멕시코 월드컵 당시 현역 선수였던 허정무에게 허벅지를 정통으로 걷어차인 적이 있다. 바로 그 순간을 포착한 사진이 일간지 스포츠면에 게재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 장면은 정당하게 공을 걷어내는 장면에서 부딪힌 것이었다. 사실, 당시에 허정무만 이런 게 아니라 마라도나와 매치업된 수비수들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다 이랬다. 결국, 역시 남는 게 사진이라..

그 당시 기억 때문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에서인지 모르겠지만, 월드컵 조편성 추첨전에 마라도나가 직접 대한축구협회에 친선경기를 제안했다. 알다시피 2009년 당시 대한민국 국가대표팀 감독은 허정무였다. 그러나 그 제안은 한국과 아르헨티나가 2010 월드컵에서 같은 조에 편성되면서 사실상 자동 철회되었다. 마라도나 본인도 그 사건은 잊지 못하고 있다. 허정무 감독에게 그 때 한국 선수들은 축구가 아니라 태권도를 했다고 도발을 시전, 분위기가 달아올랐다. 뭐 실제로 당시 대한민국 축구대표팀, 특히 마라도나를 전담했던 허정무가 실력이 안되니 그냥 사정없이 상대를 두들켜 팬 것은 사실이지만.[62] 하지만 허정무는 마라도나의 도발에 "태권도 한 적 없다."라고 응수. 역시 때린 사람은 기억 못하지만 맞은 사람은 기억한다.

당시 허정무와 대한민국 대표팀이 아르헨티나, 특히 마라도나를 상대로 한 이른바 태권축구는 당시 축구팬들 사이에서 유명한 사건이었고, 특히 마라도나를 국보 취급 했던 아르헨티나는 그 사건을 대한민국 이상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월드컵 한참 전 마라도나가 아르헨티나에서 토크쇼를 진행할 때 허정무를 초청하기도 했었다. 당시 허정무도 참석하려 했으나 스케줄상 참석하지 못했다고...

이런 악연이 객관적인 전력으론 한국이 열세라는 일반적인 평가와 달리 한국과 아르헨티나전의 분위기는 달아올랐었다(물론 호각이라는 분위기는 한국에서만). 한국 언론과 네티즌들은 마라도나가 감정적인 사건에 냉정하게 대처하기는 커녕 자기가 먼저 빡돌아 나가 떨어지는 타입이라며 은근히 이를 반겼으나 나가떨어지긴 개뿔! 마라도나의 허장정세에 한국의 선수들이 죄다 말려들어가면서 그놈의 메시메시 거리기만 하다가 이과인한테 해트트릭을 헌납하고 만 끝에 4-1로 패하고 만다.

아르헨티나는 베론의 부재로 인해 다이아몬드 미드필더를 사용한다.알레한드로 사베야가 이 포메이션을 봤으면 웃었다. 메시가 꼭지점 플레이메이커 역할로 한국 수비를 흔들게 하고 공의 운반은 다이아몬드 중앙의 디 마리아와 막시 두 명에게 맡기고, 측면은 디 마리아를 조금 왼쪽으로 치우치게 배치한 다음 오른쪽은 구티에레즈의 전진으로 해결을 본다. 그런데 문제는 한국의 선수들이 메시가 꼭지점으로 나오자 4명의 한국 선수들이 모조리 메시에게만 붙었다. 그러던 중 메시가 프리킥을 시도했는데 그게 어이없게도 박주영의 몸을 맞고 골인되었다. 메시의 어시를 받은 최초의 한국 선수

한국은 불의의 자책골을 먹고 어쩔 수 없이 뒷공간을 열고 공격에 나설 수밖에 없었으나 공은 아르헨티나 페이스였고 어떻게 공을 잡아내고 공격하려 해도 여전히 시간이 많이 남았고 아르헨티나는 무서웠기 때문에 지고 있는 팀 치고 전방 공격자원의 숫자가 모자랐고, 배치가 깊숙하지 않았다. 게다가 수비수들은 모조리 메시에게 들러붙어서 다른 선수들을 잘 수비하지 못하는 형국에 이르렀다. 기성용과 박지성은 마스체라노에 거의 녹아났고, 염기훈의 움직임은 나쁘지 않았지만 마무리가 실망스러웠고, 이청용의 마무리는 좋았지만 수비 위치가 나빠 실점의 단초를 제공했다. 박주영은 미드필드가 끊겨서 열심히 헤딩하고 마스체라노 및 아르헨티나 수비진과 대결을 벌이려 했지만 별로 할 일이 없었다. 이 과정에서 곤살로 이과인은 아무도 수비하지 않아 완전히 자유의 몸이 되었다. 이과인에게 골을 얻어맞고 나서야 이과인을 수비하기 시작했다.

결국 경기 내내 중앙의 테베즈와 곤살로 이과인, 중원에서 쳐들어오는 디 마리아와 막시 로드리게스를 저지하느라 녹초가 된 한국 대표팀은 후반 12분경 최후의 반격이 무위로 돌아간 후 교체투입된 아게로와 본격적으로 좌우 측면을 공략하기 시작한 메시에게 너무나 쉽게 녹아내렸다. 스코어에서 뒤지고 있었기 때문에 수비적으로 잠글 수도 없었다.

3.1.4 조별리그 그리스전

마라도나는 본선진출을 위해 많은 주력선수들에게 휴식을 주었다. 마스체라노, 이과인, 테베스를 쉬게 하고 메시는 투입했다. 마라도나는 메시를 자신의 재림으로 전술의 중추로 굳게 확신하고 있던 바, 그리고 메시의 생일이라 메시에게 주장 완장을 씌워줬다. 이로서 2010년 월드컵 전 경기를 통해 가장 어린 주장이 배출됐다.

그런데 메시는 자신조차 주장으로서 출전한 게 이 경기가 처음이었으나 좋은 경기력을 선보였다. 그러나 우리도 이기면 16강 진출이다.라고 외치며 거세게 저항하는 그리스는 끈질기게 물고 늘어졌다. 파나티나이코스 FC가 통짜로 월드컵에 출전한 그리스팀은 물당번이 인터밀란, 주전이 레알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 FC인 아르헨티나를 상대로 끈덕지게 물고 늘어졌다. 뭐 비록 요번 경기에는 물당번 격인 인터밀란의 밀리토가 선발출장했지만 어쨌든 전반전을 0-0으로 끝냈고 그리스로서는 초강력 아르헨티나를 상대로 이렇게 물고 늘어진 것이 대성공이었다. 파나티나이코스...아니 그리스는 이제 아르헨티나를 무승부로 막고 나이지리아가 대한민국을 이겨주길 바랬다.

사실 그리스의 파이브백을 뚫기에는 다이아몬드로는 조금 힘에 부치는 바가 있었다. 중앙 대 중앙으로 맞붙어 봤자 사람만 바글바글하지 공간이 나지를 않는 것이다. 중원에서 메시가 중앙으로 침투한들, 밀리토가 특유의 오프사이드 뚫기라든가 2:1을 시도하려 한들, 아게로가 드리블로 어떻게 풀어보려 한들 중앙에서 중앙으로는 물고늘어지는 파이브백을 떨쳐내기 어려웠다. 오타멘디와 로드리게스가 오버래핑 해 봤자 한계가 있었다. 다행히 그리스 선수들의 주력(走力: 달리기 속도)이 엉망이라는 점을 이용할 수 있었다. 선수 개개인의 달리기 속도 하나만은 본선 32개국 중 가장 느린게 그리스팀이었다.

같은 시각 대한민국과 나이지리아가 박빙의 승부를 연출하고 있을 때 마라도나는 경기가 안 풀리는 것을 보고 막시를 빼고 디 마리아를 투입하여 디 마리아를 왼쪽에, 메시를 오른쪽에, 최전방은 밀리토로 그 후방은 아구에로로 두어 포메이션을 4231로 바꾼다. 활발하게 측면을 사용하며 중앙으로 들어오고 측면으로 빠지고 하며 아르헨티나의 공격이 살아나는데, 그리스도 가만히 있진 않아 사마라스가 롱볼로 그리스 최고 최초 최후의 찬스를 잡으나 놓쳐버리고 만다. 마르틴 데미첼리스가 코너킥을 머리에 갖다댄 게 밀리토의 팔에 맞고 다시 본인 앞에 떨어진 것을 주워먹는 좀 논란성 골이 터지고, 뒤이어 오른쪽에서 중앙으로 침투하는 메시의 슛이 튕긴 걸 주워먹은 마르틴 팔레르모의 골로 아르헨티나는 그리스를 제압했다. 이 때 대한민국과 나이지리아는 비겼다. 대한민국 축구팀은 아르헨티나가 그리스를 제압했다는 소식을 듣고 크게 기뻐했다. 그것이 원인이 되어 골득실에 상관없이 조 2위, 16강 진출이 확정되었기 때문이다.

