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광역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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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광역자치단체
특별시서울특별시
광역시부산광역시대구광역시인천광역시
광주광역시대전광역시울산광역시
특별자치시세종특별자치시
경기도강원도충청북도충청남도
전라북도전라남도경상북도경상남도
특별자치도제주특별자치도
미수복지역*함경북도함경남도평안북도평안남도황해도
미수복 경기도미수복 강원도
※ 현재 대한민국이 실효지배하고 있지 않은 미수복 지역은 자치기능이 없는 명목상 행정구역이므로 실질적인 광역자치단체가 아님.
대구광역시 기초자치단체
자치구남구(南區)달서구(達西區)동구(東區)북구(北區)
서구(西區)수성구(壽城區)*중구(中區)*
자치군달성군(達城郡)
밑줄은 시청 소재지.
대한민국 제 20대 국회 선거구 / 대구광역시
중구·남구동구 갑동구 을서구북구 갑북구 을
수성구 갑수성구 을달서구 갑달서구 을달서구 병달성군


大邱廣域市 / Daegu Metropolitan City

대구광역시
大邱廣域市 / Daegu Metropolitan City
국가대한민국
지역대경권
면적885.60㎢
하위 행정구역7자치구 1군
시간대UTC+9
인구2,485,692명
(2016년 9월 기준 주민등록인구)
인구밀도2,813.4명/㎢
광역시장권영진
초선(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
교육감우동기
재선(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시화목련
시목전나무
시조독수리
대구광역시청 홈페이지

37293.gif[1]
슬로건 컬러풀 대구. 색채가 “다양한, 다채로움”을 의미하여 젊고, 밝고, 멋지고, 화려하고, 활기찬 도시 이미지를 제공하여 다양한 모습의 발전적인 대구를 표현했다.


마스코트 '패션이'. 한국의 전통적인 비천상(飛天像) 문양의 미적감각을 21세기 세계적 섬유패션도시로 발전하고자 하는 대구의 이미지를 형상화한 캐릭터이나, 아래 후술할 '함박이와 생글이'로 인해 흑역사가 된 마스코트.


대구시청에서 현재 밀고 있는 캐릭터 '함박이와 생글이'. '미소친절 대구'를 홍보하기 위해 탄생되었는데 얘들이 사실상 대구광역시 진 마스코트다. 패션이가 반쯤 흑역사이고 섬유산업의 침체기인데다가 대구시청에서도 이 쪽을 홍보하는 등 전체적으로 밀어주는 분위기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종의 홍보 캐릭터인데다가 정식으로 마스코트라고 공인하지 않았으므로 아직 대구광역시 공식 마스코트는 패션이가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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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과 도심. 사진 한가운데의 기와집은 달구벌대종이 있는 종각이다.


1 개요

조선시대에는 서울, 평양과 더불어 3대 도시였던 적도 있었고, 경상도의 중심지였으며, 이중환의 택리지에서는 "경상도의 한복판에 위치하여 남북으로 거리가 매우 고르니 또한 땅의 형세가 훌륭한 도회지라 할 수 있다." 라고 대구를 묘사하고 있다.[2]

대한민국에서 수도권, 부산·울산권에 이은 3번째로 큰 권역인 대구권의 중심도시이다. 1981년 직할시로 승격되기 전에는 경상북도에 포함되어 있었고, 현재는 경상북도경상남도 사이에 위치한 광역시[3]다.

단일 시로는 서울-부산-인천에 이어 4번째로 인구가 많다. 그러나 정부의 공식 문건 및 언론의 각종 조사 및 발표에서는 인천을 제끼고 3번째로 언급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대구직할시 및 인천직할시 설치에 관한 법률〉(법률 제3424호, 1981년 4월 13일)에 따라 대구와 인천의 서열이 정해졌기 때문이다.[4] 이에 대해 인천에서는 행정자치부에 3대 도시를 바꿔 달라고 건의를 하였고, 대구는 수도권 중심 정책 때문에 인천시의 규모가 커진 것일 뿐이라는 입장을 보이며 반대하고 있다. [경인TV 뉴스 링크]

1896년 8월 4일 을미개혁 때 13도제 실시로 경상북도가 처음 생긴 이래, 경상북도의 수부도시가 되었고, 이후 경상북도의 도청 소재지로서의 역할을 해왔다. 1981년에 직할시로 승격되었음에도 북구 산격동에 있는 도청을 바로 옮기지 않아서[5] 행정구역상으로는 경상북도에 더이상 속해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경상북도청이 있으며, 경상북도는 경상북도대로 자기 관할 구역 내에 자기네 도청이 없는 상황이 30년 이상 지속되었다. 결국 2008년에야 안동시 풍천면과 예천군 호명면으로 이전되는 것으로 결정되었고, 2016년 2월 신청사로 이전하였다.(경상북도청신도시 문서를 참조.)

무뚝뚝하고 보수적이라는 인상을 지니고 있지만 의외로 지역의 특성을 가미한 개성있는 고유 문화를 꽃피우고 있는 세련된 도시다. 온통 서울에서 내려온 체인점 브랜드로 도배되어있는 한국에서 그래도 "다른 번화한 도시에 왔구나.", "의외로 향토 문화가 있구나." 라고 느낄 수 있는 몇 안되는 곳.[6] 일본나고야오사카도쿄와는 또다른 멋과 매력을 가진 고유의 도시 문화를 보여주고 있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특히, 나고야와는 도쿄, 오사카에 이은 3번째 권역도시라는 점에서 유사점이 있는데, 이는 도쿄가 서울, 오사카가 부산과 종종 비교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2 시청사 이전 떡밥

경북도청 후적지 활용 논란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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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청. 주소는 대구광역시 중구 공평로 88(舊 동인동1가 1번지). 인근에 있는 중구청이나 논공에 있는 달성군청보다 작다. 위 사진에 있는 지상 3층 건물이 시의회(옛 시청), 아래 사진에 있는 건물 달랑 1동이 대구광역시청사의 전부다... [동인동 청사 외에도 근처 여러 건물에 별관이 입주해 있으나 각 건물마다 입주한 부서가 다르니 참고바람.] 2000년 전후로 타 지자체가 유행처럼 청사 확장 및 호화 청사 건립을 하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그대로 옛 낡고 작은 건물을 유지하고 있다.

이에 전시행정식으로 예산낭비하는 여타 지역 청사에 비교하여, 세금을 건물에 낭비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호평을 받고있다.[7] 다만 대구시청의 용량부족이 심각하여, 이미 2011년에 타당성 조사에서 B/C값이 2를 넘겨서 나오는 시급한 과제가 되었다. 권영진 대구시장이 2018년에 대구시 신청사 건립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관련 기사]

한편 경북도청의 안동 이전으로 빈 건물이 된 구 도청 건물은 2016년 3월부터 대구광역시청 별관으로 전환되었으며, 9월 9일까지 경제부시장실 이하 중구 일대에 흩어져 있던 부서들을 모두 이전할 예정이다.

3 역사

대구광역시 행정구역 변천사
대구부
(大邱府, 1895)
현풍군
(玄風郡, 1895)
경상북도 대구부
(1914)
경상북도 달성군
(達城郡, 1914)
경상북도 대구시
(大邱市, 1949)
경상북도 달성군
대구직할시
(大邱直轄市, 1981)
경상북도 달성군
대구광역시
(大邱廣域市, 1995)

자세한 역사 및 행정구역 변천과정은 대구광역시/역사 참조.

