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1

1 시각 피질의 V1

후두엽 중 첫 번째로 시각 정보를 처리하는 영역. 망막의 시각 정보가 LGN을 거쳐 첫 번째로 피질 영역에서 처리된다 해서 '초기시각피질'이라고도 하고, Brodmann area 번호로는 17번이다.

2 순항 미사일 V1

제2차 세계대전의 나치 독일군 항공기
전투기전투기Bf109, Fw190, He 100, He 112, Ta152
重전투기Bf110, Do335, Me210/410
야간 전투기Bf 110G, Do 217/N, Ta 154, He219 우후
제트기 / 로켓추진 전투기Ba 349, He 162, He 280, Me163 코메트, Me262
폭격기경폭격기 / 급강하폭격기Hs123, Hs 129, Ju87, Do 17
中폭격기He 111, Ju 88, Ar 234
重폭격기Do 19, Fw 200, He 177, He 277, Ju 89, Ju 188/388, Ju 390
수송기Ju 52, Ju 290, Me323 기간트, SM. 79, 융커스 G.38, Bv 222
정찰기Fw189 우후, Fi 156 슈토르히, Hs 126, Bf 108
프로토타입 및 페이퍼 플랜Ta183, Ho229, 리피쉬 Li P.04-106, Me 264, Ta 400, Me P.1092, Me P.1101
기타미스텔, V1, V2, Ar 96, BV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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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Attachment/V1/V1.jpg

현대의 순항 미사일들의 아버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이 개발한 펄스제트 크루즈 미사일

V1이란 보복병기 1호(Vergeltungswaffe 1)의 약자로 히틀러가 선전선동 목적으로 붙인 이름이며 정식명칭은 피젤러(Fieseler) Fi 103. 현대 순항미사일의 효시로 펄스 제트 추진방식이며 폭탄(850kg)이 든 동체에 작은 날개엔진이 붙어있는 형태. 물론 현용 순항미사일에 비해 정밀도나 실질적인 효과는 훨씬 못미친다.

비밀병기 같은 이름에 일반의 인식도 그렇지만 사실 기술적으로는 그리 대단한 것도 없는 병기였다. 제작사인 피젤러사가 공군에 이 무기의 개발을 제안한 것은 독일 재무장 개시 직후인 1933년이었고 이미 상용화된 기술을 사용한 저렴한 병기임을 내세우고 있었다. 하지만 군이 이를 정식 채택한 것은 영국 본토 항공전 참패 한참 후인 42년 6월에 이르러서 였고 나치 당의 무관심으로 예산 배정에서 밀리는 바람에 정식 취역은 44년 6월, 노르망디 상륙작전 1주일 후에나 아루어졌다.

사실 V1에 적용된 기술의 원조는 미국이다. 1914년 오하이오주 데이턴에서 오빌 라이트(저 유명한 라이트 형제 중 동생)와 발명의 천재 찰스 케터링이 엘머스 페리가 만든 자이로스코프를 사용한 항법장치를 이용하여 세계 최초의 순항미사일을 만들었다. 케터링 버그에 대한 자세한 정보는 무인기의 UAV 항목 참조.

취역 당시 주 목표는 영국의 전략 거점과 주요 도시였다. 유도방식은 매우 단순하여 입력된 목적지를 향해 일직선으로 비행하다가(자세 제어는 자이로를 사용하지만, 관성항법 처럼 특정좌표로 날아간다는 개념은 아니다) 목표 로켓 앞부분에 달린 프로펠러를 이용한 거리 측정기로 일정거리까지 비행한 후 엔진구동을 중지시키고 방향타를 조작하여 목표물을 공격하도록 하는 방식이다.