월드컵이 시작되기 직전 홍명보는 [article default 차라리 아르헨티나가 전승하는 것이 대한민국에게는 유리하게 돌아간다. 이길 팀이 확실히 이겨야지 혼전양상으로 가는것이 상당히 불리한 거다.]라고 말한 바 있다.[63] 그런데 진짜로 아르헨티나가 전승을 기록했고 결과적으로 대한민국은 16강에 진출할 수 있었다. 마라도나 츤데레...츤데레...대충뛰어도 16강 가는 그리스를 상대로 기어이 이겨줬다.


3.1.5 16강전 대 멕시코전

아르헨티나가 프랑스를 격파하고 A조 2위로 올라온 멕시코에 3:1로 완승을 거두었다. 멕시코는 치차리토의 체면살리는 한골이 전부였다. 참고로 2006 독일월드컵 16강전에서도 아르헨티나는 멕시코를 이기고 8강에 올라갔다.

이 경기는 그냥 선수들 개개인간의 스펙 차이로 겨우 올라온 경기일 뿐이었다. 전술은 오히려 멕시코쪽이 더 좋았다.

3.1.6 8강전 대 독일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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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과의 8강전에서 4:0이라는 초유의 스코어로 쳐발리며 아르헨티나의 치욕의 축구 역사를 기록하게 되었다. 선수들에게 이것저것 지시하며 독려하던 예전의 모습과는 달리 경기가 많이 기울어지자 그저 머리만 감싸쥐고 아무 것도 하지 못하는 모습이 안타깝게 느껴질 정도.

일찌기 이 경기를 앞둔 요아힘 뢰브 독일 감독은 똑같이 맞불작전을 벌여서 패하더라도 절대로 아르헨티나에게 굴하는 경기력만은 보이지 않겠다는 굳은 각오를 다졌다. 이런 모습을 보면 두 감독의 그릇의 차이를 알 수 있는 대목인데 뢰브의 그릇은 마라도나 따위가 쳐다보지 못할 엄청난 그릇이었다. 마라도나는 "우리 팀에 메시 있으니까 까불지 마라"라는 허장성세로만 일관하고 팀을 빈껍데기로 만든 반면 뢰브는 "자존심을 버리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자"는 지극히 겸손한 자세로 심지어는 국가대표나 리그 대표팀도 아닌 대학교 축구부와 A매치를 치뤄 23-0이라는 대승을 하게 하는 등 밑바닥부터 탄탄히 다졌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독일은 자신과 대등할 줄 알았던 아르헨티나가 독일이 마음껏 농락할 수 있을 정도의 약체로 전락해버린 상태인 것을 알게 되었고 이에 뢰브 감독을 비롯한 독일 국대 구성원들은 엄청나게 황당해했다.

독일은 아르헨티나 선수들 하나하나에게 수비가 붙어서 메시에게 향하는 모든 패스를 차단하고 메시의 드리블 패턴이나 개인기를 완벽하게 숙지하여 앞에서 두명, 뒤에서 한명이 에워싸고 역습으로 공격을 전개하여 카운터 펀치를 날리면서 쓰리백으로 전환하고 수비라인을 끌어올린 마라도나 감독을 떡실신시켰다. 전반의 메시는 독일 수비진 사이로 어떻게든 골키핑에 성공해서 패스를 이어주거나 스루패스를 찌르는 등 공을 뺏긴 적은 별로 없었다. 하지만 골문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 있었고 도와줄 선수가 전혀 없었다.

수비는 수비대로 이렇게 했고 공격은 공격대로 전술한 바와 같이 그 공백지에 토마스 뮐러가 들어가서 그야말로 휘저었다.. 덤으로 마라도나는 한번 기자회견에서 뮐러를 볼보이라고 부르고 기자회견에서 나가버린 경력이있다. 그야말로 개망신 그자체

메시가 공격수로서만 아니라 경기를 풀어나가는 미드필더로서의 재능도 확실하고, 이는 훗날 드러나게 된다. 하지만 이때까지는 경기를 풀어나가는 역할로서는 공격수로서의 메시에 비해 부족한 면이 있었고, 그렇기에 경기를 풀어나가는 메시는 어디까지나 마라도나가 생각한 플랜 A에서만 딱 맞아떨어지는 것이었으며 후방에서 볼을 풀어줄 베론이 없이는 상당히 갑갑해지는 면이 있었다. 그래서 측면까지 넓게 커버해주는 막시 로드리게스와 디 마리아, 메시의 전방에서 일차적으로 상대방의 압박을 저지하는 테베즈의 역할이 중요했으며 뒤에서 메시의 경기를 풀어나가는 역할을 해야 하는 플레이메이커 후안 로만 리켈메의 역할이 중요했는데 3명 모두 독일전에서 아무런 움직임도 보여주지 못했으며 리켈메는 아예 엔트리에서조차 빠졌다. 특히 막시와 디 마리아의 부진이 치명적이었는데 베론이 부상으로 빠진 상황에서 전방과 후방의 유기적인 움직임을 위해서 이들의 적극적인 움직임이 꼭 필요했는데...만능 미드필더 에스테반 캄비아소의 부재가 아쉬워지는 부분은 바로 이 부분이다. 게다가 이 경기에서 디마리아는 다른 포지션을 받아서 완전 개고생을 했다. 여기에 곤살로 이과인, 테베즈, 막시 로드리게스 등 메시를 돕고 독일의 압박을 일차적으로 저지해줘야 할 선수들이 모두 중앙에서 횡으로 늘어서서 움직여 주지 않으면서 시간이 흐를수록 메시와 후방에 위치한 마스체라노의 부담이 커져갔다.

1선에서 아무런 움직임도 취해주지 않으니 수비진에서 공격을 만드는 작업도 제대로 될리 없고 급기야 답답해진 메시가 전반 초중반부터 아예 하프라인 아래로 내려와서 공을 받고 드리블로 공격 진영까지 전진하면서 볼배급을 맡는 모습을 자주 나타났다.

결국 전반전을 0-1로 마친 아르헨티나는 오른쪽 풀백 자리에서 부진하던 오타멘디를 빼고 후반전에 파스토레를 투입함으로 수비수를 한명 빼고 쓰리백으로 전환하며 수비라인을 끌어올린 이 조치는 한마디로 수비를 포기한 미친 자살행위였다. 결국 이렇게 해서 독일의 막강한 역습의 희생양이 되어 오른쪽이 아예 구멍이 나버리며 더욱 참혹한 스코어를 불러오게 되었다. 나름대로 전술적 변화를 통하여 상황에 대응하려 한 것이었지만, 결과적으로는 너무나 나빴다.[64] 결국 이것 때문에 캄비아소와 사네티를 국대에 선발하지 않은 것이 또다시 도마에 오르며 끝끝내 문제가 되었다. 물론 당시 경기 흐름에 있어 선수 한명이 더 있었다고 결과가 바뀔 수 있겠냐는 의문은 있을 수 있겠지만, 해당 포지션에서 전세계 최고의 선수 중 한명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선출하지 않았고, 그 포지션이 월드컵 기간 내내 아르헨티나의 가장 큰 구멍이었으며, 8강전에서의 대패의 빌미가 되었던 것으로 볼 때, 사네티의 빈자리에 대해 아쉬워하는 축구팬들이 많았다.

참고로 사실 경기 이전부터 파울이 독일의 승리를 예언했었고, 그게 실제로 들이맞았다. 헌데 남미 지역예선을 처음부터 끝까지 관전했다면 누구나 쉽게 예측할 수 있는 결과였다.

그래서 훗날 파울 사망 이후 마라도나는 "너 때문에 우리가 독일에게 관광당했으니 잘 죽었다."문어드립을 쳤다(...).

그리고 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팀은 이후에도 엄청난 침체기를 겪었다가 알레한드로 사베야라는 희대의 명감독이 부임하고 나서 사베야가 마라도나 똥물을 모조리 제거하고 나서야 다시 우승후보로 복귀했다.

3.1.7 그 이후

마라도나는 월드컵이 끝나고 난 직후 아르헨티나로 귀국했다. 원래 마라도나는 연임이 예정되어 있었다. 하지만 아르헨티나 축구협회에서는 마라도나만 연임할 뿐 나머지 코칭스텝들을 전원 경질시키기로 확정했다. 이에 마라도나는 크게 열받아서 "이 코칭스텝들과 함께하지 않을 거면 나도 감독 안하겠다."고 선언. 결국 물러났다.

