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역대 덴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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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리카와 덴노 | 도바 덴노 | 스토쿠 덴노 |
일본의 제 74대 덴노. 이름은 무네히토.
태어난 지 4개월이 지난 1103년에 친왕이 되었고, 같은 해 8월에 황태자로 책봉되었다. 1107년, 아버지 호리카와 덴노가 죽자 5세의 나이로 덴노가 되었다. 도바 천황이 어린 나이에 즉위하자 모든 정무는 할아버지인 시라카와 덴노가 관여했고 실제로 권력을 장악했다. 그러던 중 1117년 도바 덴노의 인생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지는데, 바로 권대납언 후지와라노 긴자네의 딸 후지와라노 쇼시를 중궁으로 맞이한 일이다. 쇼시는 중궁이 되기 전에 이미 시라카와 덴노와 관계를 맺고 있었는데, 고사담의 기록에 따르면 아키히토 친왕(스토쿠 덴노)의 실제 아버지는 도바 덴노가 아니라 시라카와 덴노라고 한다.
1123년 정월에 도바 덴노는 시라카와 덴노의 뜻에 따라 아키히토 친왕에게 덴노의 자리를 양위하고 상황이 되었다. 그리고 1129년 할아버지 시라카와 덴노가 죽자 도바 상황 역시 할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상황이 직접 국정을 다스리는 정치 형태인 원정(院政)을 시작했다. 도바 상황이 원정을 시작하고 권세를 갖게 되자 지금까지 섭정이나 관백에 임명될 수 있었던 섭관 가문에게 기진했던 토지가 원에 상납되어 원의 경제적 기반은 섭관가를 훨씬 능가하게 되었다.
도바 상황은 시라카와 상황 통치 시기에 실각했던 후지와라노 타다자네를 다시 불러들였다. 그 결과 그의 아들인 타다미치와 요리나가 형제도 정치 무대에서 활약하게 되었다. 여기에 측근 후지와라노 이에나리를 중용하고, 한편으로 다이라노 기요모리와 타다모리 부자를 우대하는 등 시라카와 덴노 때보다 훨씬 균형 있게 인재를 등용했다. 또한 시라카와 덴노의 총애를 받았던 후지와라노 쇼시를 멀리하고, 권중납언 후지와라노 나가자네의 딸 후지와라노 나리코를 천황의 후궁인 여어(女御)로 삼았다. 이후 나리코가 나리히토 친왕[1]를 낳자 도바 상황은 즉시 스토쿠 덴노에게 압력을 가하여 나리히토 친왕에게 덴노의 자리를 넘겨주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