武陔
생몰년도 미상
서진의 인물. 자는 원하(元夏).
패국 죽읍 사람으로 동생인 무흠, 무무와 함께 소년 시절부터 칭송받았고 한결같이 명망이 있었지만 향리의 어른들은 그들이 얼마나 훌륭한지 깨닫지 못했으며, 사람을 잘 알아보는 것으로 유명한 같은 군의 유창이 무주를 찾아갔다. 유창이 세 아들이 모두 나라의 준재라면서 무해가 기량이 가장 뛰어나 재상의 기풍이 있어 벼슬길에 힘쓰면 삼공 다음 가는 작위가 될 수 있을 것이라 했다.
무해는 진태와 교우를 맺었고 사마소가 진태와 아버지인 진군을 비교하면 어떻냐고 묻자 국가의 위엄과 교화를 펼치는 것은 진태가 진군만 못하지만 통솔력을 가지고 간략하게 해 공을 세워 일을 완성하는 것에서는 진태가 진군보다 뛰어나다고 했다.
태시 연간[1]에 상서가 되고 인사를 담당했다가 좌복야, 좌광록대부, 개부, 의동삼사가 되었으며, 벼슬을 지내던 도중에 사망해 시호를 정(定)이라 했다.- ↑ 265 ~ 274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