총평을 하자면 언론에서 과장되게 떠들어대던 것처럼 감독으로서 문외한은 아니었다. 월드컵 시작무렵에는 상당히 안정된 전술로 좋은 모습을 보여줬고 아르헨티나 국대 한정이긴 하지만 거의 신적 존재였기 때문에 선수단 통솔도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경험과 그에 따른 임기응변 능력이 몹시 미숙했다. 플랜 A는 꽤 잘 돌아가는 모습이 보였지만 조별 예선에서 베론 한 명 빠지고 난 후 플랜 A는 붕괴하고 말았고 이에 따라 선보인 플랜 B는 일시적으로, 혹은 상대에 따라 먹히는 깜짝카드 이상으로 기능하지 못했다. 이런 맥락에서 전술적으로 안정성이나 다양성을 가져다 줄 캄비아소나 자네티 같은 선수들의 엔트리 탈락이 문제가 됐다. 거기에 경기중 변화하는 상황에 맞춰서 임기응변으로 대응해야 하는데, 실패했다. 깜짝 발탁된 선수들도 플랜 A에서는 비교적 유기적으로 조합이 되는 모습이었으나 균형이 어그러지자 금세 엇박자가 났고 이를 교정하는데도 실패했다.

이후 아르헨티나는 코칭스텝들이 대거 물갈이가 되었고 마라도나의 후임으로 같이 1986년 월드컵에서 우승을 일구었으며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감독으로 출전하여 금메달을 획득한 세르히오 바티스타를 임시감독으로 삼고 다른 감독을 물색하고 있었으나 선수들의 적극적인 지지로 그냥 정식 감독으로 승격했다. 당초 2014년 월드컵까지는 계속 감독을 하게 되어 있었으나 2011년 코파 아메리카에서 카를로스 테베스가 터뜨린 병크를 뒤집어쓰고 경질되었다. 뒤를 이은 감독이 인디펜디엔테를 2009 코파 리베르타도레스에서 우승시킨 알레한드로 사베야. 이 경력을 인정받아 아르헨티나 국가대표 감독이 되었는데 사베야는 아예 아르헨티나 국가대표 축구팀을 처음부터 다 뜯어고쳤다. 그 결과 메시가 살아나면서 아르헨티나는 승승장구로 일관하더니 결국 2012년 11월 FIFA랭킹에서 3등까지 치솟아올랐다. 그 위로는 스페인과 독일뿐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가히 본좌급. [심지어는 언론에서 이제서야 아르헨티나가 메시의 사용법을 알아냈다.]고 극찬할 지경이다.[65] 그리고 그 사베야는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 이란 - 나이지리아 - 스위스 를 연파하고 벨기에를 일방적으로 농락하고 완파한 뒤[66] 네덜란드와는 승부차기 끝에 이겨서 결승에 도달했으나 결승에서 만난 독일에게는 지쳐서 졌다. 그렇게 준우승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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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마라도나는 아르헨티나 국가대표 축구팀 감독 자리에서 물러난 이후 집에서 놀다가 2011년이 되자 아랍에미리트의 리그팀인 알 와슬 FC의 감독으로 취임했다. 그러나 임기기간을 1년이 넘도록 남겨둔 상태에서 실력 부족이라는 이유로 경질당했다.

2011년 코파 아메리카 기간 동안 교통사고를 당하기도 했으나 다행히 무사했다.

2015년에는 제프 블라터가 이런저런 비리로 FIFA 회장에서 물러날 조짐을 보이자 자기가 FIFA 회장 선거에 출마하겠다고 나섰다.

3.1.8 그 외

2010년에도 현역시절 발재간은 아직 살아있어서 공이 날아오자 발재간으로 가볍게 툭 받아서 경기장에 돌려주는 센스를 보여줘서 관중들의 박수를 받았다.

이외에 훈련 동영상이 공개된 적이 있는데, 스핀이 잘 안들어가고 반발력이 심해서 유럽 일류선수들도 적응하는데 애먹었던 남아공 월드컵 공인구 자블라니를 너무나 쉽게 가지고 놀면서 골대에 집어넣었다. 역시 명필은 붓을 탓하지 않는 법이다.

오오 마느님 오오

덕택에 2ch에서는 이런 유머까지 나돌았다.

연습장에서 훈련중인 아르헨티나 선수들.
마라도나: 자, 다음 경기를 준비해보자. 이렇게 공을 잡고 3명을 제치면 되는거야. 어때, 참 쉽지? (묘기를 부리며 3명을 제친다.)
메시: 아, 정말이네. 쉽다-! (다른 선수들도 묘기를 부리며 3명을 제친다.)
마라도나: 그래, 그럼 준비 끝. 남은 시간은 수영장에서 놀자구-! 농담이 아닌것 처럼 들린다.

4 대인 관계

마라도나는 정치적으로도 상당부분 엮인 인물이다. 1990년대 초중반에는 카를로스 메넴[67]과 상당한 연줄이 있었기 때문에 메넴의 지지자였다.[68] 그러다가 2002년 이후로는 성향이 변했는데, 아르헨티나 정계가 경제위기로 인해 격변기를 맞았고 급진시민연합이 군소정당으로 전락하고 페론당이 여러개의 정당으로 분당되었는데 마라도나는 이중에서 네스토르 키르치네르가 창당한 승리를 위한 전선[69]을 지지하였고 그 이후로 부부 대통령인 네스토르 키르치네르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를 지지하였다. 다만 2007년 수출세 신설로 시끄러울때 마라도나가 수출세 신설에대해 네스토르와 크리스티나를 깐건 보면 무조건적인 지지자라기 보다는 깔때는 까는 타입에 가깝기는 하다. 그와 별개로 쿠바피델 카스트로와도 1990년대 초반부터 절친하게 지냈고 그리고 베네수엘라의 대통령이었던 우고 차베스와는 생전에 매우 친하게 지냈다. 그리고 조지 부시 부자에 대해서는 BU卐H라고 대놓고 부르며 히틀러와 동급으로 취급해 버렸고 2005년 FTAA 협상 당시에 반미 시위에 참여했었다.

그러던 와중에 오바마가 미국의 대통령이 되자 대놓고 쌍수를 들며 환영하면서 "나는 부시집안이 망쳐놓은 미국에 대해 오바마가 원상복구 시켜줄 것을 강력하게 확신한다."라고 말하며 오바마를 지지했다. 그렇지만 이후로 가족과 함께 디즈니랜드로 갈려다가 반미 시위 참여 및 우고 차베스와 피델 카스트로와의 관계로 인해 미국 이민관리국으로부터 출입금지를 먹은 경력이 있어서인지 지금은 어떻게 볼지는 다소 미지수. 그리고 우파성향의 마크리와도 상당한 인연이 있는데 이건 마크리가 CA 보카 주니어스의 소유주인데다가 마라도나가 CA 보카 주니어스에서 좋은 성적을 내다보니 사이가 나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마크리가 대통령이 되고나서 정리해고와 공공요금 인상등의 정책을 펴자 이에 적극적으로 반발하며 까기도 했다.


슬하에는 두 딸과 아들 하나가 있고, 차녀는 아르헨티나의 신성 세르히오 아구에로와 결혼한 사이다. 조석은 2010 남아공 월드컵 당시 아르헨티나 대표팀을 장인, 장인의 재림, 사위라는 훈훈한 가족(...)으로 묘사한 바 있다.

그리고 2013년 2월 13일 득남하여 늦둥이 아들이 하나 더 늘었다. 한마디로 아게로의 아들이자 마라도나 외손주인 벤하민은 자기보다 4살이나 어린 외삼촌을 갖게 된 셈. 이 무슨 막장 드라마... 36살의(!!) 애인 베로니카 오헤다가 어머니라고...이름은 디에고 페르난도라고 한다. 늦둥이 아들이 외손주 벤하민과 메시의 아들 티아고와 함께 대표팀에서 뛰기를 바라고 있다고 한다. 메시의 아들인 티아고가 축구를 가장 잘 할 것 같고 벤하민이 스트라이커, 그 뒤를 티아고와 페르난도가 받쳐주면 좋을거라고 예상하기도 했다. 장인, 장인의 재림, 사위에 이어 2세대마저 가족축구단될 기세;; 그리고 2030 FIFA 월드컵은 아르헨티나의 우승.

그러나 아구에로는 2014년 현재 마라도나의 딸 지아니나와 별거 상태에 들어갔고 이혼을 준비중이다. 마라도나는 아구에로를 비난하는 인터뷰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브라질 월드컵에까지 딸과 함께 가서 재결합을 위해 아구에로를 설득하는 부정을 보이기도 했다.

