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 Chanson de Roland
1 개요
《롤랑의 노래》는 총 4000행의 반해음 시절(半諧音 詩節)로 이루어져 있으며, 청중에게 구어로 전달되었다. 판본은 총 아홉이 있으나 그 중 1834년에 발견된 옥스포드의 앵글로노르만어본이 원본으로 인정된다.(...그러니까 프랑스가 아닌 잉글랜드에서 쓴거다.) 트루바두르와 종글뢰르에게 널리 불려졌다. 3세기 전에 벌어진 기사 롤랑의 최후의 전투를 노래하고 있으며, 주제는 기사도, 봉건 도덕관, 그리고 신앙.
정작 기사도 문학의 정수라고 알려져 있지만, 읽어보면 상당히 미묘한 화자의 태도를 볼 수 있다. 전체적으로 롤랑과 그의 절친한 전우 올리비에의 죽음은 롤랑의 무식하고 닥돌적인 성향 때문이며, 샤를마뉴 역시 계속된 전쟁 속에서 지치고 휴식을 바라는 한탄을 한다. 흔히 기사와 기사도라고 하는 문화에 대한 비판적 시야가 전체적인 행간에서 은근슬쩍 드러낸다. 과감히 보자면 풍자물이라고도 할 수 있는 무훈시
2 저자
튀롤(Turold)이라는 인물이 쓴 것으로 추측되고 있으나 확실치 않다. 마지막 행이 다음과 같은데
Ci falt la geste que Turoldus declinet이것이 튀롤(투롤두스)가 ?? 한 무훈이다.
이게 해당 옥스포드 판본의 저자를 얘기하는 건지, 원래 이야기의 저자를 얘기하는건지, 필사자를 얘기하는 건지 알 수 없어서 애매한 문제이다. 일단 이 declinet이라는 단어의 해석이 불분명하다.
3 줄거리
수많은 전장을 치르고 한 번은 샤를마뉴가 거느린 프랑크군에 의해 에스파니아 원정을 한다. 궁지에 몰린 에스파니아의 마르실 왕은 항복한다. 이에 샤를마뉴는 누구에게 항복교섭을 보낼지 고민하는데 이때 롤랑은 지략과 화술이 뛰어난 자신의 의부인 간느롱이 사절로 적당하다고 여겨 추천하지만 이것이 비극의 시작이다. 간느롱은 자신을 사지에 몰아넣은 롤랑에게 앙심을 품고 그를 죽일 것을 결심한다. 마르실왕 앞에 간 간느롱은 자신의 화술을 최대한 활용해서 마르실왕을 회유하는데 성공한다. 그리고 12팔라딘만 제거되면 에스파니아와 프랑크는 평화가 있을 것이라고 마르실왕을 부추긴다. 샤를마뉴가 퇴각할 때 12팔라딘이 후미를 방어할 것이다. 그리 많지않은 군대만 남을거니 그때 공격하면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며, 자신이 나서 롤랑이 뒤에 남게 일을 꾸미겠다고 장담한다. 간느롱의 계략은 성공한다(하지만 이때 12팔라딘 중에서 10명만 뒤에 남게 되었다). 2만의 군사와 함께 론세스바예스(=롱스보) 고개에 남겨지고 곧 마르실왕이 거느리는 50만의 이슬람군이 이들을 습격해온다. 마르실왕은 10만명씩 부대를 나눠 차례차례 프랑크군을 공격해 기운을 소모시키는 차륜전을 전개했지만 그럼에도 팔라딘들이 쓰러지기까지 무수한 패퇴와 수많은 이슬람 용사들의 죽음을 대가로 치러야 했다. 롤랑의 노래에서는 팔라딘들이 얼마나 용감하게 싸웠는지 그리고 어떻게 영웅답게 죽어갔는지 열정적인 어조로 상세히 묘사하고 있다. 이슬람 명장 중에서 아엘로치, 부르고사, 파르세론, '말타기의 명수' 그란도아스 등 많은 전사들이 모두 론세스바예스 고개에서 죽음을 맞았다. 롤랑은 샤를마뉴로부터 커다란 뿔나팔를 건내 받았었는데, 언제든지 자신이 위험해 쳐해 있을때 뿔나팔를 불면 샤를마뉴가 그것을 듣고 도우러 달려 올것이라고 샤를마뉴가 약속한 물건이었다. 적의 숫자가 많음을 알아본 롤랑의 가장 절친한 친구이자 12기사중 올리비에는 롤랑에게 뿔나팔를 불것을 권하지만, 롤랑은 자신이 아직 위험해 빠지지 않았고 더더욱 그의 의부까지 위험에 빠지게 할 수없다며 권유를 거부하였으나 결국은 나중에 뿔나팔을 불었다. 얼마나 세게 불었는지 롤랑의 코와 입에서 피가 뿜어져 나왔고 세번재 불었을 때 뿔나팔이 산산조각나버렸다. 샤를마뉴는 그 뿔나팔의 소리를 듣고 즉시 간느롱을 체포했다.
싸움은 거의 종결로 흐르고 있을때 올리비에는 싸움 도중에 눈을 다쳐서 소리를 의지하여 오트클레르를 휘둘렀다. 얼마나 처절했으면 같은 팔라딘들을 공격할 정도였다. 모든 팔라딘과 프랑크군이 다 쓰러지고, 홀로 남겨진 롤랑은 근처 연못으로 말을 몰아갔다. 그의 말인 브리글리아도르는 연못에 도착하자 힘이 다해 쓰러져버렸다. 이때 이슬람군이 자신을 표적으로 끊임없이 몰려오고있었다. 이에 롤랑은 자신의 검인 뒤랑달 만큼은 넘겨주지 않기 위해 옆에 있는 바위를 세게 내려쳐 부러뜨리려고 했다. 하지만 이짓을 3번을 해도 뒤랑달은 흠집 하나도 나지 않았다. 오히려 바위가 동강나고 주변의 지면이 갈라져버렸다. 어쩔 수 없이 자신이 죽을 때까지 적을 베어나갔다.(일부 문헌에선 칼이 부서지지 않자 죽기 직전에 이를 자신의 몸 아래 깔아두어 숨겼다고 나오기도 한다.) 이후 샤를마뉴가 도착했을때는 10명의 팔라딘과 후위부대는 이미 전멸해 있었다. 할 수 없이 전사당한 팔라딘들의 무구들을 다른 선봉대에 있는 기사에게 하사하였고, 분노한 샤를마뉴는 에스파니아 인들을 철저히 도륙했다. 배신자 간느롱 또한 처참하게 처형당한다.
롤랑에게는 또다른 연인으로 알데라는 여인이 있다. 에스파니아 원정전 롤랑과 약혼한 사이였는데, 전쟁이 끝나고 샤를마뉴로 부터 롤랑의 죽음을 전해듣자 바로 그 자리에서 쓰러져 숨을 거두었다고 전해진다.
여기까지가 보통 11세기에 최초로 집대성된 것으로 알려진 필사본 롤랑의 노래 줄거리인데 또 후대로 가면 '롤랑과 프랑크 기사들이 사라센군과 싸우다 론세바예스에서 죽었다'는 기본적인 줄거리를 제외하면 디테일이 많이 달라진다.
4 기타
유럽의 일부 지역에서는 롤랑의 노래를 정말 노래로 만들어서 부르기도 했다. 위 영상의 곡은 노르웨이의 민요 <Rolandskvadet>을 'Mediaeval Trio'라는 그룹에서 부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