4 행정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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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번화가

대구광역시/번화가 참조.

6 지명

대구광역시/공산 전투 관련 지명 참조.

7 지형 및 날씨

7.1 지형


유명한 대구분지 지형으로 시가지의 남과 북에 높은 산이 가로막고 있다. 북쪽엔 팔공산, 남쪽엔 앞산(대덕산)과 비슬산이 있다. 그래서 시가지가 동과 서로 계속 뻗어나가다가 현재는 더이상 뻗어갈데가 없는 상황이다. 동으론 경산시와 부딪히고 서로는 낙동강이 막아서 이제 남은 곳이라곤 저 멀리 남서쪽의 달성군 지역 정도다. 다만 현재 이전을 추진하고 있는 K-2가 이전한다면 동구 쪽에 상당한 개발지를 확보할 수 있게 된다. 유명한 수성구 역시 70년대 이후 시가지가 동쪽으로 확장되다가 발전한 지역이며 동대구역 또한 60년대 말 대구역의 역할을 분담키 위해 당시에 시가지 동쪽 끄트머리에 만든 철도역이다. 그런데 현재는 동대구역이 대구역보다 훨씬 크며, 전국적으로 보아도 서울역에 이어 두번째로 이용객이 많은 크고 아름다운 역이 되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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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지형의 특징은 다른 대도시와 비교했을 때 시가지 내부에 평지 지역이 대단히 많다는 점이다. 특히 대구 살다가 부산에 가 보면...... 바닷가는 둘째치고 산비탈의 압박에 놀란다. 계획도시가 아님에도 산을 두르거나 타고 돌아가는식의 구불구불한 도로가 거의 없으며 시가지내엔 국우터널, 두리봉터널, 앞산터널 외에는 터널이 없다. 그래서 이 길이 막히면 저길로 돌아가면 되며 과장하자면 목적지까지 코너 한번만 돌면 갈 수 있을 정도로 도로 사정이 좋다. 그래서 대구에서 택시를 타면 택시 기사들이 최소 두 가지 이상의 루트를 제시하며 어디로 갈 것인지 물어본다. 그리고 어느 루트를 택하든 거리는 비슷해서 그때그때 안 막히는 쪽이 요금이 적기 때문에 선택이 쉽지 않다. 도로망 또한 격자형과 방사형이 교묘하게 섞인 형태다. 둥글둥글한 지형인지라, 순환도로가 많고 시내버스도 순환선이 꽤 있는 편이다.

대구광역시의 도로가 이렇게 잘 설계된 이유는 서울과 부산 등 다른 대도시는 인구가 폭증하고 나서 도로를 이미 존재하는 건물들에 맞춰 닦은 반면 대구는 인구 급증을 겪기 전에 미리 일제강점기의 측량 결과를 토대로 도로를 계획해 그에 맞춰 시설들이 들어섰기 때문이다. 당대에는 세금 낭비라고 평가되었으나 결과적으로는 당시 공무원들의 혜안이었던 셈.

그리하여 이런 평지 지형에다가 잘 닦인 도로 때문에 시민들이 대중교통보다 자가운전을 선호하는 편이며 대신 지하철 노선이 많이 필요하다. 그래서 그런지 새벽에는 차들의 속도가 장난아니다.특히 달구벌대로 가까운 부산의 경우 산지가 많아 산과 산 사이의 협곡(?)을 따라 노선을 깔아도 된다. 3호선이면 부산 대다수 도심을 커버 가능. 하지만 대구의 경우 산이 별로 없어 노선 하나가 커버해야 할 범위가 넓어지며 노선을 깔자면 복잡한 편이다. 쉽게 설명하자면 총 역 갯수는 규모가 더 큰 부산이 더 많아야 하겠지만 호선은 대구가 더 많아야 한다.

게다가 시가지의 정중앙에 위치한 시내 동성로중구 일대의 접근성이 지나치게 좋아서 동성로 중심의 굳건한 단일도심 체제가 늘 유지되고 있다. 대구와 비교해 인구가 100만명이나 적은 대전광역시는 동쪽의 중구 은행동과 서구 둔산신도시의 2도심 체제이다. 부산광역시의 경우도 남포동에서 서면으로 중심지가 옮겨졌고, 울산광역시도 성남동에서 삼산동으로 중심지가 옮겨졌으며, 광주광역시금남로에서 상무지구로 중심지가 옮겨졌으나, 대구만 동성로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즉, 번화가가 한 곳에만 집중되어 있다는 것.

그러다가 대구 도시철도 3호선의 개통으로 북쪽으로는 칠곡3지구 지역과 남쪽으로는 수성구 지산동/범물동 일대가 독자적인 시내로 다시 발전하고 있다.[8] 또한 두류네거리와 감삼네거리 사이의 광장타운 일대 지역과 몇몇 대학로, 남동쪽의 경산으로는 영남대학교, 서쪽의 성서로는 계명대학교 성서캠퍼스, 북쪽으로는 대구보건대학교/대구과학대학교, 남쪽으로는 영남대학병원 대학로를 중심으로 새로운 번화가들이 발생하는 중이다. 하지만 동성로에 비하자면......

분지라는 지형의 특성상 도시 내에서 발생한 오염물질과 매연이 자연적으로 정화되기 힘든데, 그나마도 신천을 비롯한 주요 하천을 따라 늘어선 고층 아파트들로 공기 순환을 더욱 어렵게 하고 있다. 이는 대구의 더위를 더욱 심화시키는 요인으로 꼽히고 있어 시에서는 바람길을 도시계획에 포함시키겠다고 공언하고는 있으나 잘 되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7.2 기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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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대구의 일상]

여름철 더위가 상상을 초월하여, 대구 특수형 기후라는 기후 분류가 따로 있을 정도로 비가 적고 더운 도시로 유명하다. 대한민국의 공식적인 최고 기온 기록은 [325°C]40°C(1942년 기록)다. 다만, 이 부분은 기록에 따라 1~2도 정도 왔다갔다 하기도 한다. 다른 지역에서 이따금 섭씨 40도를 웃도는 기온이 발표되었음에도 여전히 대구가 가진 최고 기온 타이틀은 떨어지지 않고 있다.[9] 때문에 대한민국에서 가장 더운 지역으로 첫손에 꼽힌다. 그래서 대구를 여름에 처음 찾은 외지 사람들은 그 폭염에 혀를 내두를 정도다. 차를 타고 서울에서 부산을 가다가 고속도로에서 대구를 지나면 계기판에 뜨는 실외 온도가 갑자기 35도 이상을 찍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랄 정도.

대구가 이렇게까지 뜨거운 이유는 먼저 위 문단의 지형과 가장 큰 관련이 있다. 하필이면 많이 막힌 분지 지형이기 때문. 사방팔방이 대부분 산으로 가로막혀 있어서 뜨거운 열기가 대부분의 대구 주변에 이르기까지 통풍이 당최 잘 안되는 것이 1차적인 원인. 거기다 대도시가 되면서 매년 더위에 결국 참다 못해 에어컨을 도입하면서 점차 도시 자체의 열섬 현상도 기온을 올리는 데 한몫하게 된 것이다. 이 때문에 여름이면 기본적인 기온 보다 체감 온도가 더욱 더 달아오르기에 사람들이 힘겨운 것. 그나마 범안도로와 월드컵대로를 시공하면서 바람구멍을 만들어서 조금 나아진 상황이다.