5 그 외

  • 전 아내가 돈을 훔쳤다고 고소했는데 액수가 137억원... [#]
  • 은퇴한지 수십년이 지난 지금도 전세계 년간 유니폼 판매량에서 꼬박꼬박 10위권 안에 개근 중.
  • 그를 신으로 숭배하는 종교가 실제로 있다. 변종 천주교 마라도나교라는, 실제 존재하는 종교가 그것이다. 종교의 우두머리격(?)인 인물들부터 전통적으로 믿는 신은 천주교지만, 마음의 신은 마라도나라는 신앙고백(?!?)을 할 정도. 이단이다! 참고로 이 종교의 오순절(성령강림대축일)은 위에 나온 멕시코 월드컵 당시의 '신의 손' 사건이 있었던 날이다.(...)
  • 2010년 12월, 고작 22개월된 외손주 벤하민 아구에로가 범상치 않은 포스를 발휘하며 킥을 하는 영상이 올라오면서 20년 후를 책임질 유망주(...)로 떠오르고 있다. 외할아버지는 마라도나에 아버지는 아구에로라아빠랑 제일 친한 친구 중 하나가 메시 과연 어떤 굇수가 탄생할지 설레발이 오가는 중.
  • 참고로 벤하민 아게로의 풀 네임은 벤하민 리오넬 아구에로 마라도나이름은 벌써 축구신[70]. 세르히오 쿤 아게로와 리오넬 메시가 절친이기도 해서 리오넬을 이름에 붙였다고 한다.
  • 그런데 만 50살이 되던 2010년에 득남했다. 결국 벤하민 아게로는 자기보다 어린 외삼촌을 두게 된 셈이다. 그리고 리오넬 메시의 아들 티아고 메시까지 해서 나중에 아르헨티나는 마라도나같은 괴물 3명이 동시에 뛰는 어마무지한 팀이 될 거라는 예측이 있으며 일각에서는 이 세명의 아이들이 축구선수가 되는 2030 FIFA 월드컵에서 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팀이 우승할 것이라는 예측을 하고 있다.
  • 앞의 일화들을 보면 마라도나는 나름의 의리는 있는 사람이다. 월드컵에 끝나고 아르헨티나 축구협회에서 마라도나는 그냥 연임시키고 코칭스텝만 경질한다고 하자 그 코칭스텝들의 편에 서서 그래도 안되니까 그들과 운명을 함께 했다. 마라도나는 체 게바라를 존경하며 그의 의지를 본받으려고 애쓰는 모습도 보인다. 정치적으로 반미 성향이 강하고 사생활이 좀 허술해서 그렇지 인연을 소중히 여기고 의리가 있는 사람이다. 그리고 인정이 많은 사람이다. 당장 디에고 포를란의 누나의 목숨을 구해준 사람이 바로 이 사람이다.
  • 남아공 월드컵 때 아르헨티나 경기를 보면 알 수 있지만, 경기 시작 전에 선수들 한명 한명한테 볼에다 찐하게 뽀뽀를 해준다. 특히 국대내 에이스이자 본인 후계자인 메시에게 경기후 격한 애정표현을 퍼붓는 사진들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문화권이 다른 우리가 보기엔 뜨악스럽지만 선수들은 굉장히 영광스럽게 여긴다나.
  • 2013년 10월 14일 FIFA U-17 월드컵이 개최되자 마라도나는 여기서 굉장한 병크를 터뜨리고 만다.
"난 아르헨티나가 아니라 아랍에미리트를 응원하겠다. 이제 아르헨티나는 더 이상 내 조국이 아니다."[#]
이 마라도나의 발언 한 마디 때문에 온 아르헨티나가 뒤집어졌다.
  • 2014년 2월 21일, 데일리 미러를 비롯한 영국매체들은 마라도나가 54세에 아르헨티나 5부리그 소속인 데포르티보 리에스트에서 현역선수로 복귀한다고 전했다.
  • 마라도나 또한 데포르티보 리에스트의 영입 제의에 동의했고, 아르헨티나 축구 협회에 선수 등록 신청서를 제출할 계획이다. 신청서가 통과될 경우, 마라도나는 오는 3월 23일 산 로렌조와의 경기에 데뷔한다.
  • 피파 부회장 하겠단다. [##]
  • 파파라치들을 극도로 혐오한다. 파파라치가 촬영을 시도하자 공기총으로 위협사격을 해 버렸다. 사실 다이애나 사건 때문에 그런 것. 파파라치들을 피해 달아나다가 사고를 당했는데, 그 작자들이 구조요청은 커녕 사진찍기에만 바빴기 때문.

