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선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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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식

1 개요

통일교의 창시자. 평안북도 정주군 출생. 1920년 1월 6일 ~ 2012년 9월 3일. 문선명(文鮮明)으로 대외에 알려져있으나 본명은 문용명(文龍明)으로 통일교에서는 참아버지이자 메시아 통일교의 성령. 부인 한학자와 함께 참부모님으로 통칭.[1]

여러번 대관식도 열어 세계의 황제(...)에 등극했음을 알리기도 했다. 그래서 군주가 살아있을 때 받는 존호(...) 역시 받았는데 그게 바로 천일국 진성덕황제 억조창생 만승군황(天一國眞聖德皇帝 億兆蒼生萬勝君皇). 천일국의 성스럽고 덕이 있는 참다운 황제이며, 이 세상만물 모든 생명의 군주라는 무시무시한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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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문선명의 을 봉인한 석관[2] 위에 쓰여진 "천일국 진성덕황제 억조창생 만승군황" 존호. 장례식때엔 실제로 이 문구가 쓰였다.

통일교 초기 교주로서는 아니고 성공한 기업인으로 뉴욕타임즈 등 미국 유력 언론에 짧게나마 소개된 적이 있다. 그의 유명세가 허세는 아니었는지 토머스 헤리스의 소설 한니발 극초반에 이 인간에게 경찰이 건물을 싸게 임대했네 어쩌네 하는 구절이 나온다.뭐 이런 소설 하나로 영향력이라고 말하기는 부끄럽지만

2012년 8월 15일, 이런 상황에서 교주인 문선명이 폐렴과 그에 따른 합병증으로 상태가 위독하여 중환자실에 입원하였다고 한다. # 이후 8월 31일 현대 의학으로는 낫기 어렵다는 진단이 나와 죽음을 준비해야 할 것으로 추측되었고 # 결국 9월 3일 오전 1시 54분 사망하였다.

참고로 이그노벨상 경제학 부문의 수상자이기도 하다. 합동결혼식이 경제적 가치를 인정(?) 받았다고.(...)

2 주요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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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과의 만남. 남북한 최고의 사기꾼들.

1991년 문선명이 북한을 방문해 김일성과 회담을 가졌었는데, 사실 김일성은 문선명을 만날 예정이 없었다. 그런데 문선명이 북한의 국회격인 만수대 의사당에서 노동당 간부를 비롯한 여러 북한 요인들을 앞에 두고서

  •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 공산주의는 금방 망한다."
  • "남쪽에 심어놓은 고정 간첩 2만명을 전부 자수하도록 지령하라. 그러면 내가 하나님 주의로 그들의 사상을 바로잡아 민족을 위해 헌신하도록 만들겠다."
  • "한국전쟁은 북침이 아닌 남침이다. 전세계앞에 남침을 사과하라."
  • "주체사상으로는 안된다. 오직 문선명주의(...)로 통일을 해야 한다."

이런 발언을 그것도 탁자를 내리치며 거의 호통조로 연설한 것. 이 때까지만 해도 문선명을 친절히 안내해주던 김달현 부총리의 얼굴이 무섭게 굳어졌고 다른 북한 간부들이 야유를 보내는 등 분위기가 상당히 안 좋았다고. 3번째는 맞는 말인데?

이에 대해 같이 갔던 박보희 세계일보 회장이 김일성과 만나는건 물건너갔다고 체념하자 문선명은 도리어 "내가 이런 말 했다고 김일성이 안 만나겠다면 쩨쩨한 거지. 그래서 안 만나겠다면 만날 필요 없어."라고 대꾸했는데, 김일성은 김달현 부총리로부터 이 발언을 보고받자마자 껄껄 웃으며 "저런 배포를 가진 사람이라면 만나야지."라면서 문선명과 단독 회동을 했고 이 자리에서 두 사람은 의형제를 맺을 정도로 친해졌다. 특히 이 때 오찬도 겸했는데 김일성이 내놓은건 언감자국수. 두 사람 다 고향이 평안도였는데 언감자국수가 평안도 음식이라 서로 이런저런 얘기를 하면서 잘 먹었다고. 이러한 일화들이 대부분 앞에서 말한 그의 자서전에도 포함되어있다. 물론 자서전이니만큼 필터링도 필수.

