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 조제프 게이뤼삭


Louis Joseph Gay-Lussac
1778년 12월 6일 ~ 1850년 5월 9일

국립국어원 표기 원칙을 엄밀히 따르면 게뤼사크. 한국어 위키백과의 표제어명도 "루이 조제프 게뤼사크"로 옮겨져있다. 사실 발음도 게뤼사크(lwi ʒɔzɛf ɡɛlysak)에 가깝다. 그러나 이것은 관용명을 존중한 국립국어원의 입장에 배치되는 것이다. 맥아더를 '매카서'라고 쓰거나 대처를 '새처'라고 쓰는 것과 같은 것인 셈.

이상한 생각은 하지 말자. Gay하고 Lussac에 선이 하나 쳐져있는데 신경써지면 지는거다

1 개요

프랑스화학자물리학자로, 기체들이 서로 반응하여 새로운 기체를 만들 때 기체들의 부피 변화에 관한 실험을 통해 "부피결합의 법칙"이라고도 불리는 기체 반응의 법칙(law of combining volumes)을 발견하였다.

2 생애

생레오나르에서 태어나 프랑스의 공대 명문 에콜 폴리테크닉에서 배우고 베르톨레의 조수로 일하였다. 샤를의 법칙기체 반응의 법칙을 발견하여 근대 화학사에서 중요한 업적을 두 개나 남겼다. 정작 당대에는 원자설로 기체 반응의 법칙을 설명할 수 없었고, 존 돌턴이라는 원자학의 창시자가 있었던 탓에 인정을 받지 못했지만.... 이후 그의 기체 반응의 법칙은 아메데오 아보가드로의 분자설이 제창된 후에나 인정을 받을 수 있었다.

자크 알렉상드르 세사르 샤를과는 친구 사이. 샤를은 샤를의 법칙에 대한 이론을 제시하고 게이뤼삭은 그 이론을 증명하는 실험을 담당했다고 한다. 게이뤼삭은 사실상 샤를의 법칙을 대신 발견해 주고 나서 그 공로를 맨 처음에 이론을 제시한 샤를에게 돌렸다고 한다.

1804년 지상 7,000m 이상의 상공에 기구를 타고 올라가 지구 자기 및 대기의 성분을 조사하여, 산소수소가 1:2의 비율로 화합한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1808년 기체 반응의 법칙을 발견하였고, 유기 분석법의 개량 등에 공헌하였다. 공업에 있어서는 항생제 만드는 법을 개량하였고, 사이펀 청우계·알코올 계를 발명하였다.

그 밖에 붕소 분리법, 칼륨·나트륨 만드는 법 등을 발견하여 화학사에 큰 업적을 남겼으며, 황산 제조법을 개량하고, 게이뤼삭의 탑을 고안하는 등 많은 업적을 남겼다.

동갑이던 험프리 데이비플루오린화수소로부터 불소(플루오린)을 정제하는 실험에 참관한 적이 있었는데, 그 때 플루오린을 분리하면서 플루오린이 백금과 반응하여 누출되는 바람에 데이비와 함께 플루오린을 들이마셨고, 두 사람 다 즉사는 면했지만 이후 상당히 고통스러운 말년을 보냈다고 전한다. 데이비는 1829년 세상을 떠났는데 게이뤼삭은 21년이나 더 살다보니 그 고통기간이 더 길었을 듯.지못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