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스 아파리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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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성기 화이트삭스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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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배 오마 비즈켈와 함께. [1]

이름Luis Ernesto Aparicio Montiel
출생1934년 4월 29일
국적베네수엘라
출신지술리아주 마라카이보
포지션유격수
투타우투우타
프로입단1956년 시카고 화이트삭스 아마추어 자유계약
소속팀시카고 화이트삭스(1956~1962)
볼티모어 오리올스(1963~1967)
시카고 화이트삭스(1968~1970)
보스턴 레드삭스(1971~1973)
시카고 화이트삭스의 영구결번
23491114
넬리 폭스헤롤드 베인스루크 애플링미니 미뇨소루이스 아파리시오폴 코너코
161935425672
테드 라이언스빌리 피어스프랭크 토머스재키 로빈슨마크 벌리칼튼 피스크
미국 야구 명예의 전당 헌액자
루이스 아파리시오
헌액 연도1984년
헌액 방식기자단(BBWAA) 투표
투표 결과84.6% (6회)

메이저리그의 한 시대를 풍미한 명 유격수. 1934년 4월 29일생으로 고향은 베네수엘라다. 포지션은 유격수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 헌액자이자, 베네수엘라 출신으로 최초로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인물이다.

아버지인 루이스 아파리시오 시니어 역시 베네수엘라에서 당대 뛰어난 유격수였기 때문에 어린 시절부터 자연히 야구와 친숙했고, 유격수로서 유소년 국가대표에 선발될 정도로 이미 명성을 얻었다. 그의 가능성을 처음 주목한 팀은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였지만, 클리블랜드가 계약을 머뭇거리는 사이 시카고 화이트삭스가 재빨리 그를 낚아채면서 입단시켰다. 그리고 마침내 1956년 데뷔.

사실 공격 기록은 그다지 뛰어난 선수는 아니었다. 물론 이 시기에는 유격수라는 포지션이 철저한 수비 위주의 포지션이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비율 스탯만 놓고 보면 비교적 평범한 수준인 통산 0.262 타율을 기록했던 선수. 하지만 공격 면에서 그가 가진 가치는 먼저 잊혀졌던 도루를 다시 부활시킨 선수 중 한 명이라는 점에 있다. 이는 블랙삭스 스캔들 이후 한 동안 만년 약체로 전락했던 화이트삭스가 "고고 화이트삭스"라 불리는 강한 수비와 기동력을 앞세운 야구를 구사하면서 1950년대 부활할 때, 그 주역이었던 것과 일치한다. 이들의 활약의 정점은 1959년 40년만의 월드시리즈 진출로 결실을 맺었다.

1950년대 후반과 1960년대 초반 화이트삭스에서 활약하다가 팀의 전력이 약해지자 트레이드를 요청, 볼티모어 오리올스로 건너가서 1966년 월드시리즈 우승에 기여하면서 생애 유일한 우승반지를 얻었다. 그 뒤 다시 화이트삭스로 돌아가 활약한 후, 1973년 보스턴 레드삭스를 끝으로 은퇴했다.

통산 2599경기에 나와 2677안타와 394개의 2루타, 83개의 홈런, 791타점, 1355득점, 506도루를 기록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이 시기 잊혀졌던 도루의 가치를 재발견한 선수로도 유명하며, 은퇴 시점에서 이 정도의 공격력을 보여준 유격수도 그리 많지 않았다. 특히 베네수엘라 출신 선수로 은퇴 시점에서는 거의 대부분의 기록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는 훗날 베네수엘라 출신의 또 다른 명 유격수인 오마 비즈켈에 의해 상당수 경신된다.

무엇보다 아파라시오를 빛낸 것은 수비. 1950년대 역시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베테랑 위원회를 통해 헌액되기는 했지만.) 2루수 넬리 팍스와 함께 키스톤 콤비를 이루며, 화이트삭스 역사상 최고의 수비력을 자랑했다. 은퇴 시점까지 차지한 골드글러브 개수는 총 9개로 이는 은퇴 시점 당시에는 최고였으며, 필딩률과 기타 모든 수비 기록 역시 최고였다. 특히 어지간한 유격수들이 말년에는 유격수 자리에서 밀려나 다른 포지션으로 가는 경우가 많았던 점을 생각해 볼때, 그는 은퇴까지 유격수 자리를 지키는데 성공했다.

그의 수비 기록은 동향의 후배 오마 비즈켈에 의해 베네수엘라 최고 기록은 경신되었고, 메이저리그 전체 기록 역시 아지 스미스라는 더 걸출한 수비를 자랑하는 유격수가 나타나면서 2등 자리로 밀려나기는 했다. 하지만, 그것이 한 시대를 풍미한 선수의 위업을 떨어뜨릴 정도는 아니다. 13번 올스타에 선정될 정도로 당대 많은 사랑을 받았던 선수이기도 하다.

화이트삭스의 레전드로 그의 등번호 11번은 영구결번되었다. 2009년에 이르러 오마 비즈켈이 화이트삭스에 입단하자 그를 기리기 위해 11번을 달고 뛰기는 한다. 물론 그가 허락해 준 일이다. 1984년 명예의 전당에 84.62%의 득표율로 입성했고, 이는 베네수엘라 출신으로는 최초의 입성이다.
  1. 2010 시즌~2011 시즌에 화이트삭스로 이적한 오마 비즈켈이 대선배인 아파리시오를 기리기 위해 이 번호를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