이렇다보니 1994년 김일성이 사망했을 때 남측에서 유일하게 조문을 보낸 단체 역시 통일교였다. 당시 세계일보 회장 박보희를 베이징을 거쳐 북한으로 보내려했는데 주중 북한 대사관이 조문을 안 받는다며 난색을 표하고 이를 문선명에게 보고하자 문선명이 노발대발하면서 말한 게 압권. "뭐라고? 조문을 안 받아? 내가 보내는 사람은 달라. 끝끝내 조문을 안 받는다고 하면 압록강을 헤엄쳐서라도 들어가 조문해!"(...)

결국 주중 북한 대사가 김정일에게 이를 보고했고 김정일은 통일교 관계자들을 잘 모셔오라고 얘기해서 조문이 성사되었는데, 이 때문에 박보희는 나중에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구속 위기에 놓이면서 5년간 해외에서 유랑(...)하다가 김대중 정권이 들어서고 나서야 입국했다고. 아무튼 이래저래 북한과 사이는 꽤 좋은 편. 문선명의 90살 생일 때는 김정일이 생일 선물로 산삼 등의 선물을 보내주었다고 한다. 흠좀무. 관련기사. 이 때문에 보수 측에서는 통일교를 종북이라며 까는 경우도 있다. 근데 북한에서 주체사상은 안된다고 이야기한 사람인데? 그거야 본인주장이고

그래도 이렇게 한게 나중에 미국이나 한국정부에 나름 도움이 되었다. 1994년 북핵위기때 독재자 킬러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이 북한을 방문해 남북정상회담을 이끌어 낸 것이나, 노무현 전 대통령이 제 2차 남북정상회담을 열었을 때도 통일교가 가진 대북 핫라인의 도움을 받았다고 한다.링크

2015년 8월 30일 김정은이 문선명의 3주기를 앞두고 유족들에게 애도의 메시지를 보냈다. 참고로 김정은은 문선명의 사망 당시에도 조전을 보낸 바 있다.

문선명 사후 세계일보에서 문선명의 위엄을 '인증'(...)하는 사진들을 선보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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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6월 4일 펠레와. 이로부터 정확히 10년 3개월 후 문선명은 사망했다 웃기게도 1994년 김일성이 곧 죽을 거라고 예언했다며 월간조선이 대문짝만하게 보도한 무속인 심XX이 1995년 문선명이 오래 안 가 곧 죽을 것이라고 책에서 주장했는데 17년이나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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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2월 14일 경기 가평군 설악면 청평수련원에서 열린 '평화의 왕' 추대식. 이 날 참아버님과 참어머님으로 진정한 우주대왕(...)으로 즉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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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7월 15일 '2005 피스컵코리아' 개막전에서 박근혜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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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7월 5일 충남 천안시 백석동 유관순 체육관에서 열린 그 유명한 합동결혼식.

3 가족관계과 후계 구도

문선명은 40세인 1960년에 17세인 한학자와 결혼했다. 이는 완전히 원조교제(...) 아니, 키잡[3] 수준. 더 충격적인 건 이 결혼은 재혼이었다. 전처 최선길과의 사이에는 아들 문성진 1명이 있다. 허나 문선명의 선교활동 몰입과 북한에 있을 때 탄압으로 인한 문선명의 노동수용소 수감이 원인이 되는 장기간의 별거 등을 극복하지 못하고 1953년에 이혼. 근데 나중에 전처 및 전처 소생의 아들도 통일교 신자가 된다. 더구나 결혼 이후 한학자를 몇 년 동안 가혹한 환경에서 굴리는 것을 자서전에서 밝히고 있다. 물론 부부는 서로 배려하는 것이며 이렇게 안 하면 통일교 신자들 사이의 여론이 좋지 않았을 것이라는 등의 포장 발언들이 있지만, 당연히 좋은 행동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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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선명 총재와 어린 시절 7남 6녀 가족사진

그들에게는 슬하에 7남 6녀가 있었다. 문선명의 아들 중 장남인 문효진은 마약 논란 등 사생활에서 많은 문제를 보이면서 첫 부인 홍난숙과 이혼했는데, 그가 미국에서 문선명 가족과 통일교의 내부 문제를 고발하는 수기를 출간해 통일교가 큰 타격을 입으면서 자연스레 후계에서 밀려나게 되었다. 문효진은 2008년에 사망.[4] 전처 홍난숙이 미국 방송과 인터뷰한 영상을 보면 그야말로 막장 드라마 뺨치는 충공깽이다. 홍난숙씨의 목소리가 참으로 아름답다. 3녀인 문은진은 남편에게 학대당하던 자신을 오히려 비난하는 부모에게 질려서 집과 연을 끊었고 통일교의 실체를 고발한 홍난숙을 지지하며 쉴드를 치게 된다. 참고로 그도 문선명을 메시아로 인정하지 않는다. 그에게 문선명은 그저 아버지일 뿐이라고 한다.

