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석보


전라북도 정읍시 이평면에 있었던 . 전라북도 기념물 제 33호이다. 1894년 일어난 동학농민혁명의 첫 도화선을 당긴 시설로 역사적 가치를 가지고 있다.

당시 전라도의 큰 고을이던 고부군[1]의 군수 조병갑은 잘 알려진 바와 같이 탐관오리로 악명을 떨쳤는데, 1892년 조병갑은 인근 동진강을 막는 보 건설 계획을 세우게 된다. 조는 만석보를 건축하기 위하여 많은 세금을 거두었고, 동시에 보 건축 과정에서 많은 농민들을 징발하였다. 백성들 입장에서는 내 농사의 피해도 감수하고 보 건설에 노동력이 징발당하는데다 세금까지 물게 되는 이중고를 겪게된 셈.

당초 조병갑은 만석보가 완공되는 '첫 해에는' 만석보가 설치된 곳의 물을 받는 논에는 수세(수도요금)를 받지 않겠다고 약속했으나, 약속을 헌신짝처럼 저버리게 되었고 이에 분개한 농민들이 1894년 1월, 고부 관아를 몰려가 점령한 뒤, 보를 헐어버리게 된다. 그리고 이는 그해 동아시아 정세의 흔들게 된 농민전쟁의 첫 걸음이 된다.

공사 2년만에 헐렸으므로 당연히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다. 만석보 터에서 신평리 쪽으로 약 3km 정도 가면 동학농민운동을 기리기 위한 만석보 유지비가 있다. 1973년 세워졌다.
  1. 농민전쟁 이후 고창, 정읍, 김제 등으로 나뉘어 행정적으로 없어지는 운명을 맞았으나 당시에는 전주, 남원에 버금가는 현 전라북도 지역의 큰 고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