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 David Christopher Justice* |
생년월일 | 1966년 4월 14일 |
국적 | 미국 |
출신지 | 오하이오주 신시내티 |
포지션 | 외야수 |
투타 | 좌투좌타 |
프로입단 | 1985년 드래프트 4라운드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지명 |
소속팀 | 애틀랜타 브레이브스(1989~1996) 클리블랜드 인디언스(1997~2000) 뉴욕 양키스(2000~2001) 오클랜드 애슬레틱스(2002) |
1990년 메이저리그 내셔널리그 신인왕 | |||||
제롬 월튼 (시카고 컵스) | → | 데이비드 저스티스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 → | 제프 배그웰 (휴스턴 애스트로스) |
메이저리그에서 활동한 외야수.
1 커리어
1989년 데뷔한 저스티스는 데일 머피의 존재로 인해 처음에는 1루수로 많은 출장시간을 가졌다. 하지만 1990년 시즌 중 데일 머피가 필라델피아 필리스로 트레이드된 뒤 많은 출장시간을 갖게 되며 브레이브스의 주전 우익수 자리를 꿰찼다. 이후 저스티스는 주전 우익수로서 160홈런, 522타점, 그리고 .873 OPS를 기록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브레이브스의 1995년 월드 시리즈 우승에 있어 일등공신이 되었던 점인데, 평소부터 반항아 기질을 타고나서 자기 팀 팬들을 상대로 도발을 하기도 했을 정도[1]였지만 그 도발을 한 뒤 열린 그 경기(월드시리즈 6차전)에서 결승 홈런을 쳐내며 팬들로부터 열광적인 환호를 받고 1-0으로 이기며 우승을 이끌었다.(다만 WS MVP는 톰 글래빈의 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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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스티스의 솔로 홈런
이후 그는 꽃미남 마퀴스 그리솜과 함께 클리블랜드 인디언스로 트레이드[2]되어 좋은 선구안을 앞세워 준수한 활약을 펼치고,
2000년 뉴욕 양키스로 트레이드된다.[3] 그리고 2000년 ALCS MVP를 먹고 월드시리즈 우승에 공헌하며 두번째 우승반지를 차지한다.
하지만 양키스는 이듬해 노쇠화 기미를 보인 저스티스를 안고 갈 생각이 없었고 뉴욕 메츠의 로빈 벤추라와 트레이드시킨다.
그리고 머니볼을 외치던 오클랜드 애슬레틱스가 거액의 연봉보조를 받아 그를 다시 데려가서 1년간 좋은 선구안을 바탕으로 나이를 감안하면 준수한 활약을 펼친 뒤 은퇴하였다.
2 플레이 스타일
저스티스는 머니볼에서 좋은 선구안을 가진 대표적인 선수로 언급될 정도로 선구안이 좋았던 타자였다. 통산 출루율이 타율보다 1할 가까이 높을 뿐더러 통산 14시즌 동안 볼넷/삼진 비율이 903/999로 100삼진을 당한 시즌이 한번도 없을 정도. 장타력 또한 갖추고 있어 통산 장타율이 .500이다. 요컨대 타율만으로 판단할 수 없는 더 좋은 가치를 지닌 OPS형 타자였다.
3 이모저모
사생활 면에서는 영 좋지 않은데, 오스카 상을 수상한 여배우 할리 베리의 남편이었지만 아내를 폭행하기도 했으며 결국 이혼 도장을 찍었다(...)
또한 2007년 미첼 리포트에서 약물 복용자로 드러나며 그의 위신은 땅에 떨어지고 말았다. 결국 2008년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 투표에서도 광탈. 애초에 누적스탯이 워낙 딸려서 힘들긴 했지만...
은퇴 이후엔 ESPN과 YES 네트워크의 해설가로 활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