이 간단한 공격방식에서 알 수 있듯 종말유도라는 개념은 사실상 없으며, 따라서 명중률이 매우 낮아 현대의 순항미사일과 같은 정밀 공격은 할 수 없었다. 그러나 빠른 속도로 저공 침투 후 기습적으로 자살 돌입하는 순항미사일의 특성은 조종사의 생명과 값비싼 비행기를 담보하지 않고도 싼값에 위력적인 폭탄을 지역표적에 투하할 수 있어서 대전기 전략공격개념 상으로는 충분히 위력적인 무기였다.[1]

특유의 엔진소리로 인해 Buzz Bomb(폭명탄)으로 불리기도 했으며 당시에는 순항미사일이라는 개념이 없었기 때문에 날으는 폭탄이라고 불렀다. V1이 런던상공에 도착하게 되면, 연료가 바닥나서 특유의 엔진소리가 멈추게 된다. 영국까지 날아간 V1에서 소리가 나지 않는나면 엔진구동이 중지되어 근처 혹은 자신을 향해 낙하한다는 의미이므로. 이게 어디에 떨어질지 아무도 모르는 상황. 이 때문에 런던 시민들중에 노이로제, 환청, 불면증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급증했으며 증세가 심해져서 전후에까지 정신병으로 시달린 사람들도 많았다. 또한 사상자도 24,165명에 달했다.

펄스 제트 엔진의 특성상 발사시 충분한 이륙 속도를 얻기 어렵다는 문제 때문에, 화약식 캐터펄트와 고정식의 긴 발사 레일의 도움을 받아서 이륙해야만 했다. 즉 전용의 발사시설이 필요 했으므로 운용에는 전투기 이상으로 불편한 면이 많았으나 워낙 값이 싸고 인명손실을 전혀 감수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에 충분히 유용성을 인정받았다. 또한 사람이 타지 않는다는 점은 그 어떤 기상상태에서도, 밤낮을 가리지 않고 비전투손실을 각오하면서 잔탄이 있는 한 계속 사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이 때문에 히틀러를 중심으로 한 독일 정부수뇌는 이 무기로 영국 국민의 사기에 치명타를 가함으로서 조기 종전을 달성할 수 있으리라고 기대했다.

하지만 기대했던 성과는 거두지 못했다. 당장 속도[2]가 상당히 느려서, V1의 접근이 경고되면 영국 공군이 전투기를 긴급출동시켜 격추시킬 수 있을 정도였다. V1의 발사 기지가 워낙 뻔하다는 문제도 있어서 기지는 수시로 공격을 받았고, 항로 역시 뻔했기 때문에 주요 진로에 대공포를 대기시키거나 아예 전투기 순찰을 돌려 요격해 버리는 일이 속출했다. 심지어 포도 쏘지 않고 V1에 대비해 개발한 방공기구를 띄우는 것만으로도 상당수가 추락했을 정도... 게다가 날개가 작고 자동조종 시스템도 케터링 버그처럼 자이로드 스코프로 구성된 단순한 것이었다. 이를 이용한 요격사례도 있다.

당시 요격을 나간 조종사 테리 스펜서가 슈퍼마린 스핏파이어를 이용하여 V-1의 빠른 속력을 따라잡기 위해 1만 피트 상공에서 급강하하여 격추시켰다가 V-1이 폭발하자 자신도 휘말리는 불행한 결과를 낳았다. 그후 그는 기총을 쏘기보단 V-1에 탑승한걸로 생각되는 조종사를 보기 위해 V-1의 옆으로 다가갔고 조종사가 보이지 않자 날개 아래 60cm 정도에 자신의 주 날개를 집어넣고 위로 올리자 자이로드 스코프가 오작동하여 추락해 버렸고, 영국 신문은 그를 V-1을 뒤집는 테리라 불렀다. 그후 템페스트 역시 같은 방법을 사용했다. 혹은 V-1 바로 근처에 전투기 날개를 갖다 대어서 전투기의 후류에 V-1이 휘말리도록 해서 V-1을 격추시키기도 하였다. 게다가 V-1은 특성상 발사대가 고정되어 있다보니, 전쟁 후반부터 연합군은 V-1 발사시설을 발견하는 족족 폭격해버려서 독일은 V-1의 발사자체도 쉽지 않게 되어버렸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영국군의 기만책에 낚인 독일 지휘부가 엉뚱한 곳으로 V-1 미사일을 보내는 경우도 허다했다. 그 덕분에 처음에는 그럭저럭 효과를 거두었지만 나중에는 별 효과를 거둘 수 없게 되었다.

