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법 대전

Corpus Iuris Civilis

Theodor Mommsen 外 편집, 1882년판 라틴어 원문 (신칙법집 제외)
1932년판 S. P. Scott 영역본

1 개요

동로마 제국 유스티니아누스 황제가 로마의 판례법 및 학설을 집대성하여 편찬한 법 서적. 이 책은 편찬 이후 하나의 법전으로서 작용했다. 동로마 제국의 법 체계는 고전 시대의 로마법을 기반으로 하였다. 7세기 이슬람의 침공 등의 혼란을 겪으며 후대의 제국 실정에 맞게 에클로가 등의 법령집이 발간되기도 하였으며, 동로마 제국이 중흥기에 들어선 9세기에는 바실리카 법전이 편찬되었다.

'로마법 대전'이라는 명칭은 유스티니아누스 본인이 붙인 것이 아니고, 후대의 법학자인 디오뉘시우스 고토프레두스(Dionysius Gothofredus)[1]가 '교회법대전'(Corpus Iuris Canonici)의 명칭을 모방하여 붙인 것이다.[2]

2 구성

2.1 칙법휘찬(勅法彙纂)(Codex)

서기 534년 11월 16일 공포. 이전 로마 황제들의 칙법을 정리하여 묶은 칙법전이다.

2.2 법학제요(法學提要)(Institutiones)

서기 533년 11월 21일 공포. 로마법 입문교재이자, 그 자체가 하나의 법률로서 작용했다. 비슷한 컨셉의 기존 저서들(가이우스의 법학제요(Gai Institutiones) 등)을 참조하여 만들었다.

제1권 제1장 제2절을 보면, 법학을 배우느라 개고생을 했던 유스티니아누스 황제의 빡침을 느낄 수 있다(...).

단행본 형태는 아니지만, 우리 말로 완역이 나와 있다!제1권제2권제3권제4권[3]

2.3 학설휘찬(學說彙纂)(Digesta seu Pandectae)[4]

533년 12월 16일 공포. 로마법학자들의 학설집이다. 그 때까지 전해진 법학자들의 문헌을 발췌하여 정리한 것으로서[5], 학설유집(學說類集)이라고도 한다. 로마법대전에서 가장 중요한 사료이다.

실제 내용을 보면, 지금의 연습서(사례집) 비슷한 내용이 가장 많으나, 그 밖에도 지금의 교과서, 주석서, 판례평석과 비슷한 것들도 볼 수 있다.

학설휘찬에 사용된 문장들은, 법률문장이라고 할 때 흔히들 연상하는 것과 달리, 미사여구나 군더더기가 전혀 없이 매우 깔끔한 것이 특징이다.[6]

2.4 신칙법집(Novellae)

신칙법집은 칙법휘찬 이후의 칙법을 모은 칙법전으로, 유스티니아누스가 편찬한 것은 아니다.

동로마 제국은 그리스어를 주 언어로 사용했기에, 당시 통용되던 그리스어와 제국 공식 언어인 라틴어가 본문에 나란히 배열되어 있다.

3 영향

로마법대전은 대륙법계 법률에 매우 큰 영향을 미쳤다. 그 예로 프랑스는 로마법을 계수할 때 법학제요 체계를 바탕으로 프랑스민법전을 편찬했으며, 이를 인스티투치오넨 체계라고 한다. 독일은 학설휘찬을 바탕으로 민법전을 만들었고, 이를 판덱텐 체계라고 한다. 독일의 민법을 계수한 일본의 민법을 다시 계수한 우리나라의 민법은 판덱텐 체계를 따르고 있다.
  1. 1549-1622. 프랑스어로는 드니 고드프루아(Denis Godefroy)
  2. 라틴어 표현을 직역하면 '시민법 대전'인데도 우리 말로 '로마법 대전'이라고 하는 이유는, 여기서 말하는 '시민법'이란 로마법의 별칭이기 때문이다. 시민법(ius civile)이란 용어는 문맥에 따라 여러 뜻으로 사용되는데, 민법이라는 뜻으로 쓸 때도 있지만, 교회법(ius canonicum)이나 영미법과 대비되는 의미로 쓸 때에는 로마법을 지칭한다.
  3. 서울시립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성중모 교수 번역. 원고를 더 다듬은 후에 단행본으로 출간할 예정이다.
  4. 학설휘찬의 원래 이름인 Digesta seu Pandectae를 번역하면 Digest or Digest인데, Digesta는 라틴어, Pandectae는 그리스어로 표현한 것이다.
  5. 1500권 분량의 고전원작을 1/30 분량으로 축약했다고 전해진다
  6. 그 반대로, 칙법휘찬은 문장이 복잡한 편이다. 라틴어에 자신 있는 위키니트라면 한 번 독해에 도전해 보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