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width=100 돌궐 제2제국의 역대 가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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默啜可汗
(? ~ 716)
돌궐 제2제국의 제2대 가한. 튀르크어로는 카프간 카안(Kapgan Kağan). 일테리시 카안(İlteriş Kağan, 힐질리시가한)의 동생. 이름은 아사나묵철(阿史那默啜).
691년에 힐질리시가한이 죽고 그 아들이 어리자 왕위를 빼앗아 가한이 되었으며, 693년 12월 25일에 영주를 공격했고 당나라에 군사를 파견하자 물러났다. 696년 겨울 10월에는 당나라에 사신을 파견해 항복을 청해 좌위대장군, 귀국공에 임명되었고 묵철가한은 혼인을 요청하면서 하서의 항복한 자들을 모두 돌려보내달라고 요청하면서 당을 위해 거란을 토벌하겠다고 해 좌위대장군, 천선가한에 임명되었다.
696년 겨울 10월 22일에 송막을 습격해 이진충의 처자식, 손만영의 처자식 등을 붙잡았으며, 697년에는 영주를 공격하고 1월 26일에 승주를 노략질했다가 안도매에게 격파되었다. 698년에 8월 26일에 비호를 공격하고 28일에는 정주를 함락해 자사 손언고를 비롯한 수천 명을 살해하면서 측천무후가 묵철을 참철(斬啜)이라 했으며, 9월 26일에 조주, 정주 등에서 노략질해 남녀 1만여 명을 모두 죽였다가 염지미를 당나라에 돌려보내고 사막 북쪽으로 들어가 40만 명을 거느리면서 만 리를 점거해 서북의 여러 이족들이 묵철가한에게 붙어 중국을 매우 가볍게 여겼다.
701년 8월에는 변경을 노략질했고 703년에는 사신을 보내 딸을 당나라의 황태자의 아들에게 시집보내게 해달라고 요청했으며, 704년에 화친을 하기로 하면서 698년 8월부터 억류한 무연수를 돌려보냈다. 706년 12월 9일에 명사를 공격해 사차충의와 전투를 벌였으며, 이후 묵철은 무리를 모아 서쪽으로 가서 돌기시를 공격했다.
711년 1월 7일에 사신을 파견해 화친을 청했고 3월에는 당나라에서 금산공주를 보내자 결혼했으며, 713년 가을 7월 25일에 양자를 보내 혼인을 요구해 당나라에서 남화현주에게 양자의 처로 보냈다. 714년 여름 4월 25일에 당나라에 사신을 파견해 혼인 관계를 맺자고 요구하면서 스스로 건화영청태부마 천상득과보천남 돌궐성천골돌록 가한이라 호칭했다.길다
늙고 쇠약하면서 폭정이 심해졌고 갈라록, 호록옥 등의 부락이 당나라에 항복하는 사태가 벌어졌으며, 묵철가한은 군사를 일으켜 갈라록, 호록옥, 서니시 등을 공격해 여러 차례 깨뜨리자 당나라에서는 군사를 보내 구원하게 했다. 716년에 북쪽에 가서 발예고를 공격했다가 독락수에서 이들을 격파하자 승리한 것을 믿고 돌아가는 길에 대비하지 않다가 발예고에서 흩어진 병사 힐질략으로부터 미루나무 숲에서 갑자기 공격을 받아 참수되었다.
카프간 카안이 신당서에 따르면 홀로 있을때 자장(군진에 소속된 장교 중 소장급으로, 요즘으로 따지면 잘해야 중~대대장급 쯤 되는 지위) 학령전과 우연히 만나 참수당했다고 하고, 통감에 따르면 반란을 일으킨 발예고를 완파하고 승리감에 취해 경비병 없이 홀로 돌아가다가 발예고의 패잔병 일부와 우연히 조우, 공격받아 사망하고 그 수급이 자장 학령전에게 보내졌다고 한다. 정말 이것이 측천무후와 대등한 위치에 서서 하북을 총공깽으로 몰아넣으며 유목민족 전체를 아우르던 위대한 가한의 죽음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허무하다.
칸위는 아들 부구가한이 계승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왕위를 빼앗겼던 힐질리시가한(일테리시 카안)의 아들 빌게가 부구가한을 죽이고 비가가한으로 칸위에 올랐다.
여담으로 KBS의 사극 대조영(드라마)에서는 돌궐족의 다른 인물들은 톤유쿡, 이넬, 빌게 등등 터키어 이름으로 나오는데 유독 묵철만 한자 이름으로 출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