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pallo Treaty (영어)
Vertrag von Rapallo (독일어)
Рапалльский договор (러시아어)
1 개요
1922년 독일 바이마르 공화국과 소비에트 연방 사이에서 체결된 조약. 당시 전범국과 공산국이라는 점 때문에 국제사회에서 왕따였던 양국이 외교적 활로를 모색하고자 체결한 조약으로, 이를 통해 독일과 러시아는 1914년 1차대전 발발 이후 근 10년 만에 처음으로 외교관계를 정상화하게 된다.
2 과정
개요 항목에도 등장하듯이 1차대전의 종결 이후 독일과 러시아는 모두 외교적으로 왕따상태였다. 독일은 전범국이라는 이미지와 더불어서 베르사유 조약으로 인한 막대한 보상금과 영토 상실 및 군비 축소를 감당해야 했으며, 공산국이었던 소련 역시 모든 국가들로부터 기피받는 대상이었다.[1]
이런 상황에서 프랑스는 신생 소련에게 '러시아 제국 시절 빌려줬던 차관도 내놔'라면서 압박을 가했고 이에 소련은 비밀리에 독일과 외교적 교섭을 진행한다. 독일 역시 소련의 제안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프랑스는 소련이 채무 문제에서 배째라 모드로 나오자 '그러면 니네 배상금으로 러시아의 채무 문제를 해결하지 뭐'하면서 독일을 협박(...)했던데다가 어쨌든 외교적으로 고립무원인 상황에서 상대가 누구이던 간에 우호적인 관계를 지닌 국가를 하나쯤은 만들 필요가 절실했던 데다가 이 시기 막 경제발전계획을 추진중이었던 소련의 막대한 시장은 패전 이후 엉망진창이었던 독일의 산업계를 다시 부흥시킬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의 장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재군비를 꿈꾸고 있던 한스 폰 젝트 휘하의 독일 군부 역시 정계가 소련과의 외교 교섭을 진행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찬성했다. 소련에서 각종 신무기를 비밀리에 테스트하면서 재무장을 진행할 수도 있는데다가, 독일과 소련이 제휴해서 과거 독일과 러시아가 점령했던 지역에서 새로 독립한 폴란드를 군사적으로 찍어누를수도 있다는 판단이 들었기 때문. 적의 적은 나의 친구 [2][3]
- ↑ 게다가 브레스트-리토프스크 조약을 통해 독일이 러시아에게서 뜯어낸 영토는 독일의 패배 이후 반환된 것이 아니라 폴란드 제2공화국을 비롯한 중부 유럽의 신생 국가들에게 돌아갔기 때문에 소련 역시 베르사유 체제에 대한 불만이 강했다.
- ↑ 다만 군부의 찬성이 정부의 외교정책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는지를 놓고서는 학자들마다 의견이 엇갈리는 편이다. 현재의 정설은 '영향이 있기는 했지만 그리 크지는 않았다' 정도.
- ↑ 여담이지만 라팔로 조약을 통해 독일과 소련은 양측의 젊은 장교들을 교환학생 형식으로 파견했었는데 그 리스트가 흠좀무하다. 만슈타인, 주코프, 모델 등 독소전쟁 시기 굵직굵직한 활약을 한 각국의 장성들이 대거 포진되어있다.
- ↑ 독일의 경우 요제프 비르트, 소련의 경우 레닌.
- ↑ 브레스트-리토프스크 조약에 따른 배상권을 말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