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카가와 시게마사

中川重政
(? ~ ?)

전국시대의 무장으로 오다 다이스케의 아들이며, 동생으로는 츠다 모리츠키, 키노시타 우타노스케. 통칭은 하치로 우에몬노이(八郎右衛門尉), 오다 스루가노카미(織田駿河守), 타다마사(忠政), 법명은 토겐(土玄). 오다 가문의 족보에는 오다 노부나가의 숙부인 오다 신지의 손자로 기록되지만 연대가 의문시된다고 한다.

오다 노부나가의 오와리 통일에 공헌해 쿠로호로슈(黒母衣衆)에 임명되었으며, 1568년 9월에 노부나가가 상경할 때 교토 주변의 사무를 담당하여 아케치 미츠히데, 키노시타 히데요시(도요토미 히데요시), 니와 나가히데 등과 연판장을 빈번히 냈으며, 1569년에는 오오코우치 성 전투에 노부나가의 기마 무사로 참전했다. 1570년에 비와코 주변의 성에 노부나가가 롯가쿠 요시카타의 잔당들에게 대비해 중신들을 배치하자 부대의 지휘관에 오른 것으로 보이며, 겐키 연간에 아즈치에 배치되어 남 오미를 방어하는 일익을 담당했다.

쵸코우지 성의 시바타 카츠이에와는 영지가 인접해 이권을 두고 다투는 일이 발생해 1572년 8월에 동생인 모리츠키가 카츠이에 측의 다이칸(대관)을 죽이자 노부나가의 노여움을 사 영지를 모두 몰수되었으며, 도쿠가와 이에야스 앞으로 추방되어 칩거하자 삭발했다. 1572년 12월에 미카타가하라 전투에 참전했으며, 1573년에 노부나가에게 용서를 받아 소환되어 아즈치 성을 지키는 죠다이 역할을 맡았다.

노부나가 사후에는 오다 노부카츠를 섬겨 1584년에 코마키 나가쿠테 전투 때 이누야마 성을 수비했지만 이케다 츠네오키의 공격에 패했으며, 이후에는 행방불명이라고 한다.

노부나가의 명령에 따라 아즈치 성을 맡아 카츠이에와 함께 가모군을 맡아 영지 싸움을 할 때 쵸메이지에서 납부한 세금에 대해 카츠이에와 엇갈림을 나타내는 것인 나카가와 시게마사의 서신이 현대에 남아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