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다 사천왕 | |||
시바타 카츠이에 | 니와 나가히데 | 타키가와 카즈마스 | 아케치 미츠히데 |
丹羽長秀(にわ ながひで)
1535년 10월 16일 ~ 1585년 5월 15일
1 생애
코메고로자(米五郞左) 또는 오니고로자(鬼五郞左).[1]
일본 전국시대의 무장. 통칭 고로자에몬. 오다 노부나가의 가신으로 활약하였다.
아버지인 니와 나가마사(丹羽長政) 대까지는 시바(斯波)가문의 가신이었으나, 나가히데부터는 오다(오다 노부나가)가문을 섬기게 되었으며, 1553년도에 첫 출전, 그 후로 오다가의 굵직한 전투에 참전하였다.
미노 공략 즈음부터 오다가 내의 유력 인물로 떠오르기 시작하는데, 나가히데는 군사분야뿐만 아니라 정치 쪽에도 재능이 있었으며, 토목에도 일가견이 있어 아즈치성 건축에도 총책임자를 맡은 바가 있다. 이처럼 노부나가의 가신단 중에 다방면의 재능을 가진 귀중한 인재로서 필두가로 시바타 가츠이에에 이은 NO.2로 대우를 받게 된다. 루이스 프로이스도 "오다 군대를 이끄는 두 명의 중요한 무장(시바타 카츠이에, 니와 나가히데) 중 한 명"이라고 평가했다.
이 당시 두 사람을 일컬어 '오다가의 쌍벽'이라고 하였으며, 훗날의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두 사람의 성에서 한 글자씩을 따 와서 '하시바(羽柴)'라는 성을 만든 것도 이 당시 노부나가는 그를 가리켜 '친구이자 형제와도 같다'고 할 정도로 나가히데를 신뢰하여 자신의 이름 한 자(長)를 주었으며, 실제로 자신의 양녀를 나가히데와 결혼시켰다.
나아가 나가히데의 아들 나가시게(丹羽長重) 또한, 노부나가의 다섯째 딸과 결혼했을 정도이다. 하지만 군사적 재능은 다른 재능에 비해서 부족했던 것은 사실인 것으로 보이며, 노부나가가 세력을 넓혀 나가게 되고 여러 인재가 영입되는 와중에 조금씩 다른 유력 가신들[2]에 비해 뒤쳐지게 된다.
혼노지의 변 당시에는 노부나가의 아들 오다 노부타카를 보좌하고 있었다. 혼노자의 변 직후에 히데요시와 연합하여 아케치 미츠히데에게 승리했다.
이후 기요스 회의에서도 히데요시를 지지하면서 향후 히데요시를 노부나가의 후계자로 인정하고 보좌, 히데요시의 전국통일에 일조했다. 하지만 이 때부터는 동등한 위치에서 히데요시의 가신 위치가 되어버렸으며, 시즈가타케 전투 후 패전한 시바타 카츠이에의 영지 와 성(城)인 에치젠 과 기타노쇼 성(城) 성주가 되고, 여기서 가증을 더 받아 123만석의 영지를 영유하는 거대 다이묘가 된다.
1585년에 51세의 나이로 사망하였으며, 그의 사망은 일반적으로 위암이 원인이었다고 알려졌지만 다른 설도 존재하는데 오다가를 자신의 것인 양 다루는 히데요시를 원망하며 계속되는 히데요시의 소환을 거부하고 자신을 괴롭혔던 종양을 꺼내고 자결했다는 설이 유명하다. 유서와 함께 종양을 히데요시에게 보냈다고 한다.
