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녕군

군호경녕군(敬寧君)
정숙(正淑)
시호제간(齊簡)
생몰년1395년 ~ 1458년 9월 9일

1 생애

조선 전기의 왕족. 태종 이방원효빈 김씨 사이에서 태어난 제1서자. 즉 서장자이다. 천성이 어질고 효성과 우애가 돈독하였으며, 학문에도 뛰어나 효령대군충녕대군에게 글을 가르쳤다고 한다. 태종, 세종, 문종, 단종, 세조까지 5대에 걸쳐 국정에 충성하며 협조하였다. 1417년(태종17) 정헌대부(正憲大夫)[1]가 되었다. 세종 원년에 사은사(謝恩使)로 명나라에 가서 성조(成祖)로부터 황금, 백금, 말, 비단, 양 등의 많은 답례품을 받아왔으며, 1425년(세종7) 숭록대부(崇祿大夫)[2], 1430년(세종12) 대광보국숭록대부(大匡輔國崇祿大夫)[3]가 되었다. 세조 즉위 이후 충주로 이거하여 여생을 보내다 1458년 생을 마쳤다. 묘역(충주능묘)은 충청북도 충주시 신니면에 있으며 묘역 앞에는 위패를 모신 사당 명덕사가 있다.

2 가족관계

정부인청원부부인(淸原府夫人) 청풍(淸風) 김씨(金氏)[4]
자녀적장남고양군(高陽君) 이질(李秩)
적차남은천군(銀川君) 이찬(李?) 1421 ~ 1481
적3남오성군(梧城君) 이치(李?)
적4남영선도정(永善都正) 이리(李?)
1계부인군부인(郡夫人) 개성부(開城府) 마씨(馬氏)
자녀적5남모양군(牟陽君) 이직(李稷) 1438 ~ 1511
2계부인군부인(郡夫人) 전주(全州) 최씨(崔氏)
자녀적6남단산도정(丹山都正) 이수(李穗) 1444 ~ ?
측실성명 미상
자녀서장남월성수(月城守) 이거(李?)
서차남가흥수(嘉興守) 이적(李積)
서3남복성군(福城君) 이영(李潁) 1435 ~ 1487
서4남가림군(嘉林君) 이추(李秋) 1441 ~ ?
서장녀이름성명 미상
남편참봉(參奉) 정석균(鄭石均)
서차녀이름성명 미상
남편현감(縣監) 송계흥(宋繼興)

3 창작물에서의 등장

경녕군은 각종 격변이 일어난 조선 전기의 왕족인데다 그 어머니인 효빈 김씨는 드라마틱한 과정[5]을 통해 태종의 후궁으로 들어온 인물이라서 이름 자체는 종종 언급되지만, 경녕군 본인이 역사에서 딱히 행한 활동은 없어서 비중은 거의 없는 편이다.

경녕군이 창작물에서 그나마 비중있게 나온 사례는 시대극인 대왕세종 정도가 있다. 여기에선 효빈 김씨가 서장자라는 위치와 자신이 태종의 총애를 가진다는 점을 이용해서 세자인 양녕대군을 꺾고 그를 세자 자리로 올리려 한다. 경녕군 본인은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일단 왕위 계승 자체는 일단 포기한다. 하지만 정치적 야망 자체는 남아 있어서 중립적인 위치에서 때로는 세종을 지원하다가도 세종의 정적인 조말생과 접촉하는 등의 활동을 펼치는 모습으로 나온다.[6] 출연 배우는 윤영준.
  1. 정2품 상(上)의 문무관에게 주던 칭호
  2. 종일품(從一品) 문무관에게 주던 품계(品階)이다. 종일품의 상계(上階)로서 숭정대부(崇政大夫)보다 상위 자리이다.
  3. 정일품 문무관에게 주던 최고 품계이다. 정일품의 상계(上階)로서 보국숭록대부(輔國崇祿大夫)보다 상위 자리이다. 1392년(태조 1) 관제를 새로 정할 때 만들어져서 문무관에게 주었다.
  4. 참의(參議) 증찬성(贈贊成) 김관(金灌)의 딸
  5. 본래 원경왕후 민씨의 친가의 여종이었다가 궁녀로 들어온 후 태종과 동침해서 경녕군을 임신했고, 민씨 가문의 학대를 받아서 경녕군과 효빈 모두 죽을 뻔했다가 간신히 살아남았다.
  6. 하지만 66회에서 조말생이 세종앞에 잡혀들어올때 허수아비노릇 더이상 하기싫다면서 선을 그어버리고 이후 효령대군의 조언을 듣고 왕실 종친으로써의 모습에 충실하기로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