6 마라도나에 대한 말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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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역사상 최고의 선수는 펠레다. 왜나하면 디에고 마라도나는 축구의 신이니까."
아르헨티나 국민들이 축구 역사상 최고의 선수는 누구냐고 물으면 내놓는 답
"축구는 혼자 하는 게 아니라 11명이 하는 팀 스포츠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축구의 개념을 벗어난 최초의 선수를 보고 있습니다!"
1986년 멕시코 월드컵 8강 잉글랜드전, 신의 손 골 이후 그가 터뜨린 월드컵 역사상 최고의 골을 보며 아르헨티나 해설자가 외친 말
"마라도나가 우리 팀에 테스트를 보러 왔을 때, 마라도나는 겨우 여덟살이였다. 그렇기에 처음에는 그의 재능을 믿지 않았다. 하지만 마라도나의 플레이를 본 후 충격을 먹었는데, 고작 8살의 아이가 어른처럼 축구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라도나의 재능이 심상찮다는 것을 알게된 나는 마라도나를 당장 영입하기로 결정했다."
프란시스코 코르네효(마라도나를 발굴한 아르헨티노스 유스 코치)
"압박 축구를 고안해 낸 것은 디에고 마라도나를 막기 위해서이다."
아리고 사키
"녀석 (디에고 마라도나) 에겐 선수로서 전혀 대적할 수 없다."
요한 크루이프 [71]
"디에고 마라도나만큼은 나보다 위. 그는 격이 다르다."
요한 크루이프
"나는 펠레의 플레이를 보지 못했지만 그럴 필요도 없다. 축구 역사상 최고의 선수는 디에고 마라도나이다. 내가 백만 년을 뛰어도 마라도나에게 근접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는 역대 최고의 선수다."
리오넬 메시
"내가 펠레보다 못하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다. 그러나, 디에고 마라도나는 다르다. 내가 축구공으로 할 수 있는 것들을 그는 오렌지로도 할 수 있다."
미셸 플라티니
"만약 발롱도르가 처음부터 전 세계 모든 선수들을 대상으로 했다면 나의 발롱도르 3연속 수상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는 역사상 최고의 선수다. 마라도나라면 최소한 5번은 수상했을 것이다"
미셸 플라티니
"나와 디에고 마라도나를 비교하는 것은 실례다."
지쿠
"오렌지 총사의 3명이 각기 실력을 발휘하고 나서 그와 처음 동등해진다."
아리고 사키
"펠레가 여러차례 월드컵 제패를 이룩함과 동시에 축구의 범대중화를 이끌며 축구계에 첫번째 혁명을, 요한 크라이프가 토탈풋볼로서 전술적인 혁신을 일으키며 두번째 혁명을, 지단이 각 대륙의 장점만을 결합시킨 아트풋볼로서 축구가 보여줄 수 있는 모든 플레이를 보이며 세번째 혁명을 일으켰다면 마라도나는 경기장에 선 그 자체가 혁명이었다."
아리고 사키
"난 축구 역사상 3번째로 뛰어난 선수다. 1위와 2위는 당연히 펠레와 디에고 마라도나다."
호마리우
"나는 천재가 아니다. 천재라는 것은 아마 디에고 마라도나 같은 선수의 그것을 가리키겠지."
마르코 반 바스텐
"그를 마크하는 것이 가장 괴로웠다. 그와 같은 선수는 이제 다시 나타나지 않을거야."
파올로 말디니
"내가 배구공으로 간신히 할 수 있는 볼키핑을 디에고 마라도나는 탁구공으로 하고 있다."
지네딘 지단
그와 비교하지 말았으면 한다. 그는 외계인이기 때문에.
마라도나가 페널티 지점에서 볼을 차서 크로스바에 맞추고, 튕겨나온 볼을 다시 크로스바에 맞추면서 놀고 있던 그의 영상을 본 적이 있다. 그런 일은 나로선 해낼 도리가 없다."
지네딘 지단
"축구에서 한 사람의 힘으로 경기를 승리로 만들어 내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오직 그것이 가능한 선수는 디에고 마라도나뿐이다."
안드리 셰브첸코
"내가 마라도나에 근접했다고? 그의 수준에 다가갔다거나 어깨를 나란히 했다 같은 비교를 넘어선 지평에 디에고 마라도나가 있다. 그는 축구 그 자체이다."
가브리엘 바티스투타
"내 프리킥 실력이 그의 발 밑 정도에 근접했을지 모른다. 아니, 그렇게 하려고 노력할 뿐이다."
지안프랑코 졸라
"내가 브라질 사람이기 때문에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나의 우상은 디에고다. 물론 펠레도 늘 영웅이었지만, 나는 디에고의 플레이에 언제나 경악했다."
호베르투 카를로스
"나와 로베르토 바조가 스타이긴 하지만, 슈퍼스타의 존재는 아니다. 현대 축구에서 슈퍼스타라고 불릴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디에고 마라도나뿐이다."
호마리우
"로베르토 바지오, 루드 굴리트, 레이카르트, 프랑코 바레시 등등 많은 선수들이 있었지만 반 바스텐이 내가 맡은 팀들 중에서 가장 뛰어났던 선수이다. 그리고 지금껏 봐 온 선수 중에서 가장 대단했던 선수는 디에고 마라도나다. 그는 위대한 선수였다. 그를 영입하려 했지만, 그는 나폴리의 신이 되어 있었다. 두 명의 디에고 마라도나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내가 네덜란드 삼총사를 부른 것은, 한 명의 선수로 팀의 승패를 좌우 할 수 있는것은 디에고 마라도나 이외엔 없기 때문이다."
아리고 사키
"현재 전세계의 모든 현역 선수들은 전성기의 디에고 마라도나에 훨씬 미치지 못한다. 그리고 그를 제외한 세계 최고의 선수는 로베르토 바조라고 생각한다."
요한 크루이프
"디에고 마라도나는 마르코 반 바스텐보다 위다. 그가 지금의 시대에서 활약할 것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프랑코 바레시
"디에고 마라도나에게는 언제나 당하고 있었다. 당시의 그는 최고로 빛나고 있었다. 최근의 은퇴시합의 그를 보면서 왠지 울음이 나올 것만 같았다."
프랑코 바레시
"(당신이 대전했던 선수중 누가 가장 대단했나? 라는 질문에) 가장 대단했던것은 디에고 마라도나이다. 그는 특별하다. 그 다음은 마르코 반 바스텐. 그리고 조금 더 내려와서 미셸 플라티니다."
로타어 마테우스
"(호나우두는 어떤가라는 질문에) 그도 역시 대단하지만, 지금부터 특별한 것을 계속해서 보여주지 않으면 안된다."
로타어 마테우스
"옛날, 바르셀로나 시절의 호나우두가 5, 6인을 제치고 득점하는 것을 보았다. 방금전에도 말한 것처럼 그는 경이적이었다. 호마리우도 발군이었지만, 전성기의 디에고 마라도나가 내가 본 중 최고였지. 초일류의 선수다. 그리고 호나우두가 조금의 차이로 2위다 (웃음)."
바비 롭슨
"나의 커리어에서 디에고 마라도나만큼 대단한 선수를 만나본 적이 없다. 그는 두 눈을 볼에 고정시키지 않고도 룰렛이나 라보나 킥 같은 고난이도 기술을 사용했고, 두 눈으로는 그를 향해 날아오는 백태클을 피하는데에 사용했다. 그 다음은 인테르 시절의 호나우두. 그는 마라도나와 근접해있었다. 대단한 기백을 보여주었다. 지금의 호나우지뉴와 마찬가지로 말이다."
파올로 말디니
"(연습 도중 안토니오 카사노에게) "백힐 패스를 계속하지 마라. 너는 마라도나가 아냐."
파비오 카펠로
"역대 최고의 선수는 디에고 마라도나다. 1986년과 1990년 월드컵을 보며 그를 칭송할 수밖에 없었다. 요즘에도 리오넬 메시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같이 뛰어난 선수가 있지만, 내가 본 마라도나의 플레이는 축구 역사 전체에서도 없는 것이었다."
라이언 긱스
"나는 1987년에 웸블리에서 열린 '영국 1부 리그 올스타 Vs 세계 올스타' 경기에 참여했었어. 엄청 스타들이 많았지. 지코, 플라티니, 푸트레, 마라도나까지. 우리 모두 몸 풀고 있었는데 갑자기 마라도나가 끈이 풀린 축구화를 신더니 볼을 몇 번 툭툭 차다가 있는 힘껏 차올리는거야. 그리고는 공이 떨어지면 또 있는 힘껏 차올리고, 있는 힘껏 차올리고... 이걸 12번 반복하더라... 진짜 엄청났어. 옆을 보니까 플라티니가 입을 쩍 벌리고 바라보고 있더라. 정말 믿기지가 않더라니까.
게리 리네커 (2007년 12월호 포포투 인터뷰)
"나는 메시를 좋아한다. 내 아들이 메시 능력의 1%라도 있으면 좋겠다. 그렇지만 마라도나는 독보적이다. 그를 뛰어넘을 수 있는 선수는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메시가 세 번 연속으로 월드컵에서 우승하거나 중앙선에서 오버헤드킥으로 골을 터트려도 마라도나를 넘을 수는 없다."
엑토르 엔리케 (마라도나의 아르헨티나 대표팀 동료)
"볼을 취급하는 컨트롤 기술에선, 내가 처음 본 완벽한 선수였다. 마라도나가 볼을 컨트롤 하면서 달릴 때, 혹은 디펜스를 드리블로 제껴나갈 때, 그것은 마치 볼을 다리에 붙이고 있는 느낌이었지. 그건 첫 합동훈련 때였을 거야. 그가 처음으로 볼을 만진 순간 주위의 선수들의 움직임이 멈췄다. 모든 선수의 눈이 마라도나의 발밑에 고정되어 있었지. 왜냐고? 그가 펼치는 다양한 테크닉을 실제로 처음 직접 목격했으니까. 그런 선수는 두번 다시 나오지 않을 거야"
카라스코(바르셀로나 시절의 동료)
"나는 지코, 플라티니, 마라도나와 팀메이트였지만, 최고의 선수는이라고 질문받으면 예외없이 마라도나라고 대답한다. 그는 미팅시 10분 20분 내키는 대로 오렌지나 레몬으로 리프팅을 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우리는 그에게 절대적인 신뢰를 보내지 않을수 없었다"
마씨모 마우로(나폴리 시절의 동료)
"지네딘 지단은 세계에서 탑5에 들어가는 대단한 GIOCATORE이지만, 디에고 마라도나는 다른 판타지스타들과는 차원이 다른 유일한 존재. 지단이 멈춰서서 하는 플레이를 그는 톱 스피드에서 정확히 해치워 버린다. 당시 나폴리의 연습에서는 많은 매스컴과 팬들이 보러 왔었는데, 거기에서 코치가 마라도나를 향해 강렬히 슛팅한 볼을 그는 어깨로 트래핑, 머리 위로 올려서 반대 어깨로 코치에게 돌려 보냈다. 믿어지나? 이런 광경을 마치 일상다반사처럼 볼 수 있었다"
치로 페라라(나폴리 시절의 동료)
"모두가 알다시피 발롱도르는 오직 유럽 선수들에게만 수여하는 상이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알고 있다. 지난 10년간 누가 진정한 넘버원이었는지 말이다. 그래서 우리는 디에고 마라도나의 업적을 기리고자 특별한 발롱도르를 선물하기로 했다. 그는 이 시대 축구의 신이다"
드니 쇼미에르(프랑스 풋볼 편집장)
마라도나는 훌륭한 선수다. 나쁜 본보기의 훌륭한 선수
- 펠레

7 어록

대부분 독설이지만 굉장히 재미있게 말을 했다.

"그 때 공을 강타한 것은 나의 손이 아니라 신의 손이었다."
1986 FIFA 월드컵 멕시코 8강 잉글랜드전에서 손으로 슛을 넣은 직후.
"나폴리의 국민들이어, 북녘의 주적[72]을 응원하지 말고 나폴리의 진정한 우방인 아르헨티나를 응원해 다오."
1990 FIFA 월드컵 이탈리아 4강 이탈리아전에서 관중석에다 대고 외친 말.
"차라리 내가 감독을 해보겠다. 비엘사 녀석 너무 못했다."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에서 아르헨티나가 조별리그 탈락하자 한 말. 근데 정작 감독을 잡고보니 비엘사가 명장이었다는 것을 느끼게 했다. 마라도나는 8강 갔는데?
"기자라는 직업을 가진 씨발놈(...)들을 제외한 모든 분들께 이 영광을 돌립니다."
2010 FIFA 월드컵 남아공 남미 지역예선을 힘겹게 통과한 후 기자회견에서.[73]
"마치 무하마드 알리의 펀치에 얻어맞은 기분이다."
2010 FIFA 월드컵 남아공 8강 독일전에서 0-4로 대패를 당한 직후.
이 낙지놈, 나는 니가 죽어서 기쁘다. 월드컵에서 진 것도 다 너 때문이야.
2010 FIFA 월드컵 남아공 독일전의 참패를 점친 문어 파울이 죽자 트위터에 올린 글.
"브라질은 별로다. 그렇다고 독일이 잘한 것도 아니다.독일과 브라질의 경기에서 중반이란 없었으며 다비드 루이스의 호흡도 전혀 안맞았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브라질이 한 거라고는 롱슛밖에 못한게 전부라는 점이다."
미네이랑의 비극 직후 인터뷰에서.
"가브리엘 바티스투타에르난 크레스포? 그 두놈 자식들은 골방에 가둔 뒤 한쪽이 사망할 때까지 서로에게 펀치를 날리게 해야 한다."
ㅡ아르헨티나 국대에서 두 사람의 갈등에 대해 한마디.

