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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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체 중 어여머리를 한 순정효황후

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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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권 국가에서 여성들이 치장을 위해 가발을 머리 위에 얹은 것으로, 다리 혹은 다래라고도 한다. 가체가 처음 기록에 나타나는 것은 통일신라시대로, 당나라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가체의 사치는 날로 심해져 조선 성종 때에는 30cm 높이가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게 보통 무거운 것이 아니라서 목뼈가 부러지는 사고도 많이 발생했다.[1] 그래서 영조 때는 가체금지령을 내려 족두리를 권하기도 하였으나 실패했고 정조 때 다시 강력히 단속했지만 실질적으로 머리에 얹는 형태의 가체는 순조 때에나 가서야 없어졌다. 쪽머리나 새앙머리도 풍성하고 통통한 모양을 내려면 가체가 필요하다. 실제 머리를 땋았을 때 그만한 굵기가 나오는지 생각해보면 쉽다.

2 종류

2.1 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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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비가 쓰던 가체로, 병자호란 이후 명나라가 무너진 후부터 쓰기 시작했다.[2] 특별한 날에 대례복을 입고 머리 위에 얹었다.[3]

2.2 어여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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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르마를 탄 머리와 가체 사이에 솜족두리를 넣고, 그 위에 땋은 가발과 진짜 머리카락을 연결시켜 동그랗게 얹은 머리로, 내명부와 사대부 여인들이 착용한다. 눈과 같은 높이의 양 얖에 떨잠을 꽂고, 족두리 위에는 보통 나비잠을 단다. 다른 비녀나 장신구등으로 장식하기도 한다.

2.3 떠구지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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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머리라고도 하며 어여머리 위에 떠구지라는 나무로 만든 것을 올리고[4], 떠구지를 고정시켜주는 떠구지비녀라는 것을 꽂은 다음, 떠구지비녀에 댕기를 묶는다. 왕실에서 특별한 일이 있을 때 썼다.

2.4 얹은머리

이 머리는 서민들이나 기생들, 사대부 여인들이 평시에 주로 했다. 사대부 여인, 기생들은 가발로 올리기도 했지만, 서민들은 생머리를 땋아서 올렸다.
  1. 시아버지가 방에 들어오자 놀라 갑자기 일어나던 며느리가 목뼈가 부러져 죽는 사건도 있었다. 다른 일설에 의하면 시어머니에게 인사드리러 가던 어린 새색시가 목을 숙이다가 부러져 죽었다고도 한다.
  2. 그전까지는 새 왕과 왕비가 즉위할 때 마다 명나라에서 하사한 주취칠적관을 썼다.
  3. 다른 가체들과 달리 고정시키지 않고 모자처럼 위에 얹기만 했다.
  4. 그 전까지는 떠구지를 진짜 머리카락으로 만들어 쓰곤 했다 물론 더 무거웠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