둘째인 문흥진은 20세가 되기도 전에 교통사고로 사망했는데, 문선명은 이 아들을 지극히 사랑하여 그의 환생이 있다고 믿게 되었다. 여기에 대해서 떠도는 풍문에 의하면 어떤 동남아계 외국인을 그의 환생이라며 통일교 내부로 끌고 들어와 '흥진님' 이라고 부르게 했고 그 흥진님은 한동안 폭력을 동반한 무소불위의 권력을 교단의 심층부에서 휘두르다 어느 순간 증발했다고 한다. 나중에 행방을 추적해보니 고국으로 돌아가 신흥종교를 차려 교주가 되어있었다는 내용이다(...).

이후 이미 세계재단 리더로 사업경영 수완이 좋고 처가가 통일교 재단 내에서 위치가 높았던 3남인 문현진이 후계자가 될 가능성이 높았지만, 메시아론에 대해 아버지 및 형제들과 의견 차이를 보이며 사실상 파문당했다. 이제 사이즈 불릴 만큼 불렸으니 종교적 아이덴티티로 헛짓거리 하지 말고 재벌로 정체성을 굳히고 나가자고 하다가 불경죄를 처맞은 셈이다. 차라리 솔직해서 좋다. 문현진이 이탈한 통일교 측에서는 문현진이 맡은 통일교 공적자산 운용에서 문현진이 전횡을 휘둘러서 그랬다고 주장한다. 당연히 우주황제 문선명은 대노했고(...) 이 일은 "가족의 가치"를 교리상에서 무진장 강조하는 통일교에 꽤나 상징적인 타격을 입혔다. 그리고 실질적으로도, <통일교세계재단> 이사장인 3남 문현진은 자신의 처가쪽과 연합하여 소위 통일교 왕자의 난을 일으키고 통일그룹의 많은 쉐어를 가지고 이탈했다. 문현진의 장인이 당시 통일재단 이사장이어서 가능했다. 그 뒤로 통일교세계재단과 통일재단은 재판으로 치고 받고 싸우는 중이다.

결국 <통일교 교단> 자체는 7남인 문형진을, <세계기독교통일신령협회유지재단> aka 통일재단은 4남인 문국진을 각각 후계자로 삼았으며 이 둘을 총괄하는 통일교 총재직은 부인인 한학자가 승계했다.# 그리고 문현진의 <통일교세계재단>, aka UCI재단과 서울의 2조 짜리 땅뙈기를 놓고 송사대결에서 진 문국진은 다시 자리에서 교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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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문선명의 7남이자 2008년 취임한 통일교 세계회장 문형진(1979. 09. 26~ ). 하버드 대학교 비교종교학 석사 출신이라고 한다. 세계회장이라곤 하지만 실권은 어머니 한학자가 쥐고 있으며 문형진 본인은 얼굴마담이라고 볼 수 있다. 재미있는 점은 문형진이 불교를 좋아해서 기독교 계열의 신학대학을 다닐 시절에는 자기가 다니는 학교에서 가르치는 게 기독교 교리였음에도 불구하고 머리를 삭발하고 승복을 입고 돌아다녔다고 한다. 장로교 신학대학을 다니면서 스님처럼 하고 다녔다는 얘기. 위의 우주대왕 즉위식(...) 사진에서 삭발하고 있는 사람이 바로 그다. 헌데 2015년 세계회장 직책에서 물러났다(...). 통일교 내부에는 여러 파벌이 존재하는데 그 중 한 파벌을 이단으로 간주하고 파문을 시켰는데 그 파벌의 교세가 막강했던지라 되려 문형진이 통일교 세계회장에서 쫓겨났다. 후임으로는 문형진의 누나이자 문선명의 4녀인 문선진이 취임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문선명의 아들들은 모두 죽거나 팽당했다. 통일교의 입장에서는 여러가지 부분에서 문선명의 차남 故 문흥진의 죽음이 뼈아팠다. 문흥진이 살아있었다면 문흥진을 중심으로 강력한 중앙집권체제를 형성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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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동생이 쫓겨난 후 후임이 된 누나 문선진(1976~)

문선명의 자녀들은 다음과 같다. 나이 순.

