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신장웨이우얼 자치구 타클라마칸 사막에서 발견된 청동기시대 신장지역의 여성 미라.
신장 우루무치 박물관 2층 고시실에 다른 미라들과 함께 있다.
1980년 4월 1일 중국 위구르사회과학원 소속 무순잉(穆舜英) 등이바인궈렁 몽골 자치주 동부지방이며 우루무치 시 남동쪽, 러우란 고성의 북쪽에 있는 철판하변 철판하묘지 / 태양묘[1]의 사막에서 발견된 여성 미라이다.
깎아내린 절벽 중 인도에 가까운 지점에서 발견했다. 시신은 가죽과 포로 감싸진 상태이며 스카프로 된 모자에는 깃털이 꽂혀 있었고, 발에는 가죽신발을 신고 있었다.
붉은 머리카락에 푸른 눈동자이며, 봉숭아물을 들인 손톱도 완벽하게 보존되었다. 키는 151~152cm로 생전에는 155cm 정도로 추정되며 혈액형은 O형이다. 40~48세 사이에 사망했다. 부계쪽으로는 시베리아에 남쪽에 있던 사람들을 거쳐서 북유럽, 스칸디나비아반도, 켈트족과 같은 계열이었다. 그러나 켈트인은 아니다. 시신은 열 때문에 검게 변했다. 발견 초기보다 점점 검게 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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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란미녀를 주제로 한 KIROREN GUZILI 란 노래 도 있다.
일본의 소설가 이노우에 야스시가 이 누란의 미녀를 주제로 《누란》이라는 소설을 쓰기도 했다. 줄거리는 흉노와 한(漢) 사이에 끼어 있던 실크로드 왕국 누란이 겪은 비극에 대한 것으로, 누란 왕국의 왕이 죽은 뒤 흉노에 인질로 갔던 첫째 왕자가 누란의 왕이 되어 친흉노 정책을 펴지만 이는 한의 심기를 거스르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고 결국 한은 자객을 보내 새로 즉위한 누란 왕을 죽여버리고 자신들이 인질로 데리고 있던 옛 누란 왕의 둘째 왕자(즉 살해당한 누란 왕의 동생)를 새로운 누란의 왕으로 앉혔으며, 누란이 흉노 땅과 가까이 있다는 이유로 아예 선선이라는 땅으로 나라 자체를 전부 옮기라는 명령을 내린다. 누란 왕국이 선선 땅으로 옮겨가기 전날에 고향을 떠나고 싶지 않았던 전왕의 왕비는 자신을 누란의 호수가 내려다 보이는 언덕에 묻어달라는 유언을 남기고 자결했고, 유언대로 호수가 보이는 언덕 위에 묻어준 뒤 누란 사람들은 모두 고향 땅을 떠났는데, 누란 사람들이 떠난 뒤에 차츰 그들의 기억 속에서 옛 누란 땅이 잊혀지면서(기억하는 사람들은 모두 늙어 죽고, 새로 태어난 사람들은 애초에 기억이 없는) 호수는 차츰 말라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고 누란 왕국의 옛 땅은 잊혀졌다. 그리고 천 년이 지난 뒤에 이곳을 답사한 탐험가 헤딘에 의해 누란 왕국의 옛 터와 함께 이 땅에 묻힌 왕비의 미이라도 함께 발견된다.
태양묘와 다른 지역인 소하묘지에서 발견된 소하공주와 혼동되기도 한다.- ↑ 철판하 묘지인데 태양묘로 많이 알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