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로코 장벽


(6차에 걸친 장벽 형성과정을 잘 보여주는 그림. 여기를 클릭하면 확대된 지도를 볼 수 있다.)

The Berm of Western Sahara, Moroccan Wall

모로코서사하라 지역에 쌓은 장벽.

1976년 스페인이 서사하라 점령을 풀면서 사라위족과 모로코인들이 아프리카 북서부 대서양 연안에 있는 서사하라 지역의 소유권을 주장하며 분쟁을 벌이게 된다.

이후 1980년 모로코인들이 소유권을 확보하기 위해 사막 한가운데에 경계선을 긋기 시작했다. 모로코로부터 독립해 사라위족의 자치를 원하는 정치적, 군사적 움직임으로부터 자위권을 확보하기 위한 조치라고 모로코 측은 설명하였으나 현실은 시궁창. 이 장벽은 6번에 걸쳐 만들었으며 주된 목적은 폴리사리오 반군의 게릴라 활동을 막기 위함이었다.

경계선은 모래와 돌, 철조망, 도랑, 지뢰지대 등을 활용해 1987년에 완성됐으며 2700㎞에 걸쳐 있다. 서사하라 해안을 따라 길게 쌓아진 장벽으로 장벽이라 말하지만 벽 자체는 돌이나 콘크리트가 아닌 흙벽이다.

인권단체들은 대인지뢰를 매설한 점을 들어 '치욕의 장벽'으로 부른다. 이 장벽으로 서사하라 영토의 3분의 2를 모로코가 장악하고 있으며 이 지역은 서사하라의 경제적 중심지이다. 반면 반군 폴리사리오 인민해방전선[1]이 점령한 동쪽 1/3 영역은 광산 몇개만 있고 사람이 거의 거주 하지 않는 불모지이다. 위의 지도에서 노란색으로 표시된 부분인다. 알제리가 대서양으로 나갈 수 있는 출구 확보를 위해서 폴리사리오를 지지하는 측면이 있는데 막상 해안지역이 거의 없고 내륙에 갇히다 시피했으니...
이 장벽의 설치 결과 폴리사리오의 저항은 줄어들었으나, 서사하라 문제는 해결의 실마리를 풀지 못한 채 점점 더 고착화 되어갔다. 결국 서사하라 반군의 영향력은 상당히 약화되었음에도 오히려 모로코-서사하라 문제는 더욱 깊어져만 가는 중. 2010년에도 모로코인에 대항한 서사하라인의 시위가 있었다.#

장벽 자체 및 모로코의 서사하라 점령에 대해 서구의 관심은 거의 없는 정도다. 서사하라를 지배했던 스페인 정도나 관심을 좀 보일 뿐이다. 인권 단체의 작은 시위가 한두번씩 있는 정도. 다만 아프리카쪽에서는, 당연하겠지만, 좀더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알제리는 폴리사리오를 지지하면서 모로코를 까는 편이고, 아프리카 연합에서도 타협안을 제시할 정도의 관심은 표명하고 있다. 아프리카 연합에서 서사하라를 국가로 인정하고 회원가입까지 시켜줬기 때문에 모로코가 빡쳐서 연합 탈퇴하긴 했지만.
  1. 모로코로부터 서사하라의 독립을 쟁취하기 위해 활동하는 사라위족 반군으로 1973년에 모로코 대학에 재학중이던 사라위족 학생등에 의해 스페인 지배를 타도하기 위해 결성되었다. 이후론 모로코의 지배에서 독립하기 위해 활동중으로 성향은 사회주의 성향이 강했으나 냉전이 끝난 후 현재는 시장경제주의를 강령으로 삼고 있다. 향후 서사하라 공화국이 성립된다면 해산하던지 정당으로서 참여하고자 하는 뜻을 가지고 있으나 현실은 시궁창. 1991년에 UN 중재로 평화를 위한 주민투표가 무산된 이후 계속 모로코를 적대하고 있다. 지도층은 알제리의 영향력이 강한편이며 리비아 내전 당시 카다피가 폴리사리오 반군을 핵심 용병으로 고용해 트리폴리로 불러들인 적이 있다. 사실 리비아는 무아마르 알 카다피 집권기에 알제리와 함께 서사하라를 독립국으로 인정함으로써 폴리사리오를 지지했다. 하지만 카다피 정권이 무너진 이후 리비아의 새 정부에서는 서사하라 승인 취소하고 모로코 편을 들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