  • 장녀 문예진(1960~)
  • 장남 故문효진(1961~2008)
  • 차녀 문인진(1965~)
  • 차남 故문흥진(1966~1984)
  • 3녀 문은진(1967~)
  • 3남 문현진(1969~)
  • 4남 문국진(1970~)
  • 5남 문권진(1975~)
  • 4녀 문선진(1976~)
  • 6남 故문영진(1978~1999)
  • 7남 문형진(1979~)
  • 5녀 문연진(1981~)
  • 6녀 문정진(1982~)

이렇게 써놓고 보니 장녀 문예진은, 6남 故문영진부터는 어머니인 한학자보다도 나이차가 많이 난다. 장녀인 문예진과 어머니인 한학자는 17년 차이인데 장녀인 문예진과 6남인 故 문영진과는 18년 차이, 그리고 막내인 문정진과는 22년 차이가 난다. 즉 부모와 자식보다 형제자매 간의 나이차가 더 많은 것이다. 또 나이가 어린 자녀일수록 미국에서 쭉 생활한 경우가 많다보니 한국말을 잘 못하는 경우가 많고, 문선명은 영어를 잘 못해 아버지와 자식간에 의사소통 자체가 안 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5녀 문연진(영어 이름 Kat Moon)은 2006년 미국 서바이벌 프로그램 Survival of the Richest에 출연하여 스스로 문 총재의 딸이라며 재산이 수십 억 달러라고 밝혔다. 다소 냉소적인 표정의 그는 첫 회에서 탈락했다. 뭐야, 이게 끝이야? 이 프로그램은 너무 돈이 많아 한번도 일해 본 적이 없는 일곱 명의 재벌 2세들과 가난한 청년 노동자들 일곱 명이 한 지붕 아래서 합숙하며 한 팀을 이뤄 힘든 일에 도전하는 내용이다. 우승 상금은 20만 달러이다. 수십 억 달러 재산이 있는데 이런 게 눈에 들어왔겠어? 냉소적인 표정이 그걸 말하는 거였겠군. 그런데도 나오는 건 이유가 있다. 재벌 2세는 자기 명성을 높이러, 청년 노동자들은 상금을 받으러 나오는 것이다. 명성이란 돈 주고 사올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1981년 뉴욕에서 태어난 그는 뉴욕대에서 신문방송학과 경제학을 전공했으며, 다큐멘터리 감독이 되려는 포부를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리드 온'이라는 영화에서 다이앤 역으로 출연했다고 밝히고 있지만 IMDB에서도 그런 영화는 찾을 수 없었다. 조선일보 기사. 통일교 홈페이지.

자녀들 중 일부는 여러 가지 이유로 다른 가족과는 거리를 두거나 심지어는 통일교를 거부하고 가족과의 인연을 끊고 사는 이도 있다. 이미 사망한 장남 이외에도 통일교 교리에서는 엄격히 금지되는 혼외정사 등으로 구설수에 오른 인물들도 있다.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 없는 거야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가족을 강조하는 통일교의 가르침을 교주의 가족부터 제대로 구현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아이러니이다. Time의 과거 기사. 영어 압박. 내부적으로 곪아왔던 이른바 '참가족' 내부의 많은 문제들이 문선명 교주 사후 결국 통일교 내부를 넘어 밖에까지 알려지기 시작하고 있다.

여담으로 엄청난 정력의 소유자인듯. 그래서인지 막내인 문정진은 1982년에 즉 그의 나이 63세에 보았다고 한다.오메 힘이 남아도네

4 트리비아

통일교 교리상 문선명은 메시아이기는 하지만 영생인 존재는 아니다. 기독교적 관점에서는 메시아임을 주장하는 교주가 사망했는데 어떻게 종교가 유지되는지 이해가 안 가겠지만 교주 사후에도 어쨌든 큰 문제 없이 조직 자체가 유지되는 것은 메시아관의 차이가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통일교는 문선명을 '신도들 마음속에 살아계시는 성령' 을 강조하였다. 통일교의 모든 기도에는 마지막에 '보혜사 문선명 참아버지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라는 구절을 넣게되었다. 교리적 측면에서 더 큰 문제는 문선명의 가족인 '참가족'의 분열과 타락이 더 심각한 문제이며, 그 문제는 현재진행형이다.

