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영국 총리 | |||||||
수상직 설립 | ← | 초대 | → | 2대 | |||
← | 로버트 월폴 | → | 윌밍턴 백작 스펜서 컴프턴 |
풀네임 | Robert Walpole, 1st Earl of Orford (초대 오포드 백작, 로버트 월폴) |
출신 정당 | 휘그당 |
생몰연도 | 1676년 8월 26일 ~ 1745년 3월 18일 |
재임기간 | 1721년 4월 4일 ~ 1742년 2월 11일 |
1 개요
영국 최초이며 의원내각제의 최초 수상. 오포드 백작 로버트 월폴.
2 생애
잉글랜드 동부의 노퍽 출생으로, 1701년에 하원의원이 되었고, 조지 1세의 지시로 남해거품사건등을 비롯하여 경제문제등을 해결지어 두각을 나타내 해군장관 등을 역임하며 휘그당원으로 활약하였다.
1715년에 10월 제1재무위원(재1재무상, First Lord of the Treasury) 겸 재무장관(Chancellor of the Exchequer)[1]이 되었으나 외교정책면에서 대립, 1717년 물러나서 반(反)정부적 태도를 취하다가, 1720년 남해거품사건을 계기로 재등장하여 사후처리에 비상한 수완을 발휘함으로써 명성을 떨치고, 다시 제1재무위원(재1재무상, First Lord of the Treasury) 겸 재무장관 겸 하원의장이 되었다.
처음으로 수석 장관(Chief minister)이 의회에 대하여 책임을 지는 책임내각제를 확립하였으며, 이 때문에 일반적으로 영국의 초대 "수상(Prime Minister)"으로 간주된다. 관습법 국가인 영국에서 "수상"이란 직위는 없다. 다만 First Lord of the Treasury 직에 있는 인물을 수상이라 부를 뿐이다.[2] 이 직함은 1714년 10월 신설되었고, 월폴은 3대, 6대가 된다.
그 후 1742년 총선거에 패하고 물러날 때까지 약 20년간 정권을 유지하였다. 그 동안 그의 휘그당 정권은 국왕과 의원의 절대적인 지지를 얻어 그 이후로도 30년간 안정되게 집권하였다.- ↑ 상원 의장 겸 대법관. 2005년 이후로는 겸직 분리된 "Lord Chancellor"와는 또 다르다.
- ↑ 사실 이것도 100% 지켜진 건 아니다. 예를 들어 "대 피트"(재임 : 1766~1768)는 후임 수상이 되는 그래프턴 공작에게 이 직함을 던져버렸으며, "솔즈베리 후작 로버트 게스코인세실"은 이 직위 없이도 수상직을 수행한 대표적 인물(외무장관)이었다. 다만 게스코인세실 수상은 거의 유일한 케이스에 가깝고, 게스코인세실 수상에게 이 자리를 물려 받은 아서 벨푸어가 수상 직에 오르면서 1897년부터 현재까지 모든 현직 수상은 이 직함을 계속 가지게 된다. # 물론 이 직위의 재무적 실권은 초기 일부를 제외하고는 이름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