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평화론

자유주의적 국제관계 이론 중 하나. 18세기 이마누엘 칸트가 주창한 '영구평화론'(perpetual peace)에 기원을 두고 있으며, 현대에는 마이클 도일이나 브루스 러셋, 루돌프 럼멜 등이 체계화한 것이 대표적이다.

1 개요

냉전 이후 국제관계를 해석하는 데 중요한 이론으로 부각되고 있는데, 요점은 매우 간단하다. 민주주의 국가들 사이에서는 전쟁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 하지만 해석에 있어서 이 분야의 모든 것이 그렇듯(...) 상당히 복잡하다. 비슷한 것으로 프리드먼이 주창한 '맥도날드 평화론'이 있지만 남오세티야 전쟁으로 인해 개박살. 민주평화론도 해석하기에 따라 남오세티야 전쟁이 반례가 될 수 있다.

민주평화론은, 우선 주권이 국민에게 있다면 국민은 전쟁이 날 경우 본인들이 피해를 입는 다는 사실을 자각하고 국가가 전쟁을 일으키는 것을 거부할 것이라는 데에서 출발한다. 얼핏 보면 굉장히 당연하게 여겨지며, 실제로도 상당히 잘 들어맞는 이론이기도 하다.

미국이 중동에 민주화를 시도하려는 것 역시 미국의 패권 강화 뿐 아니라 이 민주 평화론에 근거한다. 독재 국가에 전쟁을 일으켜서 민주화시킬 경우 민주평화론에 의해 세계 평화가 찾아올 것이라는 것.

2 의의

민주평화론은 국제정치에서 전쟁, 평화 여부가 국가 내부의 정치체제가 민주적인가, 독재적인가에 따라 결정된다는 내부 요인을 강조하는 것이 특징이다. 이는 현실주의가 강조하는 외부 요인, 즉 '무정부적인 국제질서' 때문에 전쟁이 발생하며, 이를 위해 국가간의 세력균형이나 우위를 강조하는 것과 정면으로 충돌하는 성격의 이론이라고 할 수 있다.

민주평화론은 국제정치에서 현실주의에 대응하는 자유주의(또는 자유주의적 제도론)에서 전쟁과 평화의 발생 이유를 설명하는 이론이다. 현실주의가 위에서도 설명했듯이 갈등의 해결을 국력을 기준으로 보고 따라서 국가간의 힘의 차이를 중심으로 전쟁과 평화를 서술하는 반면, 자유주의는 갈등을 조정하는데 있어서 제도(국제 기구나 조약과 같은 것을 말한다)가 얼마나 기능할 수 있는가를 중심으로 전쟁과 평화를 설명한다. 예를 들어, 석유 가격이 발단으로 갈등이 일어났을때 제도적 기구가 부족한 시절에는 물리적 충돌이 빈발했지만 OPEC과 같은 기구가 생기면서 석유가를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민주평화론은 이러한 제도의 역할이 적절히 수행될 수 있는 국내적 기반을 제공한다. 즉, 독재자나 소수 엘리트 집단의 결정은 집권층이 마음만 먹으면 순식간에 뒤집어버릴 수 있고 따라서 제도 안에서의 논의가 안정적으로 유지되지 못하게 한다. 반면 민주주의는 다수의 의견을 기반으로 하여 결정하기 때문에 그 결정이 오래동안 유지될 수 있으며 또한 갑자기 바뀌어지지도 않는다. 따라서 제도 내에서의 논의에 신뢰성을 더해주는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

여담으로, 오늘날의 자유주의에서의 전쟁과 평화의 논리는 단순히 민주평화론만을 논의의 근거로 삼지는 않는다. 민주평화론과 함께, 광범위한-그야말로 월드와이드한 경제적 의존, 즉 자유무역의 전세계적인 확대, 그리고 갈등을 해결하는 장으로서의 제도의 확립, 이 세가지를 축으로 한다.[1] 예를 들어, 민주주의가 발달한 국가들이 서로간에 긴밀한 경제적 협력을 유지하면서 UN과 같은 제도 아래에서 활발한 교류를 이어간다면 설령 어떤 분야에서 갈등이 발생해도, 예를 들어 무역에서 관세나 역차별 등등의 문제가 발생해도 서로간에 대화를 계속하면서 이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경제적인 의존성으로 인해 대화를 쉽게 끊지 못할 것이고, 국내적으로도 평화를 원하는 시민들의 압력으로 문제 해결수단으로 무력을 꺼내기 쉽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한 제도 - 국제기구의 활발한 중재 노력으로 서로간의 의견 접근도 쉽게 가능할 것이니 굳이 갈등의 해결을 무력을 통해 이루려 하지 않을거라는 것이다.

