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인수

박인수

1 박인수 사건

1954년 4월부터 1955년 6월까지 해군 헌병대위를 사칭하던 박인수가 여대생을 비롯해 100여명[1] 여인을 간음한 혐의로 구속되어 재판을 받았다.[2]

원래 동국대 사학과에 다니던 대학생 박인수는 한국 전쟁발발 후 입대했다. 하지만 애인에게 배신당한 이후 변했다고 한다. 여자들은 주로 해군장교 구락부, 국일관, 낙원장 등을 무대로 춤을 추면서 꿰어냈다고 한다.

법정에서 검사가 '혼인을 빙자한 간음'이라고 주장했으나, 박인수는 이를 부인하였다. 박인수는 '자신은 결혼을 약속한 적이 없고, 여성들이 스스로 몸을 제공했다'[3] 하면서 많은 여자들 대부분 처녀가 아니었으며 한 여성만이 처녀였다고 주장했다.[4][5]

여기서 두고두고 회자되는 명언이 나왔는데 1심 법정은 '법은 정숙한 여인의 건전하고 순결한 정조만 보호할 수 있다' 이게 뭔 개소리야 고 하면서 혼인빙자간음죄에 대해서는 무죄를 선고하고, 공무원 사칭에 대해서만 유죄를 선고했다고 한다. 그러나 2심, 3심에서는 혼인빙자간음죄에 대해 유죄가 선고, 확정되었다. 형은 벌금 2만원. 워낙에 옛날 일이고 사실 당시에는 저게 의외로 보편적인 사고방식이었으니 그러려니 하자.

이 사건은 제1공화국에서도 다뤄졌는데, 이 때 박인수는 성우 박일이 맡았다.

2 한국의 테너

박인수(1938) 참조.

3 한국의 만화가

양재현, 전극진, 김태형, 홍성혁 등이 활동한 AAW(Animation Art Work[6])의 일원으로서 전극진 작가와 함께 '재핑'이라는 만화를 발표한 적이 있다. 2015년 8월 12일 심장마비로 별세.
  1. 법정에서 거론된 여성만 69명이고 실제로는 100명에 달하였다고 한다.
  2. 해병대 헌병대에서 사병으로 군복무를 했기에 능숙하게 장교 행세를 할 수 있었다고 한다. 거기다 키 176cm로 당시로는 평균을 훌쩍 넘는 장신이었고(당시 평균키가 160초반이었으니 현재로 치면 약 180중후반이다.), 외모도 출중했으니 넘어오는 여자가 많았다고 한다.
  3. '내가 좋아서 그랬던 것 뿐인데 뭐가 문제냐' 라는 식의 주장을 했다고 한다. 참조.
  4. 70여명의 여성 중 미용사였던 한 명만이 처녀였다고 한다. 이로 인해 '순결의 확률 70분에 1이다'라는 유행어가 탄생했다고 한다.
  5. 당시 혼인빙자간음으로 박인수를 고소한 사람은 2명 뿐이었다고 한다.
  6. 게임 원화 항목에 짤막하게 설명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