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위 항목 : 테니스선수
Marat Safin(풀네임은 마라트 미하일로비치 사핀 Marat Mikhailovich Safin)
2000년 피트 샘프라스를 꺾고 US오픈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린 마라트 사핀.
출생 :1980년 1월 27일
국적 : 러시아
신장 : 193cm
체중 : 88kg
1 커리어
- 개인전 통산 성적 : 422승 267패
- 단식 타이틀 획득 : 15회
- 복식 통산 성적 : 96승 120패
- 복식 타이틀 획득 : 2회
- 통산 상금 획득 : 14,373,291 달러
그랜드슬램 대회 : 우승 2회 / 준우승 2회
- 호주 오픈 : 우승 1회(2005) / 준우승 2회(2002, 2004)
- 프랑스 오픈 : X
- 윔블던 : X
- US 오픈 : 우승 1회 - 2000
기타 대회
2 선수 소개
러시아의 테니스 선수로서 여동생인 디나라 사피나와 함께 역사상 최초로 남매가 모두 테니스 세계 랭킹 1위를 해본 놀라운 기록을 가진 선수이다. 어머니가 테니스 코치로서 남매를 어릴 때부터 테니스 영재 교육을 시켜서 남매 모두 시니어 프로 테니스 선수로서 성공시킨 케이스이다. 사핀은 1997년에 프로에 데뷔하였는데 비슷한 나이대의 후안 카를로스 페레로, 레이튼 휴이트, 로저 페더러, 앤디 로딕 등과 함께 세계 랭킹 1위를 놓고 2000년대 초반에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같은 시기 등장했던 앤디 로딕, 여자선수지만 같은 국적에 플레이스타일이 닮은 마리아 샤라포바처럼 마라트 사핀도 큰 체격에 힘을 앞세운 시원시원한 슬러거 스타일이다. 같은 시대에 비견되던 앤디 로딕보다도 백핸드 스킬이 좋아서 웬만한 탑랭커들 상대로 힘으로 제압할 수 있는 파워풀한 스트로크가 강점. 다만, 로딕보다 나을 뿐이지 이 선수도 멘탈이 약점에 성질이 엄청 불같아서....
경기중 엄청나게 라켓을 작살내는 라켓 스매셔로 유명하다.
사핀의 라켓 스매싱 하이라이트는 2001 롤랑 가로스인데, 사핀이 세계 랭킹 1위를 하던 그때 3라운드에서 만난 프랑스의 파브리스 산토로 상대로 시작부터 0:2로 뒤지다가 죽자고 경기해서 4세트에 베이글까지 먹여서 세트스코어 2:2 만들었다가 5세트에 1:6으로 탈탈 털리면서 3라운드 광탈을 당했었다. 이날 사핀은 경기중에 라켓 몇개나 집어던지고 빡쳐서 경기후 프레스 컨퍼런스도 안하고 나가버렸을 정도[3]
사핀은 2000년 US 오픈 남자 단식 결승전에서 우승 후보로 세계 랭킹 4위에 올라있던 테니스 황제 피트 샘프라스를 상대로 3-0(6-4, 6-3, 6-3)의 완승을 거두고 우승하면서 20대 초반의 라이벌 중에 가장 먼저 그랜드슬램 대회 남자 단식 우승을 달성하였고 2000년에만 US 오픈 남자 단식 우승, 프랑스 오픈 남자 단식 8강 진출, 마스터스 시리즈 남자 단식에서 우승 2회, 준우승 1회, ATP 투어 남자 단식에서 우승 4회, 준우승 1회를 기록하면서 2000년 11월에 세계 랭킹 1위까지 올라갔다. 사핀의 세계 랭킹 1위 달성은 예브게니 카펠니코프[4]에 이어 러시아 테니스 선수로는 두번째였다.
하지만 곧 휴이트와 페레로, 페더러와 로딕도 경쟁에 가세하여 투어 타이틀 우승과 세계 랭킹 1위를 놓고 치열한 경쟁을 펼쳤으며 이 경쟁은 테니스 황제 자리에 오르는 페더러의 전성기가 2004년에 시작되기 전까지 계속된다.[5]페더러가 테니스 황제의 전성기에 접어들자 로딕과 휴이트, 사핀과 페레로 모두 라이벌에서 페더러의 호구로 전락
사핀은 그랜드슬램 대회는 2000년 US 오픈 남자 단식과 2005년 호주 오픈 남자 단식에서 우승하였고 2002년과 2004년 호주 오픈 남자 단식에서도 준우승을 기록하였다. 특히 이미 전성기에 접어들어 거의 무적의 포스를 내뿜던 테니스 황제 로저 페더러를 2005년 호주 오픈 남자 단식 준결승전에서 무려 4시간 30분에 걸친 혈투 끝에 세트 스코어 3-2(5-7, 6-4, 5-7, 7-6<8-6>, 9-7)로 극적인 역전승을 거두며 결승전에 진출하여 결승전에서 레이튼 휴이트마저 3-1(1-6, 6-3, 6-4, 6-4)로 격파하고 우승을 따냈을 때가 마라트 사핀 테니스 인생의 정점이었다.
