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asco Núñez de Balboa
(1475 ~ 1519)
하급 귀족 출신으로 1500년에 로드리고 데 바스티다스와 콜롬비아 연안을 탐험하는 항해에 떠났다고 하며 히스파니올라에 정착해 살다가 1510년에 채권자들을 피하여 페르난데스 데 엔시소가 조직한 탐험대에 밀항하여 참가하였다.
히스파니올라를 떠돌다가 프란시스코 피사로가 이끄는 탐험대에 참가하여 식민지 건설에 참여하게 되고 파나마 해협에 위치한 다리엔에 신도시인 산타마리아 데 안티과를 세우는데 이는 남아메리카 대륙에서 최초로 세워진 거주지였다.
이 지역의 원주민들과 거래와 전쟁을 통해 금을 얻기 시작하였으며 엔시소와 함께 그 도시의 시장이었는데 식민지 거주민들이 엔시소를 물러나게 하자 1511년 12월에 스페인의 국왕인 페르난도 2세의 명에 따라 다리엔의 총독 겸 총사령관이 되었다.
인도 지역의 금 채광과 노예 포획을 위한 탐험대를 조직하여 고문, 물물교환, 부족들과의 동맹을 이용한 공격, 정보제공자에 대한 포상 등의 방법을 병행하였으며 친구인 후안 폰세 데 레온에게 받은 군견 베르세리요를 친구인 레온의 이름을 따서 레옹시코라 명명하여 이를 전쟁에 활용했으며 인디언들을 붙잡으면 개를 사용하여 포로를 찢어 죽였다고 한다.
그는 남쪽의 바다와 한 지역에 무한히 많은 금이 매장되었다는 정보를 인디언에게서 듣고 국왕에게 명령받기를 원했지만 그의 적들이 고발장을 국왕에게 보내서 신임받지 못했는데 국왕이 따로 파견한 원정대를 기다리지 않고 1513년 9월에 산타마리아에서 아클라로 떠나 안데스 산맥을 넘어 태평양을 발견하여 역사상 최초로 대서양과 태평양을 함께 바라본 유럽인이 되었다.
태평양을 도달하여 마르델수르(남해)를 정복한 사실을 국왕에게 편지로 보내어 다시 신임을 얻었으며 파나마, 코이바의 총독의 임명되었지만 다리엔의 신임 총독인 페드로 아리아스 데 빌라가 자신과 협력한 원주민을 모두 죽이고 학살을 자행하였으며 1519년에 아리아스 밑에 있던 프란시스코 피사로에게 압송되어 교수형을 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