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룡

1 소개

0060000001200003131439p1222.jpg

세계선수권 종합 우승자
리자준
(1999)
민룡
(2000)
리자준
(2001)

대한민국의 前 쇼트트랙 국가대표 선수. 그리고 파벌에 희생되어 선수로서의 커리어를 망친 최대의 피해자.

2 대략적인 경력

민룡은 82년생으로, 대구에서 태어난 선수였다. 하동초등학교를 나온 민룡은 4학년 때부터 쇼트트랙에 입문을 했고, 이후 오성중학교를 거쳐 경신고등학교에 입학했다.

민룡이 두각을 나타낸건 이때부터였다. 1999년 3월 전국남녀학생종합선수권에 등장한 민룡은 500미터 우승을 포함해 개인전종목에 입상 하면서 난데없이 혜성처럼 등장했고 이후 불과 2개월만에 국가대표가 되며 차세대 선수로 주목을 받았다.

당초에 국가대표팀에서 민룡은 경력이 부족한 만큼 착실하게 계주 역할을 맡고 있었는데, 이렇게 몇개월 동안 경험을 쌓은 민룡은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열린 99~2000 월드컵 쇼트트랙 1차 대회에서 1500m와 3000m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화려하게 자신의 이름을 쇼트트랙 팬들에게 각인시켰다.

이후에도 민룡은 다음 해 1월, 헝가리에서 열린 세계 주니어 쇼트트랙선수권 대회에서 남자부문 종합우승을 차지하더니,99~2000 월드컵 6차 대회에서 1000m와 3000m를 석권해 다시 한번 남자부 종합 1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이렇게 경력을 쌓아나가던 민룡에게 그야말로 결정적인 순간이 왔는데, 바로 세계선수권.

당시 민룡은 두각을 나타내고 있었던 선수였지만 국내 쇼트트랙의 간판은 어디까지나 김동성이었다. 따라서 민룡에게 기대된 역할은 김동성을 든든하게 뒷받침 하는 일이었는데, 민룡은 이를 넘어서는 활약을 했다.

당시 전해에 벌어진 1999년의 세계 선수권 대회에서 남자 1위를 한 선수는 대한민국 선수가 아니라 중국의 리자준이었다. 또한 다음 해에 벌어진 2001년의 세계 선수권 대회에서 남자 1위를 한 선수 역시 리자준이었다. 더구나 전해인 소피아 세계선수권에서 대한민국 쇼트트랙은 '노 금메달'의 수모를 얻었고, 에이스 김동성이 중간에 부상[1]으로 빠진 2000년은 3년 연속 남자 1위를 빼앗기는 수모를 당할 위기였다.

그런데 그 순간에는 민룡이 있었다. 당시 18세였던 민룡은 1,500미터에서 금메달을 따내고 이어진 3,000미터에서는 전 해 세계 선수권 1위인 리자준을 0.438초로 제치고 금메달을 차지했다. 여기에 더해 종합순위에서도 캐나다의 에릭 베다드를 누리고 1위를 차지, 세계 선수권 3관왕을 차지하고 국내 쇼트트랙은 에이스가 부상 당한 상황에서 오히려 세계선수권을 휩쓰는 대성공을 할 수 있었다.3관왕 기사 이렇게 드라마틱한 성공을 한 민룡은 당연히 여러 사람들로부터 한국 쇼트트랙을 짊어질 차세대 선수로 주목을 받았다.차세대 어린용에서 세계정상 공룡으로

3 부진과 부활

2001년의 세계선수권에서 민룡은 상대적으로 부진한 성적을 거두었다. 당시의 세계선수권은 홈인 전주시에서 열렸는데, 당시 한국의 간판스타인 김동성은 부상으로 참가하지 못했다. 그 외에 세계주니어선수권 3관왕 출신으로 두각을 나타내고 있던 이승재도 있었으나 역시 전해 3관왕인 민룡이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민룡은 전해와는 달리 비교적 부진한 모습을 보이며 남자 1,000미터에서 동메달, 남자 1,500미터에서 은메달을 따내며 은메달 2개에 그쳤다. 그러나 당시에 이 메달 외에 다른 국가대표 선수가 따낸 메달은 여자계주에서 은메달 한개가 전부로, 당시 민룡은 세계선수권에서 대한민국이 따낸 메달 3개 중에 혼자 2개를 따내며 썩 좋지 않은 폼으로 분전을 했다.

