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 마르코 타르델리 (Marco Tardelli) |
생년월일 | 1954년 9월 24일 |
출생지 | 캄파네 디 카레지네 |
국적 | 이탈리아 |
신체 조건 | 178cm |
포지션 | 중앙 미드필더, 수비형 미드필더 |
소속팀 | 피사(1972~1974) 코모(1974-1975) 유벤투스 FC(1975~1985)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1985~1987) FC 상 갈렌(1978~1988) |
지도자 | 이탈리아 16세 이하 축구 국가대표팀(1988~1990) 이탈리아 21세 이하 축구 국가대표팀(수석 코치; 1990~1993) 코모(1993~1995) AC 체세나(1995~1998) 이탈리아 21세 이하 축구 국가대표팀(수석 코치; 1998~2001)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2000~2001) AS 바리(2002~2003) 이집트 축구 국가대표팀(2004~2005) AC 아레초(2005~2008) 아일랜드 축구 국가대표팀(수석 코치; 2008~2013) |
국가대표 | 81경기 6득점 |
이탈리아 축구 국가대표팀 역대 주장 | ||||
디노 조프 (1977~1983) | → | 마르코 타르델리 (1984~1985) | → | 가에타노 시레아 (1985~1986) |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 역대 감독 | ||||
마르첼로 리피 (1999~2000) | → | 마르코 타르델리 (2000~2001) | → | 엑토르 쿠페르 (2001~2003) |
1 소개
이탈리아 역대 최고의 중앙 미드필더. 당대 최고의 박스 투 박스형 미드필더로 이름을 날렸으며 유벤투스의 전성기를 함께했다. 젠나로 가투소의 업그레이드판 같은 선수이며 1982년 월드컵 결승전에서 보여준 골 셀레브레이션으로도 유명하다.
2 클럽
1972년 세리에 C의 피사에서 데뷔했다. 유소년 시절에는 볼로냐 FC, ACF 피오렌티나, AC 밀란과 같은 클럽에서 오디션을 봤으나 키 때문에 낙방했고 피사에 입단해서는 웨이터일을 하며 축구를 병행했다고 한다.
피사에서 2시즌을 뛴 뒤, 세리에 B의 코모 칼치오로 이적해 1시즌을 뛰었고 피오렌티나, 인터 밀란등의 구애를 받다가 1975년 유벤투스의 일원이 된다. 처음에는 수비수로 기용되 적응에 어려움을 겪었으나 다시 중원으로 돌아왔고 팀의 핵심 선수로 활약했다. 유벤투스에서 뛴 10년간, 타르델리는 리그 우승 5회, 코파 이탈리아 우승 2회를 비롯해 UEFA 컵, UEFA 컵위너스컵, UEFA 슈퍼컵, 유러피언 컵을 모두 들어올렸다.
유벤투스에서 마지막 시즌인 1984-85 시즌에는 유러피언 컵을 들어올린 타르델리는 시즌이 끝나고 유벤투스가 공격수 알도 세레나를 영입하는 과정에서 반대급부로 인터 밀란으로 이적하게 된다. 인테르에서는 2시즌, 타르델리는 명성에 걸맞지 않은 활약을 펼쳤고 1987년 스위스의 상 갈렌으로 이적해 1시즌간 뛴 뒤 현역에서 은퇴했다.
3 국가대표
1976년 포르투갈을 상대로 국가대표팀에 데뷔했다. 메이저 대회로는 78년 월드컵, 유로 1980, 82년 월드컵, 86년 월드컵에 참가했다.
78년 월드컵, 80년 유로 대회에서는 모두 주전 미드필더로 활약했으며 특히 유로 1980 대회에서는 대회 베스트 XI에 이름을 올렸다. 82년 월드컵에도 주전 미드필더로 활약했는데, 결승전 서독을 상대로 가에타노 시레아의 패스를 받아 팀의 2번째 골을 득점했다. 참고로 월드컵 역대 최고의 골 셀레브레이션이라 불리는 '타르델리의 포효' 셀레브레이션이 바로 이 골을 넣은 직후 한 것이다. 2000년대 시점에서는 다소 평범해 보일 수도 있지만, 지금에 비해 ━ 가령, 두 팔을 번쩍 든다든지 ━ 정적이고 단순한 셀레브레이션 위주였던 당시에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또한 해당 경기가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는 월드컵 결승전이었다는 점도 한몫했다.
타르델리의 마지막 국가대표 경기는 1985년 9월 노르웨이와의 경기이다. 그렇게 국가대표팀과 연이 끊어지는 듯 했으나... 86년 월드컵 엔트리에 포함되었다. 그러나 출전은 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