서울이나 부산에서는 드문 35도 이상의 폭염이 대구에선 상당히 흔한 편이다. 1등만 사랑하는 대한민국 국민답게 대구시민들이 대구가 더위로 1등이라는 것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는 말도 있다. 전국적으로 더운 것으로 악명이 높았던 1994년 여름의 경우, 대구는 타 지역보다 더욱 더 더워서 평균기온이 7월 30.2도, 8월 29.1도를 기록했고, 특히 7월 4일부터 25일까지 22일 연속으로 최고기온이 35도를 넘는 거의 살인적인 수준의 더위가 이어졌다. 1994년 대구 여름철은 그냥 대구 도시 전체가 찜통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의 더위였다. 이러한 뜨거운 더위에 병원에 실려간 사람들과 화상을 입어서 치료를 해야했던 사람들이 무척 많았을 뿐더러 자칫하면 도시 전역이 마비되기 직전이였을 정도로 아슬아슬한 고비를 넘긴 셈.

1994년 여름을 겪었던 사람들은 대부분의 여름철이 가소로워 보이긴 해도 그렇다고 덥지 않은 것은 아니기에 1994년 이후 에어컨을 설치하는 집이 점점 늘어나기도...이때의 더위가 얼마나 지독했는지 길거리에서 땀띠가 나지 않은 사람이 있으면 "아니 비결이 뭐요?"라고 행인들이 캐묻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1994년의 더위는 문화에도 영향을 미쳤다. 그 전까지는 노인이나 어린이 아니면 개울가가 아니라면 소매없는 셔츠 차림이나 남자들이 양말없이 맨발로 샌들을 신는 것이 금기시되었지만, 94년에는 하도 더워 그런 금기도 없어져버렸다. 1994년에는 이 무더위 중 39도를 넘는 날도 몇차례 있었을 정도였다. 이 뜨거운 온도는 아스팔트에 떨어진 계란이 반숙이 된다거나(...) 양계장 닭 집단 폐사 등 여러 사건을 일으켰었고 불행 중 다행인지(?) 1994년의 살인적인 여름에 40.0도의 대한민국 최고 기온 기록이 깨지지 않았다... 하지만, 체감 온도는 이미 42도를 넘었을지도(...).

덕분에 대구 사람이 서울로 올라왔을 때 서울 사람이 덥다고 헉헉대는 걸 보고 맘껏 웃어주게 된다는 우스갯소리도 있다우스갯소리가 아니다. 좀 다른 경우지만 외지 사람들이 여름에 대구를 찾아서 죽어가는 모습을 이해하지 못하는 대구 사람을 보는 경우는 꽤 많다. 사실 워낙 더운 여름을 자꾸 겪어서 익숙해진 사람들은 지나치게 뜨거울 때만 열을 어떻게든 식혀서 넘기는 데 익숙하지만, 이게 전혀 아닌 사람이 대구의 여름을 겪게 되면 당연히 감당이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물론 체질적으로 더위에 금새 적응하는 사람이야 종종 있다.

게다가 대구 국제 육상 대회는 또 여름에 개최된다. 간혹 뉴스에서 대구 날씨에 외국 선수들이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보여주는데... 동유럽이나 북유럽 선수들은 죽어나는 표정인데 반해, 적도 지역의 아프리카 선수들은 여유로운 표정으로 너무 좋다, 마치 고향에 있는것 같다는 반응을 보인다. 아프리카 국가 출신 사람의 증언에 의하면 아프리카 대륙이 기온은 더 높아도 메마르고 습도가 낮아 살 만한 데 비해, 대구의 날씨는 습한 무더위여서 체감온도가 더 덥게 느껴진다고 한다. 물론 아프리카도 지역마다 기후가 다르기 때문에 일반화 할 수는 없다. 아프리카 출신 사람들도 인정한 더운 날씨 때문에, 대구와 아프리카를 합친 "대프리카"라는 합성 조어도 있다.

일단 이와 같이 대구의 날씨 하면 더위부터 떠올리게 되지만, 변덕이 죽 끓듯이 심하다는 표현 내지는 청개구리같다고 해야할 정도로 차이가 심해서 한여름에 의외로 서늘한 날이 나타나는 경우도 많은 편이다. 저 살인적인 1994년의 바로 전해인 1993년 여름철만 해도 대구가 더이상 덥지 않으려나 할 정도로 비교적 서늘했다. 1993년 여름은 1994년과 반대로 전국적으로 서늘한 편이었는데, 이 때 대구의 평균기온은 7월과 8월 모두 22.9도였다. 1년 전보다 같은 기간의 평균기온이 무려 7도 가량이나 낮았다. 이 때 서울은 23.3도, 23.2도였으니 이 7, 8월은 서울보다 더 기온이 낮았던 것이다!

이는 대구의 지형과 위치와 관련이 있다. 분지지형이니 북태평양 기단이 강하게 발달하면 사방에서 내려오는 열기가 더욱 강해지지만, 북동쪽의 오호츠크해 기단이 발달하면 사정이 달라진다. 북쪽은 산지이고 동쪽은 열려 있는 지형이므로, 북쪽이나 북동쪽에서 바람이 불어오면 태백산맥 서쪽과 마찬가지로 기온이 많이 오르지만 동쪽에서 바람이 불어오면 기온이 의외로 많이 오르지 않는다. 이럴 경우는 서울이나 충청도, 전라도 지역에 비해 오히려 더 서늘해진다. 그래서 여름철에 기온이 많이 오를때는 타 지역에 비해 기온이 훨씬 높지만, 의외로 기온이 덜 오르는 경우도 있어서 7, 8월의 평균기온을 타지역과 비교하면 호남지방의 전주나 광주와 비슷하고 서울과 비교해도 1도 정도밖에 높지 않으며 제주도보다는 조금 낮다. 정확한 수치는 1981년~2010년 7월 평균기온 대구 25.8도, 전주 25.8도, 광주 25.6도, 서울 24.9도, 제주 25.8도 / 8월 평균기온 대구 26.4도, 전주 26.2도, 광주 26.2도, 서울 25.7도, 제주 26.8도.

다만 평균기온이 대구보다 높은 제주도 쪽은 여름철 평균기온은 높은 편이지만 극단적으로 온도가 높게 올라가는 편은 아니다. 역대 최고기온을 보면 제주 37.5℃ vs 대구 40.0℃로 대구가 훨씬 높으며, 제주시보다 여름 평균기온이 더 높은 서귀포의 경우 역대 최고기온은 35.9℃에 불과하다. 다만 이는 역으로도 적용되는 거라서 역대 최저기온을 보면 대구가 제주도보다 낮은 편.

서울로 간 대구 출신자들은 서울이 더위에 시달리면 고향에 있는 가족들은 더 더운 곳에서 고생할 것이라며 걱정하기도 하는데 의외로 대구가 더 서늘한 경우도 있으니 너무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 2012년 6월도 그러한 대표적인 사례. 2012년 6월 서울은 관측이래 최고의 6월 더위를 겪었지만(덧붙여 가뭄까지) 대구의 기온이 오히려 더 낮은 날이 많았다.[#]

하지만 2012년 7월 들어선 비교적 서늘하던 대구도 폭염에는 얄짤없었다. 7월 중순 경부터 폭염경보에 휩싸였고(다른 대부분 지방은 폭염주의보 수준...), 영천시, 경산시, 밀양시, 경주시, 합천군 등의 영남 내륙 도시들과 함께 가장 푹푹 찌는 무더위를 겪었다.