Spitfire_Tipping_V-1_Flying_Bomb.jpg
타이푼은 아니지만 스핏파이어가 날개를 톡~ 치는 장면.

그러나, 그럼에도 월 평균 공격 효과는 1944년까지 끊임없이 영국에 계속 가해진 독일 공군의 기습 폭격보다 압도적으로 높아서, 일반 폭격이 1년간 거둔 효과를 단 2.5개월만에 달성하면서 인명손실은 제로, 연료소모는 1/8, 비용소모는 1/30에 불과했을 정도.[3]

화약식 캐터펄트와 고정식 발사 레일을 통해 발사돼야 했기에 비행기보다 출격이 번거로웠으나 그런 사소한 단점을 무시하고 잔탄이 허락하는 한 어떠한 기상조건에서도 밤낮을 가리지 않고, 손실을 감수하며 영국을 공격할 수 있는 병기라는 점이 V1의 의의다.

V1의 최종적인 유효착탄율은 25% 정도로, 영국 상대로만 총 10,000발 정도가 발사되어 2,500발이 명중했고, 나머지 2만 발 중 앤트워프 및 연합군의 유럽 상륙보급항을 타격하기 위해 발사된 5,000여 발을 제외하고는 모두 발사할 기회도 잡지 못한 채 종전으로 연합군에 의해 파기 또는 압수돼 버렸다.

이 명중률에 관해서 또 다른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는데, 사실상 독일이 V1을 투입할 시절에는 영국 상공에 폭격 피해를 조사하기 위해 정찰기를 띄울 여건이 안 되었다. 아니, 도리어 자국 상공에 연합군 폭격기들이 마구 드나들고 있었을 정도였으니. 때문에, 이런 조사를 주로 영국에 심어둔 스파이들을 통해 했는데 문제는 이 스파이들이 대다수 이중간첩으로 전환한 상태였다는 것이다. 007의 영국 때문에, 허위 명중이 보고되는 경우가 상당히 많았고,[4] 정상적으로 보고되었다 할 지라도 일부러 독일을 의심하지 않도록 속이기 위한 조치였다. 어찌되었든 가성비로 따지면 가장 훌륭한 테러 웨폰 중 하나였다.

런던 공습V-1
1. 독일이 지불한 비용
작전 횟수90,0008,025
폭장 톤수61,14914,600
연료 톤수71,7004,681
항공기 손실3,0750
인력 손실7,6900
2. 결과
파괴된 민가 수1,150,0001,127,000
사상자 수92,56622,892
사상자/폭장 비율1.61.6
3. 방어 비용
작전 횟수86,80044,770
항공기 손실1,260351
인력 손실2,233805

fi103r.jpg

나중에는 명중률을 높이기 위해 사람이 타고 조종하는 자폭병기로 만들려는 시도도 있었으나(Fieseler Fi 103R Reichenberg), 히틀러가 인도적이지 않다고 제지하여 훈련기 몇대만 만들고서는 취소되었다. 또 사람이 타면 추가해야 할 부품이 더 생겨서 제작비가 약 10배 오른다고 한다. 거기다 이 유인 폭탄 개념조차도 그냥 사람이 탄 채로 충돌해 버리는게 아니라, 목표 바로 앞에서 조종사가 탈출하도록 하는 시스템을 쓰려고 했다.[5]
Fi 103R은 유인이면 공중에서 발사해도 조종이 가능하다는 생각으로 Ar 234의 위에 올려두기가 발사하는 방식으로 이용하려했다.

이후 V-1을 Me 262Ar 234의 연료통으로 쓰기위해 탄두랑 기타 장비를 제거한 버전도 연구되었다. 하지만 비행기의 운항을 불안정하게 만드는 문제점으로 인해 취소.