아들인 니와 나가시게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 119만석의 영지를 몰수당해 가가 고마쓰 4만석 만을 겨우 안도받았으며,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서군(西軍)으로 참전해 이웃한 곳에 영지가 있던 동군(東軍) 마에다 토시나가[3]와 싸웠지만, 결국 동군이 승리했기에 일단 가이에키[4]를 당한다. 이후 다시 적은 영지를 얻고 오사카 전투에 참가해 무공을 세우면서 영지를 가증 받아, 시라카와번(白河藩)의 번주가 된다. 다만 고쿠다카는 10만석으로 아버지 니와 나가히데의 123만석에 크게 못미친다. 이후에도 후손들이 이곳 저곳 으로 전봉되다가 니혼마츠번(二本松藩)에 10만700석으로 정착했다. 막말의 니혼마츠번(二本松藩)은 무진전쟁때 오우에쓰 열번 동맹(奥羽越列藩同盟)에 참여해 신정부군에 맞서 싸웠지만 결국 패배했고, 이후 번(藩)의 고쿠다카는 5만700석으로 감봉 당했다.
2 대중매체에서
2.1 바사라2
여기를 지나가게 할 수는 없다! |
열차를 타고 등장. 아래 그림은 니와 나가히데가 타고 있는 사령탑 부분이다.
2.2 노부나가의 야망
노부나가의 중요한 가신 중 한 명이었음에도 게임에서는 평범보다 조금 나은 정도의 능력치를 받는다. 정치력이 비교적 높고 전투력도 그리 낮지는 않지만 전투에 활용하기 더 좋은 무장들이 많아서 게임에서는 주로 후방 수비용이나 내정용으로 쓰게 된다. 천도 능력치는 통솔 69 무력 75 지력 73 정치 86 의리 78에 그럭저럭 쓸만한데 특기가 진정이다.
그러나 창조에서는 통솔이 80으로 올라가서 약간 쓸만해졌다.
2.3 전국란스
이벤트도 없는 범용무장이지만, 초기무장이다. 초반에 부족한 후방병력인 궁병이고, 특기로 "궤멸무장사냥"[5]이 있어서 초반에 유용하게 쓰인다.
이렇게만 보면 큰 인기는 없는 캐릭터이겠지만, 해고시 대사 하나[6]로 2차 창작에서도 까메오급 출연을 할 정도의 인지도를 얻게 되었다.
2.4 태합입지전
무력이 낮긴 하지만 전반적으로 70~80 만능형의 능력치를 가지고 있다. 다른 사천왕보다 전투에선 약한 편이지만 족경이 3레벨에 통솔이 77이니 전장에서도 인재가 넘쳐나는 오다군임에도 쓸만은 하다. 초반부터 직위가 높은 편이라 병사도 많이 가질 수 있다는게 장점. 물론, 건축이 4레벨, 개간이 3레벨인지라 내정쪽으로 주로 굴리게 된다.
2.5 오다 노부나가전
게임 시작부터 도기병으로 출전한다. 비록 첫 클래스인 도기병은 창기병에 비해서 존재감이 없지만 그의 진가가 드러나는 것은 레벨 5부터로 이 때부터 포병으로 바꿀 수 있는데 적성도 11이라서 포병으로 바꾸는 걸 유도하는 수준. 오다 노부유키를 토벌할 때부터 게임의 난이도가 급등하는데 이 때 나가히데를 포병으로 바꿨냐 안 바꿨느냐에 따라서 난이도가 크게 달라지며, 이후의 전투에서도 마찬가지다. 이런 활약으로 바꿨을 경우 레벨 5까지만 공들여 키우면 이후엔 자기가 알아서 잘 큰다.
한 번 공격에 적 여러부대를 동시타격+절륜한 데미지로 게임 내에서 맹활약하며 매턴 MP 회복이 되고 기술도 좋은 걸 익혀서 2턴 당 한번 공격 가능한 포병 특성상 공격 불능 상태 때는 회복계 득의기나 방어력 버프 득의기인 '일치단결', 레벨 20이 되기도 전에 배우게 되는 아군 부대의 행동을 한번 더 하게 할 수 있는 스킬인 응원으로 아군을 지원할 수 있다. 쌀알 고로자라는 별명답게 정말 없으면 안 되는 캐릭터. 다행히 혼노지의 변 외에는 빠지는 전투도 없다.
2.6 결전 3
초반부터 사용가능한 장수로 초기에는 폭탄병들을 다룬다. 성격이 다소 소심하고 조심스러워서 마에다 토시이에에게 자주 까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