姜義錫
1917년 5월 24일 - 2015년 4월
1 개요
대한민국의 법조인, 검사, 변호사. 본관은 진주이고, 아호는 학산(鶴山).
2 생애
1917년 5월 24일 경기도 장단군에서 태어났다. 그 후 경성부 종로방 운니동으로 이주하여, 1936년 휘문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1936년 4월 보성전문학교 법학과에 입학하여 1939년 3월에 졸업하였다.
1947년 사법관시보 실무 채용시험에 합격하고 사법요원양성소[1]를 수료하였다.
1948년 부산지방심리원(부산지법의 전신)의 심판관으로 법조인(판사) 생활을 시작하였다. 같은 해에 검사로 전직하여 대전지방검찰청 검사가 되었으며, 1950년 6.25 전쟁 때에는 부산으로 피신하였다가, 휴전 후 임지로 복귀하였다.
1953년에는 대전지검 강경지청장이 되었고, 1959년 1월 12일 청주지검 검사를 거쳐, 1959년 10월 2일 청주지검 충주지청 지청장이 되었다.
1960년 6월 29일 대전지방검찰청 홍성지청 지청장, 1960년 11월 대전지방검찰청 홍성지청 주임검사를 거쳐, 1962년 7월 16일 광주고등검찰청 검사가 되었고, 1963년 6월 13일 광주지방검찰청 부장검사로 승진한 다음, 1964년 청주지방검찰청 검사장으로 승진하였다.
1965년 9월 27일 대구고등검찰청 차장검사, 1969년 1월 20일 춘천지방검찰청 검사장, 1971년 8월 24일 청주지방검찰청 검사장, 1973년 4월 2일 전주지방검찰청 검사장을 거쳐, 1975년 9월 17일에는 대검찰청 공판부장 겸 송무부장이 되었고, 1975년 12월 16일에는 28년의 검사 생활을 마무리하고 나왔다.
1975년 12월 17일 공증인으로 개업하였고, 1986년 새서울합동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로 활동하였다.
2015년 4월, 99세를 일기로 사망하였다.- ↑ 8·15 광복 후 1945년 10월 25일 일본인 판·검사가 일시에 퇴진해 법원과 검찰에 사법요원이 부족해지자 당시 미군정청 사법부장을 중심으로 한 현직 법조인들이 이를 메우기 위한 긴급조치로 개설한 기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