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스웨스트 항공 255편 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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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고 개요

1987년 8월 16일, 미시건 주를 출발해 캘리포니아에 도착할 예정이었던 노스웨스트항공 255편이 이륙직후 추락해 4살배기 여자아이만이 살아남은 사고. 156명(+지상에 있던 2명)이 이 사고로 사망했다.

2 사고 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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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이 비행기는 애리조나 공항으로 갈 예정이였다. 문제는 하필 그때 폭풍우가 겹치면서 디트로이트와 피닉스 전체를 뒤덮었고 일부는 디트로이트 공항쪽을 향해 가고 있었다. 이에 225편의 기장과 부기장은 폭풍우를 피하고자 허둥지둥 이륙준비를 하였고 이 과정에서 플랩, 슬랩(플랩 보조타) 점검 리스트를 유야무야 넘겨버리고 다음 리스트로 넘어가게 된다.

하여튼 출발은 했지만 속도가 이상하게 V1을 넘어갔는데도 허공에 떠있는 느낌이 들자않자 기장이 무리하게 엔진을 가동시켰고 그 결과 가로등을 쳐버리며 왼쪽 날개가 5.5m 가량 날아가버리고 실속(失速)이 발생, 동체가 옆으로 크게 기운 후 위아래가 뒤집힌채 바로 고속도로에 던져지면서 산산조각나고 이후 불타올랐다.

3 사고 결과

조사관들은 처음에는 기체의 결함이나 악천후를 사고의 원인으로 생각했으나 곧 상관이 없다는 결론을 지었다. 그러던 도중 조사관들은 잔해 속에서 찾아낸 기체 날개가 이륙에 필요한 플랩이 내려져 있지 않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후 곧 악천후로 인해 갑작스럽게 이륙할 활주로가 변경되며 혼란을 겪었던 조종사들이 체크 리스트를 제대로 확인해지 못했고 플랩을 내리지 못한 채 이륙한 것이 확인되었다.

원래라면 경고음이 울려야 했지만 조종사들은 경고음이 거슬려 꺼놓은 상태였고 충분히 고도를 높이지 못 한 여객기는 앞에 있던 가로등과 충돌하며 치명적인 손상으로 그대로 추락한 것이다. 이는 결국 이륙준비 경고음의 개선으로 이어졌으며, 이후 항공사들은 조종사의 체크 리스트 확인과정을 강화하게 된다.

4 사망자

여자아이 1명을 빼고 모두 사망했다. 그리고 피닉스 선즈의 식스맨, 니콜라스 바노스(보통 닉 바노스, Nick Vanos로 불리웠다. 사망 나이는 24세, 211cm)도 이 사고로 사망했다. 그는 1985년 NBA 드래프트 32순위로 지명되어 2번째 시즌을 마치자마자 약혼을 했다. 그리고 이 사고가 있기 전날, 약혼녀의 부모님을 뵙고 훈련을 위해 피닉스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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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교인 산타클라라 대학에서 개교 이래 첫 영구결번(32번)이었던 그는 이렇게 요절했다.

5 유일한 생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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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비행기에 탑승했던 네살배기의 여자아이인 세실리아 시찬(Cecelia Cichan)은 심각한 화상을 입는 등의 중상을 당했지만 무사히 살아남아 사고기의 유일한 생존자가 되었다. 이 사고로 부모와 6살 배기 오빠를 잃었지만 입양되어서 대학까지 졸업하여 현재 결혼을 한 상태라고 한다.#

두개골 골절과 쇄골·다리 골절상을 입었던 그녀는 병원에서 치료를 받은 직후 이모에게 입양됐다. "나중에 들었는데, 당시 언론 인터뷰가 쇄도했다고 하더라고요. 이모는 아이가 조용한 환경에서 평범하게 자라길 원하셨대요. 그래서 제가 어느 정도 나이가 들기 전까지 그 사건에 대해 한마디도 안 하신 거죠." 그녀가 치료받았던 병원엔 전 세계에서 보내준 3000개의 선물과 2만여 개의 카드로 가득했다고 한다. '미국의 고아'가 된 그녀를 돕기 위해 15만 달러의 기부금도 모였다. 하지만 이런 관심이 그녀를 마음으로 아프게 한다고 이모는 이러한 걸 감추게 하고 돈만은 그녀의 이름으로 된 통장에 넣어뒀다고 한다. 그녀는 이모는 나를 친딸처럼 잘 돌봐주셨어요...라며 고마움을 표시했다. 그리고 2006년 크로커라는 성을 가진 소방관과 결혼하면서 그녀도 세실리아 크로커가 되었다.

2013년 다큐멘터리 영화 Sole survivor에 나온 크로커는 자신과 똑같이 비행기사고를 당해 유일하게 살아남은 여러 생존자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대다수가 어린 나이거나 유일한 생존자로서 언론 관심을 지나치게 받아 마음에 큰 상처를 입었다든지 여러 아픔이 같았다고.

당시 사고로 사망한 사람들을 기리는 뜻에서 오른팔에 비행기 문신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