세계선수권에서는 기대보다 못했으나 보여준게 있었기 떄문에 민룡은 2002년 솔트레이크 올림픽 국가대표 중에 한 사람으로 이름을 올렸다. 동계올림픽 출전 쇼트트랙 국가대표 확정

이후 민룡은 다시 폼을 회복하면서 2001년 월드컵 1차전에서는 3000미터 결승에서 간판 스타 김동성을 누르고 우승하고, 1000미터 부분에서도 김동성에 0.132 뒤진 2위를 기록하며 정상급 선수로서의 기량을 과시했다. 소피아에서 열린 월드컵 4차전에의 1000미터에서도 민룡은 2위를 했는데 1위를 한 사람은 김동성으로, 김동성을 제외한다면 민룡은 3000미터 뿐만 아니라 1000미터에서도 자신이 세계최정상급임을 보여주었다. 사람들은 2002년 솔트레이크 올림픽에서 김동성, 민룡, 이승재 등이 있는 남자대표팀이 역대최고 성적을 낼 수 있을것이라 기대했다.한국팀 예상 성적은

그러나 그런 민룡, 이승재의 꿈은 불합리에 짓밟히게 된다.

4 꾸준히 성적을 냈으니 뽑을 수 없다

민룡은 올림픽에서 계주와 남자 1500미터에 나가기로 되어 있었고, 이승재는 김동성과 함꼐 500미터 부분에 나가고 역시 계주에 나갈 계획이었다. 두 선수 모두 워낙 실력이 좋아 개인전에 출전하는 일은 당연하고 다른 중요한 요소 하나는 1,000미터 부분이었다.

당초에 남자 1,000미터 부분에 나갈 한국선수로는 간판인 김동성이 한 자리를 굳건하게 차지하고 있었고, 다른 한자리를 가지고 꾸준히 좋은 모습을 보여준 민룡과 이승재가 경합을 벌이고 있었다. 이들은 세계대회 경력자이기도 했지만 당시의 실력 자체도 이승재가 월드컵 랭킹 2위, 민룡이 월드컵 랭킹 4위로 당시의 실력 역시 정상급이었기에 누가 뽑히더라도 이상할 것은 없었다.

그러나 놀랍게도 그 한 자리를 차지한것은 민룡도, 이승재도 아닌 풋내기 안현수였다.

당시의 안현수는 주니어 무대를 휩쓸며 실력을 보여주고 있었지만 어디까지나 주니어 대회에서의 경력일뿐, 세계대회에서는 아예 경력이 없었다. 당장 올림픽이 있었던 2002년에도 1월 무렵에는 춘천에 열린 세계주니어선수권 대회에서 참가해서 우승을 했고, 올림픽은 2월에 열렸기에 다른 경력 하나 없이 주니어에서 그대로 올림픽이라는 최정상급의 무대로 직행한 것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당당히 경쟁을 해서 이를 이기고 국가대표로 선발이 되었다면 전혀 논란이 될 것은 없다. 그러나 당시에 안현수는 선발전 등을 통과해서 자격을 획득한 것이 아니었다. 당시의 안현수는 아예 예비 논란에도 들지 못하는 선수였으나 1월 주니어 대회에서 활약하는 모습을 본 당시 대표팀 감독 전명규가 특별 추천 형식으로 안현수를 추천했고, 마침 이재경이 부상을 당해 이 자리에 들어온 것이다. 일반적으로 선수가 부상을 당했다면 미리 대회 등에서 능력을 보여준 경력자들 중 예비명단을 뽑아 그를 메꾸는게 보통이나 전명규의 추천 하나로 안현수는 선발전이고 뭐고 없이 그냥 주니어에서 곧바로 여러 선수들이 그토록 바라는 올림픽 무대에 올라설 수 있었다.빅토르 안 귀화 ‘오해와 진실’ 한국팀 예상 성적은

이미 국가대표에 선발이 된 과정부터가 파격 중의 파격이었는데, 이후 전명규는 더욱 파격적인 결정을 내렸다. 1000미터에 쇼트트랙 간판 김동성과 내보낼 선수로 안현수를 선택한것.

당시 안현수는 주니어에서 바로 대표팀에 들어온지 한달이 될까말까 한 상황이었기에 그런 결정 자체도 납득할 수 없는 일이었지만, 그 안현수가 제낀 민룡과 이승재는 지낸 한 해 내내 월드컵에서 활약한 세계 최정상급 선수였다. 실력도 정상급에 꾸준히 대회를 나가며 경력을 증명한 두 선수가, 선발전도 없이 갑자기 감독 연줄로 들어온 세계대회 무경력자에게 가장 영광스러운 올림픽 개인전 자리 중 하나를 빼앗긴 것이다.

상식적으로 이같은 사태를 정당화 시켜줄 명분은 아무것도 없다. 그렇다쳐도 당시에 감독이었던 전명규가 한 드립은 가히 가관인데, 세계대회에서 꾸준히 상위 입상하며 좋은 모습을 보여준 민룡과 이승재보다는 아예 경력이 없는 안현수가 전력 노출이 덜 되었다 라는 것이었다.당시 기사 1당시 기사 2 세상 천지에 여러 대회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다고 대표팀에 선발되지 못하는 황당한 경우가 발생한것. 이는 올림픽을 꿈꾸며 노력한 선수들을 엿 먹이는 말이나 다름 없는 일이다.

