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朴仁天
1901년 7월 5일 ~ 1984년 6월 16일
대한민국의 전 기업가로서 전 금호그룹(현 금호아시아나그룹) 창업주이다. 호는 금호(錦湖)이다. 즉, 금호아시아나의 금호는 그의 호에서 따 온 것이다.
1901년 전라남도 나주군에서 태어났다. 1920년 나주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였다. 그리고 광주부에 나와 목화 장사를 시작하였으며 이어 잡화상을 시작하였으나 모두 실패하였다. 그 뒤 목포부와 광산군 송정리에서 장사를 하였으나 이 또한 실패하였다.
그리하여 경성부에 올라왔다. 상경 후 오성강습소에서 5개월, 중동학교에서 3개월을 수학하였다.
일제 치하에서 순사시험에 합격 후 문관시험에 도전, 5년 만에 합격해 순사부장이 되었고 해방전 경부로 진급하여 근무했다.
8.15 광복 후인 1946년 2월 2대의 미제택시를 보유하고 택시회사를 경영하기 시작하였다. 1948년에는 2개 노선(광주시-장성군, 광주시-담양군)의 면허를 얻어 버스운수업을 시작하였다. 그 뒤 운수업 이외에도 타이어 제조 산업 등을 통해 현재의 금호아시아나그룹을 키웠다.
1984년 별세하였다. 이후 장남 박성용이 그룹 경영을 물려받았다. 현재는 3남인 박삼구가 맡고 있다.
광주광역시 금남로에 생가가 남아 있다.(나주에 있던 생가는 6.25 전쟁 때 파괴되었다.) 이 집은 박인천의 부인인 이순정 여사[1]가 생활하다가 2010년 사망한 뒤엔 금호그룹 문화재단에서 관리하고 있다.- ↑ 1910년생으로 2010년 5월 12일 향년 101세로 별세하였다.