전쟁 후반엔 F-1이라는 바리에이션이 생겨서 각종 부품이 목재로 되었고, 탄두를 줄여서 네덜란드에서도 런던을 공격할 수 있도록 했다. 그리고 제트추진 버전도 계획되었다.

한편 V-1에 대항하기 위하여 미 육군 항공대도 일종의 무인 조종 폭격기를 만들려 했다. 아프로디테 계획(Operation Aphrodite)이라는 명칭이 붙은 이 계획은 엄밀히 말하자면 V-1 뿐만 아니라 V-2나 당시 독일이 개발하려던 장거리화포인 V-3, 혹은 U보트 기지등 다양한 목표물을 공격하기 위한 계획이었다. 아프로디테 계획은 폭격기에 폭약을 가득채운 뒤, 조종사가 이 폭격기를 이륙시킨다. 그리고 폭격기가 일정 고도에 도달하면 항공기는 자동비행을 시작하며 조종사는 낙하산을 짊어지고 뛰어내린다.[6] 그러면 다른 동료기의 승무원이 폭격기 조종석에 달린 TV 카메라를 이용, 이 폭격기를 원격조종한다는 계획이 아프로디테였다. 그러나 당시의 빈약한 전자기기로 이렇게 복잡한 원격조종을 하기는 어려웠으며, 명중률은 형편 없었다. 심지어 비행도중 알 수 없는 원인에 의하여 폭격기 내부의 폭약이 폭발하기도 했는데 이 사고로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형인 조지프 케네디가 사망하기도 하였다.[7]

여담으로 영국은 V1의 정확한 동작원리가 파악되기 전까지 온갖 가설이 난무하였다.[8] 대표적인 가설을 꼽아보면 다음과 같다.

  • 조종사가 직접 조종하다가 영국 근해에서 탈출한다. 탈출한 조종사는 약속된 장소에서 기다리고 있던 유보트가 회수(독일의 유인화 계획과 유사).
  • 독일 폭격기가 영국근처까지 싣고와서 발사한다(공대지 미사일).[9]
  • 유보트가 영국 근해에서 부상하여 발사한다(현대의 미사일 발사방식중 하나).

한 때 이 가설들중 마지막과 비슷한 것이 연구되기는 했다. 처음에는 어느 U보트 함장(U-511의 첫번째 함장이던 Friedrich Steinhoff)이 U보트로 로켓을 쏴서 지상공격하면 어떨까? 라고 페네뮌데 로켓연구소에 있는 형(Ernst Steinhoff)에게 제안해서 네벨베르퍼 로켓포를 포 대신 장착해서 쏴보는 것까지 성공했는데 효율성 문제 때문에 배치는 실패했다. 하지만 결전병기 좋아하시던 히틀러가 자그만치 V2를 날려보내자!(잠수함 자체에서 날리는 것은 아니고 잠수함으로 컨테이너를 끌고가서 그 컨테이너 안에서 날리는 방식) 해서 연구하다가 전쟁 끝(출처).[10]

V-1을 비롯한 보복병기군은 전국을 바꿀만한 효과는 없었지만 그래도 연합국에게는 엄청난 골칫거리였고 때문에 이를 무력화하기 위해 갖은 노력을 기울였으며 종전 직후 연합군이 독일 과학/기술자를 대상으로 광적인 인간사냥을 실행한 근거가 되기도 했다. 또한 원자폭탄이 등장한 이후에는 핵무기 운반 수단으로도 각광을 받아 미국, 영국, 그리고 소련에서 복제가 시도되고 일부는 실전 운용되기도 했다.[11]

헬싱에선 최후의 대대 소속 대형 비행선 세 척이 런던 한가운데에서 대규모로 발사해 시민들을 학살하는 장면으로 나오기도 하였다. V1 공습으로 일어난 화염으로 하켄크로이츠를 그리는 기술(...)을 보여주기도. 이후 헬싱 본부를 향해 24기를 발사했으나 30mm 기관포인 하코넨2를 장비한 세라스 빅토리아에게 전기 격추당한다. OVA판에선 발사된 V1을 스피드감 있게 표현했다.