2013년 8월 폭염에서 울산광역시가 [이틀 연속 40도]를 기록하면서 대구더위의 아성을 위협했다.

한편 1990년대 중반 푸른 대구 가꾸기 운동의 일환으로 나무 심기 운동과 전국 최초로 담장 허물기 운동이 대구에서 일어났고 이는 상당한 효과를 보았으며, 덕분에 2000년대에 들어서는 가장 더운 도시 이미지를 조금은 벗는데 성공하였다.

또한 관측망의 확대로 밀양, 합천 등의 최고기온이 대구보다 더 올라가는 경우가 잦아 이쪽이 더 더운 도시로 꼽히고 있다. 물론 광역시 레벨에선 여전히 가장 더울 때에는 가장 기온이 많이 올라기는 한다. 그래도 덕분에 상당수의 지방단체에서 대구의 푸른 대구 운동을 벤치마킹하였다.

겨울은 크게 춥지 않은 편이다. 물론 '상대적으로' 안 춥다는거지 춥긴 추운데, 바다의 영향으로 겨울에 온화한 해안 지역을 제외한 내륙 지역에서는 상대적으로 따뜻한 편이다. 서울의 1월 기온과 대구의 1월 기온을 비교하면 4~5도 정도 차이 나는 경우가 많다. 이는 위도가 낮은 지역에 있는 영향도 있지만 열섬현상으로 기온이 많이 내려가지 않는 것도 한 이유가 된다. 겨울철 기온은 중부 내륙지방에 비해서도 물론 높지만, 주변 남부 내륙지방에 비해서도 상당히 높다. 다만, 내륙지방 치고는 바람은 강한 편. 연평균 풍속은 2.7m/s인데 내륙지방에서는 높은 편이다. 요약하자면 여름은 엄청덥고 겨울은 평범하다. 그러나 여름이 너무 더워서 겨울이 상대적으로 춥게 느껴진다.

여름철 더위와 함께 대구 기후의 특징 중에서 손에 꼽을만한 다른 한가지는 비도 잘 안오고 눈도 잘 안오는 소우지(小雨地)라는 점이다. 연평균 강수량은 1000mm 내외로 대구 일대는 예로부터 한국의 3대 소우지로 꼽혔고, 가뭄이 드는 경우가 많다고 알려져 있다. 3대 소우지로 개마고원, 대동강 하구, 대구분지를 꼽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실제로는 함경북도 해안지방도 대구 일대보다 강수량이 적다. 대구 사는 사람으로써 대구에서 눈이 쌓이는 날은 1년에 하루이틀 뿐이다. 눈이 쌓이면 축제가 일어난다. 같은 대구시민으로서 공감 실제로 대구의 초등학교에선 눈이 조금이라도 쌓이면 독서시간 때려치우고 운동장에서 놀게 냅둔다(...). 아니, 잘만 하면 초등학교일 경우 수업 하나 빼고 한 교시 동안 놀게 한다.

대구는 홍수가 나는 일이 드물다. 비가 아주 많이 오지 않은 것이 주된 이유겠지만 일제강점기 당시 어떤 자산가가 출자해서 금호강 물길을 갈아엎어 버린 것이 더 큰 이유라고 알려져 있다. 물길을 돌리기 전에는 대구 역시 홍수가 잘 났다고 한다. 5월~9월은 강수량이 많지만 나머지 달은 강수량이 적고 맑은 날이 많다. 겨울철 강수량이 특히 적어서 눈도 적다. 1980년내까지만 해도 눈이 많이 오는편이었다. 하지만 기후변화와 차량 보급으로 인한 온난화로 눈이 안오게 되었다. 눈이 적기는 해도 부산보다는 많이 오는 편. 종종 눈이 쌓일 정도로 오지만 지형이 평탄하고 도로가 잘 되어 있어 부산만큼의 헬게이트가 일어나지는 않는다. 부산은 어쩌다 한번 눈이 내려 얼어붙으면 산이 많은 지형과 한 쪽 위주로 난 도로망에 눈길에 익숙하지 않은 운전자들 크리까지 겹쳐 도시 기능이 거의 마비되다시피한다. 특히 만덕역에서 만덕1동주민센터로 가는 길이나, 산복도로에 눈이 온다면..... 눈이 잘 오지 않지만, 한번 내리면 폭설이 되어 내린다. 가장 최근에는 2012년 12월 28일에 눈이 많이 왔다. 12월만으로 한정하면 대구에 60년 만의 폭설이라고 한다. 이 날 폭설로 대구에 60년 만에 눈이 가장 많이 왔다고 하는 분들이 많았는데, 사실 1월이나 2월에 그보다 눈이 더 많이 온 때가 여러 차례 있었다. 12월 눈으로는 60년 만의 폭설이라고 하는 것이다.

꽉막힌 분지지형 때문에 태풍 피해도 다른 도시에 비하면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러니까 다른 지역은 모두 학교가 쉴때 대구만큼은 평소처럼 멀쩡하게 학교가는 정도. 정말 가끔 한번 휴교해도 피해는 예상보다 훨씬 적다. 2012년 볼라벤, 덴빈, 산바의 3연속으로 태풍이 와서 상당히 큰 피해를 주었지만 대구는 큰 피해는 커녕 붙힌 신문지와 테이프가 아깝다는 사람이 있을 정도. 그래도 비는 태풍이 오면 훨씬 많이 오는 편이지만, 200mm를 넘기는 경우는 거의 없다. 사상 최악의 재산피해를 낸 태풍 루사 때도 대구에는 149mm밖에 오지 않았다. 많이 왔네. 이쯤 되면 태풍에 의한 피해만큼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안전한 곳 중 하나로 봐도 큰 지장은 없을 것이다.

이렇게 눈이 잘 오지 않는 덕택에 공군으로 지원하여 대구에 있는 K-2(육군부대도 있기는 하다. 헬기대대 하나와 공병중대 하나가 K-2 기지 안에 위치해 있다.)로 발령받거나 육군으로 지원하여 대구 제50향토보병사단 본부나 제2작전사령부 등으로 온다면 적어도 대한민국 국군 최대의 적 중 하나인 제설과는 인연없는 군 생활을 보낼 수도 있다 카더라.

그러나 그 대신 여름에 쩔어주는 기온과 함께 말려 죽어나가는 것이 뭔지를 느낄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 하지만 전방 지역도 사실 여름에 충분히 덥다. 다만 대구 보다는 꽤 나을 뿐... 여름 체감 온도는 대구만한 곳이 없다고는 하나, 전방으로 갈수록 알다시피 겨울에는...더 이상 말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가끔 운 나쁘게 대구 지역에서 눈이 많이 오는 겨울에 군복무 중 이 때 걸리게 되면 대구라도 제설작업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좀 오래된 자료이기는 한데, 1953년 1월 18일, 대구에 50cm 이상의 눈이 왔다.

다만, 2000년대 들어 서울특별시, 부산광역시, 광주광역시, 대전광역시에서 눈 기록을 갈아치우고, 포항시에서도 역시 눈 기록을 세우기도 했지만 대구만큼은 2000년대 들어 20cm 이상의 눈이 내리지 않고 있어 예전의 눈 기록이 깨지지 않고 있다. 대구에서도 언제 어떻게 폭설이 내릴지 모르는 일이므로 원래 눈이 잘 안 온다고 방심해서는 안 된다. 또한 대구는 소우지다 보니 평소 제설에 관련된 물품이나 기반이 상당히 취약한 편이기 때문에 일이 한번 제대로 터지면 제설 작업과 도구를 충분히 상비해두는 다른 지역에 비해 훨씬 더 고생을 겪을 수 있다... 실제로 12cm의 눈이 쌓였던 2012년 12월 28일, 대구의 모든 교통수단이 정지되어 도시 기능이 사실상 마비된 적이 있다.

