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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하엘 타르나트 (Michael Tarnat) | |
생년월일 | 1969년 10월 27일 |
국적 | 독일 (deutschland) |
출신지 | 힐덴 |
포지션 | 레프트백 |
신체 조건 | 185cm |
소속 클럽 | MSV 뒤스부르크 (1990~1994) 카를스루에 SC(1994~1997) FC 바이에른 뮌헨 (1997~2003) 맨체스터 시티 FC (2003~2004) 하노버 96(2004~2009)[ |
국가 대표 (1996~98) | 19경기 |
1 소개
90년대 역사상 최고의 레프트백인 비셴테 리사라수와 라이벌 구도를 형성하여 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초까지 FC바이에른 뮌헨의 부흥을 이끌던 레프트백이다. 특히 그의 정교한 왼발킥은 바이에른 뮌헨의 강력한 공격루트 중 하나였으며 비셴테 리사라수가 만나는 팀의 상대 공격수마다 다 집어삼키기로 악명높은 수비수였다면 타르나트는 괴물에 가까운 정확도 높은 크로스로 바이언의 빵빵한 세트피스 지원의 무기였고 우월한 피지컬로 제공권 장악에도 능한 선수였다.
2 클럽 경력
1991년에 MSV 뒤스부르크 소속으로 분데스리가 데뷔전을 치루었고, 이후 그는 뒤스부르크 소속으로 2년간 58경기에 출장하였다. 1994년 여름, 그는 카를스루에 SC로 이적하여 토마스 헤슬러와 토르스텐 핑크와 더불어 팀의 슈퍼스타가 되었다. 그의 돋보이는 특징은 강력한 왼발슈팅으로, 타르나트는 분데스리가에서 가장 뛰어난 프리키커 중 하나에 이름을 올리게 되었다. 그는 카를스루에에 세 시즌 머물렀고, 그동안 리그에서 81경기에 출장하여 7골을 득점하였다.
이에 1997년 바이에른 뮌헨으로 이적하였고 최고의 레프트백인 리사라수가 버티고 있음에도 불구 그는 우수한 활약을 펼쳤고, 그 리자라쥐와 로테이션 경쟁을 펼칠 정도로, 바이에른은 유럽 최고의 레프트백을 자랑하게 되었다. 즉 2000년대 바이언 최고의 라이트 백인 윌리 사뇰의 원조격인 선수가 바로 이 선수라고 보면 된다.
하지만 캄프 누의 비극의 여파 때문인지 이 후 그는 부상 악령에 시달렸고 결국 리사라수와의 주전경쟁에서 완전히 밀리게 된다. 결국 2003년을 끝으로 뮌헨을 떠나 EPL 무대에 도전을 하게 되지만 30대 중반의 나이에 이미 경쟁력을 잃어버렸고 다시 분데스리가로 리턴하어 하노버96으로 이적한다. 그러나 하노버에서 화춘한 건지 무려 40세가 되도록 현역 주전을 뛰다가. 2009년을 끝으로 현역에서 물러나게 된다.
3 국가대표 경력
만샤프트에서 타르나트의 A매치 출장횟수는 매우 적은데 98년을 끝으로 더 이상 독일국가대표팀에 소집되지 못할 정도였다. 이 시기 이 후 타르나트는 부상악령에 시달렸고 결국 걸출한 풀백이 전무한 독일 대표팀은 2000년대 중반까지 암흑기에 접어든데다가 대체자원인 마르코 레흐머와 외어프 뵈머가 호러급 활약을 펼치면서 늙은 마르코 보데가 2004년까지 대표팀을 먹여살렸다. 이 후 필립 람이 폭풍성장을 하면서 독일 대표팀의 래프트백 문제가 해소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