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역대 국왕 | ||||||
루이 8세 | ← | 루이 9세 | → | 필리프 3세 |
이름 | 성왕 루이(saint Louis)[1] |
생몰년도 | 1214년 4월 25일 ~ 1270년 8월 25일 (56세) |
재위기간 | 1226년 11월 8일 ~ 1270년 8월 25일 |
출생지 | 프랑스 푸아시 |
사망지 | 튀니지 튀니스 |
루이 8세의 아들로 아버지가 이른 나이에 사망하면서 오랜 재위 기간을 누렸다. 어린 나이에 즉위해서 섭정을 받았으나 친정을 한 이후에는 중세 시대의 완벽한 왕으로 칭송받았다.
감찰관을 파견하여 행정관을 감독하였고, 파리에 항구적인 법정인 고등법원을 설치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너무 신앙심이 깊은 나머지 십자군 전쟁에 지나칠 정도의 열정을 쏟았는데 1248년 참가한 제7차 십자군 전쟁에서는 그 이듬해에 포로가 되었으며, 1270년 제8차 십자군 전쟁 때는 튀니스에서 병사하고 말았다. 그의 유해를 프랑스로 데려오기 위해서 시신을 삶아 살은 발라내고 뼈만 골라내어 가져왔다는 이야기도 있다...... 오메
루이 9세 치하에서 프랑스는 번영과 안정을 누렸으며, 서유럽의 중심 국가로 부상한다.
프랑스 군주 중 유일하게 시성된 왕으로 미국의 세인트루이스 시, 프랑스의 생 루이 섬, 브라질의 상루이스 시 등의 이름이 여기서 나왔다.
카페 왕조의 국왕이었지만 동시에 발루아 왕조와 부르봉 왕조의 시조에 해당하기도 한다. 이 사람의 자식들에게서 카페 왕조와 부르봉 왕조로 나누어졌다. 그의 차남 필리프 3세는 카페 왕조의 왕이 되었고 막내아들이자 육남 로베르는 클레르몽 백작이 되었는데 그의 먼 후손인 앙리 4세가 부르봉 왕조를 창건했다. 더불어 필리프 3세의 막내아들 샤를의 아들 필리프 6세는 발루아 왕조를 창건했다.
징기스칸 4에서 나왔는데 오리지널에서는 병맛 능력치을 가졌지만 PK에서 상향이 되었다. 74/72/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