옛날에는 맑은 날이 많고 일교차가 큰 이유로 사과포도 등의 작물이 잘 자랐고 대구 능금은 특히 유명했다. 한국에서 최초로 사과나무가 들어온 곳이다. 미국인 선교사가 1900년에 심었던 나무의 자손목이 시 보호수로 지정되어있다. 기후 조건이 알맞았는지 나이 드신 분들의 증언에 따르면 일제강점기 때에도 '능금' 농사가 활발하였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급속한 온난화와 함께 진행된 도시화로 사과 농사를 짓는 지역이 많이 축소되었다. 달성군 지역과 팔공산 인근을 제외하면 과수원 찾기도 힘들다.

그러나 교과서 편찬위원들의 귀차니즘과 타도시에 대한 무관심으로 인하여 여전히 대구의 특산물은 사과이다. 다만 실제 생산량과 별개로 조건상 사과 재배에 아주 유리한 분지 지형이라는 점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2013년엔 [하루만에 사계절을 모두 겪은 일이 발생했다.] 사실은 기상청에서 [날씨 코드를 잘못 입력하는 바람에] 저런 상황이 발생한 것.

2016년은 비교적 이른 5월 30일에 무려 폭염주의보가 발령하며 여름의 시작을 알렸지만 다행히 그 더위가 이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6월에 다시 폭염 주의보가 내려졌다가 6월 20일에 해제되었다. 5월의 이른 더위 탓인지 6월과 7월 내내 중부지방보다 덜 더워서 대프리카의 아성이 무너지는 가 싶던 찰나 7월 24일, 36도[10]로 올해 최고 기온을 갱신했으나 8월 7일 경상북도 의성군37.8도를 기록하여 1등자리를 가져갔다가 바로 다음날 경상남도 창녕군39.2도로 최고 기록을 경신했다. 8월 12일 경상북도 경주시39.3도로 최고기록을 경신했으나 바로 다음날 8월 13일 경북 영천시39.6도로 최고기록을 경신했다.

그런데, 문제는 [한 네이버 기사]에 따르면 국립기상과학원이 추측하기를, 2100년 즈음이 되면 대구의 폭염일수가 최대 88일까지 올라갈지도 모른다고 한다. 물론 이것은 거의 90년 가량 후의 미래를 예측한 것이니, 충분히 틀릴 수도 있지만, 그래도 앞서 말한 88일이라는 수치가 보는 순간 굉장히 충격적으로 다가오기는 한다.

8 교육

대구 시내에 있던 대학교들 중 상당수가 경산시으로 부지를 옮긴 상태여서 대구의 대학으로 알려져 있는 대학교들 중 실제로는 부지가 경산에 있는 경우가 꽤 있다. 그래서 결국 경북대학교는 대구에 있고 대구대학교는 경북에 있는 현상이 발생했다. 경북대학교가 지어질 당시에는 경북대의 부지가 대구 땅이 아니라 경상북도 땅이었기 때문이다.

경산시는 행정구역상으로 경상북도 안에 있긴 하지만 대구 바로 옆에 있고 시내버스로도 쉽게 그것도 구간요금 없이 갈 수 있는 곳이며 지역번호도 대구와 같은 053을 쓰는 등 같은 생활권으로 여겨지기 때문에 보통 경산에 있는 대학교들까지도 '대구의 대학교'라고 말하기도 한다.

수성구가 대구의 교육메카로 이름을 날리고 있는데, 학원 등 교육시설의 다수가 수성구에 몰려있고, 수도권에 비해서 많이 부족하지만 그래도 지방에서는 학군이 좋은 지역 중 한 곳이다. 이 때문에 이러한 학군의 위력으로 대구 시내에서 가장 집값이 비싼 지역이기도 하다. 특히 2015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전국 만점자 29명 중[11] 강남구의 은광여자고등학교와 함께 수성구의 경신고등학교가 4명을 배출한 것으로 매스컴에서 주목받기도 하였다.[12]

아래는 대구의 대학교 목록. 실제 위치는 경북(경산)이라도 대구권으로 포함되는 학교들 포함.

9 군사

한강 이남의 중요한 군사도시 중 하나.

  • 제2작전사령부(무열대) - 구 제2야전군사령부, 제50향토보병사단 본부, 제5군수지원사령부 등의 육군 부대
  • 주한미군 미8군 부대
    • 캠프 워커 - 남구 봉덕동. 후문 주변이 대명5동, 대명9동이지만 네이버지도나 다음지도 등에서 봉덕3동의 구역을 보면 기지 거의 대부분은 봉덕3동에 속해 있다. 그리고 대명동에 있는 대로변의 문은 후문이며, 봉덕동 쪽에 있는 문이 정문으로서 길은 더 좁지만 출입하는 차량이나 사람이 훨씬 많다. 참고로 정문 바로 옆에 영어유치원이 붙어 있으며 옛 졸업생 경험담(꽤 오래된 졸업생)의 기억에 따르면 건물 창문으로 차량 격납고와 트럭, 험비 등이 다 보인다고 카더라. 시설은 초대형 PX, 패스트푸드점'들', 볼링장, 대형 수영장, 전문 카페, 레스토랑, 골프장 등 수도 없이 많으며 거의 컨트리클럽 수준이며 앞산 전망대에서 그 아름다운... 풍경이 잘 보인다... 우리나라 주둔지와는 굉장한 차이를 보여준다.
    • 캠프 헨리 - 이천동
    • 캠프 조지 - 대명동

이 때문에 대구 시내인 동성로 일대에선 주말이 되면 클럽들이 밀집해 있는 로데오거리 쪽으로 영어강사인 척 하는 미군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특히 캠프워커는 후문 바로 앞에서 지하철로 4정거장, 또는 정문에서 버스로 15분이면 동성로로 갈 수 있어서 사복으로 갈아입고 시내에 나와 민간인인 척하는 미군이 자주 보인다. 그래봤자 군바리 티 다 난다. 백인 깍두기 같다. 때문에 기지 부근의 술집은 정문쪽에 소수만 명맥을 유지하고 있거나 그것도 한국인을 상대하는 가게로 바뀌었다.

참고로 제11전투비행단의 경우 동대구역 바로 인근에 있어서, 처음 도시를 찾는 외지인의 경우는 도시 한 가운데에서 전투기가 날라다니는 광경에 기묘함을 느끼기도 한다. 사실 이는 애초에 제11전투비행단이 대구 외곽에 지어졌으나, 시가지가 끊임없이 확장하다 보니 결과적으로 비행단 부지를 먹어버린 케이스다. 그래서 동구, 북구쪽은 낮에 전투기 소리를 심심찮게 들을 수 있다.

하지만, 어려움 끝에 2013년 3월 '군 공항 이전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되고 그해 10월 특별법이 시행되어 K2가 이전하게 되면 소음 문제는 사라질 것으로 기대된다. 하지만, K2 이전지 대상 선정 및 새 공군기지 건설 등으로 그 시일은 장기간 소요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이러나 저러나 K2이전이 이제 더 이상 꿈만은 아니라는 점에 고무적이라 할만하다.

