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colas de Ovando
(1451년경? ~ 1518)
스페인의 콩키스타도르. 히스파니올라 섬의 세번째 총독에 임명되어 학살을 벌인 인물로 에르난 코르테스의 먼 친척.
카스티야의 카스티야라비에하 지방의 바야돌리드의 귀족 가문에 출생하였으며 알칸타라 기사단의 라레스 지부장으로써 조직 개편에 참여한 공적을 인정받아 1501년에 이사벨 1세의 임명으로 1501년 9월 3일에 히스파니올라의 총독에 임명되어 1502년 2월 13일에 30척의 선단으로 약 2500명의 선원들을 이끌고 히스파니올라에 파견되었으며 에스파냐어를 사용할 줄 아는 아프리카 출신의 노예들을 신대륙으로 받아들였다.
인디언들을 길들이기 위해 히스파니올라의 타이노의 5개 부족 중에서 하라구아 부족의 유명한 추장인 까오나보의 미망인인 아나까오나가 존경을 받고 있어서 그들이 만찬을 벌이자 이들을 포위하고 집에 불을 지른 후 아나까오나를 포함한 84명의 인디언들을 학살했으며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일어나는 타이노 부족들의 반란을 진압하였다.
또한 토착민의 가톨릭 개종을 명분으로 하여 강제로 노동력을 제공하게 하는 엥코미엔다 제도를 최초로 시행하는 등 강압적이고 잔혹한 통치를 벌여 1492년에 50만 명이던 원주민을 1507년에 6만명으로 감소하게 만들었다.
1502년에 태풍 때문에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누에바 이사벨라에 입항시켜달라는 요청을 하는 것을 국왕의 명으로 콜럼버스는 입항이 금지된 것도 있으며 또한 자신의 경쟁자로 생각했기 때문에 이를 거절하는 대신 자메이카에 1년 동안 머무르는 것을 허락하지만 이를 도와주지 않았으며 그 태풍으로 도시인 누에바 이사벨라가 파괴되자 강 건너편에 도시인 산토도밍고를 건설한다.
1509년에 국왕인 페르난도 2세의 부름으로 에스파냐에 소환되어 총독 자리에 물러났으며 1518년에 마드리드에서 사망했다.
대항해시대 3에서도 역사를 반영하여 1501년부터 산토도밍고의 스폰서(총독)로 등장한다. 권력 D급에 선호분야도 생물, 미신쪽에 치중되어있고, 권력이 약하니 남아메리카쪽 계약도 대부분은 할 수 없으나, 1515년 하바나에 디에고 벨라스케스 데 쿠엘라르가 나타나기 전까진 유일한 신대륙의 스폰서기 때문에 없는 것보단 훨씬 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