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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문지은 (본명: 문경은) |
출생 | 1983년 10월 6일, 서울특별시 |
신체 | 168cm, 51kg |
학력 | 신구대학 의상디자인학과 |
데뷔 | 2008년 싱글 'Vivid' |
소속 | 자몽엔터테인먼트 |
링크 | 트위터 |
2008년 싱글 'Vivid'의 타이틀곡 '여우가'로 데뷔했던 여가수. 은지원의 랩 피처링과 도발적인 리듬의 댄스곡 '여우가'는 왕따춤이라는 안무로 많은 언플을 시전했다.
문지은은 놀랍게도 지금은 대형기획사가 된 스타쉽엔터테인먼트의 소속 여가수였다. 당시 같이 소속됐던 포켓걸 이현지의 언플도 대단했지만, 문지은을 띄우기 위해 온갖 노이즈 마케팅을 펼쳤던 스타쉽. 처절한 중소기획사의 생존 전략이었겠지만 당시엔 이렇게 큰 기획사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정말 씨스타에게 큰 절을 올려야 하는.
은지원이 스타쉽 대표 김시대와 문지은과의 인연으로 데뷔곡에 피쳐링을 하게 됐었다. 과거 은지원의 3집 앨범[1] '문득' MV에 문지은이 여주인공으로 출연해 윤미래 파트를 립싱크 했었다. 문지은 역시 당시 연습생이었으며 김시대 대표가 스타쉽을 창설하며 자연스레 따라오게 된 것.
데뷔전부터 이효리-전지현의 대항마라며 엄청난 미모의 여가수가 데뷔한다고 언플했으나 막상 뮤직뱅크 첫방송에선 전지현이 아닌 개그우먼 박희진(안성댁)을 닮았다는 평을 듣게 됐다. 게다가 당시엔 드물었던 꼼수로 라이브[2] 무대를 펼쳐 각종 커뮤니티의 네티즌들의 질타가 이어졌었다. [3]
또한 여우가의 왕따춤이 쥬얼리의 E.T춤의 인기를 능가했다 라거나, 문지은이 고른 생수브랜드 맛 감별[4] 등등의 무리수 언플이 있다. 과한 노이즈 마케팅과 부족한 라이브 실력, 언플에 미치지 못한 실물(?) 여파로 이미지는 더욱 안좋아졌다.
데뷔곡 '여우가'의 활동이 끝난 후 방시혁이 작곡한 끈적끈적한 댄스곡 '몰라 몰라'를 리패키지[5] 후속곡으로 선보이게 됐는데, 곡의 완성도는 높지만 문지은의 실력과 2008 올림픽등의 악재로 그대로 묻혔다. 그런데 대부분 모를 이 노래를 이효리가 SBS 예능프로그램 패밀리가 떴다에서 유재석을 향해 이 노래를 알고 있느냐며 문지은의 '몰라 몰라'를 불렀었다. 같은 시기 'U-Go-Girl'로 활동하던 이효리의 귀엔 이 곡이 꽤 인상 깊었던듯(?).
이후 2008 유도 올림픽스타 왕기춘이 문지은의 열렬한 팬[6]이라며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를 장악하는 등 데뷔 이래 처음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언플의 대가 스타쉽 답게 문지은이 왕기춘의 러브콜에 화답하며 서로 문자를 주고 받는 사이가 됐다는 둥의 언플을 펼쳤다.
이후 2010년 9월, 소속사를 자몽엔터테인먼트로 옮긴 뒤,[7] 1년 반 공백끝에 두번째 싱글앨범 '히비예 히비요(Hibiye Hibiyo)'[8]를 발표하며 각종 예능프로그램에 출연하며 활발히 활동했지만 큰 반향을 일으키지 못하고 활동을 중단했다.
문지은과 동시대에 나와 활동한 솔로 여가수로는 손담비, 선하, 제이제이, 김소리, NS윤지 등이 있다. 그나마 뒤늦게 뜨게 된 손담비를 제외하면 걸그룹들에 파묻혀 이렇다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고 사라져갔지만, 반대로 걸그룹의 암흑기이자 솔로 여가수들의 호황기였던 2000년대 초중반에 나왔다면 이들도 어찌됐을진 또 모를 일. 곡의 퀄리티들은 다들 좋았기에... 인생은 타이밍이야 실제로 문지은이 연습생이던 시절이 걸그룹의 새 전성기가 도래하기전[9]이었음을 생각한다면 문지은 개인으로써는 아쉬움이 따를 것이다.
- ↑ 김시대 대표가 제작했던 앨범.
- ↑ 요즘 흔히들 하는 AR 깔아놓고 불렀다 안불렀다 하는 것. 이제는 대부분의 가수들이 하니까 꼼수같지도 않지만...
- ↑ 실제로 문지은과 태군이 이런 라이브 문화의 시초인셈. 그전까진 코러스까지 올라이브하는 추세였다.
- ↑ 블루마린 이라는 생수를 1위로 꼽았다. 대체 문지은이 왜 생수 맛을 감별해야 했을까.
- ↑ 이 리패키지 싱글엔 휘성이 여우가 랩 피쳐링 한 트랙이 추가 수록되어있다.
- ↑ 특히 뒷태, 엉덩이가 포인트라며...
- ↑ 스타쉽에서 투자한것에 비해 성적이 좋지 못했다. 자연스레 계약해지 수순을 밟은듯.
- ↑ 이 곡 역시 방시혁이 작곡했다.
- ↑ 2007년 후반부터 원더걸스의 히트를 필두로 전성기가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