하지만 사핀은 확실히 컨디션 최상일 때의 경기력은 전성기의 페더러에 근접한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멘탈 문제로 기복이 심하다는 약점을 커리어 종료시까지 해결하지 못하였고 도리어 2005년 호주 오픈 남자 단식 우승을 정점으로 2009년 마스터스 파리 오픈을 마지막으로 은퇴할 때까지 4년이 넘는 기간동안 2008년 윔블던 남자 단식 4강 진출과 겨우 3번의 ATP 투어 남자 단식 결승전 진출 및 준우승에 그칠 정도로 빠른 하향세를 보여주며 겨우 만 29세의 나이로 은퇴하게 된다.
사실상 커리어 마지막 4년간은 20대 후반의 세계 랭킹 1위를 달성하였던 선수답지 않게 부진하였다. 사핀의 전성기는 1999년 말부터 2005년 초반까지인데 멘탈 문제로 기복이 심한 문제는 심지어 이 전성기 기간조차 심각한 편이어서 전성기 기간 중에도 성적의 오르내림이 엄청나게 심했다.
1999년 말부터 전성기가 시작되어 2000년 말까지 성적이 굉장히 좋다가 2001년 초반부터 중반까진 부진에 빠졌고 2001년 후반부터 2002년 말까지 다시 전성기를 맞았다가 2003년 호주 오픈 남자 단식에서 손목 부상을 당하면서 1년간 극도의 부진에 다시 빠졌다. 2004년 호주 오픈 결승전에 진출하는 등 2004년 초반 다시 성적이 좋아졌다가 중반에 다시 부진, 2004년 후반부터 2005년 초반까지 다시 전성기 실력을 회복한 것이다. 그 후 그대로 하향세를 맞으면서 4년 후 은퇴하게 된다.
그래서 2009년 은퇴할 때까지 통산 주요 성적은 2005년 초반까지 쌓은 성적이 대부분이고 심지어 전성기 중간중간에 성적이 심하게 부진한 기간이 있어서 사핀의 명성에 비해 누적된 통산 커리어 성적은 부족한 편이다. 그럼에도 그랜드슬램 대회 남자 단식 우승 2회, 준우승 2회, 4강 진출 3회, 8강 진출 2회, 마스터스 컵 남자 단식 4강 진출 2회, 마스터스 시리즈 남자 단식에서도 우승 5회, 준우승 3회, 4강 진출 1회, 여기에 ATP 투어 남자 단식에서도 우승 8회 준우승 7회를 기록하였던 세계적인 선수였다.
3 참고 링크
- ↑ 2009년에 ATP 월드 투어 파이널로 명칭 변경.
- ↑ 2009년에 마스터스 1000 시리즈로 명칭 변경.
- ↑ 파브리스 산토로는 ATP 커리어하이 싱글 랭킹이 17위였고 단식 통산 주요 성적이 겨우 2006년 호주 오픈 남자 단식 8강, 마스터스 시리즈 남자 단식에선 4강 진출 3회, ATP 투어 남자 단식은 우승 6회, 준우승 6회만을 기록한 중상급 & 복식 전문 선수로, 일명 정크볼러라고 하는 변칙 테니스의 달인이라 사핀이 가장 싫어했던 상대다. 산토로의 대 사핀 단식 상대전적이 7승 2패로 압도적 우세였고, 워낙 사핀을 가지고 놀다시피하는 운영떄문에 둘이 동시에 나오는 대회에선 항상 기자들이 사핀과의 인터뷰때 사핀 다음 상대보다 먼저 산토로 아저씨가 아직 탈락 안했나 했나만 먼저 알려줬을 정도. 그래도 파브리스 산토로는 무려 그랜드슬램 대회 남자 단식 본선 70회 출전으로 역대 테니스 선수 중 그랜드슬램 대회 남자 단식 본선 출전 1위라는 위대한 기록도 가지고 있다. 1989년 프랑스 오픈 남자 단식 본선 출전을 첫 시작으로 중간중간 출전 못한 대회가 있었으나 20년이 넘는 기간동안 그랜드슬램 대회 남자 단식 본선에 출전하면서 2010년 호주 오픈 남자 단식 본선 출전까지 무려 70회 출전을 달성하였다. 참고적으로 이야기하자면 현재 로저 페더러가 그랜드슬램 대회 남자 단식 본선 출전 66회로 역대 2위에 올라있다.
- ↑ 1999년에 세계 랭킹 1위까지 기록해본 선수로 1995년부터 2001년까지가 전성기였는데 그랜드슬램 대회 남자 단식에서 우승 2회, 준우승 1회, 4강 진출 3회, 8강 진출 7회를 달성하였으며 1997년 마스터스 컵 남자 단식 준우승, 마스터스 컵 남자 단식 4강 진출 2회, 마스터스 시리즈 남자 단식에서도 준우승 5회, 4강 진출 13회를 기록하였고, 2000 시드니 올림픽 테니스 남자 단식 금메달, ATP 투어 남자 단식에서도 우승 23회, 준우승 13회를 달성한 세계적인 선수였다.
- ↑ 재미있는 것은 늙은 안드레 애거시도 이 젊은 20대 초반의 선수들의 경쟁에 참여하여 만 32세에 그랜드슬램 대회 남자 단식 우승을 기록하고 역대 최고령 세계 랭킹 1위 기록을 찍을 정도였다. 참고적으로 76년생으로 애거시와 80년대 초반 태생의 선수들 사이의 낀 세대인 구스타보 쿠에르텐도 이 경쟁의 참여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