8 경력

8.1 대회 기록

  • 보카 주니어스 (1981, 1995/96 - 1997/98)
    • 아르헨티나 프리메라 디비시온 메트로폴리타노 [74] 1981 : 준우승
    • 아르헨티나 프리메라 디비시온 전기리그 1996/97 : 우승
  • FC 바르셀로나 (1982/83 - 1983/84)
    • 코파 델 레이 (1) : 1982/83
    • 코파 데 라 리가[75] (1) : 1982/83
    • 수페르코파 데 에스파냐(1) : 1983
  • 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팀
    • 1979 FIFA 세계 청소년 대회  : 우승
    • 1979 FIFA 75주년 기념 대회 : 우승
    • 1979 남아메리카 청소년 대회 : 준우승
    • 1986 FIFA 멕시코 월드컵 : 우승
    • 1990 FIFA 이탈리아 월드컵 : 준우승
    • 1993 아르테미오 프란키 트로피[76] : 우승


8.2 경기 기록

시즌클럽소속리그리그FA컵대륙대회
경기득점경기득점경기득점
1976아르헨티노스 주니어스아르헨티나 프리메라 디비시온1120000
1977아르헨티노스 주니어스아르헨티나 프리메라 디비시온49190000
1978아르헨티노스 주니어스아르헨티나 프리메라 디비시온35260000
1979아르헨티노스 주니어스아르헨티나 프리메라 디비시온26260000
1980아르헨티노스 주니어스아르헨티나 프리메라 디비시온45430000
1981보카 주니어스아르헨티나 프리메라 디비시온30280000
1982/83FC 바르셀로나스페인 라 리가20115345
1983/84FC 바르셀로나스페인 라 리가16114133
1984/85SSC 나폴리이탈리아 세리에 A301463--
1985/86SSC 나폴리이탈리아 세리에 A291122--
1986/87SSC 나폴리이탈리아 세리에 A291010720
1987/88SSC 나폴리이탈리아 세리에 A28159620
1988/89SSC 나폴리이탈리아 세리에 A269127123
1989/90SSC 나폴리이탈리아 세리에 A28163250
1990/91SSC 나폴리이탈리아 세리에 A1863242
1992/93세비야 FC스페인 라 리가26533--
1993/94뉴웰스 올드 보이스아르헨티나 프리메라 디비시온500000
1994/95보카 주니어스아르헨티나 프리메라 디비시온2450000
1995/96보카 주니어스아르헨티나 프리메라 디비시온100000
1996/97보카 주니어스아르헨티나 프리메라 디비시온520000
  1. 산티아고 베르나베우에서의 퍼포먼스에 대한 기립박수는 크루이프, 마라도나, 호나우지뉴, 델 피에로, 이니에스타까지 단 5명 뿐이다. 레전드 예우 차원의 박수는 종종 있지만
  2. 타임즈에서 선정한 역대 가장 악명높은 수비수 1위에 선정된 선수. 절대로 "공을 향한 태클"은 하지 않는 선수로 이름을 떨쳐 마라도나 이외에도 수많은 선수들의 무릎과 발목을 아작낸 악한이었다. 1994년 미국 월드컵 한국전에서 두 번째 골을 넣은 스페인 선수와는 동명이인이다.
  3. 이 때는 마르세유 턴으로 불리지 않았을 것이다. (이 시절에는 프로 무대에 데뷔조차 하지 않은) 지네딘 지단이 이 기술을 자주, 그리고 잘 썼는데 어린 시절 마르세유 공원에서 이 기술을 연습했다는 일화에서 나온 표현이기 때문이다.
  4. 당시 이적료 2위였던 위르겐 클린스만보다 2배 이상 많다.
  5. 마라도나의 이적료와 연봉으로 구단의 재정이 완전히 바닥나버렸지만, SSC 나폴리의 회원권 가격이 폭등했고 시청률, 관중수도 급상승했다.
  6. 그러나 이 마-지-카 라인은 단 한 시즌, 87/88 시즌만 빛을 본다. 이미 지오르다노는 나폴리로 오기 시작할때 나이가 어느정도 있었으며 다음 시즌인 88/89 시즌에는 노쇠화가 급격히 진행되어 나폴리를 떠나야 했기 때문이다. 이후 실제 카레카의 파트너로 뛰었던 선수는 안드레아 카르네발레이다.
  7. 당시 밀란엔 오렌지 3총사가 에이스였으며, 인테르엔 악명 높은 마테우스와 클린스만이 앞장서고있었다.
  8. 자세한 것은 흑역사 항목 참조.
  9. 이전 버전에서 마라도나가 이 대회의 활약으로 바르셀로나에 입단하게 되었다고 표현하였으나 사실이 아니다. 이미 바르셀로나에 영입이 된 상태에서 스페인 월드컵을 치르기 위해 스페인에 온 것이었다.
  10. 실제로는 프리킥 상황에서 아르헨티나 선수가 공을 마라도나에게 밀어줬고 벽을 쌓았던 벨기에 선수들이 달려드는 모습이 찍힌거다.[실제 해당 경기 장면]
  11. 월드컵 당시 포클랜드 전쟁으로 아르헨티나에 감정이 좋을 리 없는 잉글랜드의 해설자도 마라도나를 최고라고 인정했으니 할 말은 다한 셈.
  12. 1978년에 아르헨티나가, 1982년에 이탈리아가 우승했는데도 1986년에 이런 두 팀이 같은조로 묶였다.
  13. 배구의 강스파이크와도 같은 동작이었다.
  14. 여담으로 역사상 가장 많은 공식 경기를 치른 축구 선수 타이틀을 갖고 있다.
  15. 그리고 이 때문에 마라도나를 신으로 섬기는 종교의 오순절(성령이 강림한 날)이 이 날이다.(...)
  16. 실제로 경기 당일 오전에 멕시코 도심지 한복판에서 양국의 훌리건들이 만나서 대규모의 패싸움을 벌였다. 사상자가 장난이 아니게 많이 나와서 멕시코 월드컵 조직위원회가 기겁할 정도였다.
  17. 그러나 벨기에가 준결승까지 올라오는 과정은 그야말로 눈물겨웠다. 지역예선부터 플레이오프로 밀려서 간신히 올라온 뒤 조별리그에서도 멕시코와 파라과이에게 밀려서 조 3위로 올라왔을 정도로 기구한 운명이었다.
  18. 사실 이런 스쿼드로 본인은 우승했기 때문에 마라도나는 후일 감독이 되고 나서도 자신의 선수 선발방식에 똥고집을 부렸다는 설도 있다.
  19. 멤버가 받쳐주지 못하는 것을 억지로 끌고가다시피 했다는 말은 오히려 1990년 월드컵이 적합하다. 1990년의 아르헨티나는 기존 주전들은 노쇠했고, 신예들은 아직 어렸기에 전력 자체가 크게 떨어져 있던 팀이었다. 결국 아르헨티나는 마라도나와 카니쟈 그리고 후보 골키퍼인 고이코에체아만 믿고 갔고, 특히 고이코에체아는 1990년 월드컵에서 연속 두 경기를 승부차기까지 끌고 가서 진출시켰다.
  20. 하지만 파사레야는 장출혈 증세로 인해 86년 월드컵 경기에 단 한번도 나서지 못했다. 그래도 아르헨티나가 월드컵 우승을 차지함으로서 파사레야는 아르헨티나 유일이자 전세계를 뒤져봐도 20명 밖에 없는 월드컵 2회 우승자라는 대기록을 갖게 된다. 만약 파사레야가 제 컨디션으로 나왔더라면 아르헨티나의 우승은 조금 더 쉬웠을 것이고 역대 월드컵 최다 출전 주장의 기록은 마라도나가 아닌 파사레야의 차지였을 것이다.
  21. 이전 버전에서 앙헬 디마리아가 전경기 개근했다거나, 이과인의 활약도를 이야기한 부분이 있는데... 디마리아는 8강에서 아웃됐다. 그리고 16강 연장과 8강전을 제외하면 디마리아도 매우 부진했다. 이과인은 8강에서 천금같은 결승골을 터뜨리기는 했지만, 86년의 발다노에 비하면 비교가 안 된다. 물론 선수 클래스로는 이과인이 발다노보다 낫다. 그리고 라베씨는 잘 해줬다. 못한 선수를 뽑으라면 팔라시오와 아게로. 마라도나는 딸래미건으로 아게로에 대해 개인적으로도 안 좋은 감정이 있는데다가 이 대회에서 너무 폼이 나빴던지라, 대회 끝나고 아르헨티나에서 못한 선수를 뽑아달라고 인터뷰를 했을 때 아게로는 입에 담기도 싫다고 했다. 하지만 그건 공격진만을 볼 때 얘기고 수비진까지 얘기하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8강부터는 누가봐도 메시보다 마스체라노의 영향력이 더 컸다고 볼 수 있다. 반면 마라도나는 토너먼트 내내 공수를 통틀어 팀내 최고 활약을 해 주었다.
