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 헌종 시절에 다산 정약용의 차남 정학유(丁學游, 1786∼1855)가 지은 가사. 작가에 대한 논란이 잠깐 동안 있었는데, 명백하기 밝혀지기 전에는 고상안이라는 광해군 시절의 유학자가 쓴 것으로 추정하고 있었다.
전체 14단락으로 되어 있다. 12달의 12단락 전후에 서사단락과 결사단락이 부가된 것이다. 2음보 1구로 계산하여 서사 34구, 정월령 78구, 2월령 54구, 3월령 100구, 4월령 68구, 5월령 94구, 6월령 100구이다. 다시 7월령 72구, 8월령 76구, 9월령 70구, 10월령 146구, 11월령 52구, 12월령 40구, 결사 48구 등으로 전체 1,032구이다.
말 그대로 열두 달 24절기동안, '농사'와 관련된 지침을 읊고 있는 가사이다. 여기에서의 열두 달은 음력을 기준으로 하므로, 실제 농사는 2-3월부터 시작한다고 보면 된다.
농촌 생활과 관련된 구체적 어휘가 풍부하게 나타난다는 점과, 세시 풍속을 기록해 놓은 월령체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크고 짜임새가 있다는 점[1]에서 문학사적으로만 아니라 역사학적으로도 높은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평가받는다.
그래도 작가가 유학자이다 보니 '아랫층'인 백성들에게 지시적으로 행하라고 하는 구절이 많아(~하소, ~하라) 이것이 한계로 지적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