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사우의 마우리츠

Maurits van Nassau
(1567년 11월 14일 – 1625년 4월 23일)

1 생애

네덜란드의 군인, 정치가이다, 빌렘 1세의 둘째 아들로[1] 아버지가 죽은 후 저지대의 다른 주들을 이끌어 독립전쟁을 수행해 나갔다. 스페인의 테르시오에 맞서기 위해 선형진이라는 진형을 개발하여 스페인과 맞서 성과를 보았지만 군인이 아닌 정치가로써는 미숙한 모습을 보였다. 무엇보다 정적이었던 올덴 바르덴벨트를 제거한 후 모든관직을 자신의 지지자들로만 채워서 왕이나 다를 바 없었다. 합스부르크와의 전쟁을 준비하기 위해 가톨릭 국가인 프랑스와 손을 잡은 후 사망했다.

2 마우리츠의 선형진

네덜란드 독립전쟁 당시 마우리츠는 네덜란드가 스페인의 테르시오에 맞서기 위해서는 절대로 같은 테르시오를 구성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다. 그 이유로는 수십년간 싸워오면서 누적된 베테랑이 주축이 된 테르시오 연대들은 전쟁터에서 무려 두 세배의 적군들과 동등하게 싸울 수 있는 정도 였기 때문에 후발주자인 네덜란드가 이것을 따르기에는 너무 시간과 경험이 부족했다. 따라서 마우리츠는 선형진이라는 독특한 진형을 구상하게 된다. 이 진형은 테르시오처럼 파이크부대 옆에 화승총병이 위치시켰지만 세부적인 변화가 있었다.

첫째로 부대규모를 테르시오의 정원 3000명,중대 1개당 300명의 인원에 비해 정원 1000~1500명에 중대 1개당 150명의 정원으로 개편했다. 이렇게 되자 테르시오처럼 적에게 포위가 될때 버티기는 조금 힘들어졌지만 그 대신 더 적은 병력을 더 넓은 면에 배치해 화력투사가 늘었고 중대규모를 줄였지만 지휘인원은 그대로 두면서 효율적인 운영과 빠른 전술기동이 가능해졌다.

둘째로 파이크병의 비율을 줄였는데 그 이유로는 이미 기사의 시대가 끝나고 그 뒤를 이은 퀴레시어는 적은 파이크로도 막을 수 있다고 판단해 기병방어 및 대보병전용인 파이크를 최소한으로 줄이고 그 대신 화승총의 비울을 대폭 올려 화력투사를 중점적으로 썼다.

마지막으로 화승총의 일제사격을 도입했는데 파이크가 줄어들면서 기병방어와 보병의 근접전이 약해진 만큼 화력집중을 중요시해 마우리츠는 42개 동작을 만들어 병사들에게 숙지시키게 했고 이 동작을 함에 따라 병사들은 사격과 재장전에 능숙해졌고 사격또한 중대장에 구호에 맞춰 첫째 열이 사격하면 열의 맨 뒤로 이동시켜서 사격이 지속되게 했고 이렇게 됨에 따라 선형진의 병사들은 사격을 하면서 뒤로 가는데 이것은 테르시오의 근접전을 회피하는 역할도 했다.
  1. 그의 이복형은 1618년 죽어 그가 계승자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