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 Ronnie Moran |
생년월일 | 1934년 2월 28일 |
국적 | 잉글랜드 |
출신지 | 머지사이드 주 크로스비 |
포지션 | 레프트 백 |
유소년 경력 | 리버풀 FC (1949~1952) |
소속팀 | 리버풀 FC (1952~1968) |
지도자 경력 | 리버풀 FC (1966~1998, 코치) 리버풀 FC (1991/1992, 감독대행) |
리버풀 FC 역대 주장 | |||||||||||
조니 휠러 (1958~1959) | → | 로니 머랜 (1959~1960) | → | 딕 화이트 (1960~1961) |
리버풀 FC 역대 감독 | |||||||||||
케니 달글리시 (1985~1991) | → | 로니 머랜 (1991) | → | 그레이엄 수네스 (1991~1994) | |||||||
그레이엄 수네스 (1991~1994) | → | 로니 머랜 (1992) | → | 로이 에반스 (1994~1998) |
리버풀의 감독직엔 한 번도 앉지는 못했지만 뒤에서 팀을 위해 헌신했던 사나이.
1 선수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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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 시절의 머랜.
1934년에 리버풀 인근 도시인 크로스비에서 태어나 1949년경에 리버풀 FC 산하 유소년 팀 격인 C팀에 입단, 이후 1952년 1월에 계약을 맺어 1군으로 데뷔했다. 그러나 선수생활 2년차인 1954년에 팀이 강등되는 등 어수선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빌리 리델과 함께 1950년대 내내 최선을 다했다고 한다.
그는 레프트백으로써 강인한 열정과 에너지를 발휘한 덕에 1959년에 빌 샹클리 감독 취임 뒤에도 팀에 계속 남아서 1961/62 시즌 2부 리그 우승으로 1부 리그에 승격시켰고, 더 나아가 1963/64 시즌에 팀의 리그 우승까지 이끌었다. 그의 활약을 높이 산 샹클리에 의해 1966년부터 플레잉 코치가 되어 2군에서 2년을 더 뛰다 1968년에 선수 생활을 마쳤다.
2 지도자 시절
빌 샹클리와 위대한 코치진들. 왼쪽에서 네 번째가 머랜 코치이다.
1991년까지 리버풀 최고의 코치진의 본거지로 통했던 '부트 룸'에서 찍힌 밥 페이즐리를 비롯한 코치진들의 모습. 왼쪽 위가 머랜 코치이다.
1984년 유러피언컵 우승 당시 모습.
케니 달글리시 감독, 로이 에반스 코치와 함께.
로이 에반스 감독과 함께.
1966년부터 2군 플레잉코치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하여 1968년 은퇴 이후 1군과 2군을 오가면서 지도자 생활을 오랫동안 하게 되었다. 지도자 생활 내내 벤치에서 목소리가 컸던 머랜은 선수들의 동기를 북돋아주었고 동등한 잣대로 선수들을 꾸짖으며 우승을 할 때마다 선수들이 자만하지 않도록 했다. 그는 프리시즌 때마다 라커룸을 돌아다니며 낡은 신발함에서 지난 시즌의 메달을 꺼내면서 이렇게 다그쳤다. "이건 이제 아무것도 아니야. 제군들. 어디다 치워버리고 다음 시즌으로 갈아타야지."
머랜은 두 차례 감독 대행으로 활동한 바 있었는데, 첫 번째는 1990/91 시즌 도중에 케니 달글리시 감독이 갑자기 물러났을 때였고, 두 번째는 1991/92 시즌 도중에 그레이엄 수네스가 심장 수술을 받았을 때였다. 당시 머랜은 1992년에 선더랜드 AFC와 겨룬 FA컵 결승전에 팀을 이끌고 나와 팀을 승리시켜 트로피를 선물하게 해 주었다고 한다.
돈 웰시부터 로이 에반스까지 선수 시절부터 총 8명의 감독을 모셔온 머랜은 1997/98 시즌을 끝으로 지도자 자리에서 은퇴했다.
3 그 이후
2000년 당시의 모습.
2011년에 케니 달글리시와 함께.
은퇴 이후 리버풀의 팬으로써 경기에 이따금씩 참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