6.25 전쟁 당시 낙동강 방어선의 전진기지 중 하나였으며 지금도 군사적 요충지로서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전쟁 당시 대구로 밀집한 인재들, 특히 예술가들은 이 후 대구 발전에 큰 밑거름이 되었다.

국군간호사관학교도 과거에 대구에 있었으나, 1996년 대전의 자운대로 이전했다. 동부정류장 맞은편 지금은 이마트 만촌점과 메트로팔레스 아파트가 있는 곳이 옛 국군간호사관학교가 있던 자리다. 그런데 대구 사람들 중에 옆동네사관학교가 있다는 건 알아도 과거 대구에도 사관학교가 있었다는 것을 나이 지긋하신 분들 조차도 아는 사람이 별로 없다.

10 정치

대구•경북을 합쳐서 일명 TK라 불리며 새누리당계 보수 정당의 주요 텃밭이다.

그러나 일제강점기까지만 해도 조선모스크바라고 불렸을 정도로 좌파적이었다. 일제강점기 때 독립운동가 비율을 보면 사회주의계열이 압도적으로 활동이 활발했는데 그 사회주의계열 독립운동가 가운데 대구경북 출신 사람들이 상당히 많았다. 실례로 6.10 만세운동을 주도했던 인물 가운데 권오설의 경우, 조선공산당 초창기 인물로 경북 안동의 양반집안 출신이었다.

이 때문인지 1946년에 대구 10.1사건이 일어나기도 했다. 대한민국 정부 건국 이후에도, 나아가 제1공화국기, 제2공화국기까지만 해도 대구는 진보 성향이 매우 강한 지역이었다. [경북지역 선거]를 보면 알 수 있다. 1956년 대통령 선거 당시 부정투표가 무척 심했었는데 대구지역으로만 친다면 조봉암이 무려 72.3%이승만 27.7%을 압도했었다!

1960년 2.28 학생민주의거의 시발점이 된 지역도 대구였으며 제2공화국 시기에 '혁신정당'이라 할 수 있는 사회대중당이 가장 활발하게 활동했던 지역도 대구였다.

이런 대구의 정치 성향이 점점 친보수적으로 바뀐 원인은 한국전쟁 당시 남하하는 북한을 피해 대구로 몰려든 피난민들의 영향과 북한군의 대구 포격, 그리고 '보도연맹 학살사건' 등 양민학살, 이후 지역발전 등이 있겠다. 당시 양민학살 피해가 가장 극심했던 지역이 경상도 전역으로 특히 경남(부산)지역의 피해가 심각한 수준이었다.

하지만 적어도 1987년 이전까진 '나름대로' 야권 지지성향이 남아있었다. 심지어 1971년 제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대구에서 야당인 신민당이 무려 8석을 확보할 정도로 생각 이상으로 선전하기도 했다. 유명한 노동운동가 전태일도 대구 출신이었다. 그러나 1987년 이후부터 점점 보수성향이 굳어져가 오늘날까지 보수성향이 강한 지역이 되었다.

2010년도에 들어서는, 새정치민주연합의 김부겸 후보가 2014년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40.3% 의 득표율을 보이는 등, 지역의 정치색이 옅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2013년 5월 18일 열린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에 [김범일 대구광역시장과 이재술 대구광역시의회 의장이 참석하였다.] 1980년 사건이 발생한 지 33년만에 영남권 광역자치단체장 중에서는 최초로 기념식에 참석한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 3석[13], 더불어민주당 1석[14]이 배출되었다. 그 중 민주당계 의원은 1971년 이후 무려 45년만에 당선되었다.

더민주의 김부겸은 물론 북구을의 홍의락 역시 야당 출신이기에 사실상 야권의 정치인이 두명이나 당선된 것이다. 특히 수성갑의 김부겸은 무려 62.3%의 득표율을 받았고, 홍의락 의원 역시 52.3%의 과반수 득표를 기록함에 따라 야권으로서는 중요한 교두보를 대구에 마련하는데 성공했다. 이렇게 야권 의원들이 선전한 결과에 대하여 대구에서 야당의 지지율이 상승했다기보다는, 전남 순천에서 재선에 성공한 이정현 의원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단지 두 사람이 상대방 새누리당 후보에 비하여 좀 더 지역 특화된 후보였을 뿐이라며, 대구 지역에서의 야권의 선전에 대해 신중히 여기는 입장도 있다. 반면에 인물보다는 특정 정당에 지나치게 치우친 투표 경향을 보였던 대구 지역의 표심을 고려하였을 때, 충분히 야권이 선전한 것이라는 의견 또한 있으며, 실제로 국민의당더불어민주당의 지지율이 무려 17%, 16%에 이르렀던 반면 새누리당은 53%를 기록하며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기록한 66%에 비하여 무려 13% 가량의 많은 표가 떨어져 나갔다.

11 경제

자세한 내용은 대구광역시/경제 참조

대한민국 굴지의 대기업 삼성그룹이 시작한 곳인 만큼, 한때 아름다웠던 적이 있다.

청구건설, 우방건설, 태왕이앤씨로 대표되는 대구 향토 건설회사가 승승장구했었던 적도 있었고, 다른 도시의 향토백화점이 대기업 백화점에 먹혀들어갈때, 대구지역만큼은 대구백화점동아백화점이 위세를 떨치며 잘나가던 시절이 있었다. 정말 동양의 밀라노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많은 옷감이 생산된 적도 있었다. 이 때의 영광이 조금 컸던지, 지금도 대구지역은 전국에서 유일하게 지역 토종 백화점인 대구백화점이 생존해 있다. 지역 백화점의 양대산맥이던 동아백화점은 이랜드그룹에 인수되었고 이름만 유지하고 있는 상태다.

2016년 현재는 대구하면 딱 떠오르는 대표 기업이 거의 없다. 대구은행, SL, 대구텍 정도가 있다. 대구의 자존심 교촌치킨, 호식이 두마리 치킨은 전국적으로도 알아준다. 땅땅치킨은?! 인구 대비 양질의 일자리가 부족하다. 하지만 최근 국가산업단지에 기업 입주가 착실히 진행되고 있고, 롯데케미칼 대구국가산단에 500억 투자를 하기도 했다.

다른 지방 대도시들과 마찬가지로 쇠퇴가 진행 중으로 타지로 유출되는 인구가 많은데, 그 대부분이 대학교 진학등 학업과 일자리를 찾기 위해 수도권으로 이주하는 청년층이다. 아니면 인근 지역으로 출퇴근 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인근 지역을 제외한 순수 대구는 1인당 GDP면에서는 1993년 이래로 20년 넘게 전국 16개 광역자치단체 중 하위권을 면치 못하고 있다.

반면, 대구는 1인당 지역총생산(GDP)는 하위권에 속하지만, 가구당 순자산은 상당히 높아서 전국 4위를 기록했다.[15] 이것은 대구가 그만큼 자체적으로 생산해내는 것보다 외부에서 벌어들이는 수입이 많다는 것이며, 대구시는 가난해도 대구시민들은 잘산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최근 1인당 지역총생산 역시도 전국에서 가장 높은 성장률을 보이고 있다.

[[1]]

[[2]]

달성군 현풍면구지면을 중십으로 국가산업단지가 들어설 예정이다. 현재 한창 도로 및 산업부지 건설에 들어가있으며, 국가산업단지에 기업과 공단들이 들어서게 되면 대구가 다시 한 번 활력을 되찾을 것으로 기대해볼 수도 있다. 구미, 포항, 창원 등이 국가산업단지를 유치하고 대규모 공단과 기업들이 입주함으로써 신생공업도시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처럼 향후 대구 경제에 적지 않음 도움이 될 것이다. 현재 1차, 2차 분양은 성황리에 마쳤고 3차분양을 앞두고 있으며, 곧 구지 국가산업단지 착공을 앞두고 있다.