'문선명'을 로마자Sun Myung Moon이라고 쓴다. 선문대학교?[5] 표준 로마자 표기법을 따르면 Mun Seonmyeong.

하지만 정작 영어권에선 통일교인들을 조롱하는 어투로 무니(Moonie)라고 부른다. 이런 신조어가 탄생한 까닭에 영어사전에 등재된 거의 유일한 한국인인게 아이러니. 손바닥만한 콘사이스 사전에도 있을 정도다. 때문에 통일교와 아무 관련도 없는 반기문 UN 총장이 선출 당시 '문선명 친척 아냐?' 하는 오해를 사기도 했었다. '반기문'의 공식 로마자 표기를 'Ban Ki-moon' 이라고 쓰는데 Ki-moon을 Ki 씨와 Moon 씨가 합한 것으로 보아서인 듯.... 표기법 통일이 시급합니다 그래서 오래된 정보에는 반기문의 종교에 '통일교' 라고 되어있는 것도 있다. 공식적으로는 무종교이나 그의 어머니는 독실한 불교신자인 것을 확인한 책이 있다. 그나저나 문씨라는 이유만으로 통일교인이라고 오해받는다니 우리나라 40만 문씨들은 어이없을 듯.이분이 대통령되면 난리날듯

Moon(月) + Sun(日) = Myung(明)이라는 이름개그도 존재한다(...)

시중에 그를 찬양하는 어린이용 사이비 만화책이 많이 나돌아다닌다. 있지도 않은 사실을 부풀려 쓰는 등 일개 교주를 신격화한다고 수작고생 많이 한 듯. 문젠 일부 교회 목사들도 이짓거리를 하고 있다는 점.

1998년 조사로 문선명일가의 추정자산은 약 2조원. 다만 어디까지나 추정자산이며 당시 경제거품까지 생각해보면 실제로는 거리가 멀었을 것이다. 왕족 자식들에게 다 나눠졌겠지만 역시 삼성일가보다 높은거 아니냐는 오해를 사기도 하지만 당연히 그정도급은 안된다. 실질 자산을 보면 국내자산순위 20위권도 안된다.지만 종교장사로 저정도 벌었다는게..

예술과 엔터테인먼트에 조예가 깊어서 리틀엔젤스, 유니버셜 발레단, 선화예술고등학교 등을 창립했다. 특히 유니버셜 발레단은 대한민국 넘버원의 발레단체이다. 그런데 여기는 이 인간이 왜 촬영했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없는 영화[6]가 있는데 그것이 바로 오! 인천이다. 오! 인천은 영화 자체는 완전히 말아먹어서 문선명 본인을 비웃음의 대상으로 올려놓고 말았지만 이 영화를 통해 문선명은 대배우 로런스 올리비에를 구해줬고 그 외의 이 영화 제작에 참여한 사람들에게 돈을 아예 소방호스로 뿌려대서 상당수의 사람들에게 자선사업을 했다. 어느 정도냐 하면 주요 배우들의 개런티를 매일마다 헬기에 가득 실어서 공수했을 정도였다.
  1. 한국 사이비 종교계의 대부다운 이름이다. 또 하나의 주체사상이라고 봐도 무방.
  2. 장례식 때는 저 석관을 재궁이라고 했다. 참고로 재궁은 임금의 관을 높여 부르는 말이다(...)
  3. 실제 자서전을 보면 완벽한 키잡이다.
  4. 여담으로 문효진은 음악, 특히 헤비메탈에 재능이 있어 평생 만 곡 이상을 작곡했다는 말이 있고, 몇몇 곡은 한국 헤비메탈 음악 사상 최고의 곡들이라고 칭송받기도 한다. 음악적 재능 하나만큼은 진짜배기였던 셈이다. 실제로 상당히 좋다 들어보자.
  5. 실제로 선문대는 통일교재단에서 운영하는 대학교이다.
  6. 정확히는 왜 이따위로 촬영했는지 알 수 없는 영화이다. 물론 오! 인천이 자기 교세확장용 홍보영화인건 맞는데 문제는 촬영하는 과정이 지나치게 개판이라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