전명규는 한체대 파벌로 유명한 인물이지만 민룡은 계명대, 이승재는 서울대를 나왔기에 한체대 파벌이 아니었다. 승재의 경우 어린 나이에 낮에는 쇼트트랙 선수로 연습하고 밤에는 없는 시간 쪼내서 공부하던 선수였는데 그러거나 말거나 한체대를 나오지 않아 전명규에게는 얄짤 없었다.쇼트트랙 국가대표 이승재 서울대 합격 반면에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안현수는 이후 한체대에 입학한다.

이러한 결정은 심지어 빙상연맹 내에서도 반발이 있을 정도였는데 당시에 전명규가 워낙 강하게 나오는지라 결국 성사되었다. 안현수의 아버지는 그때 당시의 전명규에 대해 "너무나 감사한다." 는 말을 한 적이 있다.해당 기사

5 너무나 허망하게 날아간 꿈들

1000미터 출전을 억울하게 전명규에게 강탈당한 민룡은 곁다리로 밀려나 꿈의 무대 올림픽에서 김동성-이승재-민룡-오세종의 조합으로 5000미터 계주에 출전하게 되었다. 여기서 금메달을 땄다면 1000미터를 나가지 못한 부분에 대한 아쉬움을 약간이라도 풀었겠지만, 운명은 민룡에게 너무나 가혹했다.

파일:CPmUvv9.jpg

5000미터 계주에서 민룡은 20바퀴를 남겨둔 상황에서 역전을 위해 추월을 시도했다. 그런데 미국의 러스티 스미스는 왼쪽 팔꿈치로 민룡의 오른쪽 허벅지를 밀어버렸다.

파일:PIWzDXw.jpg
파일:KArchCy.jpg

속도가 붙은 상황에서 이런 반칙을 당하자 민룡은 곧바로 펜스로 밀려났고, 그 와중에 파비오 카르타도 같이 넘어지며 민룡의 허리쪽으로 부딫히는 바람에 부상이 커지고 말았다. 그나마 파비오 파르타가 넘어지며 쇼트트랙 날에 민룡이 다치지 않도록 자세를 잡아서 그렇지, 쇼트트랙 날에 잘못 맞았다면 선수 생명이 아니라 한 사람으로써의 인생이 흔들릴 수 있었던 위급한 순간이었다.

파일:H1Gi1AX.jpg
파일:7vrshfa.jpg

결국 큰 부상을 당한 민룡은 바로 병원으로 실려갔다. 당시 전명규는 재경기를 기대하고 부상으로 실려간 민룡대신 안현수를 투입시키려고 했으나, 되려 한국의 실격패가 선언되고 말았다.

파일:9tFLYwO.jpg

여기에 더해 당시 미국 언론은 진짜 아픈거 맞냐, 재경기 하려고 쑈 하는거 아니냐는 개드립을 쳐댔다. 이 계주 부상의 여파로, 민룡은 자신에게 주어진 유일한 개인전이었더 남자 1500미터 마저 안현수에게 넘겨주어야 했고 안현수는 준결승에서 떨어졌다.[2]

이렇게 되어 개인전을 빼앗긴 민룡은 계주에서마저 더티플레이에 농락되어 올림픽 대표의 꿈을 처참하게 유린당하였다.

너무나 아쉽게도 이때 부상을 당한 이후로 민룡은 선수로서의 커리어가 완전히 끝장나게 되었다. 이후 민룡은 마지막으로 아시아 쇼트트랙 선수권 대회 1500m에서 금메달을 따내기는 했으나, 그 외에는 선발전을 포함한 여러 대회에서 전혀 모습을 드러낼 수 없었다. 이승재의 경우 그래도 이후에 근근히 선수로 활약은 했으나 민룡은 불과 20세 즈음한 나이에 선수로써의 모든 커리어를 끝내게 된것.

여러 상황을 보면 민룡은 쇼트트랙 파벌의 가장 큰 피해자 임에 분명하지만, 다름 아닌 안현수가 연관된 파벌 문제기 때문에 빙상연맹이 미친듯이 욕을 먹는 상황에서도 정작 크게 부각되지 못한 어처구니 없는 상황에 놓였다. 민룡이 부각될 경우 결국 안현수도 욕을 먹는 판이기 때문에 인터넷 상에서도 별달리 부각을 받지 못한 것. 여러가지로 재능에 비해 안타까운 선수임에는 분명하다.



들려오는 근황으로는 대구의 스케이트장에서 타기도 하는 모양이라고.
  1. 2000년 셰필드 세계선수권 500미터 준결승에서 중국의 리자준의 희대의 비매너 플레이로 인해 당한 것이다. 김동성과 리쟈준이 함께 넘어졌는데 리쟈준의 스케이트 날로 김동성의 몸을 강하게 찍었다. 그리고 이 둘은 2002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 1000미터 준결승에서도 악연을 이어가는데...... 이로 인해 호주의 어느 럭키 가이가 어부지리 금메달을 땄다.
  2. 500미터에 나온 이승재는 오심에 희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