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수(무술인)

1939년생으로 현재의 광화문 앞 체신부 자리였던 곳에 위치한 ‘창무관’에서 당수도를 시작했다. 1957년 외국어대학교에 재학 중일 때 경무대[1] 에서 부사범으로 있었는데, 송덕기 옹이 경무대를 자주 방문하여 알게 되었다고 한다. 1958년에 외국어대학교에 ‘택견권법부[2]’를 만들었고, 1963년에는 현재의 광화문 옆 효자동 오리온 다방 3층에 도장을 차리기도 하였다.

대학 때부터 미국의 무술잡지 ‘블랙 벨트(Black Belt)'의 한국기자를 하면서, 1964년도쯤에 ‘블랙벨트(Black Belt)'와 ‘가라데 일러스트레이트(Karate Illustrate)'라는 미국의 유명한 무술잡지에 택견에 대한 기사를 기고한 적도 있으니, 아마도 그것이 공식적으로 택견이 외국에서 기사화 된 처음이라고 추측된다.

박철희 사범의 조교로 일하다가 송덕기 옹을 알게 되었고 김병수 사범도 송덕기 옹처럼 사직골 토박이라서 동네 어르신을 대하듯 하며 친하게 지냈다고 한다. 당시 태권도지에 택견을 소개하기도 하며 택견태권도의 접목을 시도하는 듯도 했으나 김병수 사범도 미국행을 택하며 안타깝게도 중단되어 버렸다.

이 당시는 태권도 역시 당수와 기타 권법들에서 서서히 시합이 자리 잡아가며 변화를 시도하던 터라 만약 택견과의 접목이 잘 이루어졌다면 지금처럼 발 펜싱이라고 부르거나 하는 것과 다른 모습의 태권도가 나올 수도 있었고 더불어 역사성 면에서도 택견을 계승한 전통무예로의 모습도 자리잡을 수 있었을텐데 몹시 아쉬운 부분이다.

김병수 사범은 천신만고의 고생 끝에 지금은 텍사스주(Texas)의 휴스턴(Houston)을 중심으로 ‘김수가라데’라는 타이틀로 이름을 떨치게 되었다. 휴스턴 시(市)에서는 김병수 사범의 문화 체육적 공로를 인정하여 ‘김수의 날(The Day of Grandmaster Kim Soo)’을 지정하였는가 하면, 김병수 사범은 지관도 여러 나라에, 여러 개를 갖고 계신 세계적인 무도인이 되었다.

최근에는 ‘자연류무술’이라는 새로운 체계의 과학적인 무술을 창안하여 크게 활동을 하는 성공한 동양무도인으로 많은 미국인들로부터 존경을 받는 사람이다. 얼마 전 한국에 방문했을 때 결련택견협회 선생들을 모아놓고 특강을 하기도 했는데 매우 훌륭했다고 전한다.

김병수 사범은 송덕기 옹을 존경하기도 하고 좋아하기도 하여 송덕기 옹 생전에는 한국을 방문할 때마다 반드시 송덕기 옹을 찾아뵙고 인사를 올렸다. 1971년에 김병수 사범의 초기 제자 중의 한 명인 ‘죤쿤(John Coon)’이라는 미국인을 데리고 노인정으로 찾아가 송덕기 옹을 소개하며 이분이 바로 태권도의 ‘그랜드 마스터(Grand Master)’라고 소개를 하자, 그 미국인이 연로하신 무예의 고수를 만난 것이 얼마나 감격스러웠던지 덥석 큰절을 올렸다고 한다. 그러자 노인정에 같이 있던 노인들이 모두 부러워했고 송덕기 옹은 상당히 흐뭇해 했다고 술회하셨다.

박철희, 임창수 사범과 더불어 도기현 회장의 품밟기와 활개짓, 기타 기본 발질과 기술들이 송덕기 옹이 자신을 가르치며 보여준 모습과 같다는 증언을 하기도 했다. 현재도 미국에서 자신의 무도를 전파하고 있으며 한국에도 방문하는데 2011년 최근에도 택견배틀 장에 모습을 드러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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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지금의 청와대
  2. 현 태권도부의 전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