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초당

茶山草堂
전라남도 강진군 도암면 만덕리에 위치한 문화재. 사적 107호.

현판은 추사 김정희가 쓴 글씨로 알려져 있다.

다산 정약용이 1801년 신유박해로 인해 강진으로 귀양을 와서 생활하던 집이다. 이곳에서 정약용은 유배가 끝날 때까지 생활하며 학문에 몰두한 끝에 목민심서를 비롯한 숱한 저서들을 남겼다.

정약용이 처음부터 이곳에서 18년 간의 강진의 유배 생활을 한 것은 아니다. 처음엔 강진 읍내의 주막인 동문매반가(東門賣飯家)에서 주모의 호의로 4년간 생활하였는데 정약용은 이 주막에 사의재(四宜齋)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다. 야사로 이 주모의 딸이 정약용을 흠모한 끝에 정약용과 '통'하여 자식을 낳았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 사의재는 2007년에 복원해서 문화관광 해설을 제공하는 장소로 쓰이고 있다.이후 고성사의 보은산방, 학래 이청(정약용의 제자)의 집 등을 전전하다가 윤규로(尹奎魯)가 소유한 초가에서 기거하게 되었다. 이 초가가 바로 다산초당이다.

유배에서 풀려 정약용이 고향으로 돌아간 이후, 돌보는 사람이 없어서 폐허로 방치되어 있다가, 1958년 강진 지역민들의 주도로 집을 고치고 그 해에 사적 제107호로 지정받았다.

이름의 초당(草堂)에서 알 수 있듯이 본래는 작은 초가집이었으나, 복원 공사를 하는 과정에서 현대의 정면 5칸, 측면 2칸의 기와집으로 중건하였다. 강진군에서는 다시 이를 초가집으로 복원하겠다는 계획을 세웠으나 2014년까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상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