  22. 이 장면을 잘 보면 의도적으로 브라질의 수비가 마라도나의 왼쪽 방향의 움직임을 차단하고자 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그것은 마라도나가 극단적으로 왼발 편향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라도나는 보란듯이 오른발로 카니자에게 킬패스를 넣어준다.
  23. 이때 경기장에 걸린 현수막이 걸작이다. "마라도나, 우리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하지만 이탈리아는 우리의 조국입니다."
  24. 2010 월드컵 조별예선에서 아르헨티나는 그리스, 나이지리아와 또 만났다!!!! 불가리아 대신 대한민국은 덤.
  25. 에페드린을 단독으로 사용하면 약간의 체중 감량효과밖에 얻을 수 없다. 하지만 카페인과 함께 섞어 투여하면 38~64%의 exhaustion cycle 증가 효과가 있다. 마라도나는 이런 식으로 7종의 약물 칵테일을 섭취한 혐의로 퇴출되었다. 이후 마라도나는 도핑 결과에 대해 피파의 음모를 운운하다가 20여 년이 지난 뒤 도핑에 대해 인정하면서도, 아르헨티나 대표팀 전체가 도핑을 했다는 졸렬한 소리를 했다.
  26. 3패를 기록한 그리스를 제외하면 나머지 팀이 모조리 2승 1패를 기록한 상태였고, 아르헨티나는 불가리아와 득점과 실점까지 같았으나 불가리아에게 패하는 바람에 승자승에 뒤쳐져 3위로 밀렸다.
  27. 이 당시까지는 조 3위 팀 중 전적이 좋은 4팀이 16강에 추가로 진출하는 제도가 있었다. 독일전이 끝난 후 대한민국이 조 3위 팀들 중 상위 4개팀에 주어지는 16강 티켓 경쟁에서 골득실 1점 차로 매우 아슬아슬하게 탈락한 것이 알려지면서, 독일전 전반전에 골 3방을 얻어맞은 골키퍼 최인영은 집중 포화를 맞으며 쓸쓸히 태극마크를 반납했다.
  28. 마라도나가 역대 최고의 드리블러임은 거의 모든 언론과 전문가들이 동의하고 있다. 또다른 역대 최고급의 드리블러인 메시와의 비교떡밥이 있지만, 대체로 드리블의 힘과 파괴력과 역동성과 전진능력에서 마라도나가 위라는 평가. 메시는 대신 터치의 기본기의 간결함과 효율성에서 마라도나보다 위라고 보는 견해가 많다.
  29. 이 부분이 마라도나와 메시의 결정적인 차이라고 할 수 있다. 타고난 낮은 체력을 적지만 효율적인 활동량과 우수한 동료들의 지원으로 해결했던 메시가 동료들의 부진, 열악한 환경과 단기전이라는 악재들이 겹친 2014 월드컵에서는 이름값에 비하면 아쉬운 플레이를 펼친 것과 반대로 마라도나는 단기전이었던 월드컵에서 인생 최고의 플레이를 보여주었다.
  30. 단, 위에서 언급하다시피 1994년 월드컵에서는 약물 복용 스캔들에 휘말리면서 팀의 추락을 막지 못했다.
  31. 스페인어로 경기의 흐름을 뒤집을 수 있는 에이스를 뜻하는 축구용어.
  32. 이건 사실 메시와 마라도나의 성격 차이에서 나온다. 메시는 성격 자체가 소극적이고 소심한 편이며, 승부욕은 강하되 자신이 정해놓은 룰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는 선수다. 이에 반해 마라도나는 성격 측면에서 대단히 튀는 성격에 승부욕의 화신이다. 쉽게 말해 마라도나는 팀이 이기기 위해서는 반칙이고 팔꿈치고 시뮬레이션이고 다 한다. 다이브의 달인인 이유도 무서운데, 마라도나는 원래라면 메시보다 몸빵이 더 좋아서 잘 안넘어지는 선수이다. 그런데 프리킥으로 위협을 가할 수 있는 범위에서는 그냥 자빠진다. 경기장내 멘탈로 치면 승부욕은 수아레스 급인데 냉정한 판단력으로 깨물거나 하는 충동을 자제하고 이기기 위해서 온갖 술수를 다 동원하는 선수. FM으로 치면 더티플레이 20, 스포츠맨십 1이라 반칙이 난무하는데 판단력 20이라 반칙 쓸 때 안 쓸때를 무시무시하게 잘 구분하는 선수.
  33. 저 중 오르테가가 포지션이나 플레이 스타일 면에서 그나마 비슷했다고 평가받는다.
  34. 후술하겠지만, 메시와 마라도나 역시 포지션과 스타일이 다른 건 마찬가지다.
  35. 능력치의 최대값이 99인데 마라도나는 거의 대부분 능력치가 90이 넘는다.
  36. 물론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역시 레알마드리드 이후에서는 직접적인 스코어러로 변신한 것이 사실이다.
  37. 메시도 왼발 편향적이지만, 슈팅만큼은 오른발로도 제법 찬다.
  38. 이전 버전에서 메시가 역대급 플레이메이커라고 설명한 부분이 있지만, 플레이메이킹은 단순히 킬패스를 찌르는 능력이 아니다. 공격과 수비의 안정적 배분, 볼의 점유에 대한 직접적 관여, 경기 리딩, 공의 배분, 완급 조절 등등의 총체적 능력이 플레이메이킹인데 킬패스를 찌르는 것은 지극히 한정적인 부분이다. 메시는 바르셀로나에서 마지막 패스를 넣는 역할까지는 확실히 수행하고 있지만, 그 외의 플레이는 후위의 사비나 이니에스타, 라키티치 등에 맡기는 경우가 많았다. 사실 이것까지 메시가 맡아버리면(또는 그런 상황이 만들어지면) 바르셀로나는 답 없는 원맨팀이 되어 버린다.
  39. 게다가 감기증상까지 있었다.
  40. 산토스에서나 브라질에서나 펠레는 최전방 스트라이커의 역할을 맡은적이 그다지 많지가 않다. 4-2-4 라인의 최종 공격수 2명 뒤에 위치했는데, 이를 현대적 관점으로 치환한다면 쉐도우 스트라이커라고도 할 수 있을까, 공격형 미드필더라고 할 수 있을까...
  41. 그런데 크루이프는 막상 "그 녀석노홍철(마라도나)은 선수로서 나보다 한 수 위"라고 평가한다.
  42. 그런데 펠레는 아르헨티나 신문을 통해 '마라도나는 자신을 매우 사랑하고있으며 우린 서로 매우 아끼고 이건 그냥 말장난일 뿐이다'라고 말했다. 둘이 주고 받는 말을 들어보면 절대로 애정표현이나 말장난은 아닌것 같다만...싸우다 든 정이 무섭다더니...
  43. 공교롭게도 마라도나, 플라티니, 지쿠는 FIFA 회장선거에 출마했다모든 것은 펠레에게 달렸다
  44. 6명 전부 전성기 시절 세리에 A에서 뛰었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굴리트는 지쿠, 플라티니와 같은 세대가 아니라 공교롭게도 리그에서 부딪힌적이 단 한번도 없다. 사실 플라티니와 마주칠 수 있었지만 공교롭게도 헤이젤 참사 때 큰 충격을 받은 플라티니가 축구에 열정을 잃어버려 조기 은퇴한다. 훗날 인터뷰에서 헤이젤 참사 이후 축구에 대한 순수한 마음을 잃어버렸다고...
  45. 마라도나의 맞수로 치는 선수는 세리에에서 피터지게 우승경쟁을 했던 루드 굴리트...라는 건 딱 1987-88 딱 1시즌 이야기. 이후 굴리트는 부상으로 전성기가 끝났다.
  46. 그러나 마라도나가 만 19세, 20세의 나이로 지쿠를 제치고 남미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하는 등, 축구인들 사이에서는 오히려 그 당시의 마라도나가 이미 더 뛰어난 선수라고 보는 시각도 많았으니 흠좀무...
  47. 실제로 에페드린이 감기약에도 쓰이는 약물이다.
  48. 당시 3,800만 유로를 체납했다.
  49. 2009년에는 귀걸이를 빼앗겼다. 경매로 넘어간 귀걸이는 최종적으로 이탈리아/팔레르모 소속의 파브리치오 미콜리에게 한화 4500만원 가량에 낙찰되었다. 미콜리 본인은 귀걸이를 돌려주고 싶다며 마라도나를 만나고 싶어하지만 마라도나는 별 신경 쓰지 않는 듯하다. 지금은 가끔 미콜리가 하고 다니는 듯. 경기 중에도 마라도나의 귀걸이를 하고 나오는 모습이 간간히 보인다.
  50. 여기서 말하는기독교는 당연 가톨릭이다.
