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하마드 알리(이집트)

동명인물인 권투선수에 대해서는 무하마드 알리 문서를 참조하십시오.

터키어: محمد علی پاشا, Mehmet Ali Paşa
아랍어: محمد علي باشا (Muḥammad ‘Alī Bāshā)
알바니아어: Mehmet Ali Pasha

1769년 3월 4일 ~ 1849년 8월 2일

1 개요

오스만 제국의 이집트 총독으로, 이집트 최후의 (외세)왕조이자 무함마드 알리 왕조(~1953년)의 창시자이다. 어쩐지 권투를 잘할듯 싶은 동명이인이랑은 상관없다.

근대 이집트사에서 매우 중요한 인물로 이집트를 오스만제국의 영향력에서 벗어나고 독립국으로 만들다시피한 인물이다. 그러나 정작 자신은 세계사에서 무함마드 알리라고 알려져있는 인물이지만, 그는 알바니아출신 지배자였으며, 평생 알바니아어와 터키어만을 모국어로 사용했다. 터키어로는 메흐메트 알리(Mehmet Ali)로 평생 아랍어는 한마디도 못했던 인물인 만큼 학계에서는 이렇게 부르기도 한다. 이후 이집트를 통치한 그의 후손들도 마찬가지로 자신들의 정체성을 터키인으로 갖고 있었다. 또한 술탄이나 에미르로 칭한적은 없으며 그와 후손들은 오스만 제국의 총독(Khediv)로서 이집트를 통치해 왔으며 정기적으로 공물도 오스만 제국에 납부해왔고 오스만 제국이 재기불능의 상태에 빠진 1915년이 되어서야 술탄을 칭하게 된다.

오스만 제국령 마케도니아에서 알바니아계로 태어났다. 군대에 입대해 이집트에서 나폴레옹의 군대와 싸웠고, 1805년 이집트 태수의 지위를 승인받았다. 그동안 현지 군벌로 군림해온 맘루크들을 숙청하고 독재권력을 강화해 사실상 국왕으로 군림했으며, 총독직을 세습하기 위해 오스만 제국과 전쟁하기도 했다. 이집트의 근대화에 많은 노력을 하였다.

2 행적

본래 알바니아 출신이었던 이집트 총독 무함마드 알리는 맘룩크 왕조 이래로 현지의 지배자였던 맘룩크를 완전 숙청하여 이집트의 통치자로 집권하고 이집트의 현대화를 추구하여 서구식 조병창을 건설하고 유럽식 교육을 도입하는 등 기세등등하고 있던 중에 그리스 독립전쟁과 러시아와의 전쟁에서 오스만 제국이 개털리는 걸 보자 겁도 없이 전쟁에 원군을 보내주는 대가로 이집트 총독 자리를 임명직에서 세습직으로 바꿔보려는 수작을 부리다가 술탄이 거부하는 바람에 수틀려서 반란을 일으켰다. 프랑스 장교들이 지휘하는 이집트군은 연이은 전쟁의 충격으로부터 아직 헤어나오지 못한 오스만군을 격파하고 시리아, 팔레스타인을 점령한 뒤 곧장 콘스탄티노플로 향했다. 개혁이 완료되지도 않았고 예니체리가 남긴 상처가 여러곳에 남아있었다고는 하나 어처구니 없는 졸전이었다. 오스만 제국은 큰 충격을 받았으나 알리의 이집트군을 막을 힘이 없다보니 유럽 열강의 도움으로 제위와 팔레스타인 영토는 보존했고 이집트는 형식적인 오스만 제국의 영토로 남았으나 시리아를 통째로 무함마드 알리에게 내주어야 했다. 이는 오스만 제국의 외교권에 치명타를 주어 유럽 국가들이 오스만을 더욱 깔보게된다.

분통이 터진 마흐무트 2세는 개혁을 가속하면서 무함마드 알리를 손봐줄 그날만 기다리고 있었는데, 무함마드 알리가 시리아를 점령하고 오스만 제국으로부터의 독립을 선언하자 곧바로 8만 대군으로 시리아를 침공했다가 4만여명의 이집트군의 반격에 의해 개털렸으며 덤으로 알렉산드리아를 봉쇄하기 위해 출항했던 전 오스만 제국 해군이 무함마드 알리에게 투항하는 바람에 마흐무트 2세는 홧병으로 지병이던 결핵이 악화되어 사망했다고 전해진다.(...) 이것을 보면 오스만 제국의 군사력이 얼마나 형편없고 약해졌는가를 알수 있다.

황당해진 유럽 열강들은 이집트에게 철수를 요구했으나, 프랑스가 이집트를 후원하고 있었으므로 무함마드 알리는 옛 이집트-시리아 왕국을 재건하여 독립하는 것을 넘어서서 아예 콘스탄티노플까지 정복하여 오스만에 갈음하는 새로운 이슬람 제국을 세우겠다는 야망 하에 프랑스가 알아서 해주리라고 여기고 가볍게 씹어버렸다. 결국 영국이 함대를 파견하고 침공 위협을 해보이자 그때서야 침공을 중단하고 전 시리아를 도로 돌려주고 형식적인 오스만 제국의 속국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알리는 최초의 목적인 이집트와 수단의 세습을 확립했고, 이후 1956년까지 이집트를 통치하게 되는 이집트의 마지막 왕조인 무함마드 알리 왕조를 설립하게 된다. 이집트의 왕은 아니고 총독이라는 칭호를 사용했지만 권력은 왕이나 다름없었다.

무함마드 알리의 후손들은 1914년부터 술탄을 자처하였으며, 1922년 영국의 보호국이 됨과 동시에 영국이 이집트의 독립을 인정하면서 비로소 왕이라는 칭호를 쓴게 된다. 이로서 이집트는 여전히 형식적으로는 오스만 제국의 속령이긴 하지만 사실상 오스만 제국에서 떨어져 나가게 된다. 다만 당시 기록을 보면 이때 이집트에서는 여전히 오스만 제국으로 세금을 납부했으며, 1860년대까지 오스만 제국 전 속령중 가장 돈이 많이 들어오는 지역이 남동유럽 다음으로 바로 이집트였다.(...) 그래서 이집트가 완벽하게 독립했을때는 오스만의 세수를 감소시켜 경제에 큰 타격을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