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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元全
1918년 8월 20일 ~ 2001년 10월 22일
1 개요
1918년 충청남도 한산[1]에서 태어났다. 이후 부모를 따라 전주로 이주했으며 신흥보통학교[2]를 졸업하였다. 해방이후 일본인이 세운 우리나라 최초의 제지공장인 북선제지화학공장이 적산귀속기업체(敵産歸屬企業體)가 되자 이를 인수하여 2대 관리자가 되었다. 인수 당시 26세였던 김원전이 공장을 인수 할 수 있었던 배경은 뛰어난 영어 실력으로 미군정청과 소통이 원활 했다는 것과 전라북도 민정장관이었던 친형 '김흥전'의 도움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공장 인수 후 사명을 '고려제지'로 바꾸고, 점자 제지수요가 늘어감에 따라 사업은 번창하는 듯했다. 하지만 6.25 동란으로 공장이 파괴되어 모든 것을 원점에서 시작해야 했다. 다행히 UN에 신청한 전쟁 복구 자금[3]을 지원받게 되어 고려제지는 기사회생 할 수 있었다. 이후 신문용지와 달력용지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했고, 사업은 승승장구하게 된다. 이러한 성공을 바탕으로 '자유당' 정권에서 4대 국회의원에 오르게 된다. 이때 맞수였던 김판술과의 선거운동이 회자되는데 당시 선거판에 유행했던 슬로건으로 먹고 보자 김원전, 찍고 보자 김판술!이 있었다. 전형적인 막걸리, 고무신 선거였고, 우리나라 제지의 30%를 책임지던 고려제지의 대표 김원전이 물량공세로 나선것에 맞서 김판술은 발로뛰며 재치있게 김원전에게는 물건을 받고, 투표는 자신에게 해달라는 슬로건을 만든 것이다.
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당선된 김원전은 정치계에 입문하게 되지만 불과 2년만에 4.19혁명이 일어나 정치판에서 물러나게 되었다. 이후 5.16이 일어나 군사정부가 들어서자 그를 민주공화당 창단 준비 위원에 임명한다. 막강한 재력을 가지고 있던 그를 포섭하고자 한것이었다. 하지만 김원전은 군부가 정치에 개입하는 것을 못 마땅하게 여겼고, 결국 군사정권 눈 밖에 나고 만다. 이 후 사업을 문어발식으로 확장하였고 승승장구 하는 듯 했으나 무리한 사업확장과 정권에 비협조적이 었던 태도로 눈밖에 나서 자금줄이 막혀버렸고, 결국 고려제지를 조흥은행에 12억의 가격으로 매각하고 만다.
이후 잔여 사업에 매진했으며 2001년 10월 22일 숙환으로 사망한다.
2 선거이력
연도 | 선거종류 | 소속정당 | 득표수(득표율) | 당선여부 | 비고 |
1958 | 제4회 국회의원선거 | 자유당 | - | 당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