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성그룹

1 개요

1980년대까지 존재하던 대한민국재벌이다. 김철호가 1966년에 설립하였으나, 1983년에 이른바 '명성그룹 사건'으로 그룹이 공중분해되었다. 신군부 집권 후 대표적인 기업 길들이기의 희생양이며 제5공화국 시절 3대 대형 금융 부정 사건 중 하나이다.

2 연혁

1966년 김철호가 세운 운수업체로 시작되었다. 그가 세운 '코로나 택시'는 130여대의 택시를 거느린 대형 운수업체로 발전하였다. 1976년, 김철호는 당시에는 불모의 영역이었던 레저사업에 뛰어들기로 한다. 당시 생소한 '콘도미니엄'의 개념을 정립하고 숙박업, 골프장 등의 사업을 영위하며 사업을 확장해나간다.

콘도 사업을 시작한지 불과 3년 만에 23개의 계열사를 거느린 대형재벌로 성장한 명성그룹은 콘도, 호텔, 골프장, 수영장 등 온갖 종류의 레저 시설을 갖춘 대형 레저 타운을 강원도 일대에 조성하기로 한다. 이것이 설악권 레저타운이다.

그러나 탄탄대로일 것 같은 명성그룹의 앞날에 먹구름이 드리우기 시작했으니...

3 명성그룹 사건

명성그룹은 신군부 집권 이후 근거없는 세무조사를 받는 일이 많아졌고 대중의 인식 속에서도 워낙 급격히 성장한 기업이기에 김철호 회장과 명성그룹에 대한 소문이 많았다. 대표적인 것이 통일교 연관설.

이러한 정권의 압박과 대중 인식의 전환을 위해 1983년 7월 31일 4대 일간지에 '강호제현에게 고함'이라는 글을 싣게 되었다. 그러나 이것이 정권이 명성그룹에 대한 극단적 결정을 하게 만드는 원인이 될 줄은...
1983년 8월 17일 대검 중앙수사본부는 명성그룹회장 김철호를 특정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탈세·조세범처벌법 위반·업무상 횡령) 등의 혐의로 구속하고, 김철호에게 1천여억 원의 사채자금을 변칙 조달해준 상업은행 혜화동지점 대리 김동겸을 업무상 횡령혐의로 구속했다. 검찰에 따르면 김철호는 79년 4월부터 김동겸을 통해 은행예금을 빼내 기업을 확장하기 시작, 원리금 상환도 하지 않은 채 1,066억 원에 이르는 거액을 횡령, 21개의 기업군을 거느리는 재벌회장으로 행세하면서 사기극을 벌였고, 탈세액만도 46억 원에 이른다는 것이었다.
이어 검찰은 8월 29일 명성 설악컨트리클럽 골프장 사업계획 승인과 관련, 김철호로부터 8,500여만원의 뇌물을 받은 윤자중 전 교통부장관을 비롯, 박창권 대한주택공사 부사장 등 공무원 10명을 특정범죄가중처벌법 및 뇌물수수 등의 혐의로 구속했다. 이 사건으로 김철호는 징역 15년에 벌금 92억 3천만원, 윤자중은 징역 7년에 추징금 8,186만 9,400원, 김동겸은 징역 12년을 각각 선고받았다.

잘나가던 기업이 하루아침에 금융 비리로 무너진 것에 대해 갖은 소문이 설왕설래했다. 가장 유력한 설은 전두환의 장인인 이규동과 김철호 회장이 친분이 두터웠는데, 이규동이 본인 소유 부동산을 고가 매입해달라는 요청을 거절하고[1], 당시 신군부 측에서 김 회장 측에 정치자금을 요구했는데 이에 대해 소극적 태도를 보인 것[2]이 원인이 아닌가 하는 소문이 무성했다. 몇 년 후 국제그룹이 산산조각나는 것을 본 많은 사람들이 그 소문을 확신하게 되었다.

4 해체

명성그룹 사건 이후 명성그룹은 몇 개로 쪼개졌으나 주력 부문이던 레저 사업은 당시 정치권에 열심히 줄을 대고 있던 한화그룹에 넘어가게 된다. 한화호텔앤드리조트 등 한화그룹의 레저 관련 알짜 계열사의 대부분이 이 때 한화그룹에 편입된 것이다. 쉽게 이야기하자면 청계산회장님의 장인어른이 5공의 실세 서정화였기 때문이다.
  1. 신군부에 대한 우회적 뇌물 공여로 추정
  2. 뇌물 요구가 있자 그에 대해 영수증을 끊어오라 했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