그리고 첨단의료복합단지를 유치하여 첨단의료기기개발지원센터 등 4개 핵심 센터를 준공한 데 이어 국책연구기관 10개, 의료기업 60여 개를 유치하는 등 틀을 갖춰가고 있다.

2014년에는 삼성그룹이 참여하여 옛 제일모직 대구공장 자리에 대구창조경제혁신센터를 유치했으며, 2015년에는 정부 제3통합전산센터, 대구 도학동 유치에 성공했다.

아울러 대구광역시 동구 신서동에 위치한 신서혁신도시한국가스공사, 한국장학재단, 한국감정원, 한국사학진흥재단, 한국산업단지공단, 중앙교육연수원, 한국감정원, 한국교육학술정보원, 한국뇌연구원, 한국산업기술평가관리원, 한국정보화진흥원, 중앙신체검사소, 신용보증기금 등 15개의 공공기관, 공기업이 입주를 완료하였다.

2010년도부터 2015년까지 미친듯한 집값 상승을 보였다. 내놓을만한 대기업도 없고 인구가 내림세임에도 집값이 끊임없이 상승하는 것에 대해, 투기세력이 수도권을 거쳐 부산을 넘어 대구로 왔다는 의견이 있으나, 단순히 그러기엔 집값 상승이 너무나 폭발적인 상황이다.
결국 2015년 기준으로 집값이 인천, 부산을 넘어섰고, 전국 광역단체를 기준으로, 서울, 경기도에 이어 3위를 차지하였다. [#]

초기의 집값 상승은 그동안 오랜 불경기로 미분양 아파트가 많은 것에 대한 수요의 초과라는 분석이 있고, 이후에 수성구 중심으로 집값 견인이 유지되는 것에 대해서는, 2015년 수능 만점자를 서울, 경기도를 제외하고 전국에서 가장 많이 배출하는 등 학군의 위력이라고 보는 분석이 있다.

심지어 썰전에서 대구 집값 상승에 대해 다루기도 하였다. [#]

2016년 동대구복합환승센터가 ㈜신세계동대구복합환승센터 현지 지역 법인(광주신세계를 생각하면 된다)에 의해 완공되기 때문에 신세계가 지역의 고용 안정 및 활성화에 일정량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12 문화

대구광역시/문화 참조.

각종 유명 축제, 행사

13 교통

대구광역시/교통 참조.

14 이모저모

14.1 경산시와의 통합

경산시/대구 편입 문제 참조.
행정구역 개편, 경산시 문서에도 있지만 경산시는 사실상 대구광역시의 위성도시, 베드타운그것보다는 아예 한 몸이라는 표현이 정확하다. NO.1과 동시에 부도심화가 가속화되고 있다. 우선 지역번호(053)가 같다. 경산 시군 통합 이전엔 구 경산시만 대구 지역번호를 썼고, 구 경산군은 자체 지역번호를 갖고 있었다. 그러다가 통합 후 구 경산군 지역도 경산시 지역의 지역번호를 따라가게 된 것이다. 사실상의 '대구-경산 통합 요금제'로 시내버스 요금도 같다. 무엇보다 두 도시 간에는 시내버스 시계외요금이 없다. 아울러 대구광역시 시내버스는 경산 외 타 지역으로 가도 구간요금이 없으며 대구-경산 사이 환승도 가능하다. 다만 택시는 그런거 없었다. 지하철 2호선영남대까지 연장되기 전, 사월역에서 정평역까지 가는 거리를 택시를 탔는데 시외요금이라고 5000원 내놓으라는 기사들이 한두명이 아니었다. 실제로 사월역과 정평역은 한 정거장 거리 밖에 안된다.

대구와 경산은 경계가 무의미할 정도로 연담화가 진행돼서 예전부터 꾸준히 통합 논의가 제기되었다. 특히 경산시에서는 1994년부터 '대구경산통합추진위원회'를 시민들이 만들어서 꾸준한 활동을 하고 있으며 대구 동구, 대구 수성구, 경산-청도 국회의원들은 선거철이 되면 대구-경산 통합 공약을 내세운다. 경산-청도 의원들도 이에 뒤질세라 대구-경산 외에 청도 통합 떡밥도 던진다.

문제는 경상북도에서 광역자치단체로 독립해버린 대구와 달리 경산은 경상북도 산하 기초자치단체인데 경산이 경상북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커서 포항시, 구미시, 경주시에 이어 대략 도내 4위다. 때문에 세수 감소를 우려해 쉽게 넘겨주지 않을 거라는 전망이다.

실제로 포털 사이트에서 '대구 경산 통합'을 치면 자동완성 검색어로 뜬다. 유사한 광역권 통합인 '대전 금산 통합', '부산 김해 통합' 또는 '부산 양산 통합'은 자동완성 검색어로 나오지 않는 것과 대조적인 것이다.

14.2 대구신서혁신도시

[혁신도시 홈페이지]
[대구혁신도시 홈페이지]
동구 신서동 422만제곱미터 일대에 행정 신도시인 대구신서혁신도시가 건설되었다.

혁신도시는 세종특별자치시와 더불어 수도권 인구의 분산을 꾀하려는 목적인데 기관의 이동은 순조롭게 진행되었으나, 상주인구의 증가는 예상보다 많이 못미쳤다. 기대와 달리 기존 수도권 근무자들이 출퇴근, 주말통근을 택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반면 기관 근무자들 중심으로한 유동인구는 확실히 증가한 편으로 이들을 중심으로 한 식당 등의 상권이 형성되고 있는 중이다. [해당기사]

대구 혁신도시에는 산업기술평가관리원, 한국산업단지공단(부산에 동남권본부, 구미에 대경권본부가 있다), 신용보증기금, 한국장학재단(신서혁신도시가 아니라 동구 신암동으로 이전하였다), 한국사학진흥재단, 중앙교육연수원(구 교육과학기술연수원), 한국교육학술정보원, 한국가스공사, 한국감정원, 중앙신체검사소, 중앙119구조본부(신서혁신도시가 아닌 달성군 구지면 대구국가산업단지 안에 조성)까지 총 11개 기관 본사가 이전을 완료하였다. 주변에 주거지구, 상업지구, 도로, 상수도 등 기반 시설이 공사 중에 있으며 2015년~2016년 완공 예정이다. 이 때문에 대구도시철도 1호선 안심역에서 하양역까지 연장 공사가 확정돼 2021년 개통을 목표로 하고있다.

