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열(金朱烈)
1943년, 전라북도 남원 ~ 1960년
목차
1 생애
전라북도 남원군 금지면 옹정리에서 3남 2녀 중 둘째 아들, 넷째로 태어나 1956년에는 용지국민학교(현 금지동초등학교)를 졸업하고 3년 뒤 1960년 남원 금지중학교를 졸업하여 마산상업고등학교(현 마산용마고등학교)에 입학하였다.
2 사망과 그 여파
1960년 3월 15일 당일 이승만의 부정선거를 규탄하는 시위에 참여했다가 행방불명되었다. 그리고 27일 후인 4월 11일에 마산 중앙부두 앞바다에서 눈에 최루탄이 박혀 사망한 그의 유해가 발견되어 전국적인 충격을 안겼으며, [1]곧 1주일 후에 서울을 비롯한 전국에서 국민들이 나서는 4.19 혁명으로 이어진다.
이후 고향에 안장하였으며, 남원시에는 그를 기념하는 도로인 김주열로가 있다.
3 기타
중학교 시절 모 잡지를 통해서 알게 된 충청도의 한 고학생과 펜팔을 했는데, 그가 훗날 가톨릭 신부가 되어 꽃동네를 세운 오웅진 사도 요한이었다고 한다.
제11대, 14대 국회의원을 지낸 김병오의 당숙부이다.
1995년 4월 11일 마산상업고등학교에서는 김주열에게 명예 졸업장을 추서했고, 그 졸업장은 김주열 열사 기념관에 전시되어 있다.링크- ↑ '1960. 04. 11' 마산 3.15 의거 김주열 열사 시신 발견. 부산지방 검찰청에서는 13일 하오 4시 30분부터 11일 마산시에서 시체로 발견된 김주열군의 검안에 착수하여 이날 하오 7시에 끝마쳤다.(중략) 김군의 눈에 박힌 그 최루탄의 형태를 보면 인위적으로 박은 것 같은 흔적이 있어 그에 대한 검찰 해명이 지극히 어려운 문제로 등장하고 있는가 하면 죽은 시체가 바다 속에 제 발로 걸어 갈 수 없는데도 불구하고 바다 속에서 시체로 발견되었다는 문제는 어쨌든 확실히 밝혀져야 할 문제이어서 검찰은 이 시체의 의문을 풀어주기 위하여 상당한 고민에 빠질 것 같다. 기사원문 : 1960. 4. 14 '동아일보' 링크 '네이버 캐스트 과거로 떠나는 타임머신 4.19혁명을 기억하며 피어라 민주주의의 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