하야미 라센진의 단편 중 하나가 V1을 다룬다. 엄밀히 말하면, 1949년 가상의 영국 식민지를 무대로, 영국군이 쏴대는 미국제 V1 카피판을 독립군이 주워다 전투기를 만든다는 것. 파일럿은 대조국전쟁 참전 경험이 있는 소련 여군. 이 급조 전투기의 외관은 V1에 조종석 달아놓은 수준에 불과하고, 무장은 아프리카 전선에서 남은 기관총이다. 랜딩기어도 없어서 스키드로 착륙.


관련병기 : V2 V3

3 항공기의 V1

이륙결심속도.
돌아올 수 없는 속도(Speed of NO return)

비행기의 중량과 활주로의 길이로 계산하며, 이 속도를 넘을 경우 아무리 세게 제동을 걸어도 활주로를 넘어가게 된다. 이 속도가 넘으면 이륙했을 경우 예상되는 피해가 활주로 오버런한 경우보다 클 것이 명백하지 않는 한[12] 활주 도중 항공기에 문제가 발견되었더라도[13] 반드시 이륙해야 한다.

4 가면라이더 아기토의 강화복

Kra-v1.jpg
로보캅? 아냐 이건 갸반이다.

V1시스템 / V1システム

신장185cm
체중130kg
펀치력1톤
킥력4톤
주력7.5초에 100m 주파
점프력수직 15m
최대시력약 8km
최대청력약 10km 반경
장비V1샷

가면라이더 아기토에 등장하는 대 언노운 전용 강화복. 제네레이션 시리즈와는 별개의 강화복이다. 무장은 V1샷 하나가 유일. 장착자는 호죠 토오루. 정식명칭은 "VICTORY-1". "V-1시스템" 이라고 표기하기도 한다.

G3시스템 에 대항하기 위해서 제작된 메탈 슈츠로, 호죠가 개발의 지휘를 맡고, 로봇공학의 권위자인 타카무라 코스케 교수를 시작으로 인간공학, 에너지공학의 권위자나 정신과 의사도 참가해 완성시켰다. G3유닛를 이긴 적이 있는 등, G3시스템보다 뒤떨어지지 않는 성능을 지녔다고 하며, 실제로 호죠가 착용해 언노운을 격퇴한 적도 있다. 하지만, G3-X와의 시험전투 중, 폭주한 G3-X에 의해서 완전히 파괴되어서 프로젝트 자체도 중지돼버렸다.

일부 서적·잡지에서는 "가면라이더 V1" 이라고 나오지만 이 호칭이 일반적이다고는 말하기는 어렵다.

V1의 디자인은 옛날에 일본에서 방영했던 "메탈히어로 시리즈"의 소품을 유용해서 제작되었다.

머리 -「특구지령 솔브레인」의 솔브레이버
흉부 -「기동형사 지반」의 지반(과 G3-X의 흉부 아머를 조합)
다리 -「특수 엑시드래프트
무기(VI샷) -「블루 스왓트」의 BW-01 디크테이타