  51. 위키니트들 사이에 알려진 야훼는 올바른 발음이 아니다. 히브리어는 모음을 표시 안해 정확한 발음을 알기 곤란하고, 신의 이름은 함부로 부를 수 없단 룰 때문에 제대로 신의 이름을 표시하지 않아서였다. 아도나이가 오히려 더 가깝다.
  52. 그러나 이것 역시 파파라치나 기자들에게 자신을 보호하는 행동 중의 하나이다. 당장 영국의 다이애나 스펜서가 어떻게 죽었나를 보면 답은 뻔하다.
  53. 펠레는 저주로 유명해서 그렇지 인터뷰는 립서비스를 많이 곁들여서 신중하게 하는 편이다.(애시당초 펠레의 저주 자체도 펠레의 엄청난 유명세와 립서비스가 결합되어 나온 만들어낸 속설이다.)
  54. 참고로 마라도나는 월드컵 역사상 주장완장을 가장 오래 착용한 선수로도 유명하다.
  55. 2010년 월드컵 당시 이미 2승을 거둬서 여유있게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를 하게 되자 마라도나는 메시를 주장으로 임명했다. 그게 메시의 생일 선물이기도 했다.
  56. 유럽의 파파라치 문제는 우리가 생각하는것 이상으로 심각하다. 다이애나 스펜서가 파파라치를 피하다가 교통사고를 당해 사망했고, 당시 파파라치들이 죽어가는 다이애나를 구할 생각은 않고 사진만 찍고있던 사건을 생각하면 마라도나만 욕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57. 축구 뿐만 아니라 야구도, 배구도, 농구도 원정경기를 하게 되면 현지적응훈련은 누구나 다 한다. 월드컵이 개최되면 괜히 개최되기 1개월전에 선수들을 개최국으로 불러들이는 것이 아니다. 현지적응훈련을 하라고 1개월씩이나 일찍 불러들이는 것이다.
  58. 실제로 베론의 아버지가 마라도나에게 왜 자신의 아들을 국가대표에 넣었냐고 항의하기까지 했다.
  59. 실제로 메시-리켈메의 조합은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남자 축구 종목에서 엄청난 빛을 발했다.
  60. 성적도 성적이지만 경기의 내용물도 넘사벽이다. 똑같은 팀으로 볼리비아에게 1-6, 브라질에게 1-3, 에콰도르에게 0-2 등등 굴욕이란 굴욕은 다 당한 마라도나와 지역예선 16경기 중 거의 대부분을 무실점 또는 1실점으로 커버친 사베야는 결코 같은 게 아니다. 게다가 마라도나는 마지막 라운드까지 가서도 칠레가 에콰도르를 이겨달라고 비나이다 비나이다를 외친 반면 사베야는 15라운드에서 이미 남미 1위를 완벽하게 확정지어 놓았다. 게다가 전적도 사베야는 9승 5무 2패 +35 -15(+20)인데에 비해 마라도나는 8승 4무 6패 +24 -20(+4)이다. 사베야가 지휘했을 때 골을 더 넣고 더 적게 실점했다. 더군다나 득점차이가 넘사벽일 수 밖에 없는 것이 사베야는 마라도나보다 2경기를 덜 치르고도 11점이나 더 땄다. 사베야가 두 경기를 더 치른다고 가정할 때 마라도나만큼 추락하려면 브라질에게 홈 어웨이 모두 0-8 정도로 패해야 둘의 골득실차만 비슷해지며 사베야가 두 경기를 덜 치르고도 마라도나보다 더 많이 이긴 것을 감안하면 승점은 아예 넘사벽이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이것이 거의 똑같은 팀, 똑같은 멤버로 낸 결과라는 점이다. 본선가서 똑같이 독일에게 패했다고도 할 수조차 없는게 사베야는 연장혈투까지 가서 거의 승부차기 일보직전까지 가서 1골 실점하고 패한 것이지만 마라도나는 아예 필드에서 4골을 먹히고 자멸했다. 여기에, 독일 선수단의 클래스는 14년이 훨씬 좋다. 당장 하인게스의 뮌헨 하에서 구기종목 역사상 단일시즌 최대승률을 기록한 선수들이 주축이 된채 미네이랑의 비극같은 대첩을 연출해낼만큼 엄청난 기량을 보여줬다. 2014 월드컵에서는 사실 그러고도 독일은 하마터면 아르헨티나한테 질뻔했고 독일의 입장에서는 2014월드컵에서 맞붙은 모든 상대들 중 가장 어려운 상대가 아르헨티나였다. 반면 2010 월드컵에서 독일이 본 관점에서 아르헨티나는 어떠했는가? 호주와 더불어 독일이 상대한 팀 중 가장 쉬운 팀이었다.
  61. 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팀 항목에 가면 알 수 있지만, 역대 최다 골차로 진 것이다. 경기 결과 뿐만 아니라 경기 내용도 막장이었는데 라파스에 도착하고 2시간 있다가 바로 경기를 뛰려니 선수들은 죄다 구토를 하기 시작했고 여기에 디 마리아가 퇴장당한게 시너지 효과를 일으키면서 사네티도 자멸 모드로 들어갔고 고산지대에서는 메시라고 해서 뾰족한 수도 없었다. 적어도 디 마리아가 뛸때는 0-1이었으나 디 마리아가 퇴장당하자마자 빠른 속도로 무너져 버렸다.
  62. 단, 허정무는 1980년 네덜란드 에레디비지의 명문 클럽인 PSV 아인트호벤에서 수비형 미드필더로 세 시즌간 총 77경기에 출전, 15골을 기록했던 기록도 있을 만큼 축구실력은 상당했다. 마라도나가 너무 넘사벽이라서 실력이 밀린 것 뿐...
  63. 만약 2006년 월드컵에서 프랑스가 스위스를 이겼더라면 대한민국이 같은 결과가 나오더라도 16강에 진출할 수 있었을 것이다. 참고로 2006년과 2010년에 대한민국은 똑같이 1승1무1패를 했으나 2006년에는 탈락한 반면 2010년에는 16강 진출에 성공했다.
  64. 센터백 출신 오타멘디를 기용한 것은 수비를 우선한 선택이었는데 수비에서도 제대로 된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65. 하지만 누구도 2010년의 메시와 2011년의 메시, 2012년의 메시가 같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2010년까지만 해도 마라도나가 맡겼던 중앙 플레이메이커 롤은 대표팀에서나 하던 생소한 역할이었지만, 어느덧 대표팀에서도 익숙해졌고 바르셀로나에서도 측면에서 중앙으로 옮겼다. 뭣보다 실력이 늘었다. 안 늘은 것 같아도.
  66. 골도 극초반(8' G.이과인)에 나왔고 벨기에 선수들은 아르헨티나 선수들에 비해 현저하게 기량이 떨어져서 몸싸움으로 떡칠했는데 이게 운이라는 건 말도 안되는 헛소리이다. 그렇게 따지면 독일이 프랑스를 이긴것도 운으로 이긴거고 미네이랑의 비극도 운으로 이긴 게 된다.
  67. 시리아 출신 아랍계 이주민으로 최고위직에 오른 인물로 아르헨티나에서는 대처리즘적인 정책을 시행한것으로 유명하며 그렇기 때문에 우익 정치인으로 분류된다. 하지만 한국 주요 언론사에서 이부분은 꼭 빼먹는다 물론 임기 후반기에 대차게 말아먹었지만
  68. 사실 당연할수밖에 없던게 카를로스 메넴이 여느 아르헨티나인이 그렇듯이 마라도나의 팬이었기 때문이다. 1994년 월드컵에서 출전할수있었던것도 메넴이 어느정도 개입해서라고
  69. 페론당의 분파로 2000년대 초반 페론당이 여러개의 정당으로 분리되는 과정에서 창당된 정당이다.
  70. 스페인어 사용지역의 정식 이름은 1st name- 2nd name - 아버지쪽 성 - 어머니쪽 성 방식을 따른다.
  71. 요한 크루이프는 축구에 대한 이해도는 역사상 따라올 사람이 없고, 마찬가지로 오만하고 자신감 넘치는 마인드로 유명하다는 점을 생각하면 정말 예외적인 평가라고 할 수 있다.
  72. 이탈리아는 남북간 갈등이 심하다. 참고로 이탈리아 북부는 남부에 비해 잘산다.
  73. 마라도나는 이걸로 징계를 먹고 조추첨에 참가할 수도 없었다.
  74. 1981 시즌 당시 아르헨티나 리그 이름
  75. 1982년부터 86년까지 존재했던 라 리가 리그컵
  76. 1985년과 1993년에 열렸던 유로 우승자와 코파 아메리카 우승자의 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