3 비판과 반론

3.1 비판

얼핏 보면 이 이론은 민주주의 국가가 선제공격선빵을 가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에 근거한는것 처럼 보인다. 그런데 여기에는 당장 2000년대 이후에만 해도 수 많은 반례들이 존재한다.두 개가 천조국 선빵이라는 것은 함정[2] 이 이론이 효과적으로 적용되기 위해서 전제는 그 국가의 국민이 전쟁을 막을 것이라는 논리인데, 안타깝게도 미국민은 자국의 군사 작전을 막아본 전례가 거의 없다. 그리고 세계 곳곳에 분쟁에 미국이 개입되어 있다는 것 역시 이 논리를 약화시킨다.

이런 이유로 이를 비판적으로 보는 입장에서는 이건 그냥 미국의 핑계거리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남오세티야 전쟁은 조금 다른데, 조지아는 민주국가였고, 러시아도 민주국가이긴 한데... 러시아가 보편적인 서방의 민주국가라고 보기는 애매하다.차르가 지배하는 훌륭한 민주국가

이는 위의 전제를 보면 알 수 있는데, 국민이 피해를 입는다가 전제되어 있기 때문. 천조국의 경우에는 세계 최강의 군대와 모병제가 합쳐져 위 전제가 많이 약해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하지만 상호확증파괴가 출동한다면 어떨까?

3.2 반론

그러나 위에 든 사례는 민주평화론의 반례라고 보기에는 다소 애매한 감이 있다. 남오세티야 전쟁의 경우 형식적으로는 조지아와 러시아 모두 민주국가이긴 한데... 러시아가 보편적인 서방의 민주국가라고 보기는 애매하다.차르가 지배하는 훌륭한 민주국가 그리고 아프간전, 이라크전도 미국은 민주주의 국가지만 이라크와 아프간이 민주주의가 제대로 정착된 국가였던가? 민주평화론의 성립 조건이 양쪽이 다 민주주의 국가여야 한다는 것인데 사례로 든 전쟁들은 애초에 성립 조건 자체가 성립되지 않았다.

또한 위 비판은 민주평화론을 한 측면에서만 바라본 것이다. 민주평화론은 민주주의 국가가 선제공격선빵을 가하지 않는다고 믿지 않는다. 군사력은 모든 국가가 갈등 해결 및 방어를 위한 최후의 수단으로서 얼마든지 사용가능한 주권의 영역에 속한 것이다. 민주평화론은 발전된 민주주의 국가끼리는 전쟁을 하지 않는다[3]라고 믿는다는 것이 정확한 표현이다. 왜냐하면 위에서도 설명했듯이 민주주의 국가는 독재나 과두제 국가에 비해 훨씬 믿을 수 있는 상대로서 상대적으로 대화가 통하는 상대라고 보기 때문이다. 오히려 비민주주의적인 국가일수록 민주주의 국가가 더 호전적으로 대하는 경우도 종종 보인다. 왜냐하면 비민주주의 국가는 철저히 상층부의 의사에 따라 국가가 운영되나 민주주의 국가는 민중이 중심으로 운영되면서 다소 이상주의적, 도덕적인 판단을 내리는 경우도 종종 있기 때문이다.[4]

또한, 현대의 자유주의에서는 민주평화론 하나만 보고 전쟁이 일어나지 않는다고는 하지 않았다. 서로 민주주의가 발달한 국가라고 하더라도 여전히 국가의 행동 원리는 국익에[5] 좌우되기 때문에 국익에 심각한 위험이 발생하면 역시 선제공격을 수틀리면 선빵 할 수 있다고 본다. 따라서 이를 막기 위해 칸트의 삼각형 모형에서 경제적인 상호 의존과 대화와 중재의 장으로서의 제도의 중요성을 강조한 이유이다.

이렇게만 보면 민주평화론을 실제로 증명하려면 전세계에 민주주의가 성공적으로 정착된, 현재에는 까마득한 상황이어야 한다.

  1. 이를 칸트의 삼각형 (Kantian Triangle)이라고 한다
  2. 물론 9.11 테러를 선빵이라고 한다면 달라지기는 한다.
  3. 2차대전 이후의 전쟁은 거의 대부분 민주주의 국가 vs 비민주주의 국가 또는 비 민주주의 국가간의 구도로 진행되었다.
  4. 현대의 미국이 호전적으로 보이는 이유이기도 하다. 특히나 부시 정권 시절의 네오콘은 말할 필요도 없다. 물론 9.11 테러라는 선빵을 맞기는 하였으나 네오콘 특유의 이상주의, 경직된 도덕성과 그로 인한 의심증 멍청함 덕분에 전쟁이 막장으로 흘러간 측면이 있다. 이라크전은 그 누가 보더라도 필요없는 전쟁이었다는 점을 상기하자
  5. 자유주의라고 국익을 완전히 무시하지는 않는다. 여전히 국익은 최고의 목표로 본다. 다만 현실주의처럼 절대시 신성시 하지는 않는다. 대화를 통해 타협과 조정이 가능하다고 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