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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술의 일종. 공자가문에서 빚는 술로 알려져있다. 이과두주와 함께 한국의 중식당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고량주이다.
물론 공자가문에서 빚는 거지 공자가 마시던 술은 아니다. 그 당시엔 없었다. 국공내전 이후 국민당 정부가 대만으로 쫓겨갈 때 함께 데려갔던 대성지성선사봉사관[1] 공덕성(쿵더청)에게 대륙에서 공부 대표들이 찾아와 이 술을 전하면서 꼭 한 번 대륙에 찾아 주십사 부탁했을 때, "우리 가문에 이런 술은 없다"고 내친 일화가 유명하다.[2]
중식당에 가서 술을 시킬 때, "저건 공부할 때 먹는 술이냐?"와 같은 질문이 간혹 나오기도 한다.- ↑ 공자의 후손들은 역대 중국 왕조에서 대대로 성인의 후손으로써 대접받았고 국가로부터 연성공이라는 작위를 받아 이를 세습했다. 청이 망하고 중화민국이 들어서며 연성공 대신 대성지성선사봉사관으로 임명된다. 어차피 공자 가문의 후계자라는 점에선 똑같다.
- ↑ 공덕성은 죽은 뒤에도 공부에 묻히지 않았다. 대륙을 차지한 중화인민공화국 정부는 새로 연성공을 임명하지도 않았을 뿐 아니라(애초에 대륙에는 공자의 직계 남성 후손이 남아 있지 않았다
그럼 누가 대표라고 찾아온 거지), 문화대혁명 때 홍위병들이 비공(批孔, 공자 비판이라고 쓰고 문화 파괴라고 읽는다)을 외치면서 단순히 곡부(曲阜)의 문묘도 모자라 공덕성 자신의 아버지와 선조들의 무덤을 파헤치고 시신은 그냥 내버려두는 짓까지 자행한 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