14.3 그외 이야깃거리들

  • 지역감정에 근거한 지역비하어로서 배트맨이 활동하는 도시 '고담'의 이름을 따서 고담대구라는 말이 있다. 토착 폭력조직인 칠성파가 건재하지만 타지의 폭력조직들처럼 그 세력이 크게 줄면서 유혈분쟁이 필요 없을 만큼 축소, 음지에서 토착세력화 돼서 딱히 큰 사고는 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담대구라는 이름이 유행을 타게 된 건 고담대구가 유행어가 된 2000년대 초반 디시인사이드의 방임과 자극적이고 엽기적인 소재만 노리는 인터넷 언론이 빚어낸 시너지 효과 때문이다. 당시 아무리 해당 게시물을 신고해도 아무 조치도 없었으며 고담대구 붐이 가라앉자 호남비하로 대상이 달라진 뒤에도 달라진 게 없다. 방임과 방조는 종이 한장 차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예시.
여기서 엽기적인 사건은 강력범죄라기보다는 말 그대로 시민의 안전과 직결된 치안 상황보다는 돌발적인 해프닝에 가깝다. 그리고 희한한 범죄가 많다는 그릇된 편견이 있다. 게다가 보도되는 빈도도 다른 소도시에 비해서 광역시가 더 높고 돋보이는 경향이 있다. 다만, 대구 지하철과 관련하여 한국에서 전례가 없는 안타까운 사건들이 발생했기에 이러한 이미지는 인터넷 상에서 더욱 강하게 인식되기도 했다.
별개로 4대 범죄 발생률은 전국 광역자치단체 4위이다. [기사]
  • 2012년 도검소지자에 대해서 년당 세금부과 개시를 먼저 시작하는 곳으로 진행이 되고 있는 상태다.
  • 2009년부터 [달빛동맹]을 지속하고있다. '달빛동맹'이란 대구-광주 지방자치단체 협력을 가리키는 말로서 달구벌의 '달'과 빛고을의 '빛'에서 한글자 씩 따와서 명명한 이름이다. 호남권 중에서 교류가 많지 않았던 광주광역시와의 지자체 간 협력이 잦아들고 있다. 이후 [민관협의체]로 굳어진 상태다.
김대중 정부가 출범하자 공장을 전라도로 뺏어가니 대구기업들을 다 죽이니 하는 소문이 돌더니 급기야 1998년 경북도의회 한 의원이 [“호남은 건설 경기도 좋고 백화점도 생기고 호황이라 카더라”]는 대구건설업자들 사이의 소문이 맞냐는 소리가 나오고 대구시의회 의원들을 건설 현장에 동행해 사실 확인까지 시켜준 황당한 사건이 발생했는데 이같은 오해를 풀기위해 시작되었다. 실제는 관급 공사 입찰 방식이 추첨제로 바뀌면서 더 많은 기회를 얻기위해 기존 건설회사들이 면허를 여러개 등록한 것이었다고...
대구시장과 광주시장이 서로 자리를 바꾸어 1일 시장 대행 체험을 하는 등 다채로운 행사를 갖기도 하고, 각 지자체에서 개최하는 행사에도 참여하는 등 침체된 지역 경제의 활성화를 도모하기 위한 방안으로 꾸준히 시도되고 있다. 이러한 2013년 5.18 민주화운동 추모식 행사에 김범일 [대구시장이 참석]하기도 했다. 두 지역의 초중고대학프로 야구팀의 [정규교류전도 가질 예정이라고 한다.]
  • [2013년 현재 5천억원이 넘는 채무를 변제했다.] 2013년 9월 중순 대구시에 따르면 현재 대구시 총 부채는 2조3천324억원으로 2005년말 현재 2조8천442억원보다 무려 5천118억원이 줄어들었다. 이는 매년 600여억원 정도의 채무를 지속적으로 감축한 것이다. 대구시 채무의 건전성은 대체로 높다는 평가다. 당시 김범일 대구광역시장은 “예산대비 채무비율이 70%대까지 올라간 적도 있었다. 현재는 32%까지 떨어질 정도로 안전행정부가 인정하는 채무관리의 모범사례를 보여주고 있다”며 “앞으로 5년간 2천596억원을 추가로 감축하는 등 건전 채무 관리 기조를 유지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15 대구 출신 인물

대구광역시/인물 문서로.

16 자매결연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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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두가 이란에 표기되어있다.

17 대중문화 속의 대구

17.1 대구를 배경으로 한 게임

17.2 현인의 노래 '비 내리는 고모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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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호의 필명인 호동아 작사, 박시춘 작곡으로 수성구 고모동이 배경이다. 1948년 박시춘이 이 곳에서 형제봉을 바라보며 영감을 작곡했다고 알려 져 있는데 원래 제목은 '비 리는 고모령'이다. 망우당공원 인근 인터불고호텔 진입로에 있는 만촌자전거경기장 옆에 이를 기념하기 위한 비석이 있는데 1991년 수성구의회가 세운 것이다.

17.2.1 가사

어머님의 손을 놓고 돌아설 때에
부엉새도 울었다오 나도 울었오
가랑잎이 휘날리는 산마루턱을
넘어오던 그날밤이 그리웁고나

맨드라미 피고 지고 몇몇해던가
물방앗간 뒷전에서 맺은 사랑아
어이해서 못잊느냐 망향초 신세
비 내리는 고모령을 언제 넘느냐

눈물어린 인생고개 몇구비드냐
장명등이 깜박이던 주막집에서
손바닥에 그린 하소 졸아가면서
오늘밤도 불러본다 망향의 노래

17.3 동명의 악극 '비 내리는 고모령'

매년 가끔 수성아트피아에서 상영한다. 그 밖에 1969년 임권택 연출로 이 노래의 제목을 딴 동명의 멜로 영화가 제작되기도 했다.

17.4 대구를 배경으로 한 기타 창작물

18 관련 문서

  1. 여담으로 대구를 연고로 하는 대구 FC가 2015년까지, 삼성 라이온즈가 2007년 한정으로 부착한 바 있다.
  2. KTX 매거진 2015년 12월호 본문 참고.
  3. 1995년, 직할시에서 광역시로 명칭을 개정하였다.
  4. 사실 당시에는 대구가 인천보다 인구가 많았다. 인구가 역전된 시기는 2000년경으로, 생각보다는 오래되지 않았다.
  5. 2008년 안동시예천군으로 도청 이전이 결정되기 전까지 어느 곳으로 옮길 지가 결정되지 않아 계속 대구 내에 위치하였다.
  6. 사실상 지방 유일의 토종 브랜드 백화점의 맥락을 이어가고 있는 대구백화점을 비롯하여, 도시 자체의 브랜드 들이 독자적으로 생존해 있다.
  7. 허구연 야구 해설위원이, 김범일 전 대구시장이 대구 신청사 건립 보다도 야구장 건립을 먼저 해준 것에 대해 큰 감동을 받았다고 하였다. [관련 기사]
  8. 이곳은 예전부터 대구시의 주요 부도심이었으나, 지하철 1호선/2호선이 지나가니 않아 상대적으로 쇠퇴하였는데, 3호선 개통으로 다시 살아날 것을 기대하고 있는 분위기다.
  9. 가끔씩 경산 하양읍 등지에서 40도를 넘는 기온이 나오는 것은 자동관측장비에 의한 것으로 공식 기록이 되지는 않는다. 2016년에 경산시 하양읍에서 40.3도가 나왔지만 공식 최고 기온은 영천시의 39.6도인 것도 이 때문이다.
  10. 이날 경북이 전국적으로 가장 더웠으며 그중에서도 경산은 36.5도를 찍었다.
  11. 29명 중 총 19명이 수도권 출신, 강남구에서는 7명 배출, 분당구에서는 4명 배출
  12. 반면에, 수성구 학군과 비수성구 학군 간의 학력 차이가 문제시 되고 있다.
  13. 동구을 유승민, 북구을 홍의락, 수성을 주호영. 유승민과 주호영은 이후 새누리당에 복당했다. 사실상 현존하는 대구의 무소속 의원은 홍의락뿐이다.
  14. 수성갑 김부겸
  15. 1위는 당연히 서울, 2위도 당연히 경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