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한국 최초의 법의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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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법의학계의 태두. 1925년생.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이후 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원래 법대에 가고 싶었던 그는 재학중 우연히 서점에 들렀다 관심을 갖게된 해외의 낯선 학문 법의학이란 분야에 꽂혀서 법의학자가 되기로 결심했다. 대학 졸업 후 국과수에 들어가 법의관으로 활동했고, 그후 1970년에 고려대학교 의대 교수로 자리를 옮겼다.[1]1976년에는 법의학의 불모지인 한국에 최초[2]의 법의학교실인 고려대학교 법의학교실을 설립하였다. 그후 여러 곳에서 법의학 관련 강연을 하고, 법의학 관련 연재 활동을 활발히 했다. 1990년에 고려대 의대 교수에서 정년 퇴임하고 현재는 여러 저작을 통해 대중들에게 법의학을 알리고 있다. 우리나라 법의학을 홀로 개척하신 선구자, 많은 법의학 교수들이 이 분의 영향을 받아 법의학에 투신하게 되었다.[3]
장기려의 제자이다.
예술에도 상당히 조예가 깊은데, 미술과 범죄 라든가 그림으로 보는 신화와 의학, 명화로 보는 사건 등 서점에서 문국진의 책을 찾아보면 일반 법의학책보다 미술사와 접목시킨 책이 더 많이 나온다(…)
2014년에 대한의학회 명예의 전당에 올랐다.
자녀인 문태영 박사는 국내 유일의 곤충법의학자로 고신대학교에서 교수를 하고 있다.
오대양사건도 부검을 맡았는데, 관련된 인터넷 기사에서 악의적인 협박 댓글이 달려있던 적이 있었다. 그리고, 후에 세월호 침몰과 맞물리면서, 장기려박사는 제자들이 해상에 관련된 유명한 사건에 직간접적으로 연관된 우연성도 가지게 되었다.
1.1 저서 일람
- 최신 법의학
- 법의관이 도끼에 맞아 죽을 뻔했디[4]
- 지상아
- 새튼이
- 예술작품의 후각적 감상
- 죽은 자의 권리를 말하다
- 법의학이 찾아내는 그림 속 사람의 권리
- 한국의 시체 일본의 사체 - 일본 법의학자 우에노 마사히코와 공저. 서로 문답 형식으로 한일 양국의 법의학, 죽음에 대한 관념 차이 등을 서술한다.
- 법의학으로 보는 한국의 범죄 사건
1.2 읽을거리
2 통일교 종교인
문선명의 4남이며 선문학원 이사장을 맡고 있다.- ↑ 국과수 재직 시절에도 고려대학교 병리학 외래 교수로 출강하곤 했다.
- ↑ 사실 경성제국대학에 법의학교실이 있었으나 해방 후 미국의 제도를 본따 의대 제도를 만들다보니 법의학교실이 모두 없어졌다.
- ↑ 대표적으로 서울대학교 의대 이윤성 교수는 서울대학교 의대 본과 2학년 재학 당시 고려대학교 의대 본과 4학년에 재학 중이던 형이 문국진 고려대 교수의 법의학 강의를 듣고 왔던 것을 계기로 법의학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 ↑ 이 제목은 시체에 칼을 대는 것을 두벌주검으로 보던 시절에 한 피해자의 시신을 해부하려다 피해자의 할아버지가 문국진 교수의 머리를 향해 도끼를 내리찍은 에피소드에서 따온 것. 여담으로 이 사건은 법의학 교과서에서 까지 실렸다....그리고 '죽을 뻔했디'는 오타가 아니고 정말 책제목이 그렇다. 문국진 교수가 평양 출신이기 때문에 서북 방언을 쓰기 때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