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보 핀토스 역대 감독 | ||||
허구연 (1986) | → | 강태정[1] (1987~1988) | → | 김성근 (1989~1990) |
대한민국의 전 야구 감독. 1945년생.
대구상고를 졸업 후, 실업팀 제일은행과 한국전력에서 활동했으나 부상으로 인하여 젊은 나이에 은퇴, 28세의 나이로 모교인 대구상고 감독으로 부임했다. 1973년 장효조를 앞세워 전국 대회 3관왕에 오르며 일약 전도유망한 감독으로 이름을 알렸다. 강태정은 선수들에게 웨이트 트레이닝을 권장하고 순발력을 키우는 훈련을 강조하며, 그 결과 벌떼처럼 모두 뛰는 발야구와 매 경기 라인업을 바꿀 수 있는 토털 베이스볼을 구사하며 야구계에 이름을 날렸다.
그 뒤 건국대학교 감독을 거쳐, 프로 출범 시 여러 구단의 감독 내지는 코치 제의를 받았지만 모두 거절하고 실업팀 한국화장품 감독으로 줄곧 재직했다. 만학도로 건국대학교에서 학사 학위를 받고, 동국대학교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대학 강단에도 몇 번 섰다고 한다.
이렇듯 실업무대를 꼿꼿이 지켜오던 강태정은 1986년 청보 핀토스의 수석코치로 부임하면서 결국 프로에 첫 발을 들였다. 당시 감독으로 임명된 허구연의 현장 경험이 전무하기 때문에 이를 보완하기 위해 임명한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허구연이 성적 부진으로 중도 경질되면서 감독대행으로 1986년 잔여 시즌을 소화하고, 1987년 정식 감독에 취임하였다.
1987년 부터 이해창 등 발 빠른 선수들을 앞세워 특유의 발야구 위주로 공격 전술을 개편하며 상대 야수진을 흔들었고,[2] 양상문, 임호균을 트레이드로 영입해 투수진을 보강하며 시즌 초반 4승 1패로 돌풍을 일으키는가 싶었으나... 이후 밑천이 바닥나며 바로 꼴찌로 전락하고 말았다. 당초에 새로 창립한 라면회사인 청보식품의 홍보효과를 노리고 야구단을 창단했는데, 청보식품은 예상과 달리 라면시장에서 크게 고전했고 최하위를 헤메는 야구단의 역홍보효과 까지 겹치며 이래저래 어려운 상황에 모기업인 풍한방직 마저 경영난에 빠져 법정관리에 들어간 사태로 인해 선수단이 동요한 것이 가장 컸다고 한다.
결국 청보는 1987 시즌을 끝으로 태평양화학에 매각되며 태평양 돌핀스로 간판을 바꿔달았고, 강태정은 일단 감독으로 유임되었지만 1988년 시즌 초반 1승 13패라는 최악의 기록을 남기며 결국 중도해임 되었다. 하지만 감독 재임 시절 유신고 출신 고졸신인 박정현을 대학과의 스카웃 전쟁 끝에 영입하고, 고교 졸업 후 오갈데 없는 신세였던 경북고 출신 투수 최창호를 받아들여 연습생으로 키우는 등, 이듬해 태평양이 투수왕국으로 발돋움 하는 터전을 일구었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그 뒤 OB의 수석코치와 2군 감독을 역임하고, 일구회 회장을 지냈다. 2000년대 들어서는 SBS 스포츠에서 야구 해설을 맡고 있다. 주로 아마 야구 중계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