  1. V1의 생산단가는 단돈 3,500마르크로, Bf-109 전투기 단가(42,900마르크)의 1/12, 보통 폭격기와 비교하면 1/30 수준에 불과했다. 재료 또한 어차피 사람이 타지 않으므로 상대적으로 저질품을 사용해도 상관없었다. 독일이 1944~45년의 난국 속에서 항공기를 대폭 증산함과 동시에 V1도 30,000발을 병행 생산할 수 있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어마어마한 생산성이다. 또한 폭격기로 폭탄 1톤을 도시에 대충이라도 떨어뜨리기 위해서 희생시켜야 할 항공기의 숫자를 생각하면, V1이야말로 당시로서는 가장 싼 값에 가장 많은 폭발물을 도시에 투하할 수 있는 수단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그래도 정밀타격이 불가능하다는 점 때문에 실질적인 피해를 유발하기에는 아무래도 역부족이었으며, 결국 핵분열폭탄 및 열핵폭탄이 등장하기 전까지 군사적 가치는 사실상 전무했다. 최소한의 직접조준 과정이 배제된 지역폭격은 전략폭격이 갖는 최저의 기능인 민간인에 대한 공포 유발 외에는 1916년의 최초 전략폭격 때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변함이 없다.
  2. 최대속도 640km/h. 당시엔 이미 프로펠러 전투기들도 그 정도 속도를 낼 수 있었다. 만약 V1이 1939년에 실용화에 성공했다면 다음해의 영국전투는 영국측이 상당히 고전했을 것이다. 1940년의 시점에서 단발 전투기는 아직 600km/h를 초월하지 못했으니.
  3. 2차 대전중의 V-1의 효과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값싼 가격과 조종사 손실 없이 영국을 공격할 수 있다는 점에서는 높이 살만 하지만, 영국이 V-1에 의해 입은 실질적인 피해는 독일이 쏟아 부은 돈에 비해 훨씬 적었기 때문에 '비밀무기 좋아하는 히틀러의 장난감'에 불과했다는 지적도 있다.
  4. 이렇게 되면 다음 번 발사할 때 입력하는 수치가 삽질을 하게 된다. 포병 입장에서 관측조가 허위 보고를 하는 꼴...
  5. 문제는 V1의 구조상 탈출하다가 엔진에 빨려들어가기 딱좋았다는거..
  6. 당시 기술로는 원격조종으로 항공기를 이륙까지 시키는 것은 어려웠다. 그리고 조종사들은 당연히 충돌하기 한참 전에 뛰어내린다. 고로, 자폭 공격은 아니다.
  7. 당시 조지프 케네디는 미 육군이 아닌, 미 해군 소속이었으며 그가 조종하던 항공기 역시 미 육군 항공대 소속의 폭격기가 아닌 미 해군소속의 PB4Y였다. 어차피 이 폭격기는 B-24의 해상 초계기형이긴 했지만..
  8. V1의 잔해를 보고 이것이 어떤 물건인지 알아차린 사람은 세계최초의 순항 미사일인 케터링 버그 프로젝트 참여자중 한사람인 미국인 햅 아놀드였는데 첫번째 V1이 운좋게 자신이 하숙하던 집 2.5km 밖에 떨어젔고 그는 현장으로 달려가 잔해들을 보았다. 당연하게 그는 이것이 어떤 물건인지 알아차렸고 영국군들이 아래의 요상한 가설을 세우며 삽질하는 사이 V1의 파편을 미국으로 가져가 3주 만에 역설계를 해버린다. 이 V1 카피인 JB-2 룬(Loon)은 미군에 정식 채용되어 75,000발을 생산하여 "몰락 작전"에 사용될 계획이었으나 이른 종전으로 인해 무산된다.
  9. 근데 실제로 He 111에 장비하고 북해상에서 공중 발사를 했다는 기록 영상이 있다.
  10. 현대의 SLBM이 잠수함이 수중에서 발사하는것에 비하면 초라하지만 나름대로 획기적인 아이디어라고 볼 수 있다.
  11. 물론 요격당하는 문제에 대한 대책은 없었어서, 결국 1950년대 중반에는 전략핵공격 수단에서 배제되고 이미 배치됐던 기존 카피판도 완전 퇴역하는 굴욕을 겪었다.
  12. 예를 들어 V1을 넘는 순간 1번 엔진이 폭발하면서 한쪽 날개의 1/3이 날아가거나 주요 유압계통이 순식간에 손실되거나 이런식으로 이륙 직후 자세를 잃고 바로 추락할 가능성이 높다면 오버런을 선택해야할 수도 있다.
  13. 예를 들어 쌍발기인데 엔진 한기가 정지하는 등의 중대한 사항이라도. 참고로 쌍발기는 엔진 하나만 작동하더라도 상승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