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원수

한문:都元帥
고려 후기-조선 시대의 임시 무관 관직. 품계는 정 2품이다.
이 직책의 기원은 고려 후기에 왜구 등의 외침을 막기 위해 각 지역에 원수를 파견하고, 그 원수들을 통합 지휘하는 도원수 제도이며, 이 것이 조선 시대에 계승된 것이다.

조선군 육군은 크게 수도 한양 및 그 주위를 지키는 중앙군과 각 지역을 방어하는 지방군으로 나뉘었는데, 이 지방군은 하나로 통합되지 않고 각 지역의 관찰사(감사) 및 병마절도사(일부 병마절도사 직은 관찰사가 겸임)가 개별적으로 지휘하였다. 이는 조선시대에는 문치 우위와 조정의 중앙 통제를 중요시하였기 때문에 특정 개인 및 집단이 조선군의 군권 전체를 장악하는 일을 매우 경계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특정 지역의 국방을 특별히 강화하거나 외적의 침입으로 인해 대규모로 군을 동원할 경우, 각 지방군 및 병마절도사를 일괄적으로 지휘하는 지휘 체계가 필요할 때가 있는데, 이 때 이 임시로 도원수를 임명해서 그 지휘를 맡게 된다.
임시 관직이므로 도원수의 지휘 범위는 그 때마다 달라진다. 가령 을묘왜변 당시 도원수인 이준경은 전라도 지역의 지방군을 통합 지휘하였다. 조선시대에 전국 팔도의 지방군 전체를 도원수가 지휘한 사례는 그만큼 큰 전쟁이었던 임진왜란 시기 뿐이다. 이 때의 도원수는 김명원(1592~1593년)과 권율(1593~1598년)이다.

현대 한국군과 비교하면 육군참모총장이 그나마 비슷하지만, 상설직이며 육군 전체를 항상 지휘하는 육군참모총장과는 달리 도원수는 임시직이며 지휘 범위도 유동적이라는 것이 다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