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utsche Arbeitsfront , 약칭 DAF
1 개요
나치 독일 시대에 설립된 독일의 노동자들을 통합하는 단체. 일종의 어용노조라고 할 수 있으나, 노동조합이 아니기 때문에 그 비슷한 것이다.
1933년 5월 2일, 나치당이 권력을 장악하자 독일 사회민주당과 그 기반이 되던 노동조합은 모두 강제해산당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기존의 노동조합이 파괴되면 노동자들은 더욱 과격한 반체제 활동에 돌입할 우려가 있었으므로, 이를 무마하기 위해서 노동조합의 자산과 인력을 한 군데 묶어서 만들어진 것이 독일노동전선이다.
다만 이 단체는 노동조합의 자산은 계승했으나 채무는 계승하지 않았다.완전 약탈이다.
나치당 내의 좌파들은 독일노동전선에 모여들어, 명목상 노동조합은 아니지만 노동조합과 매우 비슷한 것이 되었다.
같은 추축국인 일본 제국도 이 단체를 본떠서 대일본산업보국회(大日本産業報國會)를 조직했다.
2 위치
독일의 노사관계는 '국민노동질서법'(1934년 1월 20일)에 규정되어 있었는데, DAF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되지 않고 있었다. 독일노동전선을 담당하던 나치당원 로베르트 라이는 아돌프 히틀러에게 제의하여 10월 24일 "DAF의 본질과 목적에 대한 총통 명령"을 받아낸다.
이 명령에 따르면 DAF는 노사 관계에 있어서 독점적인 중재자이자 조정자로서 되어 있었으나, 국민노동질서법에서는 이는 '노동관리관'이 맡도록 되어 있었다. 이 황당한 사태는 로베르트 라이가 애초에 관계 부처 장관과의 논의 없이 아돌프 히틀러와의 독대로 얻어낸 결과이기 때문. 히틀러의 명령과 나치당의 법률이 완전히 충돌하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게다가 히틀러가 명령을 철회하지도 않았다.
DAF는 총통 명령을 근거로, 관료계와 경제계는 국민노동질서법을 근거로 조정권을 주장했다. 1935년 3월 까지 이 대립이 계속되었다.
독재 정치의 비효율성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독일노동전선은 기본적으로 '나치당의 한 부서'로 되어 있었다. 나치당의 법적 지위가 모호했던 탓에 노동전선의 지위도 모호했다.
3 조직
엄청 큰 조직이었다. 모든 노동조합을 통합했기 때문에 중앙 사무국 직원만 1만 7천명, 위원은 150만명, 전임 위원은 3~4만명에 달햇다.
독일의 상업, 공업 모든 분야에서 DAF의 일원이 되지 않으면 일을 얻는 것이 어려웠으므로, 회원수는 계속 증가하여 1935년에는 1500만명, 1938년에는 2000만명을 넘었다. 사실상 노동자 인구의 90%가 가입하고 있었다. 회원은 수익에 따라 20개의 그룹으로 나누어져서 각각 일정액의 회비를 냈다.
회비와 기타 이득을 합친 DAF의 수익은 4억 5천만 마르크에 도달해서, 본체(?)인 나치당의 재정보다 훨씬 거대해졌다.
독일노동전선은 기업을 불하받아 독일 노동 금고 등 10여개 분야에 이르는 거대 콘체른을 만들었고 20만 명이 근로했다.
산하 단체로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 Kraft durch Freude(기쁨을 통한 힘), KdF - 나치당의 충성도를 높히기 위해서, 노동자들에게 스포츠, 여행, 축제 등의 여가 활동을 제공하는 것을 목적으로 해서 각종 레저 시설[1]을 보유하고 보조금을 지급한 조직이다. 여담으로 전쟁 직전에 일반 대중도 차를 살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5마르크 씩 모아서 적립금에 따라 자동차를 불하해주는 특별 저축 제도를 만들어서 33만 명이 여기에 가입했는데, 전쟁이 터져서 자동차가 출고되지 않았다. 그런데 전쟁이 끝나고 폭스바겐에서는 적립금을 지불한 사람들에게 응해서 자동차를 보내주었다고 한다. 그게 바로...
- Schönheit der Arbeit(노동의 아름다움), SdA - 공장의 쇄신, 노동자를 위한 식당, 작업장을 청결하게 유지하는 작업 등을 실행했다.
- Reichsarbeitsdienst(국가노동봉사단), RAD - 준군사조직 겸 실업 대책 조직. 16세에서 25세까지의 남녀를 징집하여 각종 작업에 동원했다.
- ↑ 가장 유명한 게 바로 프로라(Prora) 문명하신 분들이라면 다들 알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